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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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운
작성일 개국627(2018)년 5월 1일 (화) 00:03  [자시(子時):삼경(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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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7(2018)년 5월
상(上) 14년, 5월 1일 계사(癸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2일 갑오(甲午)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3일 을미(乙未)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4일 병신(丙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5일 정유(丁酉)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군기시직장 정제두가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5월 제1차 무관 평정 결과, 권지군기시봉사 곽달호가 권지 기간 2회의 평정에서 모두 상점을 받았기에 승의부위로 가계하고 행군기시봉사로 정직 사령하였습니다.
덧붙여 무관 인사에 대하여 의견을 계합니다.
신은 지난 2월 8일에 군기시직장에 임명되어 현재까지 근 3개월을 근무하여 관품 승진 요건을 충족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의 관직을 군기시주부로 승진 사령하기를 계청합니다.
다음으로 행군기시봉사로 정직 사령된 곽달호의 인사에 대하여 계합니다. 곽달호는 적극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업무에 빠른 적응을 보인바, 다소 이르다고 판단될지라도 당하관 수장으로서의 직임을 맡기고자 합니다.
곽달호의 체직에 대하여 수망과 차망이 있는데, 수망은 현재 예조참의 한명회가 선공감정을 겸하고 있는 공조에 사령하는 것입니다. 한명회의 겸직을 면하고 곽달호를 행선공감봉사로 사령하는 것을 수망으로 계합니다.
차망은 곽달호를 외관직으로 사령하는 것입니다. 여조(麗朝)와는 달리 조선은 모든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중앙 집권 제도를 구축하였습니다. 현재 한성부에서 팔도의 행정을 관할하는 것이 당장은 업무상 부담이 적다고 할지라도 기회가 된다면 외관직의 수를 늘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관속이 충원된 곳이 충청도와 전라도이니, 곽달호를 행전라도검률로 사령하여 전라, 경상 양도를 관할하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내부 승진을 재가한다. 행봉사 곽달호는 차망으로 명하여 삼남(三南)을 관장케 하라." 라고 하였다.

5월 6일 무술(戊戌)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7일 기해(己亥)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서민교가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지난 6일, 중직대부 신 홍봉한이 관직신청을 하였습니다. 그의 등청할 수 있는 여건을 소명한 것을 살핀 바, 공무에 임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본인이 지방관 또는 삼사로의 사령을 원하고 있으므로, 이를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의망합니다.
수망 : 강계도호부사 겸강계진관병마첨절제사(江界都護府使 江界鎭管兵馬僉節制使)
차망 : 행사헌부지평(行司憲府持平)
수망은 강계도호부사에 당직으로 사령하는 것입니다. 조정에서 북도의 지방관으로서 사령한 것이 평안도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서도인 의주목에 사령한 전력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동도의 중진(重鎭)인 강계부에 사령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병조에서 하삼도의 지방관 사령을 계하였으므로, 세 관원이 3개 지방씩 분담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방관이 파견된다면, 한성부의 업무 강도를 완화하고 외방 백성들을 안돈(安頓)시킬 것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망은 사헌부지평에 행직으로 사령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사헌부지평으로 있다가 고양군수로 체직되었으며, 7개월 이상 감찰, 지평으로 근속하였습니다. 근래에 양사(兩司) 관원이 없어서 비국(備局)에서 서경을 대행하고 조가(朝家)의 여러 일을 규찰하지 못함이 많았습니다. 지금 소차(疏箚)를 들이지 못하므로, 규찰과 서경을 수행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와 같이 이조에서 신 홍봉한의 관직 의망을 가려서 받들어 올립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재가한다. 강계부사로 사령하여 이북 3도를 관장케 하라." 라고 하였다.
○ 군기시주부 정제두가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무관의 품계 변동에 대하여 계합니다. 상점 10회 누적으로 인한 평점 3점 가산 조치에 의하여 평점이 누적된 신의 품계가 병절교위에서 여절교위로 승진되었고, 소위장군 방인하의 품계가 진위장군으로 승진되었습니다.
진위장군 방인하가 관직 신청을 하였습니다. 본인이 희망 관직을 공조로 지원한 것을 참작하여 방인하의 관직을 공조로 의망합니다. 진위장군은 작년 8월에 행군기시첨정에 오른 경력이 있으니, 방인하를 행선공감청점으로 임명하고 예조참의 한명회의 선공감정 겸직을 면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재가한다. 계목대로 인사를 발령하라." 라고 하였다.

