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궐내 서각(書閣) - 상소문 등록 공간 (클릭)
작성자 이운
작성일 개국627(2018)년 5월 9일 (수) 17:23  [유시(酉時)]
ㆍ추천: 0  ㆍ열람: 60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3월 (교정)
상(上) 13년, 3월 1일 정해(丁亥)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가 승정원일기 찬술내역에 대한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신이 지난 10월 29일 승정원에 부임한 이후 금일까지 개국611년 1월 ~ 12월, 개국612년 1월 ~ 11월, 개국625년 8월 ~ 12월, 개국626년 1월 ~ 2월 일기 등 총 30개월, 41권(상·하권 포함)의 승정원일기를 작성하여 서각에 입고하였습니다. 개국611년 1월, 4월 ~ 12월, 612년 1월 일기는 당시 조정이 활발하여 부득이하게 상·하 분권으로 작성하였고, 나머지 일기는 모두 단권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개국613년 8월 하권, 개국614년 1월, 개국614년 2월, 개국614년 8월, 개국617년 12월 (상·하권), 개국620년 5월, 개국624년 11월 (상·하권), 개국624년 12월 (상·하권), 개국625년 1월, 개국625년 2월 (상·하권), 개국625년 3월 일기 등 총 15권의 승정원일기를 기록누락, 재위년도, 오탈자 등을 교정하여 승정원에 보관하였습니다. 곧 유사(有司)의 도움을 받아 서각으로 본문교체할 예정입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찬술 내역을 잘 알았다. 비변사에서 이조, 병조 등의 반영을 수렴하여 일기 찬술에 따르는 혜택과 관련한 의견을 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사재감정 김시습이 호구조사 시행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3월은 호구조사를 시행하는 달입니다. 경기, 황해감영의 협조를 받아 3월 7일부터 호구조사를 시작하여 3월 14일에 호구조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이후 호구조사 시행은 비변사에서 전결하라."라고 하였다.

3월 2일 무자(戊子)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과거 재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지난 19일 병조에서 102차 소과 시행 일정에 대한 계본을 올렸습니다. 이에 전교하시길 별명이 있을 때까지 과거 시행을 보류하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비변사에서 과거 재개에 대한 공론을 모아 제청하오니 살펴 주시옵소서.
작년 100차 소과 이후 과거 시행이 보류되어 작년 한 해 과거 시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작년 말 사헌부, 예조, 병조 등의 계청으로 재개 되어 올해 1월에 101차 소과가 시행되었습니다. 헌데, 재개하고 1회만 시행하고 다시 과거 시행 보류 전교를 하심에 신 등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는 인재 등용의 장이며 지속적인 조정의 발전을 위해서도 한시도 멈춰서는 안 될 제도 입니다. 더욱이 조정의 형편이 넉넉치 않은 때에 인재 등용의 길을 막는 것은 오히려 조정을 더욱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이에 비변사에서 과거 재개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였는데 대과는 3월, 9월로 연2회, 소과는 1월, 4월, 7월, 10월로 연4회로 감축하는 것으로 비변사 공론을 정하였습니다. 이는 과거 시행 횟수를 현행 횟수보다 감축하였다가 훗날 상황이 개선되면 현행 수준으로 환원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상서원정 겸비변사낭청 정예림이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3월 제1차 인사평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평정 결과에 따라 조산대부 행사헌부지평 홍봉한이 봉렬대부로, 봉훈랑 행봉상시주부 정도전이 봉직랑으로 가계되었습니다. 또한 목사 김관이 3개 지역을 관장하는 지방관으로서 평점 2점 가산되었습니다. 
곧 인사 체직이 대대적으로 있을 예정입니다. 신 또한 체직이 예정되어 있는 바, 인수인계를 잘 하여 인사에 혼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한 바를 잘 알았다."라고 하였다.

3월 3일 기축(己丑)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4일 경인(庚寅)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평안도도사 최성원이 임지로 부임하기에 앞서 사은숙배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전하의 성은으로 1년 반만에 외관직을 맡았사옵니다. 또한 6개 지역을 맡아 그 책임또한 막중하옵니다.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고 6개지역을 살피며 목민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이북 3도 지역은 인구가 많지 않지만 6개 지역을 관장하게 되었으므로 그 책무와 다임이 남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속히 부임토록 하라."라고 하였다.

