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사성] <읽기자료> 고려사 최충헌전

* 출처 - 한국학데이터베이스(http://www.krpia.co.kr/)

〔최이(崔怡), 최항(崔沆), 최의의 기사 첨부〕

최충헌의 초명은 최란(崔鸞)이며 우봉(牛峯) 사람이다. 그의 부친 최원호(崔元浩)는 상장군이었고 최충헌은 음관(蔭官)으로 양온령으로 임명되었다. 명종 4년에 원수 기탁성(奇卓誠)이 조위총(趙位寵)을 치면서 최충헌이 용감하다는 소문을 듣고 별초 도령(別抄都令)으로 선발 임용하고 그 공로로 누차 승진되어 섭장군(攝將軍)이 되었다. 그의 아우 최충수(崔忠粹)는 동부 녹사(東部錄事)가 되었다. 최충헌은 음흉하고도 사나운 인물이었다.

명종 26년에 이의민의 아들 장군 이지영이 최충수 집 비둘기를 빼앗았는데 최충수가 그 반환을 요구하면서 언사가 심히 불공하였으므로 이지영이 노하여 가동들을 시켜서 결박하라 하였더니 최충수가 말하기를

“장군이 손수 나를 결박한다면 몰라도 누가 감히 나를 결박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이지영이 장히 여겨서 놓아 주었더니 최충수는 즉시로 최충헌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이의민 4부자(父子)는 실로 국적(國賊)이니 내가 죽이고자 하는데 어떻소?”라고 하였으므로 최충헌이 난색을 보이니 최충수가 또 말하기를

“저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그만 둘 수 없소”라고 하였다. 그때야 최충헌도 찬동했다.

그런데 때마침 왕이 보제사(普濟寺)로 갔는데 이의민은 병을 칭탁하고 호종(扈從)치 않고 남모르게 미타산(彌陀山) 별장으로 나갔으므로 최충헌은 최충수와 그의 생질 대정 박진재(朴晉材), 친척인 노석숭(盧碩崇) 등과 함께 칼을 감추어 가지고 별장문 밖에 가서 엿보고 있다가 이의민이 돌아오려고 문을 나와 말에 올라 타려 할 때 최충수가 뛰어들어가서 쳤으나 맞지 않아서 최충헌이 곧바로 앞으로 나가서 이의민을 베어 죽이니 이의민의 종자(從者) 수십 명은 모두 다 벌벌 떨면서 흩어졌다.

최충헌이 노석숭에게 이의민의 수급(首級)을 가지고 서울로 달려 들어와서 시가에 효수하게 하였더니 보는 사람들이 놀라서 떠드는 소리가 서울 안을 진동했다.

호종하던 자는 사변을 듣고 슬그머니 떨어져 나갔으며 왕은 수레를 재촉해서 환궁했다.
최충헌과 최충수는 칼을 뽑아 든 채 말을 달려 십자가에 이르러 감행령(監行領)에서 장군 백존유(白存儒)를 만나 보고 사유를 이야기했더니 백존유는 즐겨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하고 장병(將兵)들을 소집하여 주었다. 최충헌과 최충수가 군사를 인솔하고 궁문으로 가서 왕에게 말하기를

“역적 이의민은 일찍이 임금을 해친 대역의 죄를 지고 있으며 백성들을 포악하게 해치고 왕위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이미 오랫동안 그를 증오하여 왔으며 지금 나라를 위해서 처치했는데 비밀이 누설될까 두려워하여 감히 어명을 청하지 않았는바 백 번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최충헌은 이어 대장군 이경유(李景儒), 최문청(崔文淸) 등과 함께 잔당의 소탕을 청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시가(市街)로 나와서 자리잡고 초모하였더니 장사(壯士)들이 이에 호응하여 나섰다. 이렇게 되니 각 위(衛)의 장졸들도 모두 모여 들어서 무릎을 꿇고 명령을 들었으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제는 성문을 닫고 각처에서 이의민의 일당을 수색해서 전부 체포했다.

최충헌과 최충수는 취문청, 이경유와 함께 인은관(仁恩館)에 회합하여 일을 모의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평장사 권절평(權節平), 손석(孫碩), 상장군 길인(吉仁) 등이 거병(擧兵)을 획책하고 있다고 고발하였으며 또 이경유도 딴 꿈을 꾸고 있다고 밀고하니 최충헌은 곧 권절평의 아들 장군 권준(權準)과 손석의 아들 장군 손홍윤(孫洪胤)을 불러 와서 술을 마시며 평소와 다름없이 담소(談笑)하다가 갑자기 좌우 장수들에게 눈짓하여 몸을 꺾어 죽이고 또 그 자리에서 이경유를 목 베어 죽였으며 최문청은 늙고 또 정직한 사람이라 하여 죽이지 않고 돌려 보냈다. 그리고 나서 최충헌 등이 시가의 군막(軍幕)에 앉아서 장졸을 각처로 파견하여 권절평, 손석, 장군 권윤(權允), 유삼상(劉森相), 어사 중승(御史中丞) 최혁윤(崔赫尹) 등을 체포해다가 죽였다.