5월 8일 경자(庚子)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9일 신축(辛丑)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10일 임인(壬寅)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11일 계묘(癸卯)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전라도검률 곽달호가 임지에 부임 전 사은숙배를 올리길 "신 곽달호, 비록 공직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경험이 일천하지만, 전하의 성은으로 하삼도를 관장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수령칠사에 따라 백성을 잘 살피고 베풀어 주신 크나큰 성은에 미력하나마 보답할 수 있도록 충심으로 목민관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다짐한 바를 잘 알겠다. 임지로 향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5월 12일 갑진(甲辰)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서민교가 병조의 사만, 거관 제도 등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병조에서는 본조 조정의 고질적인 인사난을 해결함과 더불어 신진 관원의 전문성 강화, 백성들의 활동 활성화를 위한다는 취지로 사만(仕滿) 거관(去官) 제도(혹은 천직(遷職) 제도)의 시행을 건의하였습니다.
지난 4월 24일, 병조에서 이조로 천직 제도를 구상한 결과를 이첩하고 그 검토를 구하였으니,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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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외 관리의 천직 제도 구상안>
◎ 품외(品外) 관리의 천직(遷職) 제도 구상안

○ 개요

지금까지 본조에서는 관속, 군졸, 서리 등 품외 관원의 정직 진출 방법은 천거와 과거 두 가지로 결정되었습니다. 본 구상안은 옛 제도 중에서 사만거관 제도를 본조에 구현하여 신규 호적신고자에게 세3의 관직 진출 경로를 열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용어 정리
* 경아전(京衙前)
- 조선시대 중앙 각사(各司)의 하급 관리로 녹사, 서리 등 조선시대 중인 계층의 주된 직역 중의 하나

* 사만(仕滿)
- 정해진 근무 연한을 채우는 것. 참상관은 900일, 참하관은 450일의 근무일수를 채운 후에 품계를 한 자급씩 승진할 수 있었음. 참고로 근무일수만 채운다고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포폄을 거쳐야 함. 본조 창국 초기의 인사평정세법, 승품체직세법이 이러한 제도를 따랐고, 후에 제도 간소화를 위해 지금의 평점누적정산제도로 고쳤음.

* 거관(去官)
- 사만을 완료한 관리의 관직을 옮겨주는 것. 경국대전에 따르면 서리는 사만 2600일에 거관하여 당상아문은 종7품에서 3품이하아문은 종8품을 받고 퇴임한 뒤 취재를 거쳐 역승, 도승으로 근무할 수 있었고, 녹사는 사만 514일에 가계하여 종6품이 되면 거관한 뒤 취재를 거쳐 수령에 임명될 수 있었음.

○ 사만거관 제도 도입의 명분
* 합리적인 제도
위의 용어 정리에서 설명하였듯이 경아전 등 품외 관리도 근무일수를 채우면 승진의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본조에 경아전 제도를 도입 할 때 관속과 처우가 동일하도록 하였고, 구체적인 승진 제도를 구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천거로만 진출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직원이 근무일수를 쌓고 경력을 쌓으면 승진을 시켜주는 것을 전적으로 추천에만 의존한다면, 직원이 근무할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승진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 고증의 구현
품외 관리인 서리 등에 대하여 근무일수를 따져 거관하도록 한 제도는 옛 조선에 시행하였던 제도입니다. 관련 조항이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사만거관 제도의 도입은 옛 제도를 따르고 최대한 조선을 조선답게 고증하여 구현한다는 본조의 취지에 부합합니다.

