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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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운
작성일 개국627(2018)년 4월 18일 (수) 17:57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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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8월 상권

상(上) 13년, 8월 1일 경신(庚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2일 신유(辛酉)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군기시첨정 겸훈련원첨정 방인하가 무관 회방대상자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년도 무관 회방대상자는 1인으로 자헌대부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입니다. 봉조하 서긍은 지난 611년 4월 천거 출사하여 동년 6월 제2차 중시, 10월 제8차 대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지난 623년 봉조하의 여건이 되지 않아 시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오나, 최근 본인의 회방에 대하여 병조에 문의하였습니다. ‘회방을 맞이하는 본인의 청원에 의하거나 예조, 병조 등의 계청과 통보에 따라 어전에 사은할 수 있는 인물에 한해 시행한다.’에 따라 봉조하의 회방을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예조에서도 문관 회방대상자 조사를 하도록 명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회방(回榜)은 급제한 지 12년이 되는 해에 시행하는 것이다. 기일(期日)이 지났는데 청원이 있다고 하여 수시로 시행할 수 없는 일이다. 십이지(十二支)는 물론이고 올해 일자도 지났으니 돌아오는 해의 급제일에 회방연 시행을 기약하는 것으로 한다. 다만 정경(正卿)으로 은퇴한 봉조하가 실로 오랜만에 경도(京都)에 올라와 병조 청사까지 발걸음을 하였다 하니, 아직 인근에 머물고 있다면 오는 12일이나 13일에 특별히 입궐하여 수정전(修政殿)에 들게 하라. 전조(銓曹)에 명한다. 중추부의 두 관원을 오늘자로 면직한다. 임명된 지 적지 않은 시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현재 지방관도 임기 연장을 허락하지 말고 기본 임기가 끝나는 대로 모두 면직하라.” 라고 하였다.

8월 3일 임술(壬戌)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4일 계해(癸亥)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첨지중추부사 서민교가 정사에 대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尙書』에 이르기를, ‘나라가 위태로움은 임금 때문이며 나라가 번창 평안함도 또한 임금의 아름다움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국가의 흥망이 군주에게 달려 있으니, 지금 전하께서는 나라의 앞날을 살피셔서 삼가 분발하셔야 합니다. 전하께서 몸소 실행하시는데, 신민들이 어떻게 멍하니 보고만 있겠습니까. 선비들은 밤새 머리가 새도록 窮究하고 백성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할 것입니다. 청컨대 양찰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周 穆王이 말하기를, ‘나 임금은 어질지 못하니 실로 좌우 전후의 지위에 있는 선비들에 힘입어 내 미치지 못함을 구제하고, 허물과 잘못을 바로잡고 내 나쁜 마음을 바루어 선조의 功烈을 계승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아무리 존귀하신 지위와 훌륭하신 성품을 지니셨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나라를 다스리실 수 없고 王者로서의 才德을 갈고 닦으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靑史에 나라 안에 관인이 있어 정사를 도운 것이 오래되었고, 列聖朝 대대로 筵席을 마련하셔서 내외의 정사를 묻고 도덕을 논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전하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스스로 분발하시는지, 현덕한 이들로 하여금 지위를 맡게 하시는지 여쭙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전하께서는 수만 근 무쇠처럼 무거운 국정을 맡아오셨습니다. 그동안의 過勞와 聖慮를 소신이 모를 수 있겠습니다. 그 덕택에 宗社가 지탱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전하께서 내외의 간언을 굳이 들으려 하지 않으시고, 조정을 텅 비게 하시는 것에 있어서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 社稷은 전하의 것인 동시에 만백성의 삶터이기에 전하께서는 괴로우시더라도 정사를 놓으셔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미욱한 신이 사료하건대, 이 시국에 이르러 전하께서 더욱 간언을 듣지 않으시고 관원을 내보내려고만 하시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나라를 옥체와 같이 아끼셔야 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셔야 합니다. 임금이 나라와 백성을 소중히 여기고서야 아래로부터의 무한한 충성과 정성스러운 봉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청합니다. 비변사는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대소 관원을 피하지 마시고 여러 말을 들으시며 그 중 玉石을 가려 상서롭고 정의로운 것을 취하십시오. 현자를 널리 구하시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선비들이 조정에 드는 것을 굳이 막지는 마십시오. 農ㆍ商ㆍ工이 각자 맡은 바가 있듯, 士의 직분은 공부를 통하여 덕을 밝히고 재주를 익혀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龍門을 폐하신지 오래인데,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마저도 떠나는 것을 잡지 않으시고 들어오려는 자도 막으신다면 이 나라 선비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士庶人들이 탄식하고 애통해하고 있음을 깊이 혜량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8월 5일 갑자(甲子)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6일 을축(乙丑)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7일 병인(丙寅)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8일 정묘(丁卯)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종부시정 겸비변사낭청 김관이 문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지난번 전하께 말씀 올렸다시피 이번에 문,무관 인사에 대하여 소폭 개각을 진행할 예정이옵니다.
