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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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운
작성일 개국627(2018)년 4월 23일 (월) 14:31  [미시(未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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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8월 하권
상(上) 13년, 8월 16일 을해(乙亥)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17일 병자(丙子)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김시습이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8월 14일에 사직차를 올린 방인하를 8월 1일의 전교에 의거하여 당일 면직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훈련원의 수장이 공석이 되었는데, 훈련원에는 병사 2인이 복무 중이므로 신이 훈련원정을 겸하여 훈련원을 원활히 운영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한편 8월 16일에 봉조하 서긍이 관직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원로 중신의 재출사인 만큼 신이 봉조하 서긍의 직임을 상주하는 것은 예(禮)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아뢰옵건데 봉조하 서긍으로 하여금 병조의 수장직임을 담당케 하여 주상 전하를 보필토록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훈련원 겸직을 허락한다. 한 번 치사한 자의 출사는 쉽게 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종사를 위해 특별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작년의 종묘 전알(展謁) 이후의 하교보다 더 나아갔을 때나 가능한 것이며, '잠시나마'에 방점이 있으므로 설령 임명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인 소임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행승문원박사 태연이 천거 후속조치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지난 13일 천거에 대하여 대한 주상전하의 비답중 '천거 자격이 없는 자의 천거에 대해...' 라고 하셨습니다. 전례와 천거 관련 지침을 살피고 몇 날 몇칠을 고민을 해 보았지만 신의 머리로는 전하의 비답을 미련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해당 피천거자에게 무슨 이유로 천거 자격이 없는지 아둔한 신에게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또한 주상전하의 비답 마지막에 '예조에서 주의를 주도록 하라.' 라고 어명를 하셔서 소신이 피천거자에게 주의를 줘야 하는데 어떤식으로 줘야하는지 어찌 할 바 몰라 무례를 무릅쓰고 계목을 올렸습니다. 일일이 세세하게 지침을 줘야하는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천거권 행사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경관직에 있지 않으면서 편전에 들어 글월을 올리는 부분에 대하여도 충분히 주의를 주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8월 18일 정축(丁丑)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19일 무인(戊寅)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이 세 번째 진언하는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얼마전 예조에 강원도 진사 고무열을 천거하였고, 어전에 계본이 올라갔으나 전하꼐서는 "천거 자격이 없는 자의 천거에 대해 예조에서 주의를 주도록 하라." 하시며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사 고무열의 활동 경력을 살펴볼 때 그가 천거될 자격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따라서 전하께서 말씀하신 뜻은 고무열을 천거한 신과 전고양군수 홍봉한에게 천거의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국대전 이전에 명시되기를 현직 문무관 3품 이상 관원만이 천거의 권한이 있다고 나와 있고, 모든 대전, 절목, 수교 등을 살펴 봤을 때 천거의 권한에 대하여 명시된 조항은 위의 조항이 유일하였습니다. 이를 숙지하지 못한 것은 신의 불찰입니다. 허나 신이 경국대전 이전을 살펴보니, "생원과 진사는 보증하여 천거하는 이가 없더라도 재능에 따라 의망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본조의 천거방목을 살펴보니 소과 입격자 출신을 등용할 때 천거자를 따로 명시하지 않고 "제○차 소과 ○○"로 표기한 예가 적지 않습니다. 천거 절차상 천거 자격이 없는 자가 천거하였다는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 소과 입격자 등용의 선례에 따라, 그에게 품계와 관직을 제수하는 것 자체까지 허락하지 않으심은 형평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습니다. 신이 모르는 그가 등용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고무열은 제101차 소과에서 진사 이등으로 입격하였으며, 성균관 수석 졸업 등의 활동 경력이 있으니 등용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이를 헤아리시어 다시 한번 그의 등용을 윤허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였다.

8월 20일 기묘(己卯)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정랑 하유가 평정 결과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8월 제2차 문관 평정이 끝났습니다. 금번 문관 평정으로 중훈대부 前고양군수 겸양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 홍봉한이 중직대부로, 승의랑 공조좌랑 정병욱이 봉훈랑으로 승훈랑 행승문원박사 태연이 승의랑으로 각각 가계 되었습니다.
내부승진에 대하여 아룁니다. 행승문원박사 태연이 예조에서 성실히 업무에 임하는 모습이 보여 예조좌랑으로 삼으시면 어떠하시겠나이까.