* 계사년 연두교서
"호적신고자에게 본조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고 친절하게 여러 제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활동이 있는 백성은 정병, 관속, 훈장, 시전, 모임 등의 역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반드시 과거 급제자가 나올 때를 기다려 관원을 충원할 것이 아니라, 천거 또는 토관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초급 관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 관청에서 다시 한 번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보완하는 행정을 펼칠 필요가 있다."
5년 전의 연두교서이지만 초급 관료 양성을 위한 제도 정비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시 전하의 전교는 매우 타당하며 사만거관 제도의 도입은 그 뜻에 부합하는 제도입니다.

○ 구상안
품외 관원의 사만 일수 및 거관 이후 취재 시행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역사에서는 동반, 서반, 경아전, 기술직, 잡직, 갑사 등에게 모두 사만거관 제도가 적용되었는데 본조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관속에게도 확대 적용하여야 합니다. 우선 큰 틀을 정하자면 서리, 관속, 갑사 등 품외 관리들의 사만 일수를 정하여 기간을 채운 자는 그간의 업무 능력, 성실성 등을 평가 받아 거관하여 정직에 진출하거나, 산관이 되는 등의 처우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면 대대적으로 방문을 게시하여 모집을 하는 것입니다. 본조에 신규 호적신고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것은 본조가 검색 사이트에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조 내에서 신규 호적신고자에 대한 안내는 너무 성의가 없습니다. 인터넷 세대들은 긴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본조의 안내문들은 너무 장황합니다.

사만 거관 제도를 정비한 이후에 서리, 관속부터 시작하여 경력을 쌓아 관직에 진출하도록 안내하는 것 만으로 족합니다. 경력을 쌓아 승진한다는 제도는 현대의 공무원 조직, 기업 조직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이니 이해하기도 쉽고 안내하기도 쉽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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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에서 검토한 결과, 심각한 오류나 결점이 없다고 판단되어, 지난 1일에 병조에 비변사를 거쳐 진행하라고 답하였습니다. 5월 1일부터 동월 7일까지 진행된 비국 주좌(籌坐)에서도 특별히 반대되는 의견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군자감제검 신 최성원이 새 제도의 시행보다는 대과의 속행을 통하여 관원을 충원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행이 또 언제 가능할지 신들이 헤아릴 수 없고, 급제자가 얼마나 될지, 모두 출사할지의 여부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5월 7일, 신이 비변사부제조로서 병조에 훈령하여, 이 안의 정비를 거쳐 비국으로 공문을 발송하라고 전하였습니다. 이에 병조에서 아래와 같이 그 골자를 이첩하고 윤허를 받들겠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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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
1. 대상 : 서리, 관속 등 경외의 아전
2. 사만 일수 : 추후 논의를 통해 결정
3. 거관 : 품외 관리가 사만하면 그 동안의 근무 능력 등을 평가하여 다음 세 가지 중에서 택일하여 거관시킨다.
 1) 동서반 참하직으로 진출시킨다.
 2) 관직 진출 자격이 없는 산관으로 삼는다.
 3)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는 자는 아전으로 남도록 하고 한 번 더 사만 일수를 채운 뒤 다시 거관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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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논의 진행과 세부 사항의 결정은 전하의 윤허를 받들어 시행하고자 합니다.

일전에 계한 강계부사의 사령은 인사평정 상 불이익을 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오는 16일에 사령하고자 합니다. 앞서의 계본에 누락되었으므로 이 계본에 덧붙여 계합니다.

