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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강의] 제229강 : 고전문학사 열두 번째 강의
고전문학사 열두 번째 강의 <사림문학과 심성에서 우러나는 소리> 김종직과 그 제자들을 사림파라 일컫는데, 이 사림파들이 중앙정계로 진출함에 따라 문학에서도 훈구파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김종직(金宗直)의 경우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는 도학과 문학 또는 경술과 문장은 하나로 아울러야 한다고 보고 <청구풍야>를 편찬하고, <동문수(東文粹)>에 명문을 수록하는데 주력합니다. <동도악부(東都樂府)>, <낙동요>가 그의 대표적 작품인데, 이 중 <낙동요>는 경상도 지방의 지방적 색채를 띠는 특징을 지닙니다. 누각 아래 배에다가 천만 꾸러미 돈을 실었으니 남도 백성들이 이 토색질에 어이 견뎌내리. 쌀독이야 진작 비고 도톨밤마저도 없는데, 강가 정자에서는 노랫소리에 살진 소를 잡는다. 나라의 사자들이 흐르는 별처럼 지나가면서 길가의 해골이야 누가 이름이라도 묻겠는가. 제목부터 민요풍의 노래로서, 서두에서는 낙동강의 근원을 밝히고, 강이 흐르면서 차차 물이 불어나 바다에 이르기까지 사백 리 뱃길을 이루는 광경을 차례로 묘사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현실감을 나타내다가, 절정에 이르면 사연을 전합니다. 그런 다음 자기는 고향의 봄을 찾았으나 흥이 나지 않아 이 노래를 부르며 기둥에 기대어 섰으니 갈매기가 비웃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호인(好仁)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작품이 가장 높이 평가되고 시의 깊은 이치를 스스로 깨닫습니다. 남효온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사육신의 전기인 <육신전(六臣傳)>, 김종직 제자들의 행적을 적은 <사우명행록>, <추강냉화(秋江冷話)>, 몽유록인 <야몽성광자>, <수향기> 등 작품을 남깁니다. 조위(曺偉)는 <두시언해> 편찬 사업에 관여해 그 서문을 쓰고, <계림팔관> 여덟 수를 남깁니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 중에서 가장 강경한 인물이었고 문장이 대단한데 그 유명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바 있습니다. <도학을 위한 글> 일부 사림파들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물러나 심성을 닦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여기고 유교도덕에 대한 학문을 통해 문학하는 자세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표되는 인물로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가 있습니다. 정여창은 공명에 이끌리지 않고 도학을 묻고 따지는 글을 남겼고, 김굉필은 시를 지으면서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려하고 도학을 탐구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조광조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마음부터 가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학을 위한 글만 소중히 여기는 행적을 보입니다. <서경덕 이황 이후의 상황> 서경덕은 이(理)와 기(氣)는 하나임을 입증하고자 했는데, 기가 바로 허(虛)라는 데 최종적인 근거를 둔 시론을 폅니다. 반면, 이언적은 영남 사림의 선구자로 이와 기는 하나일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황은 자연과의 화합을 중시해 본연의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시조는 이현보의 영향을 받습니다. 조식은 백성에 대한 의리를 중요시하고 높은 기개를 기르고자 노력했고, 이이는 선명(善鳴)은 곧 문학이라 주장하고 시가 으뜸이라 해서 <정언묘선>이라는 시 전집을 펴내 시의 품격을 등급에 나누고자 했습니다. 이는 관인 문학의 누적된 인습을 타파하는 취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성현을 믿으며 따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 바른 도리를 깨달아 실천하고자 하였습니다. <패검명>에 “안으로 밝혀야 할 것은 경이고, 밖으로 단행해야 할 것은 의이다. (內明者敬 外斷者義)”라고 한데 그 요제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이처럼 말을 아꼈으며, 경전을 풀이하지도 인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도학과 문학의 관계를 두고 고심하지 않고, 도학에서 얻은 바를 가장 간명하게 나타내는 방법을 