[문학회지] 제121호
|  | | | 경기도 조선문학회 발행 - 단체 발행 소식지 제121호 - 개국629(2020)년 11월 11일 | |
| | 시편_01 | | 시편_02 | | | 친구와 편지
오랜 친구를 위해
펜을들어 마음을 전한다
낡은 펜과 편지지 그리고 나
늙은 나는 오늘 오래된 벗을 위해
나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 통의 편지를 쓴다
삐뚤어진 글씨체며, 무뎌져가는 손의 감각
이러한 불만족스런 자세로
나는 오늘 나의 마음을 전하고자
오랜 벗에게 편지를 쓴다 | 미련
버려야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갖고있지 않아도 될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
이런저런 핑계로 곁에 두지만
또다시 이런저런 핑계를 두며 버리지 못한다.
그것 바로, 미련이다.
이 모든 것을 버리는 그 때야말로 나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버리고 또 버려도 내 안의 있는 그것.
그것을 버려야할 때를 우리는 알아야한다. | | |
| | 시편_03 | | 시편_04 | | | 老婆
노파의 깊게 페인 주름진 이마 속
그 속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들일 것이라
차마 속내를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름진 이마를 들여볼 때 모든 인생사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노파의 양 어깨 역시 세상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산 듯
이미 땅바닥 밑까지 내려앉아 버렸고, 양 손가락도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듯해 보이지만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듯 제각기 위치를 잡아내어 모양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노파에게도 미소짓게 만드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짊어졌던 수 많은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길러내었던 자식들, 그 아이들로 하여금 오늘도 노파는 살아간다. | 가지 않는 작년 그 해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
작년 그 해
지나가길 바라며 안녕을 고했지만
정작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작년 그 해 초 겨울
우리는 그 작년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시간, 가족, 우리들의 소중한 무언가들을
지나가길 바라며 작별인사를 보냈지만
정작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작년 그 해 초 겨울
그 겨울 이후부터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변해버렸다.
관계, 삶, 수 많은 무언가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고 말하지말자.
어쩌면 그 해 역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도 모르니
가지 않는 작년 그 해를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맞이하고 있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작년 그 해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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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살기 힘들다.]
2000원짜리 초코과자를 샀는데
딱 아홉 개 들어있다.
나참,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
[이웃집 외계인]
“아저씨, 외계인이죠?”
“하하. 보면 모르겠어? 너랑 똑같은 사람이란다.”
“훗, 도둑이 도둑이라고 하는 거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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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원의 겨울 4화
“염병할! 천부경은 무릇 천제 환인이 아들 천왕 환웅에게 내린 세 가지의 신물, 천부인(天符印) 중 하나다. 천부인을 가진 자는 하늘의 뜻에 따라 대대손손 이 땅을 다스리는 적통의 자격을 얻는다. 천부검과 천부령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천부경만이 유일하다. 그런 물건을 벼락을 맞아 뒈져도 시원찮을 놈들한테 주려고 하다니…….” “그래도 유덕에게 잡혀있는 왕희 님을 구해야 합니다.” 영은 한 점 흔들림이 없다. “그분만 계시다면 언젠가 다시 고려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오라질…. 고려가 꼭 왕 씨여야 하느냐?” 평나의 목소리가 어둠으로 가라앉는 깃털처럼 가볍고도 음울했다. “천부경과 고려의 뜻을 이어받는 자가 있으면 어떠하냐?”
“평나 님.”
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팔자 더러운 놈아, 한때 고려는 무신들의 나라였느니라. 왕 씨 성이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라가 조선이면 어떻고 고려면 또 어떻습니까?”
영은 평나를 보며 무겁게 대꾸했다.
“니미럴, 그건 아니지. 조선은 폭도와 도적의 나라, 하물며 우리 민족의 나라가 아니잖느냐? 30년이 흘렀지만, 이름만 조선일 뿐 아직도 이 땅은 고려의 세상이다. 이 씨 성을 흉내 낸 오살할 여진의 무리의 땅이 아니란 말이다. 너는 왕씨 고려가 옳겠지만, 백성들은 한민족의 고려를 그리워하고 있단 말이다.”
30년 전, 새나라 조선이 섰다. 새 나라를 세운 자들은 개경의 왕 씨라면 어린 씨앗까지 참혹하게 살해했다. 또한 고려의 흔적을 지우고자 2년 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백성들은 고려를 그리워했다. 대부분의 학식과 명망을 갖춘 선비들은 새 왕조의 부름을 거부하고 낙향하여 세상과 담을 쌓았다. 일반백성들은 냄새나는 뒷간을 태조 이성계가 일하던 수창궁 서쪽 전각에 빗대어 서각(西閣)으로 부른다. 또한 개경에서는 만두 속의 다진 고기를 성계육이라 일컬으며 다지고 삶아 먹으면서 이성계를 조롱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천년 고려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성계가 여진의 씨라는 소문이었다. 오랑캐를 왕으로 모실 수는 없지 않은가.