3월 5일 신묘(辛卯)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윤강이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3월 제1차 인사평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번 인사평정의 결과에 따라 봉직랑 행호조좌랑 강건이 통선랑으로, 창신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가 현신교위로 각각 가계되었습니다. 또한 전교를 받들어 행병조정랑 겸비변사낭청 최성원을 행평안도도사로 사령하였으며,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는 서경을 거친 후 행병조좌랑으로, 행경기도검률 최준은 서경을 거친 후 행훈련원봉사로 사령하였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한 바를 잘 알았다."라고 하였다.

3월 6일 임진(壬辰)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7일 계사(癸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승정원 일기 찬술 혜택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前가주서 방인하의 승정원 일기 찬술 내역에 따른 혜택에 대하여 비변사에서 이조, 병조 등의 의견을 수렴한 공론을 아룁니다.
승정원일기 찬술에 대한 전례를 살펴 보았는데 前가주서 정예림이 총29권을 찬술하고 총11권을 교정하여 그 노고가 앞선 계본에서 방인하가 아뢴 내역과 비슷합니다. 前가주서 정예림은 총 40권의 일기를 찬술, 교정하여 두번의 포상을 받았는데 한번은 근정삼급진충장을 수여받았고 한번은 가일계와 좌랑에서 정랑으로 내부승진 되었습니다.
이에 前가주서 정예림의 전례를 참고하여 방인하에게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여하고 더불어 1계 가계, 그리고 정랑으로 내부 승진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정랑으로 내부 승진과 자급을 올리는 것은 승진 요건을 충족시키는대로 연이어 시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료됩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훈장을 수여하고, 훈장 수여에 즉시 동반되는 가계 이외의 추가 가자는 내부 승진시 반영하여 주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3월 8일 갑오(甲午)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9일 을미(乙未)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영춘현감 겸충주진관병마절제도위 정도전이 임지로 부임하기에 앞서 사은숙배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지난날 강원도검률로서 중부 지역을 다스린지 근 1년 반이 되었습니다. 중부 지역을 맡았을 때에 부족함이 많았으나 이번에도 막중한 업무를 맡기시니 두려운 것이 사실이오나, 선임 관원들과 감영의 관속들에게 도움을 얻어 좋은 지방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나이다. 전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초심, 그리고 민본, 이 말들을 가슴에 새겨두어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다짐한 뜻을 잘 알았다. 어서 임지로 나아가, 오늘 다짐한 바를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3월 10일 병신(丙申)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11일 정유(丁酉)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12일 무술(戊戌)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궁궐 방화범 전국 수배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지난 10일 민국 탄핵 사건과 관련하여 앙심을 품은 불온한 백성 좌병좌, 채선실 등 2명이 경복궁 동측 담장 너머로 화염병을 투척하여 상의원(尙衣院) 부속건물과 행랑채 일부가 화재로 소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먼저 사건 현장을 찾아가 확인한 결과 방화범 2명은 이미 현장을 도주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관민이 함께 화재 진압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에 비변사에서는 도주한 방화범 2명에 대한 전국 수배령을 내려 그들을 추포하는 공론을 모아 제청합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필요하면 지방관에게 토포사(討捕使)를 겸하게 하거나 따로 차송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하라."라고 하였다.
○ 행사헌부지평 홍봉한이 궁궐을 방화한 죄인에 대하여 간언을 아뢰기를, "지난 3월 10일 궁궐에 방화가 발생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진 소식을 듣고 신 황망하였기로 어전에 들었습니다. 허나 신이 아무리 황망하였기로 어찌 어심에 비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공조에서 백성을 동원하여 화재를 진압해 큰 불로 번지지 않았으니 실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방화를 저지른 죄인 채선실과 좌병좌를 추포해야하는 바, 이미 비변사에서 공론을 모아 전국 수배령을 내리자고 계하였으니 마땅히 이를 좇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국 사도와 팔도에 이들을 추포하라는 지엄한 어명을 내리소서. 궁궐에 방화한 것은 곧 전하의 안위를 위협한 것인 즉, 대역의 죄가 마땅하므로 조속히 잡아들여야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승정원은 본 문건을 승정원에 보관해 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3월 13일 기해(己亥)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종부시정 겸비변사낭청 김관이 인사평정에 대한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 지난 2월 20일에 전임 이조 수장이였던 前상서원정이자 現승문원판교 겸비변사낭청 정예림이 올린 전조 인사에 대한 계본에서 문관 인사가 3월 4일에 맞춰 인사이동을 진행하겠다고 하였사옵니다. 이에 前상서원정은 후임 이조 수장인 신을 3월 4일에 사령하였사옵니다. 그리하여 신이 전임관의 인수인계를 받아 이를 진행하려고 하였으나, 신에게 사령할 수 있는 권한이 늦어져 이를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이에 대하여 신에 대한 사령권한이 3월 8일에 주어졌으며, 신은 문관의 인사를 진행하였사옵니다. 하오나 이로 인하여 문관인사에 대한 불이익에 대한 소지가 제기 되었사옵니다. 