그때 길인은 수창궁에서 사변을 듣고 장군 유광(兪光), 박공습(朴公襲) 등과 함께 무기 창고의 병장기를 무단 출고해서 금군, 환관(宦官), 노예 등 약 1천여 명에 나누어 주면서 설유하기를

“지금 최충헌이 반란을 일으키고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있으니 앞으로 화가 너희들에게 미칠 것이다. 각자는 힘을 다하여 큰 공을 세우라”라고 하고 궁문을 나서서 모래재(沙嶺)를 넘어 시가로 향하였다. 그런데 최충헌 등은 군사를 내어 맞받아 싸웠는데 최충헌은 결사대 10여 명을 선발해서 선봉대로 삼아서 칼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면서 적진을 돌파하고 나아가게 하였더니 길인의 무리들은 바라보고 산산이 흩어졌으며 길인, 유광, 박공습은 말을 달려 수창궁으로 들어가서 궁문을 닫고 항거하여 지켰으므로 최충헌 등이 군대를 인솔하고 포위하였다. 그리고 백존유가 화공(火攻)을 하려고 하였으므로 길인이 겁이 나서 담을 넘어 도망갔다.

왕이 궁문을 열고 최충헌과 최충수를 부르게 하였으나 최충헌 등은 길인이 궁 내에 있는 줄만 의심하고 낭장 최윤광(崔允匡)을 시켜 궁에 들어가서 왕에게

“적신 이의민이 발호(跋扈)하였으므로 제가 기병(起兵)하여 그를 죽였더니 그의 도당이 저를 꺼리고 도리어 가해코자 했으나 황천이 무심치 않아서 그 악도들은 자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잔당이 내전에 숨어 있으니 청컨대 궁중에 들어가서 수색 체포하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게 하였더니 왕이 허락하였으므로 드디어 백윤광을 시켜 군사를 풀어서 궁중으로 밀고 들어가서 만나는 족족 죽이게 하여 송장이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유광과 박공습은 자살했으며 왕의 좌우 시신들은 모두 다 흩어져 달아나고 소군(小君)과 왕의 부인 궁희(宮姬) 몇 명이 임금 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최충헌 등은 군사를 철수하여 인은관으로 돌아가서 참지정사 이인성(李仁成), 상장군 강제(康濟), 문득려(文得呂), 좌승선 문적(文迪), 우승선 최광유(崔光裕), 대사성 이순우(李純祐), 태복경(太僕卿) 반취정(潘就正), 기거랑(起居郞) 최형(崔衡), 낭중 홍분(洪賁) 등 36명을 체포해서 인은관에 가두었다. 길인은 북산(北山)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의 검은 옷을 입고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최충헌은 또 상장군 주광미(周光美), 대장군 김유신(金愈信), 권연(權衍) 등을 죽였다. 그리고 어떤 중이
“길인이 왕륜사(王輪寺) 승도(僧徒)들을 인솔하고 거사(擧事)하려 하니 청컨대 방비하라!”고 말하니 최충헌이 대노하여 가두어 두었던 이인성 등 36명을 죽이고 사람을 왕륜사로 보내 정찰케 하였더니 그때 중들이 모두 불당에서 식사하는 중인데 잠잠하여 아무런 다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최충헌은 그것이 허위 고발임을 깨닫고 그 자를 잡아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고발자는 벌써 도망갔다.

문적의 처 최씨(崔氏)는 쌓인 송장 가운데서 남편의 시체를 찾아 가지고 이고 갔다. 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며 최충헌이 듣고 “열녀다!”라고 말하고 장례를 차려 주게 하였다.

최충헌은 또 판 위위사(判衛尉事) 최광원(崔光遠), 소경 권신(權信), 장군 권식(權湜) 두응룡(杜應龍), 낭장 최비(崔斐)를 남녘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

최충헌이 조신(朝臣)을 많이 죽이니 인심이 흉흉하고 공포에 잠겼으므로 각 도로 사신을 파송하여 인심을 안정시켰다. 최충헌, 최충수 형제는 밀종한 건의문(秦狀)을 올렸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살피건대 적신(賊臣) 이의민은 성질이 맹수처럼 잔인하며 위에 대하여는 만모(慢侮)하며 아래에 대하여는 능포(陵暴)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의 자리까지 손을 대고자 음모하게 되어 화가 불꽃처럼 치열해지고 백성은 살길이 아득하였습니다. 이때 우리는 폐하의 성위(聲威)를 빌어 단번에 적신을 남김 없이 멸망시켰으니 바라건대 폐하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위하여 노력하면서 모든 일에서 태조(太祖)의 정대한 전법(典法)을 준수하여 중흥의 길을 밝게 개척하십시오. 여기에 삼가 10가지 사항을 조목별로 기술하여 폐하에게 올립니다.

