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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안] 사무엘 제13화
부인의 말대로 라면 분명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청년임에 틀림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쳐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부인에게 그 집으로 다시 안내해달라고 졸랐다. 갑작스러운 사무엘의 허둥거리는 모습에 부인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랴사랴 부인을 앞세우고 찾아간 그 집에 어김없이 사울과 그의 아버지 키스가 있었다. "저 어르신네, 계신가요?" 기척을 듣고 키스가 직접 문밖으로 나와 살펴보는 눈치다. "무슨 일이오?" "저, 제 옆에 어르신께서 사울을 보고싶어 하셔서 이리 찾아온 거에요." 사무엘의 눈치를 살피며 부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키스는 흔쾌히 사울을 데리고 오겠다며 말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키스는 사울을 데리고 나왔다. 이윽고 사무엘은 젊은 청년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이때 사무엘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울은 소문대로 용맹하면서 늠름했다. 비록 가난한 양치기로 살고 있지만 의협심을 잃지 않은 젊은 청년이었다. 사무엘은 사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키스에게 물어보았다. "저, 어르신. 혹시 어르신네 집안이 어느 지파에 속하는지 알 수 있겠소?" "벤야민 지파올시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지파를 말하는 건, 신분의 차이라기 보다 공동체 안에서 맡은 각각의 직분에 차이를 둔 것이기 때문에 서슴없이 어느 지파냐고 물으면 그 직분이 어떠냐에 따라서 쉽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명색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 있는 판관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관하신 사업에 동참하는 성스러운 직분을 맡은 탓이리라. "벤야민 지파에서 저렇듯 용맹한 청년이 나오다니.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해야 할 따름이오." 감탄하며 사무엘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사무엘은 키스 부자에게 안수를 한 뒤 내일이나 이튿날에 자신의 거처로 찾아올 것을 당부하고 돌아갔다. 약속하고 난 지 이튿날. 키스 부자가 찾아왔다. 사무엘은 이들 부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 나는 판관의 직임을 맡을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여러 백성이 차라리 임금을 한 명 세우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권유하기도 했었지요. 물론 내 아집도 있기는 합니다만 내 몸은 이제 기운이 다하여 하느님께 가도 무방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어떻게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께서는 제게 임금을 만들도록 임무를 주셨고 이렇게 머나먼 에프라임 산맥까지 오게 된 거랍니다." 자세한 내막을 듣던 키스 부자는 자신들을 왜 찾아왔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듯 머나먼 길을 찾은 끝에 보람을 얻게 되는군요. 내 하느님 당신의 뜻에 따라 사울 당신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울 작정이라오." 순간 키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아들이 임금이 된다는 말이 금시초문이었던 거다. 일개 가난한 양치기인 사울이 어떻게 열두 지파의 임금으로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저, 어르신.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단 말입니까. 저는 그렇게 담대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정중히 사무엘의 청을 거절했다. "이보시오, 형제. 나는 사울 형제의 용맹함을 익히 들어왔소. 비단 이곳 에프라임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를 통해서도 형제의 그 용맹함을 쭉 들어왔소. 나는 내일모레면 하느님의 품에 안길 몸이겠으나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편히 눈을 감겠소. 부디 간곡히 부탁하니 이 못난 늙은이의 청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라오." 눈물 어린 목소리로 자신의 사정을 토로한 사무엘은 끝끝내 사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늙은이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시오. 이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요." 정중히 무릎을 꿇고 간청해대는 사무엘의 진심이 담긴 간청을 사울은 뿌리치지 못한다. 이에 사울은 그 자리에서 사무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점지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느님의 분부대로 자신의 짐에서 성별 받은 기름통을 꺼내고는 사울에게 정중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라고 당부한 다음 사울의 머리에다 기름을 부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임금들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미리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 후세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두고 기름부음 받은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의 직무를 명한 뒤 서둘러 자신의 고장으로 돌아갔다. 한달 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원로들을 자신의 고장으로 불러다 놓고 사울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첫 임금으로 세웠음을 공포했다. 이전부터 이스라엘 공동체에 임금을 세워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임금이 섰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사제의 직분에 있는 레위 지파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아니,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저희 공동체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임금을 세우신단 말입니까?" 수군거리는 이스라엘 원로들 틈에서 "벤야민 지파에 속한 사울이라는 청년이오." 사무엘의 입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좌중은 수그러들었다. "그 청년은 일전에 필리스티안 전투 때 백인대장으로 나서서 필리스티안 오랑캐를 몰아냈고, 두달 전에 다른 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 작은 전투를 치를 때도 여러 청년들을 모아 싸워서 이겼소. 지금 이스라엘은 그런 용맹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소.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처지를 단번에 알아보시고 내게 은밀히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세우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셨소.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판관들의 손으로 공동체를 일구어 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소.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땅을 개척하여 우리들의 영토로 삼았고, 또 우리들의 조상인 모세와 여호수아 때 마련한 군대들도 더욱 탄탄해졌으며 덕분에 여러 이민족들과도 승전을 거두지 않았소. 그래서 우리 이스라엘은 굳건한 반석 위에 섰소. 그런데 이런 와중에 계속 판관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어불성설과 같은 말이오. 그렇다면 늙은 판관들더러 나라를 다스리란 말이오? 이리 된다면 온 나라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오. 하여 나는 우리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말하는 것이오.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하오. 온 공동체가 하나로 뭉쳐야 주변의 외적들에게 침입을 받을 서러움도 쉽게 떨치지 않겠소?" 사무엘의 목소리는 한층 더 격앙됐다.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는 한낱 어린 아이가 아니오. 이제는 늠름한 청년이 될 시점에 다다랐소. 그러니 모든 지파 공동체에게 간곡히 청하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소. 우리들이 나서서 이스라엘을 전능하신 하느님의 왕국으로 만들 수 있도록 힘을 키웁시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 사울이 속한 지파, 곧 벤야민 지파 원로가 일어서서 "옳소!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만듭시다!" 소리쳤다. 이에 모든 지파의 원로들이 일어나서 "사울 만세!" 하며 외쳤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무엘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자신의 생전에 마주하게 되어 매우 기쁜 까닭이었다. 이후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되었다. 사울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사울은 자신의 아버지 키스를 차마 고향 땅에 두고 갈 수 없어 왕궁이 건설되는 대로 직접 모시기로 하였으나 재위에 오르고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사울에게는 처자가 없어서 서둘러 이스라엘 열두 원로가 나서서 왕비를 간택하는 절차에 나섰다. 아울러 측실을 따로 뽑는 논의가 있어 측실도 마저 뽑았다. 왕위에 오르기까지 사울은 노총각 신세로 지냈던 것이다. 사울의 왕위 등극을 듣고 이스라엘 주변의 이민족들은 더이상의 침략을 일삼지 않게 되었다. 사무엘은 사울의 왕위 등극을 자기의 공로로 치부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존귀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사울 형제가 우리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손으로 기름을 부어 세운 왕이니만큼 하느님 당신의 종으로써 하느님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지혜의 은총을 그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겸손하게 기도하는 사무엘의 정성 어린 기도를 응답하신 덕분일까.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 뒤 십 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사무엘은 판관의 자리를 벗어던지고 일개 사제 직으로서 직무를 다했으며 더불어 사울의 신하로서 뿐만 아니라,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빌어 직언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였다. 이렇듯 사울의 태평성대는 곧 사무엘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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