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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차 별시 문과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20.08.15-2020.08.21
문서분류 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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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제105차 소과 생원시 응시

1) 생원시 시제 (시험 문제)
: 독립운동가 중 상당수는 해방 이후의 정치적 이념과 그에 따르는 영향으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응시자가 생각하기에 현재 가장 저평가된 독립운동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또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3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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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 과목 : 생원시

답안 내용 :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의 철학적인 논쟁은 그 분야에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역사적 사실 내지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공과(功過)를 모두 따져 어떤 것이 우선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과(過)가 모든 공을 덮은 경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편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서술하고, 평가는 차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모두 가치를 가지는데,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라면 그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런 중에도, 존중받지 못하는 의견과 인물이 발생한다. 따라서 시제와 같이 독립운동에 종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의 정치적 이념과 그에 따르는 영향으로’ 저평가된 독립운동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광복절 기념사에서 등장하고, 그 이후 뜨거운 감자가 된 김원봉이 바로 그러한 독립운동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을 공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이념에 따른 행동은 과가 되어 현재 시류에서 독립운동가 아닌 사회주의자로 평가받게 되어 그 가치에 대한 학습 또는 계수(繼受)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서 북한 정권에서 높이 평가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김일성의 지도력에 흠을 낼 수 있는 위험요소였던 김원봉은 북한에서조차 저평가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독립운동기의 행적, 해방 이후의 행적, 그리고 해방 이후의 영향에 대하여 논하고 김원봉이 왜 저평가된 독립운동가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김원봉은 자기를 소개할 때 별다른 지위나 직함을 대지 않고 “밀양 사람 김원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무장독립투쟁이 독립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군사학 등의 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시간 소요가 상당하다고 생각한 그는 자퇴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다. 그것이 의열단의 조직으로 이어지는 ‘의열투쟁’의 방식이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하면서 그 강령(공약) 10조를 정하고, 그 1조에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이라고 했다. 정의와 맹렬의 각 한 글자를 따서 조직의 이름을 의열단이라 하고, 그 단체에서 실행하고자 하는 정의를 조선의 독립, 세계의 평등이라고 정하였다. 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신명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정하는데, 신명을 희생함이란 바로 몸과 마음을 죽인다는 뜻으로 일종의 테러리즘의 방식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의열단이 행동한 방식이 테러냐 의열투쟁이냐에 대하여는 논쟁이 없이 가능한 방법의 투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후 각 경찰서, 총독부 폭파 시도, 저격, 폭탄 투척 등 다양한 의열투쟁을 지휘하고 점차 김원봉에 대한 주의가 높아졌다. 그러던 중 이념운동을 통한 독립운동 방식, 노동대중 운동의 성장 등 다양한 영향으로 의열단의 무장투쟁 노선을 비판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에 김원봉은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본질은 다르지 않고 그것이 합치되어야 한다며 동아일보에 ‘합치되는 두 운동’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하기도 했다. 이후 황포군관학교에 입교, 전문적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무장투쟁 노선을 강화하는 듯했으나, 이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조선공산당재건운동 등 공산주의 사상투쟁을 하기도 했다. 소련공산당과 코민테른 등과 연계하여 사상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 협력관계는 길지 않았고 김원봉은 독자노선을 채택했다. 당시 공산당은 국가의 구분보다는 공산당 일당체제의 세계독재를 꿈꾸는 국제공산당 형태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김원봉은 독자노선을 채택함으로써 특별히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약점으로 작용하고, 결국 정치적 숙청의 배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혁명당을 결성하고 난립하는 독립운동단체를 하나로 모으고자 하였으나 단체 내부의 반목, 이념투쟁을 정리하지 못하고 각 단체가 다시 흩어지며 조선민족혁명당으로 재편하게 되지만 그 안에는 사회주의계통의 운동가들만 남은 상태가 된다. 이후 조선의용대를 결성하지만, 그 안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는지 조선의용대 휘하 지대들의 이탈, 연안으로의 집결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본인이 통솔하는 본대만이 남게 된다. 이 연안으로 집결한 조선의용대는 그들 스스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라고 명명하고, 1941년 조선독립동맹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이들이 북한 정권의 '연안파'로 결집하고, 조선인민군의 주력이 됨은 공지의 사실이다) 휘하 지대에 대한 통솔이나 지휘권을 잃어버린 김원봉은 한국광복군으로 합류하였으나 임정의 한국광복군에 합류해서도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타인의 밑에 있을 만한 성격을 갖지 못했다는 다소 부정적인 평가가 따른다.