옛날에 태조가 삼한(三韓)을 통일하여 송악군에 수도를 정하고 명당(明堂) 자리를 선택하여 궁궐을 지어 자손 임금들을 위하여 영원히 안주할 곳으로 정하였으며 근년에 궁실이 화재를 당하였으나 또 옛 모양대로 신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두고 구기(拘忌)의 설(說)을 믿고 오랫동안 거처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도리어 음양(陰陽)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폐하는 길일(吉日)을 택하여 들어가서 천명(天命)을 길이 받으십시오.

우리 나라의 관제(官制)는 녹수(錄數)와 대비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양부(兩府)를 비롯하여 각 부서에 잉여 인원을 두어서 국고의 녹(錄)이 부족한 것이며 그 폐단이 막심하니 원컨대 폐하는 옛 제도에 의준해서 감원하고 적절히 조절하여 관원을 두십시오.

선왕(先王)의 제도에 의하면 토지는 공전(公田)을 제외하고 신민(臣民)에게 차등 있게 분여하였는데 벼슬자리에 있는 자들이 탐오하여 공전과 사전을 빼앗아 겸병(兼倂)하여서 한 집이 가진 기름진 옥토가 몇 고을에 걸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나라의 세 수입이 저하되고 군사들이 결핍을 겪게 하였으니 원컨대 혜하는 해당 기관에 명령하여 공문서를 검증하고 강탈당한 것은 전부 공사(公私)의 본 주인들에게 돌려 주도록 하십시오.

조(租)와 부(賦)는 모두 백성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빈궁하면 어디에서 충족하게 얻어 내겠습니까? 그런데 혹은 관리들이 불량하여 오직 사리(私利)만을 추구하면서 걸핏하면 민간을 침해하며 또 세도대가의 종들이 경쟁적으로 백성들에게서 전조(田租)를 강제 징수하고 있으니 백성들이 모두 근심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폐하는 선량하고 유능한 인사(人士)를 선택하여 지방 관직에 임용함으로써 세도 대가들이 백성의 살림을 파산시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국가가 양계(兩界)에 도총사(都總使)를, 5도(道)에 안찰사(按察使)를 파견한 것은 오로지 관리의 간악한 행위를 억제하고 민폐를 방지해 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각 도의 안찰사들이 응당 안찰할 일을 안찰하지 않고 그저 백성들에게서 가렴주구(誅求)해서 왕궁에 공진(供進)한다는 명목으로 역(驛)을 이용해서 운반해다가 사적 소비에 충당하는 일이 간혹 있으니 바라건대 폐하는 각도 안찰사들의 공진을 금지하고 전적으로 검열을 그 직분으로 삼게 하십시오.

지금 산중에 있을 중 1∼2명이 항상 왕궁을 돌아다니며 침실까지 드나들고 있습니다. 폐하는 불교를 혹신하고 이런 것을 관대히 용인하고 있으나 그 승려들은 폐하의 총행을 방패로 삼고 자주 간청함으로써 성덕(聖德)을 더럽히고 있으며 폐하는 내신(內臣)들을 시켜 절간 일을 걸머지고 백성에게 알곡을 대여하여 그 이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바라건대 폐하는 땡땡이 중들을 물리쳐서 궁중에 그 발자취가 없게 하며 곡식으로 장리 놓지 못하게 하십시오.

근래 듣건대 지방 관리들 중 탐욕자가 많아서 도무지 염치란 찾아 볼 수 없는데 각 도의 안찰사들이 이를 방임하여 두고 있으니 설사 어질고 청백한 자가 있어도 알려지지 않으므로 악행(惡行)은 조장되며 청백은 무익한 것으로 되어 징계도 권장도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양계도통(兩揭都統)과 5도 안찰사(五道按察使)들에게 명령하여 관리들이 유능한가 못한가를 살피게 하여 자세히 장계하게 한 후 유능한 자는 탁발 등용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징계하십시오.

지금 조정의 신하들이 절약하는 검박한 기풍이 전혀 없으며 집이나 꾸리고 옷맵시나 보고 완상품을 갖추고 진귀한 보물로 몸 장식을 하여 그것을 자랑하고 있으니 이렇게 풍속이 퇴패해서는 멀지 않아서 좋은 풍속이란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백관들에게 훈시를 내려 사치를 금하고 검소를 숭상하게 하십시오.

옛날 조종 성대에서는 반드시 산천(山川)의 순역(順逆)을 고려하여 사찰(寺刹)을 창건함으로써 그 지세(地勢)에 순응시켜 안치시켰는데 후대의 장수나 재상들과 무례한 승려들이 산천의 길흉(吉凶)을 고려치 않고 소위 원당(願堂)이라는 절을 세워서 지맥(地脈)을 손상하여 재변이 자주 발생하고 있으니 바라건대 폐하는 음양관(陰陽官)을 시켜 검토하여 유익한 것 이외는 모두 남김 없이 철거시킴으로써 뒷사람들에게 뚜렷한 본을 보여 주십시오.

