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시습
[강의] 제280강 : 사자성어 - 주마간산(走馬看山)
달리는 말을 타고 산천을 구경한다는 뜻의 "주마간산"은, 사물을 자세히 보지 않고 겉만을 바삐 대충 보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주마간산의 용례(用例)는 어김없이,그리고 한결같이 "수박 겉핧기식의 체험이나 관광 등을 비유하는 곳에서만 보입니다.재차 강조합니다만 "사자성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그 말의 유래를 아는 것이 중요하므로 "주마간산"의 유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마간산"이라는 말은, 중당기(中唐期)의 시인이었던 맹교(孟郊)가 지은 <등과후(登科後)>라는 詩에서 유래합니다.시를 좋아하여 풍류를 즐기는 것으로 학문의 이치를 헤아리던 맹교는, 그 성격으로 인해서 과거시험은 안중에 없이 벗들과 어울려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시로 읊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가던 사람이었습니다.봄에는 꽃이 피었으니 꽃을 대함으로써 봄을 노래하고,여름에는 잎이 무성하니 잎을 헤아림으로써 여름을 알고 하는 식으로 자연이 삶이고 삶이 곧 학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전형적인 풍류객이었습니다.그러나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과거를 보라면서 노모가 성화를 부리다 못해 간청을 합니다."부모가 너를 학문의 길로 인도했을 때는 당대제일의 문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입신양명쯤은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네가 정녕 모른다는 말이냐?"하며 엄포도 놓았습니다.노모의 그런 간청이나 엄포에도 아랑곳 않고 "선비의 심중(心中)을 어머니는 모른다"하며 맹교는 여전히 풍류에 시정(詩情)을 담아 철 따라,곳 따라 산천을 주유하면서 세월을 보냅니다.그러던 그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나이 41살의 늦은 나이에 "내가 어머니의 성화를 못이겨 과거를 보려고 한다"하면서 홀연히 과장(科場)에 나타납니다.과장에 그가 나타나자 이번 과거의 장원은 맹교가 이미 따놓은 것과 진배없다면서 항간이 쑥덕거렸습니다.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은 시를 본 사람이면 그의 문장에 탄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초로(初老)의 나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의 원숙함까지 겸비한 그를 두고 장원감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지요.그러나 그는 낙방합니다.전시(殿試)도 아닌 향시에서 낙방을 하였으니 그는 그때부터 수모와 냉대 속에서 지내게 됩니다."아,나의 심중에 있는 포부와 경륜이 향시의 급제만도 못한 것이었구나"하며 세상의 잣대와 개인의 잣대가 다른 것임을 비로소 느끼게 됩니다. "내가 온전한 선비임을 세상이 다 아는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구나"하며 긴 탄식으로 5년을 보낸 맹교는 마침내 46살의 나이에 급제를 하고 진사가 됩니다.급제를 하고나서 그의 급제를 축하하는 술좌석에서 그는 "주마간산"이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지는<등과후>라는 칠언시(七言詩)를 짓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昔日齷齪不足誇(석일악착부족과) 今朝放蕩思無涯(금조방탕사무애) 春風得意馬蹄疾(춘풍득의마제질) 一日看盡長安花(일일간진장안화) 지난 날 궁색할 때는 자랑할 것 없더니/오늘 아침에는 우쭐하여 생각에 거칠 것이 없구나/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하루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구나. 라고 풀이되는 시를 읊으면서 그는 등과 전후의 세상 인심이 다른 것을 풍자합니다.그런데 이 풍자의 뜻이 쓰고 읽은이 간에 큰 차이가 납니다.즉, 지은이 맹교는 "내가 과거에 낙방하자 너희들이 모두 나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형편없는 지식인'으로 치부했지만 내가 원래 달리는 말을 타고도 천지의 사물을 정확히 분간할 수 있는 대단한 지식인이다"라는 뜻으로 이 시를 지은 반면에 읽는 이들은 "등과 전에는 찬밥 신세로 지내게 하더니 등과 후에는 장안의 산해진미를 다 차려서 대접하는 세상 인심이구나"로 해석합니다.맹교의 의중에는 얄팍한 세상 인심을 꾸짖고자 하는 면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변함없는 자신의 지적 역량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달리는 말(走馬)보다 질주하는 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고 꽃을 보매 관(觀)보다는 간(看)이라는 글자를 택한 것입니다.맹교가 말하고자 한 의미에 부합되게 다시 <등과후>라는 시를 풀어 보겠습니다. "과거에 낙방하자 입장을 궁색하게 몰아 넣고는 잘났다는 말일랑은 하지마소 하더니/ 과거에 급제하자 우쭐하게끔 나를 치켜 세워 무슨 말을 하던 다 옳다고만 하는구나/내가 그런 세상의 춘풍같은 인심 때문에 똑똑해졌다고는 하지 마소/비록 달리는 말을 타고 하룻만에 장안을 다 둘러본다고 한들 내가 미쳐 살피지 못한 것들은 없을만큼 난 원래 똑똑한 사람이니까." 