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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조반정 가. 새 하늘이 열리다 : 최근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폭군에서 탁월한 외교가 였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치세 동안 무리한 토목공사로 민심을 잃고 수많은 옥사(임해군옥사, 봉산옥사, 계축옥사, 허균옥사 등)가 있었으며 특히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영창대군을 살해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명분이었으며 결국 서인은 선조 사후 빼앗겼던 권력을 되찾기 위해 능양군과 함께 반정을 일으키니 이것이 조선의 두번째 반정인 인종반정이며, 능양군이 바로 인조입니다. 나. 이괄의 난 : 반정 이후 핵심 현안은 후금, 즉 북방의 안보였습니다. 인조는 반정공신 중 핵심 공신인 이괄을 부원수에 제수하고 1만의 군대를 지휘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2등 공신이었다는 점, 그리고 중앙 정계가 아닌 변방에 배치되었다는 점 등이 불만이었습니다. 이괄이 칼을 거꾸로 쥐게 한 까닭은 역모사건의 그의 아들이 연루되어 금부도사가 잡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이괄의 무리는 파죽지세로 도성을 향했고 황주, 마탄 등지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도성에 입성하게 됩니다. 이땨 종친 흥안군이 처음 인조를 따라 나섰다가 말머리를 돌려 도성으로 향했으므로 이괄은 흥안군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괄군이 안현에서 관군에게 대패함으로 순식간에 전세는 역전되었고 결국 부하들의 손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반란은 끝이 나게 됩니다. 다. 초기 인조는 : 먼저 붕당을 미워하였습니다. 비록 서인에 의해 보위에 올랐으나 "당이란 말은 비록 주자의 말이라 해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등의 말을 할 정도로 싫어하였습니다. 또한 폐주, 즉 광해군을 폐위시킨 정당한 이유 중 하나 후금을 배척하고 친명정책을 펴겠다 다짐합니다. 2. 정묘호란 가. 명나라의 쇠퇴 : 후금과 명이 전쟁을 치룹니다. 임진왜란 기간 후금은 무럭무럭 자란 반면 명나라는 만력제의 국정능력상실과 지나친 향락과 반란 진압, 조선군비 지원 등으로 국비 탕진하였으므로 그 기세가 매우 기울었습니다. 나. 모문룡의 횡포 : 광해군 때부터 명나라의 모문룡이 조선땅에서 말썽을 피웠는데 광해13년인 1621년 요동이 후금에게 넘어가면서 모문룡이 도망쳐 온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의주 일대에 한인을 결집해 후금과 전투를 하였으므로 광해군은 자칫 그 화가 조선에게 까지 번질까 그를 설득하여 섬에 보냈으니 바로 '가도'였습니다. 모문룡은 섬에 들어가 성을 쌓아 장기주둔하게 됩니다. 그들의 행태는 날로 포악해졌으니 식량이 부족하면 조선땅에 상륙해 약탈하고 심지어 인명을 살상하기도 합니다. 반정 이후 인조 역시 이들을 통제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후금 역시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다. 누르하치의 죽음 : 여진의 영웅 누르하치는 후금을 있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명 영원성에서 원숭환이 이끄는 명군에 패배하고 1626년 사망합니다. 이에 뒤를 이은 자가 누르하치의 8남 홍타이지는 새 칸에 추대합니다. 그는 명나라와의 전선은 잠시 고착시키고 조선을 향해 칼 끝을 돌립니다. 라. 정묘호란 : 1627년 홍타이지의 대군이 의주를 넘어 선천, 정주, 안주 등으로 밀고 내려옵니다. 인조와 조정은 모문룡을 치는 군사인지 우리를 치는 군사인지 허둥지둥댔으며 방어선은 계속 무너지게 됩니다. 적이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자 결국 인조는 파천을 단행하니 이괄의 난 이후 두번째 파천이었습니다. 강화로 피신은 인조와 조정은 곧 후금의 사신들을 접하고 화의를 하느냐 전쟁을 계속하느냐 입씨름을 하다가 화의를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인조와 대신은 후금과 굴욕적인 맹약을 통해 형제지간의 화의를 하게됩니다. 그간 오랑캐라 무시하였던 여진족, 즉 후금을 형으로 대하고 조선은 아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 화의는 했지만 : 전쟁의 화를 백성들이 피한 것은 아닙니다. 후금의 군사들은 철군하는 동안 마을을 약탈하며 인명을 살상하였지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군사도 힘도 없던 조선 조정은 항의를 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문룡의 폭거도 계속 되는데 후금군에게 강제로 머리카락을 잘린 조선 백성을 함부로 죽여 공을 세웠다 거짓말을 하는 등 포악한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조정은 "상국의 장수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3. 전쟁 말고 추숭부터! 가. 당시 안보문제 : 당시는 명이 쇠퇴하고 후금이 커 조선의 강토를 이미 한번 유린하였고 명과도 계속 전쟁을 벌이는 상황. 가장 중점에 두어야 할 국정목표는 안보와 민생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명나라 명장 원숭환이 패악질을 일삼던 모문룡을 불러 참하였으며, 이어 이 사건으로 명조정의 간신배들에 의해 원숭환이 참수 당하니 후금은 커다란 장애물을 손안대고 코 푼격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더욱이 모문룡을 따르던 명 수군이 투항함에 따라 홍타이지는 대규모 수군전력과 홍이포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처럼 북방의 안보는 다시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나. 추숭문제 : 그러나 인조는 오히려 다른 곳에 국정의 힘을 쏟아 붓습니다. 