성(省)과 대(臺)의 신하들은 간언(諫言)이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과감하게 간언(諫言)해야 하며 비록 참혹한 악형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달갑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행동하여 융화 결탁할 생각들만 하고 있으니 바라건대 폐하는 적합한 인재를 선택하고 그런 후에는 조정에서 직언(直言)케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끝까지 쟁론(爭論)케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렇게 논주(論奏)하니 왕은 가상히 여기고 채납했다.

최충헌은 내시 호부시랑 이상곽(李尙郭), 군기 소감 이분(李芬), 지후 원춘 등 50명은 세력을 등지고 모매하게 올라온 자이며 내시주로 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파면시켰으며 또 왕자(王子)로서 승소군(僧小君)이 된 왕홍기(洪機), 왕홍추(洪樞), 왕홍규(洪規), 왕홍균(洪均), 왕홍각(洪覺), 왕홍이(洪貽) 등이 내전에 있으면서 정치에 간섭한다 하여 상소문을 올려 본사(本寺)로 돌려 보냈고 또 왕이 폐행하는 중 운미(雲美), 존도(存道)가 왕궁에 출입하고 조정 관원들이 많이 그에 아부하였으므로 동시에 내쫓았다.

이 해에 최충헌은 좌승선이 되고 곧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로 되었다.

이듬해에는 왕은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좌승선 최충헌과 대장군 최충수는 악인을 미워하기를 원수 같이 여겨 손수 이의민을 죽여 종묘와 사직을 편안케 했으니 최충헌에게는 충성 좌리 공신(輸忠贊化功臣) 칭호를 주고 그의 부친 최원호(元浩)에게는 봉의 찬덕 공신(奉議贊德功臣)칭호와 수태위 문하시랑(守太尉門下侍郞) 벼슬을 추증하며 모두 벽 상에 그 화상을 그려 두라!”라고 하였다.

하루는 최충헌이 흥왕사에 가서 불상의 완공을 경축하려 하였으나 흥왕사 승통(僧統), 요일(寥一)이 중서령 두경승과 함께 최충헌을 살해하려 한다는 무기명 투서가 있었으므로 가지 않았다.
그 후 최충헌 형제는 왕을 폐위(廢位)코자 초례(醮禮)를 배설하고 하늘에 고했더니 그날 밤에 뇌성 벽력이 일고 우박이 쏟아졌으며 폭풍이 심해서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집과 담장들이 많이 허물어졌다.
그 후 7일에 또 다시 뇌성 벽력이 일어났다.

그 때 최충수와 박진재가 최충헌을 방문하고 모의하기를

“지금의 임금은 28년간 왕위에 있었다. 왕은 늙고 또 일에 권태증이 생겼으며 게다가 소군(小君)들이 항시 임금 곁에서 슬그머니 권세를 잡고 국정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임금이 또한 여러 소인(小人)들을 총애하여 금과 비단 등속을 많이 주었으므로 국고가 비었다. 이렇게 하고는 백성과 신하들의 임금이 될 수 없다. 또 태자 숙(璹)은 여러 궁비(宮婢)들을 사랑하여 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각 소군(小君)들에게 한 사람씩 의탁하여 머리를 깎아서 제자로 삼고 있으며 태자는 성질이 암둔하고도 유약해서 태자 자격이 없다.
그런데 사공(司空) 왕진(縝)은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했으며 위인이 총명하고 도량이 있으니 임금으로 삼는다면 나라가 중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진의 여종(婢)을 최충수가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왕으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최충헌은 말하기를

“평량공(平凉公) 왕민(旼)은 지금 임금의 동복 동생인데 지략이 넓고 도량이 커서 제왕(帝王)다운 인재이며 그의 아들 왕연(淵)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니 태자로 삼을 만하다”라고 하여서 의논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이때 박진재가 말하기를

“왕진과 왕민은 모두다 임금이 될 만하다. 그러나 금나라에서는 진이 누구인 줄 모르므로 만약 왕진을 임금으로 내세우면 금나라에서는 반드시 왕위를 찬탈했다고 인정할 터이니 왕민을 세워서 의종(毅宗)의 전례에 따라 동생이란 이유로 보고하여 후환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여 의논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최충헌, 최충수는 박진재, 노석숭 및 그의 족인(族人) 김약진(金躍珍) 등과 함께 군사를 저잣거리에 집결시켜 중군(中軍)을 삼고 각 위(衛)의 군사를 전후 좌우 4군(軍)으로 나누어 동서남북 거리에 주둔시키고 장졸을 파견하니 모두 성 문을 닫은 후 두경승을 호출하여 자연도(紫燕島)로, 또 추밀원 부사 유득의(柳得義), 장군 고안우(高安祐), 대장군 백부공(白富公), 친종 장군 주원적(周元迪), 장군 석성주(石城柱), 시랑 이상돈(李尙敦), 낭중 송위, 염극권, 어사 신광한(申光漢) 등 12명과 대선사(大禪師) 연담(淵湛) 등 10여 명의 중들을 영남(領南)으로 귀양 보냈으며 홍기(洪機) 등 소군(小君) 10여 명을 섬으로 정배 보냈다.