인사평정절목을 보면 제4조 1항에  '평정 대상 기간 동안에 10일 이상 실제로 근무한 관청에서 평정한다(만10일이 아님).'로 되어 있사옵니다. 이들은 현재 3월 8일에 사령되었기 때문에 인사이동 후 해당 관청에서 평정 기간까지의 실 근무 일수가 일로 10일이 되지 않아 3월 2차 평정에 해당되지 않사옵니다. 만일 예정대로 4일에 사령되었다면 이들은 돌아오는 2차 평정에 해당되는 관원들이옵니다.
이 관원들은 전임 관청에서는 물론, 사령 후에도 각 해당 관청에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관원들의 불이익은 없어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 하여 절목의 규정이 있으나, 이번 전하께옵서 하해와 같은 어심으로 해당 관원들의 평정 불이익에 대하여 혜량하여 주신다면 신을 포함한 모든 관리들이 전하의 성은에 망극할 것이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정이 그러하였다면 10일 이후에 사령하였어야 했다. 특별히 이전 관청에서 평정하게 하라."라고 하였다.

3월 14일 경자(庚子)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15일 신축(辛丑)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토포사 인선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13일에 전교를 받고 비변사에서 토포사 인선에 대하여 경관직 수장급과 지방관을 토포사(討捕使)로 겸하는 것을 공론으로 하였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경험이 풍부한 경관직 수장급 인사들로 문무의 균형을 맞춰 토포사를 구성하자고 의견이 모였으며, 마침 비변사 관원 전원이 본직이 수장급 인사이고 신을 포함하여 비변사 관원 모두가 조정에서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이에 비변사 관원 전원에게 토포사의 직임을 맡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전례에 토포사는 지방관이 겸직하였으니 역시 지방관 2인에게 토포사의 직임을 맡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여 총 6인에게 겸토포사의 직임을 맡겨주시길 청합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방화범이 몇 명이고 전체 조정 관원이 몇 명인데 이와 같은 규모로 신상필벌이 가중되는 직임을 인선하는가.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3월 16일 임인(壬寅)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비변사운영절목 개정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비변사운영절목 개정에 대하여 아룁니다. 비변사운영절목 제정 이후 전교로 새롭게 비변사 사무가 추가되었고, 조정 업무 살피면서 관원들로부터 비변사운영절목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보다 명확한 비변사 업무 정립을 위해 비변사에서 논의를 거처 개정안에 대하여 제청합니다. 먼저, 비변사운영절목 제5조 1항 각 관청에서 비변사에 보고하는 사항입니다. 정병 모집, 녹봉 지급, 군사번상 및 훈련, 도적 퇴치 등은 이미 비변사에 보고하지 않고 해당 관청에서 전결로 하고 있으므로 비변사에 보고할 필요가 없어보이며 해당 관청에서 전결로 하는 것이 행정을 간결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항목에서 삭제하였습니다. 형사재판(경범 판결)은 경범 판결에 한정한다는 부분이 모호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하옥 5일 이상 처결)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는 기존의 창국대전 형전에 처결 결과 3일(하옥 3일) 이상 죄인을 가둘 때에는 형조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으며 5일(하옥 5일) 이상 가둘 때에는 형조에서 국왕에게 계사(啓辭:논죄 계본)를 올려 보고한다고 되어 있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3일 이하는 해당 관청에서 자체 처리할 수 있고 5일 이상의 경우는 어전에 계사를 올리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비변사 보고로 하여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만약 관리 또는 백성이 관련된 경우라면 비변사운영절목 제청항목에 "관리 또는 백성의 징계 : 파직, 면직, 근무일수 감산, 형옥, 벌금 등"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으므로, 필요에 따라 비변사에서 공론을 정해 어전에 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외 전교에 따라 절목상 제례 시행, 현황 보고 내용이 위주인 한성부 및 각도 감영 지방관의 장계와 비변사가 상급 기관으로서 지방관의 관할 구역을 넘는 행사 및 사업에 대해 보고 받는 항목 등을 추가하였습니다. 다음은, 제5조 2항 비변사 전결 사항입니다. 전교에 따라 당하관 이하 사망 시 조문관 파견, 호구조사 업무 항목을 추가하였습니다. 제5조 3항 비변사 제청 사항입니다. 