문학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임금을 향한 충성보다 백성에 대한 의리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민암부>에서는 물이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엎을 수도 있듯이 백성은 임금을 추대하기도 하고 내쫓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백성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임금은 끝내 폭군이 되어 천험의 요새나 가혹한 형벌로도 자기 지위를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지리산 아래 은거해 산림처사로 일생을 보내면서 지리산을 다룬 시문을 남겼습니다. 경치를 즐기면서 노는 흥취를 자랑하지 않고 지리산의 우람한 자태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자세를 찾습니다. 지리산 유산기 <유두류록>애소 그런 뜻을 나타내고, 또한 유사한 주제의 시를 여러 편 지었습니다. 그 하나로, <제덕산계정주>가 있습니다. 천 석 들이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네. 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큰 종은 크게 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고, 지리산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뒤에서는 그 수준을 넘어서 있는 바람직한 경지를 말합니다. 하늘이 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입니다. 그런데도 울지 않는 지리산은 가장 큰 선비를 뜻합니다. 심지가 굳고 처신이 반듯해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선비의 자세를 갖추고자 해서 그런 시를 지었습니다. <선조 때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한 사림파> 송순은 실제 창작을 통한 새로운 시풍을 일으켰고, <전가원>, <문인가곡>, 현실의 문제를 다룬 <문개가>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전가원>에서는 굶주린 백성의 실태를, <문인가곡>에서는 바로 이웃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를 절실하게 다루었습니다. <문개가>는 연산군의 폭정 때문에 몰락해 거지가 된 사대부의 술회를 듣고서 옮긴 장시입니다. 떠돌이 신세 지금까지 삼십 년이라, 생사의 근심과 즐거움 다 잊었다오. 세상 어디서든 살 수 없겠나요? 지팡이 하나, 표주박 하나로 사방을 떠돈다. 구차스러운 몸뚱이 보잘것없는 줄 알아. 남에게 빌어먹어 죽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뱃속에 음식 이어져 주림으로 몸 상하지 않고, 몸에 옷이 남아 있어 추위로 상하지 않는다면, 다시 무슨 근심이 닥쳐와서 괴롭히리오? 떠돌아다니다가 편안하게 죽을 따름이오. 몰락해서 거지가 된 처지라면 서러움이나 하소연을 할 법한데, 구걸해도 자세가 당당합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 사회의 모순이 수난의 이유임을 알고 있어, 지위 회복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렸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밑바닥 인생의 지혜를 깨닫습니다. 가사나 시조만 보면 자연을 완상하는 풍류시인이기만 한 것 같은 송순이 동정과 개탄을 위주로 한 애민시의 한계마저 벗어납니다. 한시를 지으면서 생활의 실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층민의 처지를 다루려는 기풍은 곧바로 임억령(林億齡)에게로 이어집니다. 임억령은 생활의 실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층민의 처지를 다루려는 기풍을 잇습니다. 민중의 영웅을 노래한 <송대장군가>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를 장보고의 민간전승을 이어받았습니다. 장사의 뼈는 초목과 더불어 썩었어도, 의연한 혼백 아직도 바람과 우레, 노여움 머금었다. 귀신이 영웅다워 이 땅에서 만들어지며, 꿩 털을 꽂고, 나무로 모습을 만들었도다. 저 어떤 사람인가? 괴이하다고 비웃으며 신의 모습을 망가뜨려 강가에 던지다니, 백 년 세월에 한 칸 당집이 쓸쓸하고 철 따라 복날이고, 섣달이면 마을의 북소리. 마을에서 송대장군을 신으로 받들고 해마다 굿을 하게 된 내력을 노래한 대목입니다.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전승은 전국 도처에 있습니다. 무속에서 섬기고 설화에나 올라있어 조롱의 대상이 된 하층 문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한시를 써서 울분을 토로하는데 동참한 것은 전무후무합니다. 