최충헌과 최충수는 사람을 대궐로 보내서 왕을 강박하여 홀로 말을 타고 향성문(向成門)을 나가게 하여 창락궁(昌樂宮)에 감금(監禁)하고 중금 지유(中禁指諭) 정윤후(鄭允候)를 시켜 간수(看守)케 하였다. 그때 태자 왕숙(璹)은 내원(內園) 북궁(北宮)에 있었는데 최충헌 형제가 사람을 보내서 독촉하였으므로 태자는 비(妃)와 함께 도보로 궁문을 나와서 비를 맞으면서 역마(驛騎)를 타고 강화도로 쫓겨갔다.

그런 후 평량공 왕민을 맞아다가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케 했으니 그가 바로 신종(神宗)이며 그의 아들 왕연을 태자로 삼았다. 최충헌과 최충수는 군사를 데리고 추밀원으로 들어가서 각 위(衛)의 장군들을 구정(毬庭)에 주둔시키고 최충헌이 왕에게 청하여 내시 민식(閔湜) 등 70여 명을 내쫓았다. 그리고 세속에 임금이‘달애’ 우물 물을 마시면 고자가 득세한다는 전설이 있었으므로 그 우물을 허물고 광명사(廣明寺) 우물 물을 왕이 마시는 물로 지정한 것이다. 그런데 속어에 등리(藤梨)를 ‘달애’라고 하였다.

왕은 최충헌에게 정국 공신(靖國功臣) 칭호와 삼한대광 태중 대부 상장군(三韓大匡太中大夫上將軍)의 관직과 주국(柱國)의 작위를 주었고 최충수에게는 수성 제란 공신(輸誠濟亂功臣) 칭호와 삼한 정광 중대부 응양군 대장군 위위경 지 도성사(三韓正匡中大夫應揚軍大將軍衛尉卿知都省事)의 관직을 주국의 작위를 주었으며 박진재를 형부 시랑으로 삼고 최원호에게 영렬 우성 공신 삼중 대광 문하시중(英烈佑聖功臣三重大匡門下侍中) 벼슬을 추증했다.

최충헌은 또 추밀원사 최련(崔連)을 승주(昇州)에 귀양 보냈다.
이에 앞서서 태자가 창화백(昌化伯) 우(祐)의 딸로 비를 삼았었는데 이제 와서 최충수는 자기 딸로 태자비를 삼으려고 왕에게 굳이 청하니 왕도 불쾌히 여기게 되었다. 최충수가 짐짓 나인(內人)들에게 말하기를

“임금이 벌써 태자비를 내보냈는가”라고 하였는데 나인들이 이 말을 왕에게 고하니 왕도 부득이 태자비를 내보내었는데 태자비가 목이 메어 흐느껴 우니 황후도 눈물을 흘렸고 궁중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태자비는 드디어 미복으로 대궐을 나왔으며 최충수는 즉시로 기일을 정하고 공쟁이를 데려다가 혼례 치장을 크게 준비했다. 최충헌이 이 소식을 듣고 술을 가지고 최충수 집으로 가서 조용히 함께 술 마시다가 최충헌이 말하기를

“들으니 자네가 딸을 동궁에 바친다는데 그런 일이 있는가?”라고 하니 최충수는 “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최충헌이 타이르기를

“지금 우리 형제에게 일국의 세력이 집중되고 있으나 우리는 한미한 가문인데 만약 딸을 태자의 비로 넣는다면 세상의 비난이 없을 수 있는가! 하물며 부부 사이는 정의가 뿌리 깊은 것인데 태자가 비와 결혼한 지 이미 여러 해인데 일조에 떼어 놓는 것이 인정상 어떠하겠는가?

옛사람의 말에 앞차가 전복되면 뒤차가 경계한다 했는데 전자에 이의방이 딸을 태자비로 삼고 나서 끝내 남의 손에 죽었다. 그런데 지금 그 전철을 밟아도 좋을까?”라고 하였다. 최충수는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긴 한숨을 짓더니 말하기를

“형님 말씀이 옳으니 감히 듣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하고 드디어 공쟁이들을 되돌려 보냈다. 그런 후에 얼마 안 가서 또 생각을 달리 먹고 말하기를

“대장부는 제 할 일을 제가 결단하여야 한다”라고 하고 다시 공쟁이들을 불러 모아 여전히 준비를 독촉했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형의 말을 들어서 나도 대단히 기뻐했는데 또 어째서 이렇게 하는가?”라고 한즉 최충수는 노해서
“부인네들이 이랑곳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밀쳐서 땅에 쓰러 눕혔다.
최충헌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기를