먼저 지방관이옵니다. 지방관은 현재 6곳과 5곳의 2인 체제에서 3지역의 3인 지방관으로 다시 개편하여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북삼도 지역은 현재 무관 관직 신청을 한 김시습을 황주목사 겸황주진관병마첨절제사에 의망하옵니다. 통훈대부 김시습은 사헌부 및 병조와 호조, 공조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지방관의 업무도 3차례 진행한 경험이 있어 북삼도 지역의 지방관으로는 적격일 것 같사옵니다.중부지역의 지방관으로는 신 김관을 행한성부서윤으로 의망하옵니다. 신 김관은 이조, 예조, 형조, 공조, 호조 등을 거쳤으며, 지방관의 업무를 4차례 진행한 경험이 있사옵니다. 이번에 중부지역으로 가서 전하의 치세가 곳곳에 미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사옵니다.하삼도지역의 지방관으로는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을 제주목사 겸제주진관병마수군절제사로 의망하옵니다. 참의 이운은 현재 공조의 수장과 비변사의 수장을 맡고 있으며, 병조와 호조, 형조, 훈련원 등을 두루 거쳤으며, 지방관업무도 6차례 수행한 바 있어 하삼도의 지방관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이렇게 하여 전하께서 하명하신대로 두 지방관의 임기 만료하며, 그와 동시에 새로운 지방관들이 임기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사옵니다.
다음으로 비변사 인사이옵니다. 비변사의 수장이자 부제조로 통정대부 서민교를 의망하옵니다. 통정대부 서민교는 중추부에 임명되기 전에도 비변사의 수장을 맡아 초기 비변사업무가 안정 되는데에 큰 이바지를 하였사옵니다. 그 누구보다 조정을 위하는 마음이 크고, 능력이 있는 본조의 당상관이기 때문에 다시 비변사의 수장을 맡아도 능히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되옵니다. 또한 그의 본직으로는 예조참의를 의망하옵니다. 현재 예조에는 행박사 태연과 행정자 이예훈이 있지만, 예조수장이었던 승문원판교 정예림의 파직으로 예조업무에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지옵니다. 하여 경력과 능력이 출중한 서민교를 예조 수장으로 하여 예조를 빠르게 정상화 하는 것이 옳을 듯 사료되옵니다.
