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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안] 사무엘 제15화
아각 왕의 처형을 통해 사울은 다시금 사무엘의 힘을 과소평가한 대가임을 체감했다. 한편으로 분심이 들기는 했다. 사무엘이란 노인네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를 아직도 한 몸을 받고 있는가. 사무엘에 대한 신임도 의심이 들어갔다. 이를 눈치챈 간신배들은 두말하지 않고 날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하느님 당신의 눈에 정결하지 못한 아각의 재물은 마땅히 없애야 하는 법이라는 점을 그 누구라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는 재물에 눈이 멀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저것이 하느님입네 하며 우상을 짓지 않았던가. 그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한 처사를 사울은 알고나 있을까. 사울은 용맹하기는 했으나 내치보다는 다른 나라의 정복에 혈안이 되어 하루가 멀다 않고 젊은 장정들을 뽑아 군사를 징병하는 일이 잦아졌다. 백성들의 민심은 덩달아 떨어졌고 나라의 재정도 엉망이었다. 사울의 후계자로 점지된 요나탄도 이를 직언하고자 했지만, 잦은 원정 때문에 부왕을 만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은 하나같이 사울을 두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백정” 이라고도 하고 또는 “사람을 朕承처럼 잡는 망나니” 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사울은 이에 더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습을 비롯해 낫과 호미 등의 농기구들을 모두 빼앗다시피 거둬갔다. “우리 손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으란 말이오!” 백성들의 하소연은 뒷전으로 미루고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가다시피 거둬들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칼과 창, 그리고 방패 등이 제공되지 않아 농기구로 팔레스티아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보습이나 곡괭이 등의 값은, 삼 분의 이 세켈, 도끼나 낫을 가는 값은, 삼 분의 일 세켈 정도나 되었다. 그야말로 모래 위에 성을 쌓은 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사울의 진영을 따라 요나탄도 마지않아 출정하였다. 요나탄은 한밤중에 출정하는 중에 절벽을 마주했다. 그것도 양쪽에 치솟은 두 절벽을 마주한 것이다. 북쪽에 솟은 절벽은 미크마스라 하는 고을을 마주하고, 동쪽의 절벽은 게바라는 고을을 마주하고 있었다. 요나탄은 자신의 뒤를 따르는 군사 중 하나를 골라 팔레스타인의 진영에 정탐하도록 명하여 놓고 이렇게 분부했다. “자, 저 할례받지 않은 자들의 전초 부대로 넘어 들어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승리하시는 데에는 수가 많든 적든 아무 상관 없다.” 이에 정탐병은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태자마마께서 먼저 실행하십시오. 저야 태자마마께서 결정하신 대로 따를 뿐입지요.” 하고 말하였다. 요나탄은 이에 확신을 가지고 “좋다. 그러면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건너가서 우리 모습을 드러내자.” 자신의 군사들을 소집하여 작전을 짜내었다. 이윽고 양 절벽 너머까지 가서 정탐병이 팔레스타인 군사들을 정탐해 놓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어디 올라와 봐라. 알려줄 게 있다.” 이때 요나탄과 그의 군사들은 정탐병 뒤에 숨어 있었다. 요나탄도 정탐병의 함성에 호응하듯 “주님께서 저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셨으니 나를 따라 올라오너라.” 하고 함성을 치자 이스라엘 군사들은 요나탄의 진두지휘 아래 팔레스타인의 진영을 급습했다. 이때 마침, 사울은 영문도 모른 채 무슨 소리인지 군사 하나를 통해 살펴보게 했는데, 요나탄이 자신의 군율을 어긴 것이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때 마침, 엘리의 증손인 아히야가 하느님의 궤를 받들어 모시는 사제로 있었다. 이에 사울은 아히야에게 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자문하였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폐하. 태자마마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용맹하게 잘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 사울은 태자 요나탄의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요나탄과 그의 군대가 팔레스타인과의 싸움을 승전으로 이끈 뒤 살펴보니 아침 햇살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요나탄을 불러들인 사울의 얼굴은 그야말로 분기충천(憤氣衝天)하였다. “네 이놈! 