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당
명륜당(明倫堂) : 성균관 문과 강학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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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무열
작성일 개국626(2017)년 5월 14일 (일) 23:47  [자시(子時):삼경(三更)]
문서분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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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유생] <제출> 문과 제3강 과제 제출
과제
1. 선조가 후대에 비판을 많이 받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일본의 시각에서도 영주가 성을 버리고 도망하여 목숨을 보전하고자 했다는 점이 쉽게 이해되지 않은 사항이었다고 볼 만큼, 선조의 파천과 보위에 대한 집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왕위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의 출신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였는지, 선조는 유달리 보위와 왕권에 굉장한 집착을 보였고, 이는 군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덕목조차도 지키지 않으면서까지 왕위에만 탐닉하는 모습으로 귀결됩니다. 사실상 국가의 축소판인 도성의 백성들까지 버리고 달아나는 임금에게 민중은 궁궐 방화로 답하는 것을 보면 그가 집착한 왕위는 도대체 누그를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또한 선조는 전란기간중에도 신하를 질시하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행동을 여럿 보였고 이는 자신의 아들이자 세자인 광해군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선조가 강화하고자 했던 것은 국가의 임금으로서의 권위란 측면에서의 왕권이 아니라, 최고존엄으로서 선조 본인의 권위를 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아서 조선왕실의 권위를 의미했다면 그 칼날은 적어도 광해군에게는 돌아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선조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2. 선무공신에 비해 호성공신에 많은 신하들의 비중을 차지한 이유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결국 1의 문제와 이어지는 부분인데, 전장에서 적과 직접 맞서 싸운 장수들은 백성이 볼 수 있는 존엄이며 권위였고, 자연스럽게 그들 곁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란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실제 이순신의 기지 주변으로 촌락이 발달하였던 점은 그것을 뒷받침해줍니다. 그러나 선조에게 장수들 주변으로 민심이 모이는 것은 왕권에 다한 도전이며 또다른 조선을 만들고자 하는 역도에 불과했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부산포의 적을 치라고 내린 교서에서 도대체 병력을 모아 무엇하려는 것이냐는 힐난을 서슴지 낞았으며, 여기서 선조의 권력집착이 비뚤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선무공신은 왕이 또 다른 왕의 출현을 막기 위한-영웅을 만들지 않기 위한-목적으로 최소화되었고, '진짜'왕을 따라다니며 보필하였던 호성공신의 숫자가 훨씬 많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준낮은 질시가 결국 목숨을 걸고 싸운 신하의 상대적 천시를 불러일으켰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 답안은 8일 수강하고 12일 사행에 출발하면서 서신으로 하는 형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626년 5월 12일
유생 고무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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