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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안] 사무엘 제08화
다른 민족에게 궤를 빼앗긴 치욕을 몸소 체험한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밤 헤아리지 않고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어떤 이들은 땅바닥에다 이마를 대고 있다가 머리를 찧고, 또 어떤 이들은 땅바닥에다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치며 통곡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큰 슬픔이요 한 민족의 자존심이 욕보인 것이다. 지난날 모세가 안온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가 이스라엘임을 알고 자각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임금 파라오에게 박해하는 것을 본 뒤 주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끄셨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듯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의 신으로 받들었다. 그예 주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모세에게 그 더러운 신상을 빠개 부순 다음 가루로 만들게 하고 그것을 타서 마시게 했다. 한번 저 궤를 만드느라 수고 많으셨을 하느님을 외면하였다. 사무엘도 이런 역사적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전에 자기 조상 모세의 전력을 당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흐느끼는 것을 보다못한 사무엘이 다그쳤다. 이때의 일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집안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여러분 가운데에서 낯선 신들과 아스타롯을 치워버리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만 두고 그분만을 섬기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빼내어 주실 것이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알과 아스타롯을 치워버리고 주님만을 섬겼다. (사무엘기 상권 7,3-4) 곧이어 사무엘은 성경에 있는 대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당부하며 다그쳤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러고 나서 사무엘이 말하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을 미츠파로 모이게 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리겠소.” 사람들은 미츠파로 모여와서 물을 길어다가 주님 앞에 부었다. 바로 그날 그들은 탄식하며, “저희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고백하였다. 사무엘은 미츠파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판관으로 일하였다. (사무엘기 상권 7,5-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코지하고자 이스라엘을 공략했다. 어린 양 한 마리를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주님께 바치던 사무엘은 자기 조상 모세가 그러하듯 울부짖고 몸부림을 치며 주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애원을 들려줬다. 그때였다. 별안간 맑았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변해 온천지에 번개와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때 사무엘은 미츠파에 있었다. 이곳 미츠파에서는 이틀 동안이나 번개와 천둥이 내리쳤다. 다음 날 오후에 접어들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햇살이 서서히 비친다. 혹시 싶어 전령 하나 보내어 전장의 상황을 살펴보게 했다. “판관님, 필리스티아 오랑캐들이 우리에게 앙심을 품고 씨를 말리려고 작정했나 봅니다. 그런데 이틀 동안 끊임없이 뇌성벽력이 내리치는 걸 보더니만 그 오랑캐들의 전의가 크게 상실했나 봅니다.” 전령의 말에 사무엘은 별안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필리스티아 오랑캐들이 그토록 기고만장했다니. 알고 보니 이집트 족속보다 더 악독하구먼.” 전령의 보고를 듣고 시종 하나를 불러다가 열두 지파 수장들을 모셔 오게 했다. 이들 모두 사무엘보다 나이가 연장자이기 때문에 극진히 모신 까닭이다. 열두 지파 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무엘은, “하느님의 성총(聖寵)에 힘입어 저 무례한 필리스티아 오랑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소. 내가 이에 명하니, 열두 개의 군대를 편성하여 저 간악한 필리스티아를 몰아내고, 에크론, 갓, 그 밖에 이스라엘 성읍들을 되찾도록 힘써주십시오.” 하고 명하였다. 사무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으나, 깊고도 깊은 하느님의 지혜 덕분인지는 모르나, 기쁨과 환희로 넘치듯 성령에 가득 차 있었다. 이때 사무엘에게 성령이 가득찼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나서서 필리스티아인들을 쫓아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본 사무엘은 문득 주님께서 자신의 영육을 통해 쓰임을 주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문득 숙연함을 느꼈다. 판관이라는 자리가 외롭고 쓸쓸하다. 길 잃고 헤매는 양 떼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구심점이 되어 주어야 했으며, 때로는 엄격하게 우상을 단속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형정(刑政)과 행정, 그밖에 세세한 일을 감당해야 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땅덩어리가 제법 커졌고, 인구도 많이 늘어났다. 비록 한 지붕 밑에서 아모리 족과 사는 처지지만 그들은 강성해진 이스라엘 사람들보다는 덜 많다. 그래서 사무엘은 아모리 족과 포용하는 정책을 펼쳐 아모리 족을 이스라엘과 동등하게 대해주었다. 또 동화정책(同化政策)을 실시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편입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사무엘은 미츠파를 비롯해 베텔과 길갈을 중심으로 나머지 판관으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당신께서 끊임없이 베푸신 은총으로 보잘 것 없는 제 육신을 써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 직무를 마치는 시간이 오면 매일 같이 하느님께 감사하며 순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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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