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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차 별시 문과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20.08.15-2020.08.21
문서분류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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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제52차 대과 문과 응시
문과 시제 (시험 문제)
: 역사 속에서 국가의 개혁을 시도한 위정자(정치가)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을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국가적 차원의 개혁에 실패하게 되는 주요 원인, 즉 핵심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2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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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안 내용 :

개혁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서는 '제도나 기구를 뜯어고침'이 되는데, 만약 우리 역사상에서의 대표적인 개혁 시도를 뽑으라면 필자는 조광조의 개혁과,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을 뽑고 싶다.

그렇다면 그런 개혁을 시도한 정치가들이 개혁에 실패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먼저 국가의 개혁을 시도한 정치가들이 한 일을 한 번 살펴보자.

중종 대의 조광조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남곤 등에 의하여 기묘사화로 죽음을 맞았다. 그가 행했던 개혁은 어떤 것이었던가. 당시로선 너무나 파격적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문장이 아닌 인품을 보고 인재를 뽑는 현량과를 시행하고, 또한 정국공신의 위훈을 대거 삭제하였다. 조광조 자신이 이런 면에서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다. 기존 훈구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배척으로서 정작 현실은 무시하고 이상 사회만을 꿈꾸다 현실적 한계에 부딪혔다.

물론 정암이 하려 했던 개혁은 그 뜻은 좋았고 따르는 진보적인 이들도 많았더라고 하지만 중종의 지나친 아낌으로 개혁을 해야 할 자신이 오히려 거만해지고 훈구 세력들을 지나치게 만만히 보았던 것이다.

고종 대의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어떤가. 필자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본다.

일본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당시 국왕이었던 광무황제와 민비를 경우궁으로 피신시키고 새 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그 때 민중들은 반외세, 반봉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반면, 개혁 파들은 민중들과 교감하지 않고 그것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개혁에만 급급하여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을 진행한 게 아닐까.

또한 새 내각에 개혁 파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자신들이 개혁의 중심이란 자부심으로 그랬을지는 모르겠으나, 민중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이 정변 일으키고 다 해 먹는다’고 했을 것이다.

이처럼 민중들의 공감을 사지 못한데에 갑신정변의 실패의 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 그대로 ‘정변’ 식으로 개혁을 일으킴으로서 당시로선 ‘반역’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위의 두 개혁가를 예로 들어보았을 때 결국 개혁의 실패는 반대 세력을 포용해 내지 못하고 배척하여 반감을 사 개혁가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고, 또한 백성들의 공감을 사야 할 시점에 오히려 반외세적인 정신을 가진 백성들에게 반대를 산 것이라 생각한다.

조광조는 이른 나이에 고관에 오르고 초반에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개혁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왕을 압박하여 왕이 마지못해 윤허하여 시행하는 격이 된 것이다. 김옥균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가를 경우궁으로 강제로 이어시켜 다음날 인사개편을 단행하고 정변의 주역들이 요직에 앉은 것이다.

두 개혁가의 개혁 진행 과정을 보았을 때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앞서 말했던 '반대 파들을 포용하지 못해 반감을 산 점, 백성들의 여론을 무시한 점, 왕을 압박한 점,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한 점' 네 가지가 될 것이다. 갑신정변은 일본에 의존하다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

앞의 두 개혁 뿐 아니라 다른 개혁 시도들을 보면, 정여립과 허균 등의 인물들은 역사는 반역자, 실패자로 기록하고 있지만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맞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이상을 꿈꾸고 개혁을 시도했던 이들이 아닌가. 하지만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고 둘 다 반대 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따라서 역사상 개혁 시도의 실패는 대부분 반대파들의 반감을 사고 백성들의 여론을 무시한 점, 그리고 너무 이상적인 것에만 급급하여 현실을 생각하지 못한 점 세 가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은 아무리 하려는 뜻이 좋고 모든것이 완벽하다고 해도 반대 파라고 하더라도 모두 받아내며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비로소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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