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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강의] 제227강 : 고전문학사 열 번째 강의
고전문학사 열 번째 강의 <조선 전기 문학 - 왕조 교체기의 한문학> 고려 후기에 신흥사대부가 모색하고 주장하던 문학의 양상이 조선 전기에 와서야 구현되고 정착합니다. 고려전기와 후기 사이에는 이질성이,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사이에는 동질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1392년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 변화를 두고 어느 정도 의의를 가지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불교를 최고 이념으로 삼은 귀족을 대신해서 유학을 내세우는 사대부가 집권층으로 등장한 데서 실질적인 변화의 양상을 찾아야 합니다. 사대부는 신분적 특권보다 스스로 쌓은 실력을 정권 참여의 자격 요건으로 삼고, 도의와 염치에 입각,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표방하였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무신정권과 몽고란을 겪고, 권문세족이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 수취의 영역을 넓히며 횡포를 자행하자 민중의 항거가 일어났습니다. 지방 중소지주 출신의 신진사대부는 당시 민중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용, 중앙정계에 등장하여 지배체제의 개편을 요구했습니다. 고려를 그대로 두고 개혁하자는 온건파의 주장을 물리친 강경파가 득세해서 마침내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고 그네들이 주장하는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 사대부문학에서는 크게 두 갈래의 방향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처사문학과 관인문학이 그것입니다. 관인문학은 조선 개국에 공헌한 건국사업파의 손에 의해 실현된 문학입니다. 관인문학의 대표 격으로 정도전을 꼽습니다. 정도전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이룩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의 이념과 제도, 문화를 설계하였습니다. <소재동기(消災洞記)>를 통해 소재동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곳 사람들이 자기를 친구처럼 대해주는데 대한 감회를 나타냈고, <답전부>에서는 평생 농사일만 한 노인이 조정 벼슬아치들이 하는 치사하고 부끄러운 짓을 꿰뚫어보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 시기에 지은 <감흥(感興)>이라는 오언고시는 귀양 당시에 느낀 각성의 과정을 선명하게 나타냅니다. 봉황은 어찌 그리 아득히 나는고? 높이 올라서 바라볼 수가 없구나. 배고프면 푸른 낭간을 먹고 목마르면 천지의 물을 마신다. 굽어보니 티끌세상이야 좁기만 하구나. 닭이나 오리가 끽끽거리는 마당이로다. 그래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고서, 천 길 멧부리에서 돌고만 있네. 봉황을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낮은 데 머물러서 사소한 이해를 다투지 않고 오직 역사의 기틀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커다랗게 장악하자는 의지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높은 안목과 커다란 포부를 갖추고 새로운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금남야인(錦南野人)>에서는 진정한 선비가 해야 할 일을 따지면서 학문을 하고 도리를 밝히는 것이 이름에 걸맞은 실상을 갖춘 것인가를 스스로 반성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덕곡(武德曲)>과 <문덕곡(文德曲)>은 각각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공적을 찬양하는 악장이며, <심문천답>과 <불씨잡변(佛氏雜辨)>은 불교를 비판하고 신유학의 실천윤리를 주장하면서 사상의 획기적인 전환을 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권근은 조선왕조의 건국을 둘러싼 싸움이 막바지에 이를 때 고려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수난을 겪어 시골에 우거하고 있다가, 생각을 바꾸어 건국사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사상을 정립하고 문학하는 기풍을 바로 잡습니다. 권근은 정도전처럼 새로운 왕조를 이룩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처지도 아니었으며, 조심스럽고 온건한 마음씨를 지녔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권위를 글로써 위엄이 돋보이게 하는 것을 글로 승화시켰습니다. 태조에게 바친 <천감(天監)>을 보면, 먼저 설명을 달아 나라를 일으키면 칭송하는 것이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 오랜 관례라 하고, “우리 전하의 광대하고 숭고한 덕은 한당(漢唐)을 뛰어넘어 곧장 요순(堯舜)을 따르고 있으니, 진실로 시로써 아름다운 덕을 찬양하여 무궁한 세대에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이 아래로 내려보시어, 덕 있는 이를 사랑하셨도다. 빼어난 인물을 임금으로 삼아, 백성의 안녕을 바랐네. 저 고려라는 나라야말로 정사가 아름답지 못하였도다. 우리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니, 모든 백성이 열복하도다. 