신이 지방관으로 가면서 공석이 되는 전조의 수장으로는 행고양군수 겸양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 홍봉한을 사옹원첨정 겸비변사낭청으로 의망하옵니다. 행군수 홍봉한은 지방관과 예조, 사헌부를 거쳤으며, 특히 사헌부에 재직시절에는 상시적인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간언 및 규찰 등을 통하여 조정의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였사옵니다. 자신의 업무수행에 대한 열의와 그 이상의 업무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관원이라 생각되기에 전조의 수장으로 부족하지 않다 사료되옵니다. 또한 비변사 수장을 도와 비변사의 업무를 능히 해낼 수 있는 관원이라 여겨지옵니다.지방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행거산도찰방 정병욱을 공조 좌랑으로 의망하옵니다. 행찰방 정병욱은 북삼도의 찰방으로 재출사하여 현재까지 도정을 위하여 지방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평정3회 동안 하점없이 상점 2회를 받아 이조업무지침에 의거 녹관으로 전환 진행을 하려하옵니다.  하여 전환 진행함과 함께 공조의 수장을 맡아 그 쓰임을 넓혀 더욱 성실히 업무에 매진케 한다면 분명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옵니다. 하옵고 병조와 훈련원은 현재처럼 행첨정 신 방인하가 유임토록 할 예정이옵니다.
끝으로 아뢰옵니다. 신이 지난 계목에 올렸던 통덕랑 정도전의 관직에 대한 부분이옵니다. 지난 계목에서 정도전의 관직신청을 보류 하셨사온데, 그의 의견에 대한 비답은 주시지 않은 채, 사직 관원에 대한 비답을 주셨사옵니다. 지난 파직으로 인하여 얼마 되지 않은 관원의 재출사에 대한 부분에서 보류하신 것이라면 모르지만, 만일 그에 아니라면 조정과 전하를 위해서 헌신할 관원을 내치시지 마시고, 하해와 같은 성은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하여 다시금 통덕랑 정도전을 예조 행예빈시별좌로 의망하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행정랑 하유를 행이조정랑으로, 前참의 서민교를 호조참의로, 前사직 김시습을 군기시정으로, 前찰방 정병욱을 공조좌랑으로 명하고, 한성부에 별좌 한 자리를 가설하여 前도사 정도전을 명한다. 호조참의와 군기시정에게는 각각 비국 부제조와 낭청을 겸하게 하고, 공조참의와 종부시정은 본직과 겸직을 모두 면직한다. 팔도 행정은 한성부에서 한 곳에서 관장케 하라.” 라고 하셨다.

8월 9일 무진(戊辰)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문원박사 태연이 천거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예조에 병조판서봉조하 서긍과 행고양군수 홍봉한이 천거대상자 고무열을 추천하는 천거 문서가 왔습니다. 이에 공문을 접수하고 피천거자의 자질을 검토하는 등의 천거 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피천거자 고무열은 강원도 원주목에 본적을 두고 있으며 현재 강원도 태백서당에서 훈장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피천거자 행적으로는 먼저 제101차 소과 진사시 이등으로 입격하였고 제 23기 성균관 상재 유생으로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수석 졸업하였습니다. 훈련원에서는 군졸, 갑사, 군관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특히 군관으로써는 대마도경차관을 호위하여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그 능력과 자질을 보여주었기에 장차 조정에 큰 재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천거서의 본문 내용과 더불어 피천거자 고무열에게 물어본 결과 문반으로 희망하였습니다. 예조 논의 결과 가(可)로 결정되었고 업무 지침 중 천거심사항목에 의거하여 이조와 협의한 결과 정8품 통사랑 권지승문원정자로 의망하옵니다. 헌데 현재 조정에 사헌부나 사간원 관원이 없는 관계로 서경요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찌할 바 몰라 이에 대해 따로 하명을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천거 자격이 없는 자의 천거에 대해 예조에서 주의를 주도록 하라.” 라고 하셨다.