고경명(高敬命)은 전원에서의 흥취를 소재로 삼아 호남의 풍류를 격조 높이 살린 시세계를 이룩합니다. 성혼(成渾)은 학문에 몰두하는 서인이지만 남인을 상통하는 학설을 내세워 이이와 오랜 논쟁을 펼칩니다. 나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나서서 전사합니다. 향리에 머무는 동안 호남 풍류의 격조를 높이는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예로 <어주도>가 있습니다. 갈대밭에 바람 일어 눈이 흩날리는데 술을 받아 돌아오느라고 작은 배를 매었네. 비껴 부는 젓대소리에 강 위의 달이 희고 자던 새는 안개 낀 물가로 날아오르는구나. 구김살 없는 마음이요, 멋이 넘치는 가락이다. 갈대며 바람이며 눈이며 달이 모두 작자와 함께 움직이고, 젓대를 부는 흥취를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안개 낀 물가로 날아오르는 새가 있어서 이미 고양된 느낌을 더욱 생동하게 합니다. 송강 정철은 서인의 영수로서 시비를 듣고 파란도 겪다가, 벼슬을 잃고 호남으로 가서 그곳 문인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면서 많은 작품을 남깁니다. 그의 작품으로 가장 알려져 있는 작품을 들자면 <사미인곡>과 <관동별곡>이 있습니다만 이 중 <사미인곡>에서처럼 임금을 미인으로 설정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적지 않고, <야좌두견>이라는 칠언절구에서는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견새 울음에 빗대어 나타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초탈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추야(秋夜)>가 있습니다. 쓸쓸하게 낙엽 지는 소리 성긴 빗방울인가 잘못 들어 아이를 불러 문을 나가 보게 하니, 달이 시내 남쪽 가지에 걸렸네. 단순하고도 쉬운 시이지만 아주 산뜻한 인상입니다. 이렇듯 예민한 감각을 생동하게 나타내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한시는 시조를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한시는 정경을 그리기나 하고 노래하는 사람의 흥취를 살려내지 못하는 갑갑함이 있어, 더욱 신명 난 실험을 시조에서 풀고자 하였습니다. 격식이 이미 정해져 있는 작풍을 바꾸어놓기는 어려웠지만, 시조는 뜻하는대로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성일(金誠一)은 이황의 제자로서 성리학의 학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 안으로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지키려고 힘씁니다. 산수 사이에서 내면의식을 성찰하는 시를 남기기도 하지만, 고민을 나타내는 시가 더욱 주목됩니다. 대표적 작품으로 <모별자>, <적병행>이 있습니다. 슬프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나 백성들이 기쁘고 슬픈 사정 익히 보았으면서, 몇 해 동안 은혜 입고 나라 곳간 바라고 살아 추워도 옷이 여유 있고 주리면 먹을 수 있어, 처자의 근심도 안중에 없이 지냈으니 창생의 울음 어찌 귀에 들렸으랴. 이제 이 일 목격하고 비로소 놀라 탄식하면서 길에서 눈물 흘리고 마음 아파하노라. 위 시는 <모별자>의 일부로 살길이 없어 어미와 자식이 헤어져야 하는 참상을 장시로 다루고 말미에서 한 말입니다. 호화롭게 지내느라고 현실을 외면한 잘못을 스스로 나무라는 자기반성을 절실하게 했습니다. 벼슬한 사람의 마땅한 도리가 백성의 고난을 알아 해결하는 데 있다고 다짐하는 말이 다른 작품에도 거듭 나타나 있습니다. <적병행>에서는 도망간 백성을 잡아 병적을 채우느라고 무리한 짓을 하는 관원의 횡포가 자심한 현실을 개탄합니다. 북방의 방어도 근심되고, 왜국의 동향이 더 걱정스러웠음을 말해줍니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간 기록 <해사록(海錄)>에 남긴 시에서는 일본의 살기(殺氣)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림파는 관인 문학의 기득권을 비판하였으나 훈구파의 문학을 쇄신할 방안도 없었고 사림파마저 보수적인 경향을 띠었으며, 규범화된 한문화의 품격이나 표현 방법을 찾지 못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는 동안 중세문학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커다란 움직임이 국문문학, 곧 하층과 연결된 문학, 통치 질서를 비판하는 문학에서 준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국문학사(개정판), 조동일서종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1. * 한국문학통사 2(제4판),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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