시의 품격을 존중했고 고려 후기에 이룬 성과를 가다듬어 조선 전기의 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경전을 풀이하고 마음이 바른 도리를 찾으면 천인합일을 이룬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응제시(應製詩)> 24수로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 시는 우리 역사와 국토를 예찬하는 것으로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리고 <시고개벽동이왕>이라는 시 또한 인상적인데 단군 이래의 오랜 연원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말 듣건대, 아득한 옛적에 단군이 나무 밑으로 내려와 동국을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니, 요임금 시절의 일이다. 전한 세대가 얼마인지 모르고 지난 해가 천 년이나 넘어 뒤에 온 기자 시절에도 또한 조선이라고 일컬어졌네. 변계량은 <대행태상왕대책문>에서 태조를, <봉정정삼봉>에서는 정도전을 칭송합니다. 한양 도읍을 칭송한 경기체가 <화산별곡>을 지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처사문학은 절의충절파로서 멸망한 고려의 충절을 지키는 사람들에 의하여 실현된 문학입니다. 그 대표적 인물로 원천석이 있습니다. 원천석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치악산에 숨어 정권다툼으로 흘러만 가는 세태를 개탄하고 왜곡된 민심을 밝힌 증언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왕조교체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민중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철저하게 밝히고 격렬하게 항변하며 역사에 깊이 참여하는 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대민음>이 그 예입니다. 생애는 물처럼 차갑기만 하고, 부역은 구름인 양 엉클어졌네. 성 쌓는 졸개를 급히 뽑더니, 대장장이도 함께 징발하네. 바람과 서리가 농사일을 망치고, 줄곧 내리는 눈에 옷마저 해졌네. 처자 부양하는 일은 잊을 수 없어, 마음이 조급해 불타들어가려 한다. 그의 작품들은 자기가 겪은 일을 차례대로 읊었지만, 그 가운데에 역사의 모습이 생동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대표적 작품으로 <운곡행록(耘谷行錄)>이라 하는 <운곡시사> 다섯 권이 있습니다. 길재는 <산가서>와 <후산가서>를 남겼습니다. <산가서>에는 시골에 묻혀 산수를 즐기며 마음에 자세를 배운다는 생활을 그렸으며 분위기가 밝은데 비해, <후산가서>는 어려서부터 겪은 일을 회고하며 비탄에 잠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날에 옛 글 읽으며 고금 일을 웃다가, 세상 형편 따라 함께 부침한 일이 부끄러워라. 곧은 도로 원리를 잡으려고 끝끝내 기약하다가, 헛된 이름을 위해 조각난 마음 기꺼이 부리다니. 말없이 앉았으니 들새가 낮 경치에서 울고, 문을 닫고 있으니 버들이 봄 그늘에 드리워졌네. 인간사가 끝났으면 마땅히 먼저 물러날 일이지. 서리 같은 터럭이 머리에 가득하길 기다릴 것 없네. <무제>라는 제목의 시다. 여기서 화자는 벼슬을 하는 동안 고려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고 술회하지 않습니다. 공부할 때 가졌던 올바른 생각을 다 저버리고, 세상 형편에 따라 함부로 부침하며 헛된 이름을 탐내 마음을 움직였을 따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된 선비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회포가 드러나 있습니다. 시냇가 띠집에서 홀로 한가히 지내노라니 달 밝고 바람 맑아 흥이 넉넉하구나. 바깥손님은 오지 않고 멧새들만 지저귀는데, 대숲 아래로 평상을 옮겨 누운 채 글을 읽네. <한거(閑居)>라는 위 시에서 화자는 시골로 물러나 편안하게 지내며, 자연과 화합하는 흥취를 찾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을 바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은거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서 시대의 변화를 두고 생각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운흘(趙云)은 고려조에 이미 벼슬이 높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는 공을 세우고 왜구 토벌을 맡았습니다. 고려말의 세태가 어지러워지는 줄 알고서 미친 사람으로 행세하기도 하고 눈 뜬 장님 노릇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 왕조에서 주는 관직을 받아들였으나 잠시 관직을 맡다가 물러났습니다. 이러한 격동기의 다툼과 시비를 겪고 괴로워하며 내심의 번민을 나타낸 시가 몇 편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송춘일별인>입니다. 벼슬에서 밀려나 마음 상해 눈물 뿌리면서, 봄을 보내며 돌아가는 사람까지 보내네. 봄바람아 즐겨 떠나고 머무를 생각 말아라. 사람 사는 곳에 오래 있으면 시비를 배우리라. 자기 작품창작에 힘쓰는 한편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이라는 시평 위주의 시선집을 편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 국문학사(개정판), 조동일서종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1. * 한국문학통사 2(제4판),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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