“왕 씨와 고려는 하나의 이름입니다.”
영은 단호히 대꾸했다.
“병신 육갑! 네 놈은 하나도 안 변했구나!”
쓱. 그때, 관이 손을 뻗어 탁자위에 올려둔 볼을 감싸는 볼끼가 달린 풍차를 집어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평나와 영에게 눈을 몇 차례 깜빡댄 후 후 방을 나섰다.
대관령 정상 인근의 한적한 고원. 사방이 눈 천지다. 허리만큼 쌓인 설원에서 천천히 수백 개의 사람 머리통이 치솟아 오른다. 상투머리, 더벅머리, 민머리, 쪽진 머리에 하얗게 눈이 묻어있다. 검은 손과 발을 가진 이미 죽음을 맞이한 시체, 흑수흑족들이다. 그들의 푸르뎅뎅한 입술에서 숨소리처럼 말이 흘러나온다. 높낮이가 없는 그 말은 단순하니 더욱 을씨년스럽다.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재차의. ‘내가 여기 있다’는 뜻이다. 망자들은 자신이 아직 이곳에 있음을, 불귀의 객이 되지 않았음을 낮은 소리로 울부짖는 것이다.
“어서 오라. 나는 청목자(靑目子)시다.”
차가운 눈밭을 딛고 선 흑수흑족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응시한다. 키가 작은 해괴한 노인이다. 눈은 푸르고 듬성한 머리는 금발이다. 양 손에 곡도를 쥐고 있다.
이 요괴는 박동량의 <기재잡기>에 여주와 이천 근처에 농사 짓고 있던 이순몽이 목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땅을 굴러다니는 둥근 불덩어리처럼 보이며, 가까이 다가가면 불덩어리 속에 금발 푸른눈의 소인이 들어있다고 한다. 매우 빠르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움직이며,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사방을 굴리며 노려보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흑수흑족들은 약속이나 한 듯 끝없이 되뇌던 말을 멈추고 청목자를 바라본다.
“무릎을 꿇은 자들에게는 영생을 줄 것이야. 싫다면 차가운 무덤으로 돌려보내주지.”
잔혹한 말과 더불어 청목자는 이빨를 드러내며 킥킥 댔다. 익숙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겠느냐, 가본 적이 없는 암흑으로 덧없이 흘러갈 것이냐? 질문은 단순한 만큼 명확했다.
흑수흑족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질없는 존재를 알아달라는 듯 눈이 퍼붓는 하늘을 보며 끝없이 중얼거린다.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在. 此. 矣. 눈발처럼 ‘재’와 ‘차’와 ‘의’가 흩날린다.
멀지 않는 곳. 기괴한 고사목들이 산등성이를 덮은 곳이 있다. 산 하나가 마치 죽은 나무들을 위한 공동묘지 같다. 내려 쌓인 눈은 그 나무들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쩡-. 두터운 것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소리가 이어진다. 쩡-. 쩡-. 쩡-. 검은 고사목들이 번개를 맞은 듯 깨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 자라난 목인들이 등장한다. 얼굴이며 몸통이며 팔다리가 온통 검은 나무다. 더욱 요상한 것은 누구나 패랭이에 죽창이나 몽둥이를 쥐고 한 가지 표정으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그랬다. 이 나무인간들은 저마다 희노애락, 즉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중 하나의 표정만 가졌다. 목인은 목요(木妖)의 일종이다. 다른 일종인 말과 고양이를 닮은 부류는 이익의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
목인들은 어리둥절해서 좌우를 둘러보다, 마치 운명처럼 옆에 있는 목인들과 투각투각 싸움을 시작한다. 퍽! 캭! 푸슝-. 빠깍! 일대는 한순간 나무인간들의 전쟁터로 변한다. 깨진 팔다리가 뒹굴고 짓밟힌 몸뚱이가 흩어진다. 타고난 본성이 오직 싸우고 죽이는 것 뿐이라고 목인들은 서로를 죽창으로 찌르고, 때리고, 깨부순다.
“그만, 그만.”
비탈 위에 선 황금 돼지 얼굴의 요괴가 소리쳤다. 붉은 망토에 황금 활을 등에 메고 있다. 황금색 돼지 얼굴의 이 자는 <용천담적기>와 <어우집>에 언급이 있는 사람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말을 하며 술법을 쓰며, 힘과 지혜, 재주가 뛰어난 금저(金猪)라는 요괴다.