8월 10일 기사(己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11일 경오(庚午)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12일 신미(辛未)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이 조정 활성화에 대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찾아보니 서리의 근무와 승진에 대한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무일수 2600일을 채우면 당상아문(堂上衙門)은 종7품에서, 3품 이하 아문(三品以下衙門)은 종8품에서 거관(去官)하도록 한 후에 역승취재(驛丞取才)나 도승취재(渡丞取才)에 입격한 자는 서용(敍用)한다. 서용되기 전에는 그 관사(官司)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하되, 근면하게 근무하는 자는 먼저 직(職)을 제수하고 자급을 올려주며 다른 관사(官司)에 소속될 때에는 그 근무일수를 합해서 계산하여 준다."속대전(續大典)에 따르면 근무일수를 계산하여 거관하도록 한 법은 폐지하고, 방민(坊民)을 뽑아서 임명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 초기에 서리를 뽑는 시험으로 이과(吏科)가 있었으나 취재(取才)로 대체되기도 하다가, 조선 후기에는 그마저도 없어지고 한성부의 방민 중에서 서리를 뽑았다고 합니다. 신이 이러한 내용을 아뢰는 것은 현재 백성의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역인 서리, 관속, 군졸 제도를 정비하여 보다 실용적으로 바꾸고자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은 신이 생각하는 제도의 개정안입니다.
첫째, 문무반이 관직신청 게시판을 통하여 관직 신청을 할 수 있듯이 백성에게도 관직 신청을 할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어 서리, 관속, 군졸 등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리 지원을 위해 궐문을 통해 중앙 관청을 방문해야 하거나 관속 지원을 위해 각 지역 감영을 찾아가야 하는 것은 본조가 익숙지 않은 백성에게 혼동이 있을 수 있으니 백성이 직역 신청을 하는 곳을 찾기 쉽도록 하고 접수하는 창구(窓口)를 일원화하자는 것입니다.
둘째, 호패가 발급된 백성이라면 호적신고 완료 후 7일 경과 등의 조건을 달지 않고 누구든지 지원 가능하도록 하며, 서리, 관속 등의 신청 양식은 관직 신청서 양식을 따르되 10글자 내외로 대답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 1~2개를 넣어서, 양식에 맞게만 신청서를 올리면 취재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하여 각 관청에서 서리, 관속, 군졸 등으로 임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조선 시대에 취재를 통해 서리를 뽑거나 방민을 뽑아서 임명했던 제도의 구현에 어긋남이 없습니다.
셋째, 서리, 관속, 군졸 등으로 임명된 백성의 업무는 기존대로 하되, 각 관청에 공좌부를 두어 서리, 관속, 군졸로 하여금 날인(捺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좌부는 옛날 관청에 두었던 출석부로 인사 고과의 기준이 되었던 문서입니다. 매일마다 출석 도장 하나를 찍을 수 있게 하여, 도장 하나 당 근무일수 1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근무일수 30일을 모으면 거관(去官)할 수 있도록 하여 종9품 혹은 정9품의 품계를 내려 권지 관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만약 일정 날짜 이상 출근 도장을 찍지 않으면 파직하면 될 것입니다.
근무 일수를 채우면 품계와 관직을 주도록 하는 것은 옛 제도였던 거관법을 고려하여 생각해낸 방안입니다. 거관에 필요한 근무일수 30일과 9품 거관은 본조의 사정에 맞게 신이 나름대로 정해본 것입니다. 해당 기간 동안 수장이 업무 지시를 할 수 있으며 업무 이행 능력을 보아 9품보다 높은 품계로 거관하는 방안, 그리고 근무일수 30일을 채우지 않아도 거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볼 만합니다.다만, 현재 군졸은 행정 실무가 없고 점고만이 있을 뿐이라 서리와의 형평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까지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백성이 '관(官)'과 관련된 직역을 선택함에 제약을 두지 말고 관에 진출할 경로를 열어주면 대부 장군만 넘치는
현 
조정의 구조적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며 관리 양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활동에 대해서는 단지 공좌부에 도장을 찍는 것만 추가하였을 뿐이나 30일이라는 목표를 명시한다면 활동 의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0일은 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한 일수(日數)이며, 만약 전하께서 윤허하시어 조정 공론을 수렴하도록 하시면 논의에 따라 그 기한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이 방책이 조정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백성의 활동 다양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책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전하께서는 