그리옵고 신이 저번 날 사정이 생겨 이조정랑 직을 반납하려고 하였으나 사정이 나아져 이조정랑 직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전하께서 다음 후임을 정하시면 신에 거취를 경관직, 지방관으로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청한 내부 승진을 허락한다." 라고 하였다.

8월 21일 경진(庚辰)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호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서민교, 행이조정랑 하유, 한성부별좌 정도전, 행공조좌랑 정병욱, 前평안도도사 최성원, 前교서관정자 이예훈 등이 시국에 대하여 연명차자를 올리기를 "亞聖께서 이르시기를, '옛날의 賢王은 善을 좋아하고 권세를 잊었는데, 옛날의 賢士라고 해서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 道를 즐기고 남의 권세는 잊었다.'고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정치를 하심에 법가을 따라 法ㆍ術ㆍ勢를 염두에 두지 마십시오. 이어 또 이르시기를, '그러므로 王公이 경의를 표하고 예를 다하지 않으면 자주 그를 만나볼 수 없었으니, 만나보는 것조차 자주 할 수 없는데 하물며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하께서는 신하를 예로 대하시지 않으셨으니, 어떻게 아래에다가 충성을 다하기를 바라십니까. 위에서 아래를 노복같이 여기는데 아래에서 위를 어떻게 임금으로 받들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제발 一人을 생각하지 마시고 萬人에게 마음을 쓰십시오. 한 마음 온 정성을 專一히 쓰더라도 가련한 백성들을 塗炭에서 건져내지 못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신들은 이 엄중한 시기에 나라 위한 마음으로 직임을 맡아 기울어가는 종묘를 부여잡고 꺼져내리는 사직을 떠받쳐 올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때에 전하께서는 신들을 일깨우시고 이끄셔야 하나, 오히려 의심하시고 敎示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리석은 신들은 어찌할 바 모르겠으니 실로 답답합니다. 국가의 권위는 비에 젖은듯 걸레짝이 되어 버리고, 中外가 함께 驚動하고 있음은 어째서인지 전하께서는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전하께서는 신들이 일부 관원들을 두호하려는 뜻으로 군왕을 괴롭게 한다고 여기십니까. 모든 진언을 한가지로 놓고 감히 임금을 적대하는 것으로 규정하시니, 배척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시국은 어제 오늘의 사정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한두 사람의 일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굽어 살펴 주십시오.
당초에 전하께서는 스스로 부덕을 자책하시며 조정에 많은 권한을 내어 주셨습니다. 또 전하 스스로의 괴로움을 탄식하시며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루아침에 언로를 차단해버리시고, 조정을 텅 비게 만들어 버리시는데 합당한 이유가 되겠습니까. 조정을 鳥獸로써 채우려 하십니까, 초목을 늘어놓고 정사를 물으시렵니까. 신들이 진정 염려하는 바는 전하의 權柄으로 士民에게 상벌을 행하시는 데 있지 않고, 국정이 차츰 퇴보해 가는 것에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半夜에 하교하실 적에, 신들이 차마 듣지 못할 하교를 내리시며 자책하셨고, 동궁에 대해서도 민망하기 그지없는 하교를 내리시며 양위할 수도 대리할 수도 없는 사정을 들어 하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筵席을 마련하시지 않으십니까. 전하께서는 예전에 왕세자 서연의 체모가 서지 않는다는 연유로 신중을 기할 것을 하교하신 바 있습니다. 그 뜻이 타당하다 할지라도, 당장 시행이 불가한 경연ㆍ서연을 대신하여 학식과 덕망을 갖춘 大臣이나 侍從臣들이라도 가까이 두시면서 정사를 물으시고 성현의 학문과 덕행을 청해 들으신 바 있으신 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군주 스스로 아주 자신만만하여 선비들을 업신여기는 뜻이 없다면 이렇게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배우고 익히기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君師를 자임하시며 오히려 가르치시겠다는 의중이신지 어리석은 머리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스스로 신하들이 감히 임금을 기망하고 겁박하여 임금의 위상과 권위를 누르려 한다고 여기시지는 않으십니까. 신하들이 사사로운 친분을 내세워서 죄인들을 비호한다는 것은 아실 뿐, 전하께서는 하나하나 본의를 헤아리지 않으시고 모두 한가지로 묶어서 마치 조정에서 이른바 臣權을 내세운다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까. 이는 정권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 한량, 稗說을 즐기는 무뢰배들이 우리 正廟께서 황공하게도 소위 僻派에 의해 毒으로 피살되셨다하는 것이나 先正臣 宋時烈을 두고 만고의 惡이라 욕보이는 것과 그 근원이 다르지 않습니다. 君臣은 부절같은 관계로, 임금은 위에서 公을 다하여 정령을 베풀고 신하는 아래에서 誠으로 보필하는 관계입니다. 전하께서는 이 조정의 대소신료들을 진정 莽卓操懿로 여기십니까. 신 등이 전하를 두고 멀리 桀ㆍ紂, 가까이 燕山ㆍ光海라 한다면 어떠합니까. 만약 간신, 악인이 있다면 당장 정의를 바로 세워서 죄를 가리실 일이지, 원망하며 기피하려고만 하는 것은 떳떳한 처사가 아닙니다. 혹여 私感에 따라 판단하신다면 이는 천만번 잘못이니 그만두십시오. 군자에게 있어서 私는 없으니 오로지 公이며, 公으로 행하여야 義로울 수 있습니다. 또한 군자는 義와 理을 기준으로 판별할 뿐이지, 利와 害로써 하는 것은 시정의 장사치나 曰者들의 행태입니다. 王者의 道는 湯平할 따름이고 군자는 편을 나누지 않는 법이니, 이것이 皇極, 中正의 법입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십시오.