권지승문원정자 신 박세당이 4월 2차 인사평정부터 5월 1차 인사평정까지 모두 하점이 부여되었습니다. 4월 2차 인사평정이 하점이었으면 즉시로 파직하는 것이 규정이나, 신의 착오로 시행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쳤으니, 신의 과실입니다. 그의 사정을 살핀 바, 사령이 있은 4월 1일 이전에 이미 급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하여 등청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이는 한성부에 제출한 소명서에 근거한 것인데, 예방으로 재직하고 있는 한성부에는 소명서를 제출하고 권지정자로 근무하고 있는 예조에는 제출하지 않은 것이 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병조와 소속 관청인 예조에서 사정을 참작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신은 이하와 같이 처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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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부에 제출된 소명서는 한성부에서 예조로, 예조에서 이조로 순차적으로 이첩하여, 소속 관청과 평정 관청에 문서로 남게 할 것.
-. 한성부에 소명서가 제출된 것은 4월 14일이므로, 그로부터 3개월(90일)이 되는 7월 12일까지 정식 휴가 기간으로 함. 인사행정절목 제5장에 근거하여 질병 치료로 인한 장기휴가 3개월을 인정함. 미처 휴가신청서를 제출할 여력이 되지 못하였음을 참작하여 소명서를 휴가신청서로 간주함.
-. 최초 2회 평정 중에 하점을 받으면 파직이나, 이번 사안에서는 당사자가 특수한 상황에 처하였음을 감안함. 초수된 일자가 4월 1일이나, 이미 3월 26일부터 발병하여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소명하였음.
-. 4월 2차 문관평정 기간(4월 1일~4월 15일)은 당사자의 병환이 위중하던 시기였고, 5월 1차 문관평정 기간(4월 16일~4월 30일)은 비록 등청하였으나 업무 실적이 거의 전무함. 기왕 4월 14일부터 질병 치료로 인한 장기휴가로 인정한 만큼, 5월 1차 문관평정은 무효로 처리함. 4월 2차 문관평정의 경우는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하여 미처 휴가신청을 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인정함. 4월 1일부터 4월 14일까지의 기간은 통상적인 휴가 기간으로 잠정 처리함.
-. 2회의 평정이 모두 무효로 처리된 만큼, 당사자인 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은 복귀 후 2회 문관평정을 새로 거쳐야 함.
-. 이미 처리된 관속 해임은 구제하지 않음.
-. 이 조치가 향후 권지 관원의 미등청 처리에 대한 선례가 될 수는 없고, 각 사안에 따라 재량하여 처리할 일임을 분명히 함.

