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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차 대과 무과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21.09.10-2021.09.17
문서분류 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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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제10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훈련원시 시제 (시험 문제)
: 임진왜란 당시의 용인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병력이 우세했던 조선군이 일본군에 궤멸당했다. 조선군의 용인 전투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3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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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안 내용 :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 오는 고사성어 중 오합지졸(烏合之卒) 이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 오(烏)를 써서 ‘까마귀가 모인 것 같은 무리’ 라는 뜻인데, 제대로 조직을 갖추지도 못하고 질서가 없는 무리를 까마귀 떼에 비유한 말이다. 군대에 오합지졸이라는 말이 쓰이면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통솔도 되지 않아, 전투 능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도 의문인 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의 용인 전투는 전형적인 오합지졸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도근왕군(三道勤王軍) 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군대는 전국에서 병력을 끌어모아 대군의 형세를 갖추었으나, 그 실상은 군대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일단,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은 체계적으로 훈련된 군인이 아니었고, 전쟁 발발 후 징집된 농민 등 일반 백성들이었다. 이미 왜군이 한양까지 밀고 들어온 상태에서 어떻게든 한양을 탈환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급하게 모아서 올라왔으니 체계적인 훈련이나 사기 등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인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전술을 세우고 이에 맞게 운용할 수 있도록 지휘하는 장수가 있다면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했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지도 못했다. 병력을 끌어모은 주체는 각 지역의 지방관들이었는데, 수도가 함락되어 중앙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방관들끼리 전투를 치르려다 보니 어떻게 전술을 세워야 할 지도 제대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병사 개개인의 사기와 전투 능력도 없었고, 이들에 대한 관리도 확실하게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군대의 문제점은 첫 전투에서 바로 드러났다. 진지를 구축한 용인 지역에서,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소수의 왜군을 보고 바로 공격에 들어간 것이다. 첫 전투에서는 군대의 규모에 비해 적은 2천 명의 병력을 가지고 선봉대를 세워 적을 섬멸하고자 하였으나, 전투 소식을 듣고 한양에서 내려온 적의 증원군의 기습을 받게 된다. 선봉대는 이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 결과 선봉대를 이끌던 장수들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도망가기 바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나마 전투 경험을 갖춘 장수와 병력을 뽑아서 파견한 선봉대가 이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말 할 것도 없었다. 이들은 다음 날 아침 적의 공격을 받고는 병사고 장수고 구분할 것 없이 도망가기에 바빴다고 한다. ‘10만 군대’ 로 불렸던 삼도근왕군은 이렇게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용인 전투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체계의 문제이다. 훈련된 병사가 아닌 농민을 징집하여 구성된 군대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훈련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준비가 당연히 필요했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서 훈련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이들을 지도하고 통솔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지고 이에 따라 운용되었다면 오합지졸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로 전술의 문제이다. 병력을 많이 모아 수적으로는 우세한 상황이었으나, 적이 어떠한 상황이고 어떻게 나올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병력의 우위만 믿고 공격을 시도하였고, 상대의 기습 한 번에 그 많은 병력이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전술을 논의하는 와중에 적의 상황을 파악하고 섣불리 공격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러한 의견이 무시된 것 또한 위의 문제점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용인 전투는 단순히 병력의 수만을 믿고 다른 준비 없이 전투에 들어갔다가는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면 좋았겠지만, 결국 조선군은 병자호란 시기 ‘쌍령 전투’ 라고 불리는, 비슷한 상황에서 벌어진 또 다른 패배를 경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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