아랫사람이 그 소임을 잘해내지 못한 것은 윗사람이 사람 쓰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며, 윗사람이 正道를 벗어난 것은 아랫사람이 보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군신 상하에 공히 自省함이 요구됩니다. 신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삼가 재배하며 불민한 탓이라 가슴치며 엎드려 請罪합니다. 전하께서도 한번 지난날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신 등은 宗社를 위하는 우직한 뜻으로 삼가 시무에 대한 건의를 올리니, 만약 다른 뜻이 있다면 천벌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음과 같이 강구한 바를 아룁니다. 청컨대 가납하여 주시기를 仰請합니다.
하나, 승정원과 三司를 아울러 가동하며 상소 봉입을 허용하여 언로를 다시 여십시오. 지금 민간이 불안해 하는 것은 상하가 불통한 것 때문입니다. 조정에서 이를 계속 막고 있으면 이 불만이 마치 김이 차서 솥뚜껑이 들썩거리듯 할 것입니다. 위란의 단초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 전하께서는 부디 선처하여 주십시오. 또 이 날 이후로 여러 신료들이 아뢰면 반드시 답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정사에 대하여 하교하실 적에는 간명하면서도 분명한 말씀으로 하교하셔서 군신 간에 의혹과 추측이 없도록 하십시오.
둘, 일전에 關西의 일개 雜漢이 천지분간을 못하고 중외 각처를 어지러이 횡행하며 위로 감히 주상 전하의 안위를 운운하고 아래로 조정을 업신여겼습니다. 온 나라 백성들에게 조정이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時任으로 조정의 首班으로 있는 신이 부덕 불민한 탓입니다. 신의 죄가 매우 크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는 오랜 기간 동안 법부가 그 기능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三法司가 제 기능을 하도록 조치하여 속히 民紀를 다잡아야만 합니다.
셋, 반기 각 1회라도 대ㆍ소과를 다시 실시하여 주십시오. 사대부는 나라의 큰 기둥이요 대들보와 같으니, 전하와 더불어 백성들을 가르치고 이끌 부류입니다. 널리 현자를 구하는 것은 군주의 소임 중 하나이니, 이를 폐하신 것은 전례가 없었던 큰일이요, 실책입니다. 오늘날 이 사태가 선례가 되어 이후에도 과거가 개폐를 거듭할까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임금을 보필하여 나라를 떠받드는 사대부가 없어진다면 이 나라가 어디에 의지할 수 있습니까. 결국 저 南山有臺 노랫말이 무색할 지경이 되었고, 士庶人을 막론하고 출세할 길이 막혀 있어서 서럽고 슬픈 恨이 거리마다 가득합니다. 굽어 살펴 주십시오.
넷, 경연 및 서연을 시행하십시오. 治國平天下는 제왕의 명분이요 소임이며, 그것은 修身한 연후에야 할 수 있습니다. 황공하오나, 지금 전하와 동궁 兩殿께서는 聖學을 알지 못하시니, 格物조차 미흡하거늘 수신이 어떻게 될 리 있겠습니까. 부디 躐等하지 마시고 겸허한 뜻으로 산림, 현인을 널리 모으고 재능있는 신하들로 전하의 곁을 채우십시오.