비변사운영절목 제정 당시 비변사 내부 논의에서 前부제조 서민교가 "각 관청에서 어전에 직계하는 사무 중에서 천거와 관원 인사 부문에 있어서는, 비변사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공론을 취합하여 계하거나 또는 전하께서 비변사 당상에 대하여 하문하시어 그 의견을 참조하여 재가하시는 등의 방식을 취하던지, 비변사의 공의를 청취하시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이 밖에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비변사의 의론을 상달(上達)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비변사는 허다한 일을 처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기왕 비변사를 두어 정사를 총괄하게 하였으니, 정사를 총괄하는 그것 이외에 정론을 내어 왕정(王政)을 도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참조하시고 살펴 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와 같은 前부제조 서민교의 의견을 담은 前비변사부제조 천어의 계본에 전교하시길 "재가한다. 인사 전반에 관한 내용이라면 비변사에서도 의견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예하였던 전반기 포상에 관한 공론을 정해 계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비변사에서 절목 개정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전하의 전교가 반영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추가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여 의정부 업무지침에 "4) 의견 개진 : 조정에서 논의되는 여러 사안에 대하여 독립 관청 자격으로 어전에 의견을 개진한다."라는 부분도 있으니 이를 비변사에 확대 적용하여 '조정 전반에 관한 의론'을 항목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이외에 대과 및 소과 시행, 소과 미입격자에 대한 대과 직부 추천 항목은 삭제하였습니다. 제5조 4항 각 관청의 어전 직계 사항입니다. 비변사 제청 사항이었던 대과 및 소과 시행, 소과 미입격자에 대한 대과 직부 추천 항목에 대해 최근 101차 소과에서 주무관청인 예조와 병조에서 관련 업무를 직접 계하라 전교하신 바 있고, 대과 및 소과 시행이 해당 관청이 어전에 직계해야 할 사무라면 직부 추천도 해당 관청에서 어전에 함께 직계토록 하는 것이 업무에 효율적일 것 같아 조항을 옮겼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고쳐 시행하라."라고 하였다.

3월 17일 계묘(癸卯)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18일 갑진(甲辰)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헌부지평 신 홍봉한, 직무감찰을 행한 계사를 올려 아뢰기를, "행영춘현감 정도전이 충청감영으로 부임하고 '당면업무'라는 제목의 비밀문서를 작성하고, 이전 근무관청인 예조에서도 '당면업무' 게시글을 세 차례 비밀문서 등 총 네 차례의 비밀문서를 작성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비밀문서는 인사, 평정, 감찰 등의 목적으로 작성할 때 필요할 부분이므로 신이 이상하게 여겨 감찰을 실시하였습니다. 해당 문서에 대하여 공개설정을 요청하였으며, 수정이 불가한 문서의 경우 스크린샷 기능을 이용해 사헌부로 회신하여 주길 요청하였습니다.
하여 해당 문서를 면밀히 살펴 본 결과 비밀을 요하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비밀문서에 대하여 전하께서도 616년 "과도한 비밀문서 양산은 조정의 오랜 폐단이다. 마땅히 시정하도록 하라.", 617년 "인사(人事)나 평가에 관한 내용 외에는 비문 생산 필요성이 거의 없는데, 각 관청이나 관원들이 습관적으로 비밀 문서를 양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같은 풍토가 반드시 개선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며 하교하신 바 있으십니다. 그런데 다시 이런 풍습이 생겨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영춘현감 정도전은 관원으로서 맡은 직분을 다하고 있고, 사헌부의 직무감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습니다. 또한 "비문 양산을 되도록 자제하라는 어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글을 함부로 사용하여 개인 업무 공간으로 사용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할 것이고, 어떠한 문책이든 달게 받겠습니다."고 하여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안이 법률을 크게 위반하거나 죄의 경중을 논하는 것이 아니오니, 사헌부에서 계도하는 것으로 처리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도하는 선에서 종결하라."라고 하였다.

3월 19일 을사(乙巳)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토포사 인선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17일에 전교를 받고 비변사에서 토포사 인선에 대하여 다시금 공론을 정하였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경험이 풍부한 경관직 수장이나 무관이자 지방관이 토포사를 겸직하게 하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이에 수망은 전례에 따라 무관이자 지방관인 행평안도도사 최성원이 토포사로 겸하는 것이고 차망은 경험이 풍부한 신이 토포사를 겸하는 것이고 말망은 신과 행도사 최성원 등 2인이 토포사를 겸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수망으로 재가한다."라고 하였다.