해방 후에는 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에게 고문과 모욕을 받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고 하는데, 독립운동을 했던 자신과 왜경 출신인 노덕술의 반전된 처지를 생각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는 남북 제정당 사회대표자 연석회의때 북한으로 넘어가 그곳에 정주하며 국가검열상(검찰총장-감사원장을 겸하는 자리라고 전해짐)을 역임하고, 6.25 전쟁 중에는 노동상을 맡아 노동력 관리, 국가징발 등의 업무를 맡아보며 평북에서 군량미 생산 담당을 맡는 등 북한 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북한의 노력훈장을 받는 등 고위인사로서 지내다가 김일성의 지도체제에 대항한 탓으로 이념대립한 결과, 장제스와 연락하는 국제간첩이라는 명목으로 처형된다.

김원봉의 무장투쟁 등의 역사는 민국의 역사교육에서 상당히 피상적으로 다뤄진다.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소속한 단체의 이름을 위주로 묘사되고, 김원봉은 그저 곁다리 정도로만 나타난다. 이는 그가 북한의 고위인사로 북한정부의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한 인물이기 때문이며, 그를 공산주의자로 지정하고 사실관계에 포섭한 역사교육의 원인도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 현 민국 대통령의 광복절 추념사에서 등장하고 광복군의 뿌리로 지칭되기도 했는데, 이는 기존의 정부의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라고 할 만하다. 기존의 정부에서 광복군은 임시정부의 전유물이었으며, 실제로 역사교육과정에서 김원봉이 그 주요인물로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여 또 한번의 홍역이 일어났는데, 김원봉은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이지 광복군의 뿌리가 아니며, 김원봉에게 훈장 서훈이 불가능한 규정에 불구하고 국가보훈처에서 서훈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소용돌이가 일었던 바 있다. 특별히 서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갔지만, 이 사례야말로 김원봉의 역사적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북한에서 김원봉은 독립운동가로서 평가받기보다는 국가체제에 도전한 종파(북한에서 '종파'라 함은 정식 사회주의자가 아닌 체제에 대한 도전자를 의미함)라는 이름으로 자세히 교육되지 않는다. 어쩌다 사상영화에 드문드문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김일성의 영도력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악의 세력의 최종맹주 정도로 나온다고 한다. 북한식 영화 묘사의 의도는 널리 잘 알려져있듯 체제선전, 정권의 정당화인데, 그때 악의 세력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김씨 정권에 위협이 된 사실이 있다는 것이지만, 대개의 북한 인민들은 알지 못할 것으로 추측된다. 소위 <혁명력사> 과목에서 김원봉은 등장하지 않고 수령(김일성)-장군(김정일)의 업적만 다루어지는 가운데 그의 대척점에 위치한 인물로 묘사되니 적의 한 사람일 뿐 독립운동가로 평가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김원봉은 이념의 문제로 한반도 전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원봉의 광복군 참여사실은 그대로 인정되어야 하며, 사회주의자로서 북한의 정부수립과 북한의 정권유지, 6.25전쟁의 참여사실 등은 그것대로 또 인정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자 김원봉이기 때문에 그가 독립운동가 김원봉일 수 없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계열(혹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도 분명히 있었으며, 김원봉이 광복군에 참여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해리포터>의 기숙사별 배점 체계처럼 어떤 업적마다 점수가 있어서, 점수가 누적되고 깎이기도 하며 총 평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라면 김원봉의 저평가는 민국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데야 그의 공과는 분리되어 평가되어야 한다. 그가 독립운동가로서 세운 공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산주의자로서 민국에 위협이 된 사실 또한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라 하여 감추거나 피상적으로만 다루어 몰이해를 조장하여 오늘의 저평가의 주요한 원인이 된 것이라 생각해볼 만하다. 결국 그에 대한 저평가는 감추어진 진실, 미리 취사간의 선택이 되어 내놓은 정보들로, 정권에 유리한 부분으로만 이용되어 어느 한 측면만이 보이게 되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부분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비슷한 이름의 이력을 가진 사람의 역사가 조합되어 실제로는 그가 하지 않은 일들까지 그의 행적으로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조선노동당 가입 여부에 관하여 대표적으로 오해가 있다). 역사는 계수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나, 반면교사로 배워야 할 것도 있다. 그렇다면 취사선택은 학습자에게 맡기고, 보여주어야 할 것은 남김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몰이해에서 기인하는 저평가를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다. 민국의 특수상황으로 인하여 여러 가치에 대한 대립과 논쟁이 있는 가운데, 가장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길은 대치되는 이념으로 인하여 유리한 사실만을 공개하는 것이 아닌, 그 모든 것을 공개하고 판단은 각자에 맡기는 것이다. 친일-반일, 독재-민주, 공산-자본, 사회-자유 등의 가치대립에서 대응하지 않는 개념들끼리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은 우리의 공개되지 않고 교육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의 상호작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의열투쟁과 테러, 무엇이 다른가. 김기승 교수 기고 (백범회보 2012년 겨울호, 백범기념관)
김삼웅(2014), <약산 김원봉 평전>,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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