바로 아버지 정원대원군의 추숭사업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는 평시였다면 왕실의 정통성을 세우는 일로 비추어졌겠지만 당시는 전란이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시국이었습니다. 인조8년인 1630년부터 인조10년인 1632년 10월 국방을 튼실히하고 국고를 채웠어야 할 시기 추숭 문제를 끌며 다투다 결국 추숭을 거행하게 됩니다. 4. 병자호란 가. 청나라 개국 : 인조14년인 1636년 후금은 용골대, 마무대 등을 필두로 한 사신을 보내옵니다. 그 내용은 조선의 입장에서 매우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는 데 조선이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당연히 이를 받아 들일 수 없었고, 홍타이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황제에 즉위하고 청나라를 선포합니다. 나. 척화 : 인조와 조정은 힘도, 군대도 없으면서 자존심과 명분을 내세워 척화를 선언합니다. "우리가 갑자기 정묘년 변을 당해 부득이 임시로 화의했는데 오랑캐들의 요구는 한이 없다. 이 치욕을 씻기 위한 생각에 끝이 없다. 충의로운 선비는 책략을 다하고 용감한 사람은 종군하여 난국을 구제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다. 병자호란 : 그해 12월 13일. 청군이 의주를 넘어 안주까지 급히 밀고 내려왔다는 급보가 전해집니다. 이어 개성, 송도까지 하루만에 돌파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청군은 지역 하나하나를 점령하는 것이 아닌 왕이 있는 수도에 직격타를 날리는 전술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조선 조정에 두 가지 뿐이였습니다. 강화도로 피신하거나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거나. 라. 광해군의 우려가 현실로 : 광해군은 보위에 있을 때 임진왜란 때와는 다른 양상의 전쟁을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이미 여진이 여러 읍성을 그냥 통과해 도성을 공격할 것을 대비해 도중에 막을 계책을 세우라고 비변사에 지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조 대에 이르러서까지 그 계책은 없었습니다. 마. 통곡의 남한산성 : 청군의 속도는 거침없었으며 인조가 파천 할 때 이미 양철평(지금의 은평구 불광동 근처)에 이르렀으므로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가게 됩니다. 그날은 눈보라가 매우 심했던 밤으로 다시 강화도로 나서고자 하였으나 가지 못하였습니다. 곧 청군은 성을 포위하고 소규모 전투들이 이어졌습니다. 때론 조선군이 적을 베기도, 때론 청군이 산성에 포를 쏘며 말입니다. 또한 조정은 주화론과 척화론이 대립각을 세우며 나날이 논쟁하였으나 조정은 결국 주화를 선택합니다. 이조참판 정온은 할복을 시도했고 예조판서 김상헌도 금식하다 자진을 시도하였습니다(그러나 이 둘 모두 조기발견되어 목숨을 구합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성문을 나서고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리면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 맹세를 올리게 되니, 이것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5. 치욕의 날들 가. 소현세자, 인질이 되다 :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세자와 대신들을 인질로 잡겠다 하였으며 이에 소현세자 내외를 비롯하여 대신들이 청군을 따라 떠나게 됩니다. 나. 삼학사 :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며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 윤집, 오달제, 그리고 혹익한. 이들은 청군의 겁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아 결국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릅니다. 다. 백성의 수난 : 수많은 백성이 전쟁으로 죽고 특히 수십만에 이르는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로 갖은 수모를 당해야했는데, 청나라로 넘어간 조선 백성들은 노예시장에 내다팔리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6. 소현세자의 비극 가. 청나라에서의 삶 : 인질이 된 소현세자. 하지만 그는 늘 당당했습니다. 청나라에서 툭하면 시비를 걸어왔지만 그때마다 능숙하게 해결하였고 실언을 하거나 티가 나게 감정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 견제를 많이 받았지만 뒤에는 청나라의 여러 장수들도 그의 인품을 좋아하였습니다. 심양에는 세자빈 강씨, 그리고 동생 봉림대군 부부와 시강원 관원, 내관, 궁녀 등이 함께 지냈는데 나중에 청에서 자급자족하라며 땅까지 나눠주었습니다. 세자 내외는 조선인 포로를 데려와 농사를 짓고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볼모 9년동안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새로운 문물을 접했고 또 그들의 통치방법과 문화 등을 익혔습니다. 나. 인조의 의심 : 명나라 문인 범문정이 말하길 "성에서 나왔을 때 아들과 바꿔 세우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인조.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인조18년 청은 소현세자에게 일시 귀국을 허락하여 3년만에 조선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관리를 보내 배웅케 하자던 신하의 말을 묵살한 인조는 그럼에도 세자와 만나게 되자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 뿐 머물러 있던 한 달간 인조는 세자를 만나지 않았고, 오히려 돌아가라는 뉘앙스의 말을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돌아가게 됩니다. 다. 귀국와 죽음 : 소현세자의 귀국은 곧 청나라가 완전히 중원을 장악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인조23년, 9년의 길고 길 볼모생활을 마치고 소현세자는 2월 18일 도성으로 돌아옵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귀국이었을까. 