○ 행사헌부지평 홍봉한이 삼가 엎드려 과거사무 재개와 간언을 아뢰기를, "신은 지난 1월 과거가 시행된 일을 참으로 다행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시 전하께서 과거 사무를 일절 폐하라고 하시니 고금의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신은 염려스러워 애석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과거제도는 조종이래로 시행해 온 제도로 나라를 위하여 인재를 뽑는 것이며, 이는 조정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반드시 시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조종 이래로 과거를 폐지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과거를 응시하고자 하는 백성이 있어도 응시를 하지 못해 관직에 나아올수 없다는 것은 절대로 나라의 복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유념하시고 상량해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현재 아조의 신규 백성 유입이 현저히 적은 상황을 살피시어, 앞서 비변사에서 계한 대과 반기별 1회, 소과 분기별 4회도 지나치다고 상량하실 경우 횟수를 더욱 줄여 시행할지언정 절대 폐지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아울러 간언에 대하여 아룁니다. 경서에 '천자가 쟁신(諍臣) 7명만 있으면 비록 무도(無道)하여도 그 천하를 잃지 않을 것이며, 제후가 쟁신 5명만 있으면 비록 무도하여도 그 국가를 잃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만세의 격언입니다. 또한 서경(書經)에 '간언을 따르고 거절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또 '군주가 간언을 따르면 성(聖)스럽게 된다.' 하였으니, 원컨데 전하께서 이것을 마음에 두시길 바랍니다. 전하께서 깊은 궁궐에 홀로 계셔서 만약 간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면 조정의 득실(得失)과 백성의 고통을 어찌 알 수가 있겠습니까.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임금의 큰 덕입니다. 신이 간언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간언을 막지 않으셨지만 막은 것과 같은 상황이니 신이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구구하게 인군을 생각하고 나아가 간하는 것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곧 나라를 위한 것이니, 전하께서 부디 굽어 살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승정원은 본 문건을 승정원에 보관해 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3월 20일 병오(丙午)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윤강이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3월 제2차 인사평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번 인사평정의 결과에 따라 조봉대부 평안도도사 최성원이 조산대부로, 분순부위 행훈련원봉사 최준이 적순부위로 각각 가계되었습니다. 아울러 충의교위 행병조좌랑 방인하가 상점 10회 누적에 따른 평점 가산 적용에 따라 과의교위로 가계되었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한 바를 잘 알았다. 탁용(擢用)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때에 따라 계하도록 하라. 이조 역시 같다."라고 하였다.

3월 21일 정미(丁未)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22일 무신(戊申)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23일 기유(己酉)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종부시정 겸비변사낭청 김관이 문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지난 20일 통훈대부 前원주목사 정태수가 관직을 신청하였사옵니다. 민국의 여건이 개선되어 본조에 보탬이 되고자 복귀를 원한다고 하였으며, 접속력은 주4-5회에 1회 2-30분 내외로 알려 왔사옵니다. 이에 前목사 정태수를 호조 사도시정으로 사령하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현재 호조는 행좌랑 강건이 민국의 업무과중으로 인하여 병조로 사직서를 신청한 상태이며, 호조 수장인 사재감정 김시습 역시 사직차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병조에 사직의 뜻을 밝혔다고 하옵니다. 감정이 사정에 따라 갑자기 사직을 청한다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호조의 업무에 공백이 생기게 되옵니다. 이에 이와 같은 업무의 공백을 미연에 방지하고, 원활한 인수인계가 될 수 있게 하고자 前목사 정태수를 감정의 후임으로 사령코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하옵고 지난 21일에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이 민국의 사정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였사옵니다. 지침에 따라 사직을 진행할 예정이며, 해당 관원이 평정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승정원의 후임관원 인선을 위하여 병조와 협의를 진행 중에 있사옵니다. 빠른 시일 안에 후인 인선에 대하여 계하도록 하겠사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문관 인사를 계목대로 재가한다."라고 하였다.