맹교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기 위해 칠언시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마간산'은 듣는 이와 말하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사자성어입니다.또한 똑같이 듣는 이의 입장이거나,혹은 말하는 이의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아는 것"의 차이에 의해 그 뜻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사자성어인 것입니다. 간(看)이라는 글자는 "주마간산"의 사전적 풀이대로 "스쳐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의하여 자세히 바라 본다"는 의미의 글자입니다."간산(看山)"이라는 단어에는 "묏자리를 잡기 위해 산을 본다"는 뜻도 있습니다.묏자리를 잡기 위해 산을 볼 때는 아무나가 아무 생각없이 산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풍수전문가나 음양전문가가 주변의 산세를 고루 살펴 보는 것이지요.즉 숙달된 자가 주의하여 자세히 바라본다는 것이지요.누구라도 주의하여 자세히 볼 수는 있지요.그러나 보는 대상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看하는 것과 보는 대상을 숙지하고 있는 자가 看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이것이 "간산"의 의미입니다.그런데 "주마간산"이랍니다.얼마나 대단한 전문가이길래 한자리에 서서 看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看한다는 말인지요. 즉 "주마간산"의 뜻에는 "모름지기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바가 정해졌다면 그것에 대하여서 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숙지하고,숙달되고.숙련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뜻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경주로 다녀 온 수학여행은 주마간산을 연습하는 장이었어"라는 문장을 놓고서, 이 뜻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이 강의를 접하지 않은 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우선 위의 문장을 "이번에 경주로 다녀 온 수학여행은 주마간산격이었어"라고 수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빡빡한 일정에 쫒겨서 수박 겉핧기 식으로만 다녀온 수학여행"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면에 이 강의를 들은 이들 중에는 "신라나 경주에 대하여 그동안에 배운 것에 대한 숙지도(혹은 이해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녀 온 수학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이것이 사자성어입니다.통속의 의미 혹은 사전적 의미를 미리 정해 놨지만 쓰는이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게 쓰여질 수 있는 문구(文句).그럼으로써 자기들끼리만의 의미를 공유하는 특정집단만의 언어가 되는 것이 바로 사자성어입니다.옛날의 지식인들은 이런 은밀한 지적 유희를 즐겼습니다.물론 은밀한 지적유희에는 그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그림으로 표현하는 은밀한 언어도 있었지만 역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자성어였습니다.제가 "사자성어"를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사전적 의미의 풀이 외에 언어유희적 의미의 풀이를 함으로써 옛사람들의 풍류와 해학을,그 철학을 공감해 보자는 취지 말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감사합니다. 개국621년 10월 13일, 정석학당 훈장 김시습. |
http://www.1392.org/bbs?laed21:780  
|
| 
|
![[1]](./data/board/member/img/1/i_798d7d3b50.gif "[1]")
서성일 621('12)-10-13 07:14
|
 문서작성자 김시습님이 채택하신 글입니다항상 화광님의 강의를 보고나면 제 머리가 얼마나 틀 속에 갇혀있는지 알 수 있네요. 강의 잘 들었습니다.^^
|
|||||||
|
||||||||
![[2]](./data/board/member/img/1/i_e396fea4e6.gif "[2]")
오덕성 621('12)-10-14 15:56
|
본다는 뜻에도 示는 보여주는 것, 視는 살피는것, 見은 모든 보이는것들, 看은 지켜보는것, 觀은 고찰하면서 자세히 보는것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ㅎ 주마간산은 사자성어의 본의와 다르게 쓰인 대표적인 성어죠ㅎ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다음 강의가 기대됩니다ㅎ
|
|||||||
|
|
||||||||
김민승
이원
김시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