이조 : 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의 4월 2차, 5월 1차 문관평정을 모두 무효로 처리함
예조 : 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의 소명서를 이조에 이첩
한성부 : 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의 소명서를 예조에 이첩
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 : 4월 1일부터 4월 14일까지의 휴가신청서, 4월 14일부터 7월 12일까지의 휴가신청서 2건을 완치 후 복귀 즉시 이조에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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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신 박세당이 이조에 소명서를 제출하여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직무에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을 보였고, 그에게 4월 1일부터 4월 14일까지의 휴가신청서(일반), 4월 14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휴가신청서(병가) 2건을 제출하고, 5월 16일부터 업무에 복귀하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즉시 복귀하면 평정상 불이익이 있고, 며칠 간만이라도 더 구료하며 기력을 차려야 할 것으로 사료하였습니다.
현재 이조에서는 신 박세당에 대한 두 차례의 인사평정을 무효화한 상태입니다. 한성부에서 예조로, 예조에서 이조로, 한성부에 제출하였던 소명서를 차례로 이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은 앞서 계한 바와 같이 한성부와 이조에 각기 소명서를 제출하였고, 휴가신청서 2건은 아마도 복귀 후에 제출할 요량인듯 싶습니다. 휴가신청서는 그의 처한 상황이 급박하였음을 고려하여 소급 적용하고자 합니다.
이 인사행정의 과정에서 신의 과실이 완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삼가 청컨대 신에게 책임을 물어 벌주실 일로 사료됩니다. 삼가 대죄(待罪)합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길 "제도 시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조정 내외의 상황에서는 때에 따라 지방관이 천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인사와 평정이 어떠한 일인데 이조에서 멋대로 무효 처리하고 휴가의 신청과 적용을 소급하는가. 권지정자는 즉시 면직하여 병환에 전념케 하고, 참의는 이조를 맡을 후임 관원을 의망하라." 라고 하였다.
5월 13일 을사(乙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주부 정제두가 천거 제도 활성화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현재와 같은 조정 내외의 상황에서는 때에 따라 지방관이 천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비답을 내리시며 사만거관 제도의 시행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본조의 인재 등용 제도로 과거와 천거가 있었지만, 과거 제도는 실패하였고 천거는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과거 제도가 실패한 원인으로는 소과 입격자에게만 대과 응시 자격을 부여하였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경국대전에 문과는 통훈대부 이하에게 응시하도록 허락한다고 되어 있고 어디에도 소과에 입격해야 응시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조선 후기 100년 동안에는 생원진사과를 거치지 않고 문과에 급제한 관리가 전체의 8할을 넘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본조에서 제도를 만들 때는 소과 입격자에만 한하여 대과를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천거 제도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 전하께서 매년 연두교서에 언급하시며 활성화를 독려하셨으나 결국 신들은 그 뜻을 받들지 못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천거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관리들의 천거에 대해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정말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제도가 결국 실패하였고 그동안의 추세가 말해주듯 매년 동서반 참하로 진출하는 사람의 수는 급감하였습니다. 신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은 제도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여깁니다.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은 초급 관리 양성을 위한 새로운 법안으로 사만거관 제도를 발의한 것입니다. 이 발의의 핵심은 사만일수에 있습니다.
신규 호적신고자가 많지는 않으나 꾸준히 발생하는 것은 본조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검색사이트에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국 초기에 장종께서 검색사이트 등록을 서두르신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이 광고의 힘입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일종의 사업인데 광고를 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검색사이트를 통해 들어온 신규 호적신고자로 인해 호구 수가 하나 늘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신규 호적신고자가 정병, 관속, 훈장, 시전, 모임 등의 역할에 참여를 끌어낼 수 있도록 광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경아전과 지방 아전인 관속을 모집하는 광고에서 지원할 동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가 사만일수입니다. 사만하는 일수를 도입하면 그 일수를 채운 뒤에 동서반 참하직으로 천직할 기회가 부여되니,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인 천거보다 훨씬 명확합니다. 이 명확함을 관속 모집이나 경아전 모집에 활용한다면 호응하는 신규 백성의 수가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광고란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본조에 걸려있는 그 장대한 안내문들이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었습니까. 