3월 24일 경술(庚戌)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재감정 김시습이 삼가 사직을 청하는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민국에서의 사정으로 인하여 원활한 관직 수행이 어려운 상태이기에, 문무관 인사조정시 신의 사직을 염두에 두고 인사조정을 하여 달라고 전조 수장에게 당부를 하였습니다. 마침 문무관 인사 조정이 완료된 듯 하므로, 신이 근근히 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 여기옵니다. 부디 소신의 관직을 거두시어 소신이 전하께 불충을 짓지 아니하도록 성은을 베푸시옵소서. 추후 민국에서의 사정이 나아지는 대로 조정에 다시 돌아와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겠사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직을 허락한다. 그간 노고가 적지 않았다. 병조는 감정 김시습을 오위로 체직시켜 주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3월 25일 신해(辛亥)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헌부지평 홍봉한이 지방관청에 대한 직무감찰을 행하였기에 계사를 아뢰기를, "前목사 김관이 전국지방관회의를 통하여 진행한 '전국덕담릴레이행사'가 지난 5일 행평안도도사 최성원이 부임한 이후로 전혀 진행이 되지 않았으며, 행사가 끝난 10일부터 19일까지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직무감찰을 실시하였으며 자세한 경위를 말씀드립니다. 
신이 살펴본 바는, 먼저 인수인계가 잘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前목사 김관은 3월 4일 중기를 남겼으며 해당 내용에는 분명 "지역 사업으로는 이번에 전국적인 사업으로 새해맞이 '덕담 릴레이' 행사가 한창입니다. 본 행사는 금년의 첫 지방관회의를 통하여 의견을 모아 현재 한성부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지방관들이 행사진행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후임관께서도 부임하시게 되면 행사의 성격 및 방법 등을 파악하시어 행사가 원활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행사가 끝나면 행사에 대한 보고 역시 후임관께서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도사 역시 5일에 중기를 확인하였으므로 인수인계에 대한 문제점은 발견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3월 19일 평안감영에 해당 사안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실시하는 공문을 발송하였으며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22일 도사 최성원이 1차 소명을 하였으나 대전에 명시된 공문 양식과 달리 회신하였기에 반려하여 재차 발송요청을 하였습니다. 이에 23일 해당 사안에 대해 2차 소명하였으나 양식이 틀려 반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 신이 분명 댓글로 "창국대전 예전'을 참고하여 공문 양식에 맞추어 회신"하라고 하였음에, 그대로 시행하였으나 다시 공문 양식을 틀려 반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해당 공문을 삭제하여 다시 발송하였으므로 신이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봤습니다. 이에 최 도사는 휴대전화로 작성하였기에 실수로 삭제하였다고 하였습니다만, 신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사조를 해온지 오래되었으며 삭제를 하기 위해서는 수정/삭제를 누르고 확인을 클릭하여야만 되는 것이므로 신은 실수로 삭제하였다는 최 도사의 말을 믿을 수 가 없습니다. 당초 품계가 대부에 이르렀는데도 공문 하나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였으니 관원으로서 심히 염려스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실책을 감추려 모의한 행위에 대한 정황마저 포착되었으니 더욱이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 도사가 소명하기를 "우선 3월 5일 부임이후로 행사에 대해서 통제및 진행을 원할히 하지 않은 것은 100%본관 책임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이 행사가 끝나고 2일 뒤, 영춘현감으로부터 하삼도 지역의 참가자들을 정리해 주겠다는 내용의 간찰을 보내왔고, 저는 이에 동의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하루이틀정도 참여내역을 기다리다가, 민국의 생활로 인해 까먹고 잊혀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19일에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생각나서 차후 업무가 늦어졌던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소명이라 함은 자신을 변론하는 것이며 상세하고도 정성스럽게 작성하여야 하는 것인데 최 도사는 행사 진행 및 종결 보고가 늦게 이루어진 점에 대하여 무조건 책임이 있다고만 하였지 반성이나 그 사유를 밝히지 않으니 사헌부의 감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저 잘못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다 사료됩니다. 
또한 최 도사의 소명과 관련하여 행영춘현감 정도전이 행사가 끝난 2일뒤인 12일, 하삼도 백성의 참여 현황을 보고하기로 하였으나 19일까지 보고가 진행되지 않음을 증언받았기에 정 현감에게도 직무감찰 공문을 발송하여 해당 사안에 대하여 소명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정 현감이 소명하기를 "행사 종료 이후에 사실상 행사의 주도자셨던 전목사 김관님의 후임관이신 행평안도도사님께 하삼도 백성들의 참여 명단을 보내겠다는 간찰을 보냈고, 동의한다는 간찰을 받았습니다. 참여자 명단을 드린다고 했지만 드리지 않았고, 또 그것을 잊은 것은 모두가 제 책임입니다. 핑계이지만, PC 접속이 금요일과 주말에만 가능하고 이마저도 불안정합니다. 다행히 금요일에는 접속이 될 거 같아 금요일이었던 17일 접속하였습니다. 접속해보니 비문 관련 직무감찰이 있었고, 또 지역행사도 계획해야 했었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고, 민국에서는 시험기간이 다가와 바쁘던 중에 업무내역을 점검하다가 빠뜨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잘해보겠다고 다짐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중요한 업무를 방기했던 것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어떤 벌이던 달게 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반성하겠습니다." 고 하였습니다. 