기쁜 얼굴을 한 목인 하나가 금저를 향해 죽창을 날렸다. 쉭. 금저가 고개를 돌려 피하자, 때려 부숴야 기쁘겠다는 듯 그를 향해 달려간다. 순간, 금저가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허공을 미끄러진다. 손에는 어느새 황금 활이 들려있었다. 화살도 없이 활대를 당겨 쏘았다. 그 러자 요술처럼 화살이 나타나 허공을 가른다. 곧 다가오는 기쁜 얼굴 목인의 인중에 화살이 명중했다. 기쁜 얼굴 목인은 얼굴에 화살이 꽂힌채 어리둥절해서 좌우를 돌아봤다. 차륵. 목인의 인중 속에서 화살이 바늘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퍽. 그 바늘 화살이 폭탄이라도 되는 듯 머리통 곳곳을 파고들었다. 금저가 기쁜 얼굴의 목인에게 도착했을 때, 기쁜 얼굴 목인의 기쁜 얼굴은 이미 산산이 쪼개져 가루처럼 흩어진 후였다.
“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다. 너희들에게 방법은 없다. 남아있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한다.”
금저가 목인들을 향해 떠르르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싸움에 익숙할수록 강한 자를 대번에 알아보는 법이다. 목인들 역시 그러했다. 이윽고, 그들은 한쪽 무릎을 눈밭에 꿇고 머리를 낮춰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그 수가 다시 수백에 달했다.
도합 1천에 이르는 손발이 검은 흑수흑족과 표정이 하나 뿐인 목인은 굵은 눈발 속에서 이동을 시작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사위는 어둡고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조선 세종 4년, 섣달, 열나흘 날, 유시(酉時)]
_1422년, 12월 14일, 오후 5시~7시
저녁이 오면서 세계는 낭떠러지의 돌멩이처럼 가파르게 추위와 어둠으로 떨어진다. 퍼붓는 눈의 묘한 침묵에 대령원이 갇혔다. 옥수수죽과 조밥이 끓는 구수한 냄새가 객점에서 퍼져나왔다. 뎅-. 뎅-. 뎅-. 객점 문루에 달린 청동종이 울렸다.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객점 내부. 달큰한 술 냄새와 비릿하면서도 담백한 북어향기가 코를 찔렀다. 벽에는 노란 횃불이 걸렸고, 탁자 위에는 등잔이 불을 밝혔다. 커다란 놋쇠주전자가 객점 가운데의 화로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탁자는 죄다 낡았고, 등받이 의자도 긴 나무 의자도 칼자국으로 어지러웠다. 부엌에는 잿빛 항아리들이 늘어섰다. 이미 많은 손님이 대낮부터 옥수수 술에 취해 있었고, 별 수 없이 대령원에서 겨울밤을 보내야하는 나머지 사람들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속속 모여들었다.
“빨리 저녁을 내놔! 객점에서 내 맘대로 음식도 못 먹다니!” “빌어먹을 것들, 황태에 옥수수 술만 네 병째야! 다른 안주를 가져오라고!” “꼬마야, 아침에 주문한 꿩만두! 잊지 마라.”
들무와 팔자눈썹의 종업원 숙자가 부엌에서 나오자 손님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들무는 고개를 살짝 꺾어 손님들의 말을 무시하더니 작은 새처럼 객점 중앙으로 탁탁 걸어갔다. 그녀는 작은 가슴을 젖히고 딱 버티면서 손님들이 거친 입을 다물길 기다렸다. 이윽고 잔소리와 불만이 사라졌다. 들명은 매부리코에 두터운 검은 입술의 사내를 꼬나보며 소리쳤다.
“나한테 꼬마라고 한 게 매부리코 당신이지?”
“엥? 쪼그마한 년이 말투는 삼신할머니네.”
“2승포로 숙박비를 치른 거 당신이지?”
“내, 내가 뭘?”
“맞잖아. 어디서 추포를 내밀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해요?”
“무슨 소리냐? 나는 틀림없이 3승포로 계산을 치렀다.”
값을 치르는 면포는 5승포가 기준이었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3승포가 통용되었다. 하지만 보다 성기게 올을 짠 2승포로 눈을 속이려는 자들이 많았다. 3가닥이 아닌 2가닥으로 천을 짜면 실을 그만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제대로 값을 치러요. 그러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따뜻한 음식을 뱃속에 넣지 못할 테니까.”
“아니, 우리는 왜?”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나는 제대로 계산을 치렀는데.” “나는 은화를 치렀으니 괜찮지 않느냐?”
“자자, 들으세요.” 들무는 귀찮은 파리 떼라도 듯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은병을 냈는지 누가 은화를 냈는지 또 누가 면포로 제대로 계산했는지, 내가 다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그러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모두 하나의 통속. 한통속이란 거죠.”
“한통속?”
“네. 하나의 통속에 있으니 먹어도 같이 먹고, 굶어도 같이 굶어야 하지 않겠어요?”
뻔뻔하게 소리친 들명은 제 말에 만족했다.