그중 일부는 지금 거짓 안내문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상소문 등록이나 과거 응시 등에 대한 안내문들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정병에 대한 안내문도 거짓 안내문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신규 호적신고자들이 적응하기 힘든 구조, 복잡한 안내문 속에 일부 포함된 거짓 안내문 등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 어찌 신규 활동자들이 나오기를 바라겠습니까. 신규 호적신고자에게 가장 쉽게 안내할 방법은 경력을 채워 등급을 승격시킨다는 어떤 조직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간단한 원리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새 제도의 시행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결국 천거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지방관이 관속 모집 안내문을 공고할 때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천거하겠다는 내용을 첨가하는 것, 임기가 끝난 전임 지방관이 자신이 발탁했던 관속을 천거하는 것, 그리고 경관청에서도 서리를 수시 모집하고 모집 안내문에 천거를 시행할 근무 일수에 대한 기준을 미리 명시하는 것 등을 허락하시어 천거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천거는 인물의 자질, 재주, 재능, 능력 등을 살펴 시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초입사 관원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일정 기간을 적당히 채웠다는 이유로 모두 천거하고 등용하는 것을 인사 정책의 방도로 삼겠는가. 더군다나 관속 경험의 경중이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인 현실에서야. 지방관이 스스로 임기를 마칠 때가 되거나 정기적으로 장계를 올릴 때가 되면 천거 대상자가 있는지 점검하고 추천케 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그러한 것들은 중앙의 관계된 상급 관청에서 계도하면 될 일이다."라고 하였다.
5월 14일 병오(丙午)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15일 정미(丁未)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서민교가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신을 대신할 이조의 후임관을 의망하라는 전교를 받들어 올립니다.
통훈대부 신 정예림을 사옹원제거에 제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개국 625년 12월 29일부터 개국626년 3월 8일까지 약 3개월간 이조에 재직하였고, 그 이전에도 이조 업무를 수행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미 경력이 출중하여 당직으로 하여야 할 것이지만, 작년 7월에 파직되었으므로 실직에 두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우선 무록직으로나마 사령하기 위하여 사옹원제거로 의망합니다.
신 이외에 현직 문관으로는 예조참의 신 한명회와 행한성부서윤 겸비변사낭청 신 하유가 있습니다. 신 하유는 아직 임기가 남아있습니다. 당초에 신 한명회에게 이조로의 체직 의사 여부를 탐문하였으나 아직 응답이 없고, 더 늦어지기 전에 후임자를 의망하기 위하여 이제 계본을 올립니다.
신은 혐의가 있으므로 공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에 신이 체직될 자리를 따로 의망하지 않았으며, 부제조 직도 타인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오직 처분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후임 인사를 재가한다. 이조는 참의를 중추부 상당직(相當職)에 명하고 비변사의 직임은 그대로 감당케 하라." 라고 하였다.
5월 16일 무신(戊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선공감첨정 방인하가 개국621년 식목사업 수당 미지급 건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공조에 부임하여 업무를 살피던 도중, 중부지역과 공조와의 621년 식목사업 협의 이후 후속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당시 행선공감판관이던 라우주가 북삼도, 중부지역, 하삼도의 식목사업 협의 공문을 확인하였고, 각 식목사업이 지방에서 모두 진행되었는데 공조로 결과 공문이 회신된 것은 북삼도와 하삼도 두 지역 뿐이었습니다.
이에 신이 해당 사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광주목사였던 임상유가 중부지역의 식목사업을 시행하였는데 제70차 소과 시관 채점 미수행 건으로 파직되었고, 행황해도검률이던 이성필이 중부지역의 업무를 대행하면서 감영 업무에 공백이 생겨 후속 절차를 밟지 못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업 협의로 관련되었던 공조와 호조 뿐 아니라 사헌부도 이를 파악하지 못하여 중부지역 식목사업의 수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국621년 중부지역 식목행사에 참여했던 총 14인의 호적이 현재까지 유효하니, 비록 6년전에 시행된 사업이지만 호조와의 협의를 통해 누락되었던 사업 수당을 지급해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해당 식목사업에 관련된 공문을 정리한 문서를 별단으로 첨부하였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재정에 관한 사안은 비변사에서 제청할 일이다." 라고 하였다.
○ 강계도호부사 겸강계진관병마첨절제사 홍봉한이 임지 부임 전 사은숙배 하길 "오랜만에 관직에 출사하여 북삼도를 관장케 하는 도호부사의 중임을 맡게 되었으니, 어찌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가겠습니까. 목민관으로써 현정을 베풀어 광명과 은덕이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은한 바를 잘 알았다. 속히 부임토록 하라." 라고 하였다.