소명의 내용은 최 도사와 정 현감이 비슷하게 한 듯보이나 미묘하게 차이가 있으니 바로, 해당 사안에 대한 사유를 명시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최 도사는 자신의 책임이라고만 하였지만, 정 현감은 민국 사정에 따라 접속이 가능한 일수를 명시하였고 여타 사유로 인하여 경황이 없었다고 소명하였으니, 잘한 바는 아니나 해당 사안에 대해 소상히 성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는 곧 소명을 정성스럽게 작성하였느냐에 대한 문제이므로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이에 신은 해당 사안이 단순히 지방행사의 후속행정처리 문제가 아닌, 지방관으로서의 자질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사료됩니다. 관원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공문의 작성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실책을 감추려한 모의 행위, 그리고 감찰기관인 사헌부의 감찰조사에 대한 비협조적인 태도 등을 고려할 때, 결코 올바른 목민관의 자세라고 보기에 어려울 것이며, 이런 자가 주상전하의 대리인으로 지방을 다스린다는 것은 곳 전하의 성덕에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신 감히 아뢰건데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사유를 들어 각 1점씩을 감하여 행도사 최성원의 평점을 4점 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한 스스로 지방행사에 대해 하삼도 백성의 참여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하여 7일간을 지체하였지만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정 현감은 평점 1점을 감산하는 것으로 징계하심을 청합니다.
비록 현재 조정의 상황이 넉넉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하여 죄의 경중을 논할때 중함을 외면하고 경함만을 바라본다면 어찌 나라의 법과 기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오서 이 점을 상량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도사를 파직한다. 현감은 평점을 계목대로 감한 후 평정에도 반영하라."라고 하였다.

3월 26일 임자(壬子)
승문원박사 겸승정원가주서 김진만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성균관 개청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성균관 개청에 대하여 아룁니다. 과거 재개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조정의 인재 등용의 길이 더욱 요원해 짐은 자명한 일 입니다. 이에 비변사에서는 인재 등용의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성균관 개청에 대한 공론을 모아 제청 합니다.
과거 재개에 대해 전하의 뜻이 확고하신 만큼 인재 등용의 방안은 이제 천거를 통해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대체 수단으로 3품 이상의 관원, 지방관의 천거가 있다고는 하나 천거 대상의 자질을 확인하는 데에 그 기간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이에 성균관을 개청하여 재야의 우수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 수학케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더욱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유생은 조정 천거의 기회까지 주어집니다. 성균관 졸업생의 천거는 성균관 학기 동안 성균관 관원과 교임이 유생의 자질과 소양을 파악함은 물론이고 이를 토대로 우수 졸업생을 천거하게 되니 과거를 대체하기에 충분하다 사료됩니다.
작금의 과거 시행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듯 인재 유입의 통로가 좁아진다면 어느 백성이 아조를 위해 헌신하겠습니까. 조정의 형편이 넉넉치 않은 때에 인재 등용의 길을 막는 것은 오히려 조정을 더욱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성균관 개청을 하여 인재 유입이 끊어지지 않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성균관에 종사할 관원이 있는지, 입학이나 강학에 응할 유생이 얼마나 될지가 계본에 드러나지 않는다. 예조에서 유생 모집 공고를 내걸어 성균관을 가동할 정도가 되는지부터 파악해 보도록 하라. 성균관 재개 여부는 그 이후에 결정하는 것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3월 27일 계축(癸丑)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군기시정 겸비변사낭청 윤강이 무관 인사 등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무관 인사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먼저 전교를 받들어 3월 24일에 사재감정 김시습을 행호분위사직에 사령하였습니다. 아울러, 지난 3월 24일 행호조좌랑 강건이 민국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다음 달 초 평정에 불이익이 없도록 금일 사직서를 결재하고 면직 처리를 하였습니다.
훈련원 군관 임명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진사 고무열이 훈련원에 군관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고무열은 지난 제101차 소과 진사시에서 이등으로 입격하였고 지난 11월부터 훈련원에서 성실하게 복무하며 이달 초 2개월 만에 갑사로 진급할 정도로 군영 복무에 적극적이고 열의가 있었습니다. 현재 훈련원의 정병 수는 2인이지만 현재 과거가 열리지 않는 등 출사할 방도가 크게 없고, 군관으로 활동한 것이 관원으로 천거할 수 있는 사유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군관으로 임명하여 훈련원 업무를 보좌토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한 바를 잘 알았다. 군관 인사는 계목대로 임용하라."라고 하였다.