“죄가 불효보다 더 큰 것은 없는데 이제 이처럼 모친을 모욕하니 나에게 대해서야 말할 것 있나! 말로서는 타이를 수 없겠으니 내일 아침에 우리 사람들을 시켜서 광화문(廣化門)에서 기다리다가 그의 딸을 궁중으로 들여 놓지 못하게 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최충수에게 이 말을 고하니 최충수도 또한 그의 도당에게 말하기를

“남이 나의 행동에는 아무도 간섭치 못하는데 형이 홀로 나를 제어코자 하는 것은 그 수하에 사람이 많은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내가 마땅히 그 무리를 깨끗이 없애 버릴 터이니 너희들도 힘써라!”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최충헌에게 고하니 최충헌은 그 부하들에게 울면서 말하기를

“최충수가 자기 딸로 동궁의 배필을 삼으려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임금자리를 엿보려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우리 사람을 모조리 없애려 하니 사태가 급박한데 그 대책을 어떻게 취하면 좋겠는가?”라고 하니 여러 사람이 박진재를 청해서 토의하자고 말하였으므로 최충헌은 즉시 박진재, 김약진, 노석숭들을 불러다가 일의 경위를 고하니 박진재가 말하기를

“당신의 형제는 다 같이 나의 외숙인데 무슨 정리상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국가의 운명이 이번 일에 달렸으니 아우를 도와 주고 역적이 되는 것이 어찌 형을 도와 육순(六順)의 도리를 지키는 것만 하겠는가! 그리고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 하였으니 나는 마땅히 김약진, 노석숭 등과 함께 군사를 인솔하고 조력하겠다”라고 하였으므로 최충헌은 크게 기뻐했다.

그날 밤 3경에 최충헌은 1천여 명의 병정을 거느리고 고달고개(高達坡)를 경유하여 광화문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고하기를

“내일 아침에 최충수가 반란을 일으키려 하므로 내가 사직(社稷)을 보위코자 하니 속히 왕 앞에 전달하라!”

라고 하였다. 문지기가 보고하니 왕은 대경하여 즉시 문을 열어 맞아들여 구정(毬庭)에 주둔시키게 하였으며 또 무기고의 병장기를 금군에게 주어 경비하게 하였다. 각 위(衛) 장군들도 군사를 영솔하고 앞을 다투어서 달아 나왔다. 최충수가 이 소식을 듣고 공포를 느끼며 그의 도당들에게 말하기를

“아우로서 형을 공격하는 것은 도덕에 어그러지는 일이다. 내가 모친을 모시고 구정으로 들어가서 형 앞에서 사죄하겠으니 너희들은 각각 도망쳐 떠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였더니 장군 오숙비(吳淑庇), 준존심(俊存深), 박정부(朴挺夫) 등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평소에 당신의 문객으로 지내 온 것은 당신의 영용한 기개(氣慨)를 사모한 까닭인데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이처럼 비겁하니 이렇게 되면 우리들을 멸족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한 번 싸워 보고 승부를 다투기로 해주시오”

라고 하였다. 최충도 승낙하고 동틀 무렵에 병정 1천여 명을 영솔하고 십자가(十字街)에 주둔하고 약속하기를

“있는 힘을 다하여 전투하라! 저편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는 소살자의 관직을 주겠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최충수의 군사들은 여러 장수들이 모두 최충헌의 편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고립무원함을 깨닫고 슬금슬금 도망갔다.

최충헌은 광화문(廣化門)을 나와서 저자 거리를 향해서 내려오고 최충수는 광화문을 향해서 올라가다가 홍국사 남쪽에서 마주쳐서 교전했는데 박진재, 김약진, 노석숭은 각각 그 도당을 인솔하고 하나는 진고개(泥峴)를 넘고 하나는 모래재(沙峴)를 넘고 또 하나는 고달고개(高達坂)를 넘어서 서로 호응하면서 전후로 협공하였으며 최충헌은 어고(御庫)의 대각노(大角努)를 가지고 마구 쏘아 화살이 비오듯 내렸다. 그래서 최충수의 일당은 낭하 문짝을 뜯어서 방패삼아 막았으나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괴주하니 최충수가 말하기를

“오늘의 패배는 천명이다. 형은 임진강 이북에서 살고 나는 임진강 이남에서 살겠다”

라고 하면서 즉시 오숙비 준존심 등과 함께 말을 달려 보정문으로 가서 수문(守門) 군사를 죽이고 성문을 나와 장단(長湍) 나루를 건너 파평현(坡平縣), 금강사(金剛寺)에 도착했을 때 추격한 사람이 잡아 죽이고 그의 수급을 서울로 전송(傳送)했다. 최충헌이 소리 내어 울면서 추격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사로잡으려고 했는데 어찌 갑자기 죽였는가?”