다섯, 조종조의 전례와 법제를 기본으로 하고 현재의 여건을 참작하여 국가 제도를 일신하셔야 합니다. 창국대전이 비록 선조의 제도를 계승하면서 시세를 참작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온전히 祖法에 말미암지는 않은 바 있습니다. 대전이 이러하거늘, 절목 등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본조가 열성조의 文章制度를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경국대전 체제 하 최후의 법전인 大典會通을 비롯하여 옛 법전을 기본으로 하되, 그 중 준용할만한 것은 도입하여 쓰고 법전을 시정에 맞게 정비하여 쓰셔야 합니다. 제도 개선에는 미결된 세제 개정의 완결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겸하여 財用을 節儉하여 국가에서 덕을 보여 백성에게 보탬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전하께서 진정 조종의 정치를 본받고자 하신 뜻을 품고 계시다면, 이는 불가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여섯, 선왕 대의 실록 편찬이 아직 완결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선왕 전하께 매우 미안하고 민망한 일입니다. 실록청이 폐청된지 10년이 넘었고, 사고에는 선왕 재위 초기 1년여 간의 실록만이 입고되어 있습니다. 이를 완결하여야 왕실의 정통성을 제고할 수 있습니다. 조정의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려서 실록청을 복설토록 하십시오.
일곱, 各司의 평상 업무 및 잡무를 적절히 조정하여 朝臣들의 공무 부담을 줄여주고, 京各司 및 外衙에 서리ㆍ아전ㆍ군관을 재능에 맞게 試取하여 쓰십시오. 이들이 소임을 잘 수행하는 것을 살펴 정직으로 들여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니, 考滿去官ㆍ限品敍用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여덟, 우리 왕실은 仁祖의 왕통을 계승해 왔으니, 이를 숭양해야 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런데 선왕 대에 인조께서 불의를 쳐서 反政하신 것에 반하여 廢君을 추숭하는 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이것이 공론이 되어 추숭이 이루어졌습니다만, 이는 왕실 스스로 과오를 범한 것이며, 당시 조정 신료들은 멀리 생각하지 않은 소치입니다. 光海君의 왕통은 이미 끊어진지 오래고, 지금 굳이 추숭해야 할 연유가 없었습니다. 그를 추숭함은 인조대왕 전하를 비롯하여 이후 선대왕들께 씻지 못할 누가 될 뿐만 아니라 망극하게도 이 왕통이 왕위를 찬탈한 역적임을 공공연히 나타내는 것입니다. 원컨대 재론을 명하여 주십시오.
아홉, 본국은 예로부터 중국, 일본 양국과의 경계가 분명하였습니다. 천하의 一翼을 맡은 나라로서 피아 경계를 분명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백성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재산을 만들고 이리저리 횡행하는 것을 금단시키고, 彼人들 또한 똑같이 조치해야 합니다. 양국과 교린하는 법 또한 본조에는 그 정례가 없으니 옛 법을 참작하여 써야 합니다. 일전에 감히 궁성에 방화한 두 역적은 일본국으로 넘어간 정황이 있어서 경차관까지 파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죄인을 넘긴다는 통보도, 어떻게 처리하였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역적을 잡아 誅殺하지 못하니 역시 대죄할 일입니다. 엄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의 위상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다시 대마도에 역적의 신병을 인도해줄 것을 요청해야 합니다.
열, 국정의 실무가 번다하니 당분간 비변사를 근간으로 한 현재의 정치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전하께서는 지금보다 자주 어전에 납시어 국정의 大體를 들으셔야 합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한편으로는 비변사와 조정의 뜻에 따라 거행하라 하시지만, 때때로 까닭을 밝히지 않으시고 하루아침에 폐하라 그만두라 하신 일이 또한 없다 하실 수는 없으십니다. 이는 비단 오늘날만의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前朝의 公事가 3일 사이에 손 뒤집듯 하던 것과 그 본질에 있어 다를 것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나라는 백성의 믿음이 있어야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비국을 두신 연유가 다만 귀찮은 일을 떠안기시려는 것이 아니고 신들의 도움을 얻어 국정을 돌보실 뜻이셨다면, 전하께서는 더더욱 신들과 더불어 국사를 처리하셔야 하며, 만사를 신들과 논의하셔야 합니다. 윤대를 재개함은 무리라 하더라도 종종 召對하는 것은 어찌 군신 간에 부담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고려하여 주십시오. 진정 이렇게 함을 불가하다 하신다면, 삼가 동궁에 대리청정를 명하시거나 비변사에 더 많은 권한을 넘겨주시어 국정의 난맥을 방지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부디 결단하여 주십시오.