일개 태자 따위가 감히 나의 군율을 받잡지 않고 자청해서 팔레스타인을 정벌하느냐! 만에 하나 잘못하였다가는 온 이스라엘 군사들이 전멸하고도 남았느니라!” 아버지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는 태자로서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장자의 몸으로,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태자 요나탄. 그는 아버지의 군율을 어긴 죄가 매우 크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부왕의 옹졸함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때 요나탄 군대에 배속된 군사 하나가 왕에게 다가가 이렇게 아뢰었다. “실은 폐하, 태자마마께서 손수 군대를 몰아가실 때, 군사 가운데 몇몇이 꿀 항아리를 몰래 가져갔는데 일부 군사들이 그만 그것을 먹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사울은 태자에게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군율이 엄한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거늘, 어느 안전이라고 군율을 엄히 다스리지 못하였느냐. 내 일찍이 일렀거니와 팔레스타인 오랑캐들의 씨를 말리기 전까지는 한 톨의 쌀도 먹지 말라고 하였거늘 이토록 군율이 해이(解弛)해졌단 말이냐!” 그러고는 지휘봉을 내팽개쳤다. 이미 엎질러진 물. 요나탄과 그의 군사들에게 엄히 자중하라 이르고 팔레스타인에게 빼앗은 소 떼와 양 떼, 그리고 금은보화들을 모두 가져다가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불구덩이에 집어넣었으며 팔레스타인의 잔병들을 모두 죽이도록 군율을 바로잡았다. 사울은 요나탄의 군대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의 병사들에게 엄히 꾸짖었다. “너희는 배신을 하였다. 당장 큰 돌 하나를 굴려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러고서 그 돌 위에다 그나마 살아남은 소와 양 한 마리씩을 잡아 죽이고 그 위에 올리도록 분부했다. “저마다 소와 양을 내게로 끌고 와 이 돌 위에서 잡아먹되, 피째로 먹어 주님께 죄짓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왕의 분부가 하도 지엄(至嚴)하여 태자 이하 모든 군사는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제 아히야에게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당부하였다. 이에 하느님이 응답하도록 간청하였으나 대답이 없으셨다. 하는 수 없이 그 제물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태자를 엄히 불러놓고 사울은 이렇게 말했다. “요나탄아,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실 것이다.” (사무엘기 상권 14장 44절) 이에 군사들이 일제히 사울에게 달려와 간청하였다. “이스라엘을 이렇게 승전보(勝戰報)로 이끄신 태자마마를 어찌 죽이려 하십니까? 안 됩니다. 주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결코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폐하, 하느님과 함께 태자마마께서는 용맹하게 싸우셨을 뿐입니다. 부디 살려주십시오.” 울부짖는 군사들의 간청을 듣고, 사제 아히야는 이렇게 진정(眞情)하였다.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이시여, 부디 저 가엾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청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주님께서 진실로 폐하의 허물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아히야의 간청대로 사울은 분기를 가라앉히고 태자의 처결을 거두었다. 아히야는 사무엘과 마찬가지로 예지하는 재주는 있었으나, 예언하는 것은 사무엘에 버금간 사람이었다. 또 사무엘과 교분이 두터운 사람 중 하나였다. 이윽고 팔레스타인과의 싸움에서 돌아온 뒤에도 사울은 태자 자리를 새로 정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사울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 장남 요나탄과 차남 이스위, 그리고 삼남 말키수아가 있었다. 사울의 왕비는 아히노암이었다. 왕비 아히노암이 사울에게 찾아가 울면서 간청하였다. “부디 태자를 새로이 세우지 마십시오. 그리한다면 이스라엘의 왕권은 더욱 위태로울 것입니다. 폐하, 이를 상량하시어 새로운 태자를 옹립하지 마십시오.” 사울은 왕비의 간청대로 태자를 굳건히 한 뒤 사방의 오랑캐들, 곧 모압과 암몬, 그리고 초바를 닥치는 대로 정벌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의 군율을 더욱 엄격히 하는 데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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