5월 17일 기유(己酉)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18일 경술(庚戌)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19일 신해(申亥)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20일 임자(壬子)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주부 정제두가 토관직 활성화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근자에 신은 사만 제도 등 새로운 인사 정책을 추진할 것을 계청하였습니다. 조종조에도 납속책와 공명첩 등 정도라고 할 수 없는 정책을 나라에서 권장하였으니, 신은 국난의 시기에 권도(權道)로써 활로를 모색함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어찌 정도(正道)와 원칙을 지키시려는 전하의 뜻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서전(西銓)의 수장으로서 본조의 인사 정책에 대한 의견을 기탄없이 올리는 것은 마땅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의견을 말씀드렸으니 인사 정책의 한 종류인 토관직 제도에 대해서도 기탄없이 아뢰고자 합니다. 8년 전인 개국618년 4월에 전하께서는 "토관직 제도를 마련한 뜻은 평안, 함경 지역의 본적자 증대를 위한 것에 있지 않고 실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백성의 증가에 있다."라고 옥음을 내리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평안도와 함경도 등 북쪽 지방에서는 활동하는 백성이 없고, 남쪽 지방에서 간간이 활동하는 백성이 있을 뿐입니다. 토관직 제도의 활용도 지난 개국621년 7월을 마지막으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토관직을 평안도와 함경도에만 설치한 목적이 무색해졌습니다.
토관직은 본래 고려말 원나라로부터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뒤 설치한 것으로, 탐라총관부를 환수한 뒤에는 제주도에서 설치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종께서 4군 6진을 개척하시면서 함경도 방면의 설치 지역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안도와 함경도의 토착 세력에게 주어진 특수 관직의 성격을 띠었으나, 세조께서는 그 지역을 개성부와 전주부, 경주부에까지 확대하여 설치하셨습니다. 이는 오경론(五京論)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발해가 중경현덕부, 남경남해부, 동경용원부, 서경압록부, 상경용청부를 설치한 것이 오경론의 예에 해당합니다. 신라가 5소경을 설치하고 고려도 서경(평양), 남경(한양), 동경(경주) 등을 설치하여 지방의 작은 도읍을 만들었듯이 전주부는 본조 열성조의 어향이고, 경주부는 신라, 개성부는 고려의 어향이기 때문에 조선에서도 이 지역에 토관직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세조께서는 토관직을 확대 설치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이들 지역에 설치된 토관직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으나 한때나마 토관직이 설치되었던 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토관직 설치 지역이 평안도와 함경도에만 국한되어있는데, 척박한 지역을 활성화하려던 취지가 오히려 지역의 편중 때문에 토관직 제도 활성화 자체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북방 지역은 신규 호적신고자들이 거의 정착하지 않는 땅입니다. 세조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본조에서도 개성부와 전주부, 경주부에도 토관직을 설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리 된다면 이북 지역을 관장하는 지방관뿐만 아니라 남쪽 지방의 지방관들도 토관직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니 토관직 제도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며, 활동하는 백성 수의 증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세조께서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 이외에도 토관직을 설치하셨다는 실록의 기사를 어람용로 첨부합니다.
[어람용]
세조실록 3년 6월 29일
세조실록 11년 11월 15일"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토관직 제도가 현재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에는 나름대로 연원이 있으므로, 제도 확대는 허락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5월 21일 계축(癸丑)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옹원제거 정예림이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의 하교를 받들어 지난 20일에 前참의 서민교를 첨지중추부사 겸비변사부제조로 사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문관 평정 결과에 대해 아룁니다. 인사평정절목의 "각 관청의 당하관 수장은 이조(문관) 또는 병조(무관)의 당상관, 정랑, 좌랑이 평정한다. 평정 관원의 수는 3인을 넘지 않는다. 좌랑 이상이 없으면 수장이 평정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前참의 서민교가 19일에 남긴 인사 평정 결과서에 근거하여 행한성부서윤 겸비변사낭청 하유가 중점을 받았습니다.
하옵고 前권지승문원정자 박세당의 평정에 대해 아룁니다. 前권지정자는 "출사 후 최초 1개월간 보름 간격으로 2회 평정한 결과, 하점(下點)이 있으면 파직하고 없으면 정직(正職)으로 진출시킨다. 이 경우 상점(上點)이 2회이면 가계(加階)한다." 라는 규정에 따라 이미 4월 2차 평정에서 하점을 받은 바 있으므로 일신의 일은 애석하지만 평정 결과에 따라 파직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조의 착오로 5월 1차 평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前권지정자는 5월 13일 자로 면직 처리가 되었습니다.
인사평정절목에 따르면 "사직, 면직, 파직, 휴가 등으로 인해 실제 근무한 기간이 10일 미만(9일 이하)이면 평정하지 않는다." 라고 되어있지만 前권지정자는 5월 1일부터 5월 13일까지 10일 이상 근무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미 파직이 되었어야 마땅한 관원이므로 비록 기록상으로는 근무일수가 10일 이상이라고 하나 평정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사료됩니다. 前권지정자의 5월 2차 문관 평정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평정에 관하여 하교를 내려주시면 이를 받들겠습니다.
평정 결과서가 집계되면 즉시 공고하고 집계가 늦어진 부분은 따로 처결하도록 되어 있어 일단은 평정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집계된 행서윤 하유의 평정 결과에 대해서만 공고하였습니다. 만약 前권지정자가 평정 대상이라고 하시면 늦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예조에 평정 협조 공문을 보내 따로 조처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신병(身病)으로 인한 상황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마땅히 파직해야 하지만 딱한 사정을 참작하여 면직하는 것으로 그치게 하였던 것이다. 평정 역시 시행치 말라." 라고 하였다.