라고 하고 사람을 보내서 시체를 거두어 장사해 주었다. 왕이 논공(論功)하고 유사(有司)에게 조서를 내려 최충헌의 화상을 벽 상에 그리게 하고 그 부모에게 작호(爵號)를 추가하였으며 최충헌은 지주사지어사대사(知奏事知御史臺事)로 승임했다.

원년에 최충헌 집종, 만적(萬績) 등 6명이 북산(北山)으로 나무하러 가서 공사(公私) 노예들을 모아 놓고 모의하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경인년 이래 고관 대작이 천민 노예에서 많이 일어났다. 대장이나 정승이 본래 종자가 있겠는가! 시기만 만나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어찌 채찍 아래에서 뼈 빠지게 천역만 하겠느냐!”

라고 하니 모든 노예들이 찬성하고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썰어 장마다 정자(丁字)를 새겨서 표식으로 하고 약속하기를

“우리들은 흥국사 낭하로부터 구정(毬庭)에 이르는 사이에서 일시에 집결해 가지고 북 치며 고함치면 궁중에서도 내수(內竪)들이 반드시 내응할 것이며 관노들은 궁중에서 처단할 놈들을 죽일 것인즉 우리들은 성 중에서 봉기하여 먼저 최충헌 등을 죽이고 이어 각자는 자기 주인 놈을 때려 죽일 것이며 종문서(奴婢文券)를 불태워 버리자! 그럼으로써 이 나라에 다시는 천인이 없게끔 만들면 어떤 고관 대작일지라도 우리들이 누구나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기일이 되어서 모두 모였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불과하였으므로 성사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다시 보제사(普濟寺)로 모이기로 약속한 후 경계하여 말하기를

“일의 비밀을 보장 못하면 성사하지 못하니 누설치 않도록 조심하라!”

라고 하였다. 그러나 율학 박사(律學博士) 한충유(韓忠愈)의 집종(家奴) 순정(順貞)이 한충유에게 밀고하고 한충유가 최충헌에게 고발하여 드디어 만적 등 1백 여 명을 체포해서 강물에 던져 죽이고 한충유에게는 합문지후(閤門祗候) 벼슬을 주었으며 순정에게는 은 80냥을 주고 노비 적에서 삭제하여 양민으로 만들었다. 그 밖에 잔당들은 모두 다 죽일 수 없어서 불문에 부치겠다는 조서를 내렸다.

이듬해 최충헌은 병부상서로서 지이부사(知吏部事)를 겸하여 아침에는 병부(兵部)로 가고 낮에는 이부(吏部)로 가서 문무 관의 전주(銓注) 사업을 처리하였다. 또 궁중에 출입할 때면 호위병을 데리고 다니었다.

전부터 최충헌은 김준거 형제가 딴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의심하고 김준거를 황주 목수(黃州牧守)로, 아우 김준광(金俊光)은 상주(尙州) 목수로 각각 강직시켰더니 김준거는 정사를 돌보지 않고 용사를 초모하여 항시 사냥하는 것으로 일삼았다. 그리고 박진재는 문객이 무려 수백 명인데 그 중에 신기지유(神騎指諭) 이적중(李勣中)이란 자와 가장 친근했다. 이적중이 비밀히 준거를 불러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는데 그때 김준광은 안변부사(安邊府事)로 전근되어 있었는바 김준기는 은밀히 그와 공모하고 이어 황주 사람으로 힘 있고 용감한 장사를 서울로 잠입시켰다. 이 일을 김준거의 장인 낭장 김순영(金純永)이 최충헌에게 밀고하였으므로 최충헌은 문졸(門卒)을 파견하여 김준거를 잡아 죽이고 각처에서 그 도당을 체포하여 죽이거나 귀양 보냈으며 그들의 처자는 모두 노비로 삼았다. 김준거의 부친 평장사 김영존(永存)은 늙어서 죽이지는 않고 황려현(黃驪縣)으로 정배(定配) 보냈다. 그리고 어사 중승 강순의(康純義), 내시 정공필(丁公弼) 등을 파견하여 안변에서 김준광을 잡았는데 김준광은 백령역(白嶺驛)까지 나왔다가 일이 실패된 소식을 듣고 되돌아가서 있었는데 그때 정공필이 기은별감(祈恩別監)이라 속이고 안변읍으로 왔으므로 김준광이 관복(官服)을 입고 마중 나온 것을 정공필이 초노(抄奴)에게 명령하여 포박해다가 고문했으나 복죄하지 않으므로 죽였다. 이적중은 도피했으나 그 후 잡혀 죽었고 김순영은 그 공으로 장군이 되었으며 정공필 등 5명도 모두 다 벼슬이 승진되었는데 각각 차등이 있었다. 이어 최충헌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벼슬을 주었으며 또 이듬해에는 삼중대광수태위상주국(三重大匡守太尉上柱國) 벼슬을 주었다.