3월 28일 갑인(甲寅)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29일 을묘(乙卯)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종부시정 겸비변사낭청 김관이 승정원 및 지방관 인사에 대하여 아뢰기를, "승정원 인사에 대하여 병조와 협의한 결과 현재 문,무관에서 승정원을 감당할 인사가 없다고 판단되었사옵니다. 하오나 승정원을 공석을 오래 둘 수 없는 상황이기에 신이 다시한번 관원들의 의사를 확인한 결과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승정원 업무수행에 대한 의사를 밝혀왔사옵니다. 이에 이운을 가승지로 겸하게 하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현 당상관이며, 조정의 경험이 많은 인물이긴 하오나 이운 역시 육조의 한 관청의 수장이자 현재 비변사의 수장으로 업무를 감당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책무가 막중하리라고 생각하옵니다. 그러나 승정원을 오랜기간 공석으로 둘 수는 없으며, 현재의 인사난 등을 고려하여 추후 승정원에 대한 인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임시적으로 그 직임을 맡겨보는 것이 어떠하겠사옵니까.
또한 작일 어명에 따라 중부지역과 북삼도 지역을 담당하던 지방관인 前평안도도사 최성원이 파직되어 공석이 되었사옵니다. 이에 따라 6개 지역의 공석이 발생함으로 백성들의 불편함이 생길 것을 고려하여 후속인사에 대하여 확인한 결과 후속 지방관으로 사도시정 정태수를 한성부서윤을 겸하게 하여 그 직임을 감당케 하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중앙관청과 지방관청 등의 경험이 많은 관원이기에 현재의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적임자라 생각되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목대로 시정 정태수에게 서윤을 겸하게 하라. 관할은 한성, 경기, 황해, 평안, 함경으로 하며, 승정원은 당분간 공석으로 둔다."라고 하였다.

3월 30일 병진(丙辰)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3월 31일 정사(丁巳)
승정원에 배속된 관원이 없음(無)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공조참의 겸비변사부제조 이운이 궁궐 방화범 국외도주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궁궐 방화범 국외도주에 대하여 계본을 올립니다. 지난 28일 궁궐 방화범 좌 모와 채 모가 왜국(倭國)의 대마도(對馬島)로 도주하였습니다. 토포사를 겸직하였던 前도사 최성원이 파직된 상황에서 더 이상의 토포사 인선은 무의미 하다는 것이 비변사의 공론 입니다. 이에 비변사에서는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왜국으로 도주한 좌 모와 채 모의 신병인도에 대한 방안을 논의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공론을 모았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아뢰기를, "계한 바를 잘 알았다. 외교를 관장하는 예조가 주무 관청이 되어 마땅한 수습 내지 처리 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선무랑 행승정원주서 김진만이 쓰고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교정하다


개국626(2017)년 12월 18일 기록 : 선무랑 행승정원주서 김진만
개국627(2018)년 5월 9일 교정 :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이운
http://www.1392.org/bbs?sajor11:879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답글 : 제한 (접속하십시오) 서찰(메일) 수정/삭제 : 제한 (접속하십시오)     윗글 밑글 목록 쓰기
  | 비공개 설정 사조 백과사전 맞춤법 문법 검사기 0
2000
저장(입력)
승정원 기관장 : 비변사 대행
번호 분류  문서 제목  이름 작성일 열람
736 [병조/참의] <중기> 업무인계서 이운 627/05/26-14:18 52
735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3월 (교정) 이운 627/05/09-17:23 60
734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7(2018)년 5월 이운 627/05/01-00:03 97
733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7(2018)년 4월 이운 627/04/30-23:53 49
732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7(2018)년 3월 이운 627/04/30-23:16 31
731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7(2018)년 2월 이운 627/04/30-22:55 34
730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7(2018)년 1월 이운 627/04/30-22:31 28
729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12월 이운 627/04/23-15:04 37
728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8월 하권 이운 627/04/23-14:31 34
727 [승정원/동부승지] 승정원일기 : 개국626(2017)년 8월 상권 이운 627/04/18-17:57 49
726 [승정원/동부승지] <참알> 부임 인사 [4] 이운 627/04/17-20:41 53
725 [이조/참의] <공문> 소명서 제출 안내 서민교 627/04/05-00:30 52
목록다음쓰기 123456789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