5월 22일 갑인(甲寅)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주부 정제두가 훈련원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어제 충청도 온양군의 박찬과 경기도 과천현의 이명려가 동시에 훈련원에 정병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복무 희망자가 2인 이상이 되었으니 훈련원 운영 재개를 검토하고자 합니다.
일단은 신이 훈련원주부를 겸하여 훈련원을 재가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라고 하였다.

5월 23일 을묘(乙卯)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5월 24일 병진(丙辰)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주부 정제두가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이 체직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운은 지난 4월에 동부승지로 임명되어 승정원일기 9권을 찬수하는 등 편찬 활동을 하였습니다
현재 승정원은 왕명 출납 업무 등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 승지를 승정원 대신 다른 관직에 체직 사령을 하여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인의 의사를 참고하여 강릉대도호부 겸강릉병마첨절제사로 사령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외관직 관할 구역을 재정비하여 이운이 강원도와 황해도를, 홍봉한이 평안도와 함경도를 관할하게끔 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승지를 본조(本曹) 참의에 명한다. 참의는 주부를 훈련원에 의망하라." 라고 하였다.

5월 25일 정사(丁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옹원제거 정예림이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먼저 평점 가산에 대해 아룁니다. 행한성부서윤 하유가 제례 헌관 및 유사 수행 누적으로 평점 1점 가산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체직에 대해 아룁니다. 행한성부서윤 하유가 체직신청서을 제출하였습니다. 행서윤은 4월 1일 한성부에 부임하였으므로 오는 6월 1일이 임기 만료일이며 임기 만료를 대비하여 체직신청서를 미리 제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행서윤은 1지망으로 승정원을 2지망으로 형조를 선택하였지만 신의 생각은 행서윤과 조금 다릅니다. 승정원의 경우 일찍이 전하께서 가주서는 품위에 맞게 5품 이하에서 차출하라고 하교하셨기에 중직대부에 이른 행서윤이 맡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여 수망으로 형조정랑 겸비변사낭청을 차망으로 예조 승문원참교 겸비변사낭청으로 의망하여 아룁니다. 지난 개국625년 6월 25일에 "형조 재개는 당분간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전하께서 하교하신 바 있으시나 시일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형조 재개를 고려해볼 때가 되었다고 사료하여 행서윤의 지망도 참작하여 수망으로 하였으며, 형조 재개가 여의치 않을 경우를 고려하여 행서윤의 지망과는 다르지만 예조를 차망으로 하였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차망으로 재가한다. "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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