숙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신이 본래 아뢰고자 하였던 것은 여기까지이나 금일 수정전에서 특별한 말씀이 계셨기에 덧붙여 신의 거취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전하께서 "만약 종사(宗社)를 위해 특별한 결단을 내린다면 잠시나마 중임을 감당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하셨는데 신이 홍국영처럼 '흑두(黑頭) 봉조하' 가 되어 70세가 되어 치사(致仕)했던 옛 신하들보다 형편이 나은 것은 사실이니, 차마 전하께서 남기신 말씀을 가볍게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중임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신이 직접 말씀드리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우선 훈련원을 맡아 정병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바라오니 상량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8월 13일 임신(壬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문원박사 태연이 문관 회방대상자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년도 문관회방연 대상자는 前이조참의 한유찬과 前행용양위부사직 진풍백 2인 입니다. 먼저 前이조참의 한유찬은 개국614년 01월 27일자로 출사하여 선공감봉사, 봉상시주부, 예조 좌랑, 함경도 찰방, 행호조정랑, 행이조정랑, 행예조정랑, 행한성부서윤, 이조정랑, 전라도 나주목사, 공조참의, 예조참의, 호조참의, 형조참의, 중추부첨지사 등을 지냈사오며 출중한 봉직 생활로 당상에 올라 조정과 아조를 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봉정대부 진풍백은 개국614년 04월 30일자로 출사하여 행사옹원봉사, 행충청도검률, 행승정원주서, 행예조좌랑, 겸군자감주부, 겸호조좌랑, 행사헌부지평 등을 지내사옵니다. 前행용양위부사직 진풍백 또한 조정에 봉직하는 동안 헌신한 바가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상 전하께서 재가 하시면 회방연에 대해선 시기와 참석 여부 등은 관련 관청과 해당 대상자와 상의하여 다시 계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따로 명이 있을 때까지 보류한다. 금번 하반기 정기 포상 역시 같다.” 라고 하였다.

8월 14일 계유(癸酉)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정랑 하유가 이조정랑 반납에 대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이번에 행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뜻밖에 할 수 없는 점 전하께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가 신이 민국에 일도 하고 있지만 휴대폰 상으로 호조 업무 중 몇 개만 가능 하였을 뿐 다른 업무는 컴퓨터로 해결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족사에 대한 어려움과 혼란을 겪은 상태라 이조정랑을 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사오나 신에 어려운 사정을 깊이 헤아려주시고 다른 이에게 이조를 맡게 하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이조 사무가 호조에 비해 그리 과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후임을 명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되, 필요하면 재량으로 평정 사무를 연기하거나 보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 행군기시첨정 겸훈련원첨정 방인하가 사직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지금껏 짧은 기간이나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것은, 언젠가 다시 사조와 조정이 정상화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로 작게나마 조정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신이 기대하는 바를 실현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이와 같은 사직차를 올립니다.
상께서는 지금껏 많은 관원들의 차자나 간언도 ‘이전 하명이 상기되어 허락하지 않는다.’ 하시며 일절 듣지 않으셨습니다. 이제껏 어전에 올라간 많은 계목과 차자의 비답, 최근에 올린 전조 합계에 대한 하교와 수정전에서의 왕언(王言)에서, 상께서 신하와 조정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합니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하였습니다. ‘어떤 관원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기강과 권명을 위해 반드시 해당 관원을 징계해야 한다.’ 하시었는데, 그 ‘잘못’을 대하시는 태도가 어떠하셨습니까. 신하들의 잘못은 일벌백계로 다스리시면서 본인의 잘못은 ‘주밀하게 살피지 못하였다.’ 한마디 뿐이셨습니다. 상께서 생각하시는 ‘신상필벌의 적용을 느슨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관원에게만 있는 것입니까.