신들이 이처럼 연차를 올린 연유는 감히 전하와 더불어 논리를 다투고자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의 安頓와 中興, 昌盛과 長久을 바라는 마음에 있어서는 전하와 신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사료됩니다. 신들이 나라 위한 마음이 없었다면 왜 여태까지 이 조정에서 제 위치를 지켰겠습니까. 아비의 넓은 마음으로 자식들의 情을 헤아려 주십시오. 비참하게도 승정원이 폐청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변사에서 바로 차자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차자마저도 오물처럼 보시고 눈길조차 주지 않으실까, 승정원을 거치지 않았다며 물리치실까 어리석게도 저어됩니다. 섬돌에 머리를 처박으며 청하오니, 제발 어람하시고 하교를 내려 주십시오. 이제 신 등의 불초무식함을 들어 죄를 물으시더라도 유감이 없습니다. 이제 신 등의 불경함을 들어 목숨을 거두시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신들은 어리석은 머리를 굴려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하여, 신들이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옳은 일이라고 믿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신들은 이후로 처분이 있을 때 까지 印信을 맡겨놓고 근신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 예조좌랑 태연이 조문관 파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일 자헌대부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이 사망하였습니다. 예조지침에 의거하면 정2품 이상 사망시에는 당상관 1인을 보내 조문한다. 이라고 되었있습니다. 현재 현직 당상관으로는 통정대부 호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서민교가 유일한데 작금에 상황으로 근신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사망한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은 조정과 사조를 위해 부단히 헌신해온바 그것을 참작하여 호조참의 서민교로 하여금 조문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정2품 이상 사망시에는 관계 관청에서 어전에 계하여 예전(禮典)에 따른 조회 중지를 청한다. 라는 예조지침과 예전에 의거하여 조회 중지를 청하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명색이 전패(殿牌)를 곁에 두고 있는 자가 스스로 나서서 임금을 누구에 비유하고 어떤 문자로 언어유희를 일삼아 우롱하였으니, 일반 백성이 그러한 행동을 하였어도 저지하고 단속해야 하는 것은 지방관의 소임이거늘, 오히려 앞장서 행동하였다. 혹여 생각이 지나쳐 착각한 것이라면서 억울하다 변명할 수도 있겠으나, 시기와 내용이 그렇듯 일치하니 갓 걸음을 시작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그 누가 그러한 언행의 실제 의미를 짐작하지 못하겠는가. 대저 심중에 아흔아홉이 충(忠)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다른 마음이 하나만 있으면 이 역시 역(逆)인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비변사 수장 이하 조정 관원 누구도 제어하거나 책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본조의 정체(政體)가 충효(忠孝)를 핵심 가치로 하는 성리학적 질서에 기반하고 있으니, 비록 군왕이 불민(不敏)하더라도 조종조에 군주를 이처럼 기롱하고도 자리를 그대로 보존한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당대의 임금을 업신여기고 비아냥거리는 자가 어찌 열성조에는 충성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며, 종묘사직을 대하는 마음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그처럼 행동하는 관원이 있고 그에 호응하는 백성이 있었는데, 당시 비변사 수장은 계사에서 이미 한 차례 지적을 받고도 끝내 자성하는 말 없이, 스스로 백관을 두루 살피고 조정 안정화에 기여하였다면서 포상 상신한 바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래서 면직하였고, 그러한 관원을 단속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좋은 관직으로 이끌었으므로 따라서 전관(銓官)을 면직시켰다. 하급 관원의 그릇된 행동을 방치하고 방관하는 것은 내심 동조하고 독려한 것과 같다. 그러한 일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면 관직에서 세월이나 보내고 있었다고 자술하는 격이 된다. 더군다나 충(忠)에 남다르게 절실한 무관 출신이면서 다른 관원의 말을 빌려 백관을 두루 살폈다고 자찬한 경우에야.