“당찬 아이로구나.”
그때, 가장 넓은 탁자에 앉은 유덕이 멋들어지게 기른 검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와 함께 앉은 이거이, 신극례, 서익, 심귀령과 고급 비단 옷을 걸친 미색의 여인 목멱이 즐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저 아이의 말솜씨만으로도 지긋지긋한 저녁 한 때가 기쁘구나. 은화 몇 닢을 쥐어 주어라. 그래야 이곳 사람들도 고픈 배를 채우지 않겠느냐?”
“뭐해요? 숙자 아줌마! 빨리 빨리 음식을 날라요~! 손님들이 기다리잖아요!”
들명은 유덕을 향해 씩 웃고 난 후, 부엌을 향해 목청을 크게 열었다. 이 눈 내리는 저녁에 혼자서 푸른 하늘을 머리에 띄운 것 같았다.
안쪽, 가장 어두운 탁자에 행상 셋이 앉아 있다. 목화솜을 단 패랭이를 쓴 그들은 큰 비밀이라도 숨긴 듯 요리 조리 눈알을 굴렸다. 그 중 한 행상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여기에 목여거 있을까?” “저 사람 같다. 목여거 닮았다.” “목여거가 있어야 돌아가는데….”
행상들은 더없이 심각한 얼굴로 사람들의 행색을 유심히 살펴본다.
“저녁 식사에 두붓국이 나올까?”
그들 중 하나가 침을 삼켰다. 그 말이 꼭 비밀의 신호라도 되는 양 나머지 두 행상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두부는 정말 맛있어.” “아주 훌륭한 조선의 음식이야.”
행상들이 탁자에 두부가 올라오길 간절히 기대하며 침을 넘기는 그때, 거센 바람소리가 들렸다. 객점의 문이 열리면서 어딘지 불량하게 보이는 정수동이 들어섰다.
수동은 길게 숨을 들이켜더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떴다.
“자, 보자-.” 수동은 객점 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뭐야, 요괴 천지네? 배고파 죽은 아귀, 길에서 뒤진 객귀, 어린 나이에 죽은 태자귀, 둥글둥글 달걀귀신, 피 빠는 흡혈귀, 뼈만 남은 해골귀, 누가 처녀 총각 아니랄까봐 손각시랑 몽달귀는 딱 붙어 앉았구만. 허어-, 잡귀들만 있는 게 아니네. 사람으로 변한 저놈은 두억시니 같고, 저놈은 몸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는 그슨대로군. 어라? 헌데 저건 또 뭐야?”
수동은 돌무더기에서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침을 삼키며 빠르게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헌데 한 탁자를 지나치는 순간, 점잖은 선비가 벌떡 일어났다. 선비의 얼굴과 몸이 일변했다.
“꿔- 엽괴냐? 꾸에-.”
선비의 목과 가슴, 배가 부풀면서 저고리가 찢어지고 솜두루마기가 어졌다. 두껍 요괴였다.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을 보니 두껍 요괴 중에서도 능력이 특별한 놈이었다. 이 정도라면 이름도 가졌으리라. 두껍 요괴는 수동을 향해 점액질의 앞발을 휘두르는 동시에, 벌레를 잡듯 붉은 혓바닥을 쏘았다.
수동은 두껍 요괴의 앞발을 가볍게 피하며, 왼손으로 날아온 혀끝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사인검을 뽑아냈다. 60년의 단 하루, 호랑이의 해, 호랑이의 달, 호랑이의 날, 호랑이의 시에 만든다는 사인검(四寅劍)이었다. 검의 한 면에는 스물네 글자가, 다른 면에는 별자리가 박혀 있었다. 乾. 降. 精. 坤. 援. 靈. 日. 月. 象. 岡. . 形. . 雷. 電. 運. 玄. 坐. 推. 山. 惡. 玄. 斬. 貞. 사인검의 검신에 박힌 전서체 글자들이 빛을 발한다. 수동은 사인검을 뉘여, 두껍 요괴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뻑. 꾸엑-.
“너보고 한 말 아니니까, 신경 꺼. 너는 음습한 곳으로 돌아가 구애의 노래나 부르자-.”
“꽥-. 아파-.”
푸다다닥. 두껍 요괴는 정수리를 쓰다듬으면서 객점 밖으로 날름 도망쳤다.
수동은 객점 안을 훑어보며 미소를 날린다.
“나는 잡을 놈만 잡으면 되니까, 건드리지 말자.”
수동의 말에 잡귀는 물론, 사람 행색을 한 요괴들도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수동은 이어서 북쪽 끝 탁자에 모여 앉은 세 행상에 이르렀다.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너희들은 아무래도 신기하단 말이야.”
“…….”
행상들은 수동의 시선을 피해, 표면에 칼자국이 난무하는 탁자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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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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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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