또 전조 합계에 대한 하교는 어떻습니까. 신은 하교를 보는 순간 전조는 이름뿐임을, 상께서 조정을 이끌어나갈 생각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전조의 계청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기에 전체 인사안을 무시하다시피 하시고, 조정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전공조참의와 전종부시정은 면직시키면서, ‘“X같아서 못해먹겠네” 하면서 승정원에 직첩을 내던졌다.’ 말하는 치사봉조하는 다시 관직에 임명하시려 하십니까. 상께서 생각하시는 면직과 등용의 기준이 무엇인지 신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상께서 있는 관원도 내치시고 간언도 유중불하 하시고 조정에 대한 의지가 없으시니 조정이 정상적일 리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를 두고 ‘최근에는 직함을 띄고 이런저런 표현으로 조롱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알면서도 제어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대개 조정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라 하시면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안에서의 잘못을 밖으로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치사봉조하부터 일개백성까지 모두가 현 작태를 조롱하고 비판하며 간언하지만 듣지 않으시고 내치시는 것은 주상이십니다. 이제는 무엇을 위한 관직이었는지 모르겠으니 재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과격한 언사로 어심을 어지럽혔으니, 사직을 청하는 입장이나 더 큰 징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이 진언하는 차자를 올리기를 “이틀 전 수정전에서 아뢰었어야 하는 말이 실로 이 말씀이 아니었는지 후회가 되오나 고금의 이치를 살피고 현재 본조의 상황에 비추어보니 전하께서는 하나는 아시고 둘은 모르시는듯하여 이렇게 다시 차자를 올립니다.
전하, 익성공 황희(黃喜)는 명재상입니까, 탐관오리입니까? 그가 재직 중에 저지른 잘못을 아시옵니까? 서달이라는 자가 수하들을 시켜 죄 없는 아전을 폭행하여 사망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달이 누구인지 아시옵니까? 그는 황희의 사위였습니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황희는 자신의 사위가 살인을 저지르자 피해자의 처를 협박하고 뇌물을 써서 그 친족을 회유하였고 해당 고을과 인근 고을의 수령들을 매수하여 이 사건을 덮고 서달을 풀어주도록 했었습니다. 또한 당시 좌의정이었던 문정공 맹사성(孟思誠)은 황희의 이런 잘못은 눈감아주고 동향 사람들을 설득하여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살인사건의 조작 은폐 시도를 영명하신 세종께서 눈치 채고 진상을 밝혀 황희와 맹사성을 파직하셨던 것입니다. 허나 이 둘은 얼마 뒤 다시 등용되어 재상으로 복직합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날 관리들이 저지르는 잘못이 황희와 맹사성의 죄에 비할 수 있습니까? 하늘과 땅 차이라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니 되옵니다. 그럼에도 전하께서는 황희와 맹사성에게 내리신 세종대왕의 처분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들의 죄를 판단하시고, 불서용(不使用) 함과 다름없도록 처분을 내리시니 고금의 사례를 비교해 보았을 때 신은 세종대왕께서 왜 현군이 되셨는지 그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되옵니다.
문강공 조말생(趙末生)은 어떠하옵니까? 그는 사적으로 노비를 뇌물로 받아 부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축적하였으며 노비를 준 이들에게 여러 이권을 나눠주었습니다. 당시 노비의 가치를 오늘날 돈의 가치로 환산해 보았을 때 수십억에 달하는 뇌물이옵니다. 세종께서는 조말생을 죽이라는 대간의 상소를 물리치고 귀양을 보내는데 그치셨습니다. 그에 모자라 세종께서는 조말생을 사면하고 후에 다시 요직에 등용하셨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오늘날 관리들의 잘못이 조말생의 잘못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황희, 맹사성, 조말생 모두 도덕적인 흠결로 따지면 오늘날 본조의 관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들인데 이들은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전하께서는 고금의 형평을 따지지 않고 현재 관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 이유로 명분없이 여러 차자들을 물리치고 이유도 내세우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관리들을 내치시니 신은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여기게 되어 다시 한 번 세종대왕께서는 불세출의 현군이심을 깨닫고 또 깨닫사옵니다. 전하께서는 말로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셨는데 위 그림을 보시옵소서. 문무반은 전하의 백성이 아니옵니까? 양천제가 사라지고 반상제가 사라진 지금 문무반은 양반이 아니라 백성의 한 사람입니다. 신 또한 한 명의 백성이고 전하께서 내치신 관리들 또한 한 명의 백성이옵니다. 신분제를 철폐할 때부터 관민(官民)의 본질은 똑같아 졌으며 백성의 이로움이 곧 관리의 이로움이요, 관리의 이로움이 곧 백성의 이로움인 관민일체의 사회가 되었는데 전하께서는 무슨 명분으로 기강을 엄격히 세워 누구에게 본을 보이려 하시옵니까?