이러한 연유로 일부 관원을 면직하고 비변사를 새로 구성하였는데, 참의가 비국(備局)의 수장이 되어 여러 날이 지난 끝에 처음 편전에 들어 올린 것이 이른바 연차(聯箚)이다. 모든 상소와 차자를 받지 않겠다고 명시하였으니, 비답을 기대할 수 없는 차자를 부제조가 되어서 첫 문서로 편전에 올린 것 자체도 선뜻 이해되지 않을 일이지만, 본래 차자라는 것은 현직 관원이 올리는 것임에도 잡다하게 전직 품관을 연명시켰을 뿐 아니라 시의(時宜)와 상관 없는 열릉(烈陵)의 문제까지 내용에 포함하였으니 이것이 일반 백성들이 올린 연명소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조정을 대표하여 백관을 통할해야 할 위치에 있는 비변사 장관이라는 지위는 잊은 채, 그저 한 향유(鄕儒)의 무리가 올리는 상소의 소두(疏頭)가 되기를 자처한 격이라고 하겠다.
오늘과 내일 양일간 철조(輟朝)한다. 참의로 하여금 봉조하의 빈소를 찾게 하되, 하명을 이행하지 않으면 삭직(削職)하라. 또 근신하겠다고 연명한 관원 가운데 오는 26일 자정까지 입궐하거나 등청하여 공무(公務)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들 역시 아울러 삭직하라.
한성별좌는 휴무에 관계 없이 즉시 삭출(削黜)하라. 군주를 거론하는 언행에 대해 파직하고 면직하는 식으로 너그럽게 처분하였던 탓에 이처럼 방자한 행동이 있게 되었다.
예조에 명한다. 곧 탄일 조하(朝賀)가 있을 것인데, 경외(京外)를 막론하고 일체 시행치 말라." 라고 하였다.

8월 22일 신사(辛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정랑 하유가 문관 인사에 대하여 아뢰기를 " 전날 관직을 신청한 통정대부 한명회를 이조참의로 삼으시면 어떠하시겠나이까 그리옵고 신은 연명으로 앞장썼으니 지방으로 좌천해주시기 청하나이다. 덧붙여 아룁니다. 전하의 명으로 한성부별좌 정도전을 삭출 하였나이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지난 계목에서 중추부를 의망하였으니, 실직(實職)에 나설 의지가 확인된 것인지 살펴 다시 계하라." 라고 하였다.

8월 23일 임오(壬午)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24일 계미(癸未)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25일 갑신(甲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정랑 하유가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통정대부 한명회에게 서찰을 보내어 의중을 물어본 결과 '해보겠다.'는 의사를 표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이조참의로 삼으시면 어떠하시겠나이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정랑은 팔도를 관장하는 한성부의 판관으로 체직한다." 라고 하였다.

8월 26일 을유(乙酉)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27일 병술(丙戌)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정랑 하유가 신의 거취 문제에 대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이조에 있으면서 부족한 것도 많은데 이조를 떠나면 형조를 복설하거나 경기도로 보내주시기 청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 이조참의 한명회가 문관 인사 등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일 부임하여 前정랑 하유를 한성부판관으로 사령하였습니다. 하유가 이에 대해 형조 또는 경기도로 가고 싶어하는 뜻을 차자하였으니 살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이외에 21일 연차한 관원 중 명을 이행하지 않거나 등청하지 않은 자가 없어 삭직 대상자가 없음을 아룁니다. 기타 업무는 파악 중에 있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민원 처결을 위해 지방관을 두어야 하고 경관직 겸직에도 대비해야 하므로 한성부 관청에 명할 수밖에 없다." 라고 하였다.
○ 이조참의 한명회가 청대하며 아뢰기를 "일시만 정해주시면 대명(待命)하겠나이다. 하해와 같은 은전을 베푸시어 무례의 죄는 뵌 이후에 내려 주시길 청합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국정에 관한 사안이라면 비변사를 통하든지 계본, 계목으로 올리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8월 28일 정해(丁亥)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29일 무자(戊子)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30일 기축(己丑)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31일 경인(庚寅)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김시습이 종묘제례 종료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호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신 서민교가 8월 30일부터 9월 12일까지 민국의 학업 등 일신상의 사유로 휴가 중이기에, 신이 부제조를 대신하여 종묘제례의 종료에 대하여 아룁니다.
예조좌랑 신 태연이 제례유사와 대축관을 담당한 이번 종묘제례는, 초헌관 호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신 서민교가 초헌관을, 행이조정랑이었던 행한성부판관 신 하유가 아헌관을 그리고 신이 종헌관을 맡아서 제례 전일인 8월 26일 오후 12시 08분에 종묘의 문을 열어 제례 당일인 오후 5시 17분에 제례를 마쳤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관계 관원의 노고가 적지 않았다. 헌관 혜택을 규례대로 적용토록 하라." 라고 하였다.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쓰다.

개국627(2018)년 4월 23일 기록 :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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