그러나 소현세자는 귀국 후 세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됩니다. 공식적으로는 학질에 걸렸고 어의 이형익이 침을 놓았는게 결국 4월 26일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상한 점은 세자가 귀국하였음에도 황영 교서 반포했다는 것 외에 특별한 기사가 없었고, 궁내부는 소현세자 부부를 그저 환영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현세자의 장례를 사대부의 예로 진행하는가 하면 장지도 술관들이 길지라 정한 곳을 굳이 반대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원손이 있음에도 인조는 강력하게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이는 당순한 인조의 질투나 시기심이 아니라 제거해야할 정적으로까지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공식 사인은 학질이었지만, 오늘날 인조에 의한 계획적인 타살이 아닌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라. 세자빈 강씨 :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었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자빈 강씨의 처소 나인들을 잡아 죽이거나 그의 가족들을 유배보내기에 이릅니다. 이윽고 인조 24년 1월, 전복구이에 독이 들어 있다며 이는 필시 강빈의 짓이다며 분노합니다. 더욱이 그는 "강씨는 내 자식이 아니다.", "개*끼 같은 것을 임금의 자식이라 하다니 나를 모욕하는가?"며 강씨의 처벌을 반대하던 신하를 유배하고 강씨의 오라비들을 곤장 쳐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강씨는 사사됩니다. 마. 손주까지 죽이고 : 인조는 소현세자 내외를 죽인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세자의 세 아들, 석철, 석린 등을 유배하였으며, 1년도 안되 원손이었던 장자 석철이 죽고, 다시 몇개월 되지 않아 줄때 석린도 죽게됩니다. 이들의 죽음도 역시 석연치 않았으며, 강씨는 숙종 대에 이르러 신원복권되었습니다. 과제 1. 인조의 치세를 살펴보고 지도자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했던 행동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서술방식에 제한은 없으며, 단 100자 이상 서술할 것) * 출석과 과제 제출은 5월 21일(일)까지 입니다. 출석은 강의에 수강 했다는 댓글을 남겨주시면 되고, 과제는 비밀글로(예외설정 : tnwlsdnpdlxj) 제출해주시면 됩니다. 기한을 지나서 과제 제출 하거나,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습니다. 개국626년 5월 15일 성균관 문과 교임 홍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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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청강생 태연, 문과 제 4강 수강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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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청강생 정도전, 문과 제 4강 수강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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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유생 이예훈, 문과 제 4강 수강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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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청강생 손오공, 문과 제4강을 수강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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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한 | 626('17).05.15-23:05 | 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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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 626('17).05.21-22:24 | 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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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626('17).05.21-20:08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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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열 | 626('17).05.21-15:54 | 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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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훈 | 626('17).05.20-22:21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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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 626('17).05.18-21:26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