본조의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깨달음을 주시니 전하께서는 신의 좋은 역사 스승님이십니다. 세종대왕께서는 만고에 빛날 영웅이시며 성군이십니다. 전하께서는 그 분의 후예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 행이조정랑 하유가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통정대부 한명회가 관직신청을 하였나이다. 지난 2년간 승정원동부승지와 충주목사에 있었습니다. 하여 첨지중추부사로 삼으시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재차 간언 드립니다. 고무열을 천거 해보심이 어떠 하시옵니까. 봉조하 서긍도 말했듯이 신도 그가 성실히 지역 활동과 훈장에 매진하였고 훈련원 정병과 군관 그리고 소과에 입격하는 등 훌륭한 인재에 재목인데 천거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옵니다. 전하의 판단에 믿겠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중추부는 실직에서 물러나는 관원을 위한 관사이다.” 라고 하였다.

8월 15일 갑술(甲戌)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판서봉조하 서긍이 두 번째 진언하는 차자를 올리기를 “백성(百姓)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찰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신이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더군요.
1.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일반 국민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2. 예전에, 사대부가 아닌 일반 평민을 이르던 말
본조에서는 위의 두 가지 뜻 중에서 어떤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설마 2번으로 해석해야 된다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2번으로 해석을 하는 순간 봉건시대의 적폐인 반상(班常)의 구분을 인정하는 것이며, 본조에 평민(平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니, 이런 적폐를 아직도 당연하게 여기고 계신다면 조선사회를 구현하되 구습은 버리겠다는 창국의 대의는 위선이었음을 전하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백성의 뜻은 1번이 되어야 합니다. 백성은 예스러운 표현이며 구어(舊語)이니 바람직한 표현으로는 국민(國民)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만 본조에서 옛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합니까?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 입니다. 따라서 백성이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으로 해석해야 하며, 관직이 있고 없음으로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현재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직역이 관리인 백성들입니다.
신이 6년 전 치사를 청하면서 마지막으로 진언을 드렸을 때 전하께서는 "백성을 위한 정치가 정사의 요체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라고 하셨습니다. 헌데 아직도 전하께서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백성의 뜻을 관직이 없는 평민으로 해석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본조 관리들은 귀족이 아닙니다. 나라로부터 수조권을 지급받거나, 지주가 되어 소작농으로부터 곡식을 거둬들이거나, 군역이 면제된다는 등 조선의 사대부들이 누린 특권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본조의 관리들은 특권층이 아니며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본조가 나라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단을 그저 기강과 엄격함만으로 통치하려 하십니까? 그들은 관리라는 역에 종사하는 백성일 뿐입니다. 전하께서는 조정의 기강과 신상필벌이라는 명분만 앞세워 애민을 등한시하지는 않으셨는지, 어째서 백성의 수가 계속 줄고 관리의 수도 줄게 되었는지 자기성찰을 한 번이라도 해보셨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본조는 옛 조선과는 달리 관민을 따로 구분할 수 없는 특수한 사회입니다. 그 점을 유념하여 주신다면 전하께서는 애민(愛民)하는 마음을 마땅히 보여 주셔야 합니다. 충언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쓰다.

개국627(2018)년 4월 18일 기록 :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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