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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차 별시 문과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20.08.15-2020.08.21
문서분류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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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제54차 대과 문과 응시
문과 시제 (시험 문제)
: 19세기 중반 이후 조선왕조에서는 서양 열강의 경제적, 군사적 진출을 맞아 위정척사론이 대두하였다. 위정척사론은 주자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조선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수호하고 그들의 경제적, 군사적 침략을 분쇄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한편, 당시의 위정척사론이 조선의 개항과 근대화를 지연시킨 원인이 되어,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를 초래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 인식이기도 하다. 응시자는 당시의 위정척사론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3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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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안 내용 :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이미 완료된 것이기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넣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적 사건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이는 후대(後代)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역사를 바라볼 때 느끼는 안타까움의 발로(發露)일 것이다. 흔히 하는 ‘조선 말에 위정척사가 아니라 통상개화를 지향했더라면’과 같은 가정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위정척사론이 조선의 개항과 근대화를 지연시킨 원인이 되어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를 초래하였다는 것은 지극히 결과론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개항과 근대화를 일찍 시작했다면 과연 식민지화를 피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대한 가정을 할 때는 이성적으로 정확한 시대 분석에 근거해야 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자면 오히려 통상개화가 조선의 식민지화를 앞당겼을 수도 있다. 당시 열강(列強)은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고자 했으며 절대 조선의 발전을 위한 세력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의 입장에서 어설픈 통상개화는 오히려 위험한 선택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의 모든 책임을 위정척사론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당시의 위정척사론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먼저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이란 말 그대로 바른 것을 지키고(衛正) 사악한 것은 물리친다(斥邪)는 사상을 말한다. 시대에 따라 정(正)과 사(邪)가 가리키는 바는 달랐지만 조선 말에 있었던 위정척사에서 정(正)은 조선 고유의 유교 문화와 전통을 의미하며 사(邪)는 서양의 문물을 의미한다. 이는 중화주의(中華主義)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중화주의란 한족(漢族)이 세운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그 외는 오랑캐로 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이다. 그러나 위정척사론에서 말하는 중화(中華)는 더 이상 중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청나라는 오랑캐인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므로 한족의 정신을 상실한 국가였다. 중화사상의 전통적 계승자는 바로 조선이었다. 따라서 조선이 멸망하는 것은 곧 단순히 한 나라의 멸망이 아니라 나아가 중화(中華)라는 문명의 멸망이다. 즉, 위정척사론은 기존의 문화와는 매우 이질적인 서양의 문물(文物)이 도입되었을 경우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막고 중화주의를 계승한 조선의 문화와 도덕적 가치를 지키려 한 저항적인 민족주의로써 의의가 있다. 이는 훗날 항일의병전쟁으로 실천화 되었고 침략적인 외세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일정 부분 유효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한편 위정척사론이 학문적이고 도덕적인 시각에서만 의의를 지닌 것은 아니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시각에서도 의의를 갖고 있다. 위정척사론을 따르는 학자들의 ‘서양의 물화는 그 양이 무궁한 데 반해 조선의 물화는 백성들의 생명이 달린 것이고 땅에서 나는 유한한 것으로 불과 몇 년 안 가 땅과 집이 모두 황폐하여 다시는 보존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위정척사론이 당시 시대를 예리하게 통찰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무한한 서양의 공산품과 우리의 제한된 토산품을 교역하는 서양과의 무역체계는 조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임을 인지한 것이다. 즉,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조선의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 본 것이다. 나아가 열강이 조선에 접근하려는 근본 목적은 단순한 수교(修交)가 아니라 조선의 침탈이라는 현실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러시아나 미국이나 일본은 다 같은 오랑캐인데 누구는 후하게 대하고 누구는 박하게 대하기는 어렵다’는 위정척사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위정척사론에는 열강의 침탈에 대한 염려와 국제 정세에 어두운 조선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위정척사론은 무조건적인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사상이 아니라 외세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직시한 사상인 것이다.

또한 양물(洋物) 자체를 철저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위정척사론자들도 있었지만 최익현이나 이항로와 같은 일부 위정척사론자들은 서양 신무기의 우수성과 서양의 무기나 기계는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들이 경계했던 바는 서구의 문물에는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었고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인다고 할 경우 유교를 통해 도덕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위정척사론자들이 양물(洋物)을 배격해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위정척사론자들 간에도 이렇듯 태도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위정척사론이 말하는 위정(衛正)에 포함되어 있는 성리학적 질서의 수호는 단순한 사상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의 위정자(爲政者)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위정척사론 중 내수외양(內修外攘)의 논리에서 서양문물의 배척이라는 외양(外攘)보다 선행되는 내수(內修)는 군주와 집권층의 도덕적 수양과 솔선수범, 나아가 내정의 쇄신을 전제로 한 국력 배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항로는 병농일치의 둔전제를 현실적인 토지제도로 보았으며 기정진은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삼정의 문란을 그 원인으로 보고 삼정의 개혁을 주장하였고 병인양요 직후에는 외세 침략에 대비한 국방력의 강화를 역설(力說)하는 시무소를 짓기도 했다.

조선 말에 있었던 위정척사론을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근대화를 지연시킨 사상이라는 등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위정척사론을 ‘만약 개화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잘못된 역사 인식에 기반하여 단순한 수구사상(守舊思想)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선과는 외형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너무나도 다른 외세의 접근에 위정척사론은 소중화주의에 기반하여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조선의 문화와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저항적인 민족주의의 맹아(萌芽)였다. 또한 위정척사론은 외세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예리하게 통찰한 일부 현실적인 사상이었다. 후에 박은식 선생이 지은 『한국통사』에서 조선은 자수자강의 실력이 있고서 문호를 개방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침탈의 편익만 제공해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지적을 참고한다면 위정척사론자들의 현실 판단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위정척사론은 이처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위정척사론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호도(糊塗)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기를 바라며 시권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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