조준(趙準)이란 자는 최충수의 사위인데 최충헌이 그에게 중요한 관직을 주고자 생각하고 호부시랑(戶部侍郞)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벼슬을 제수했다.
최충헌은 자신의 전횡(專橫)한 소행을 생각하고 어느 때 무슨 사변이 생길는지 몰라서 무릇 문관, 무관, 한량(閒良) 군졸 중에서 월등하게 힘센 자는 모두 불러모아서 6개 반으로 편성하여 교대로 자기 집에 숙직케 하고 이것을 도방(都房)이라 불렀다. 그가 출입할 때는 당번이 옹위하기를 마치 전쟁 마당에 나가는 듯 하였다.

신종 4년에 최충헌은 추밀사이병부상서어사대부(樞密使史兵部尙書御史大夫)가 되었다.

신종 5년부터는 최충헌은 자기 집에 앉아서 내시이부원외랑(內侍史部員外郞) 노관(盧琯)과 더불어 문무 관원들을 임면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왕에게 보고하면 왕은 고개만 끄덕이고 두 부(部)의 판사들도 정당(政堂)에 앉아서 단지 그 문건을 볼 따름이었다. 이처럼 최충헌이 정권을 잡고 독판치며 친근한 사람의 부탁이나 혹은 뇌물을 받아서 마음에 드는 자에게는 모두 벼슬을 주었다. 어느 때 최충헌이 손님을 초대하고 연회를 차렸는데 중방(重房)성원으로 힘센 자들에게 수박(手搏)을 붙이고 이기는 사람에게는 즉석에서 교위대정(校尉隊正) 벼슬을 상으로 주었다.

노관은 최충헌의 외친(外親)인데 시정배 출신으로 성질이 약삭빠르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었으므로 최충헌이 매우 총애하였다. 이로 인하여 수년 동안에 벼슬이 이부낭중(史部郞中)으로 뛰어올랐으며 문전에는 차마가 밀리고 그 기세는 날로 성하였으며 친척은 모두 현관으로 되고 뇌물을 공공연히 받아 먹었다. 그 후 안서도호부사(安西都護府使)로 나갔다가 금의(琴儀)와 교대되었다.

충주판관(忠州判官) 최효기(崔孝基)는 최충헌의 애첩 월부(月符)를 통하여 서대(犀帶)를 최충헌에게 뇌물로 주었더니 최충헌이 매우 만족해서 특별히 최효기를 내시 직에 등용했다.

용호군(龍虎軍)에 속한 군사 중미(仲美)가 최충헌의 심부름 온 것으로 가장하고 무기를 지니고 봉주(鳳州) 일흥창(日興倉)으로 가서 백성들에게서 토색질하여 은과 비단을 모아 가지고 역마(驛馬)에 실어 제 집으로 보내는 것을 어떤 사람이 잡아다가 고발하였다. 최충헌은 그를 가구소(街衢所)에 보내서 심문한 후 죽여 3일간 저자에 효수하고 국내에서 무기의 휴대를 금지하였다.

최충헌의 사위 임효명(任孝明)이 과거(科擧)에 급제했으므로 왕은 즉시 내시(內侍)에 속하게 하고 교지(敎旨)를 내려서 임시로 각문지후(閣門祗候) 벼슬을 주었다. 박진재는 호사로운 성대한 축하연을 배설했고 최충헌은 손님들을 데리고 갔다. 신급제(新及第) 임효명의 문전을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불러 들여서 술상을 차려 주었는데 그것이 극히 사치스러웠으며 또 고달고개(高達坡)로부터 가조리(加造里)에 이르는 사이에 연이은 채붕(彩棚)을 매고 기악(伎樂)과 잡희(雜戱)를 크게 벌여 놓아 구경꾼이 담을 이루었다.

경주에서 반란이 발생했으므로 최충헌이 3품(品) 이상의 문무 관원을 자기 집으로 소집하고 대책을 토의했다. 모두 다 말하기를

“우선 사신을 보내서 회유해 본 후에 출병(出兵)함이 가하다”

라고 하였으므로 병부낭중 송효성(宋孝成)과 형부원외랑 박인석(朴仁碩)을 파견하여 설유했으나 적이 순송치 않았으므로 최충헌은 대장군 김척후(金陟侯) 등을 병마사(兵馬使)로 임명하고 토벌케 하였으며 김척후 등이 부대를 영솔하고 출발할 때 최충헌은 그 아들 최이(怡)와 박진재를 데리고 길가 고루(高樓)에 올라가서 관병(觀兵)하였는데 대병력을 풀어서 일대 시위를 했다. 최충헌에게 수태부참지정사이병부상서판어사대사(守太傅參知政事吏兵部尙書判御史臺事) 벼슬을 주었다. 6년에는 중서시랑평장사이부상서태자소사(中書侍郞平章事吏部尙書太子少師)로 승진되었다.

그때 가동들이 나무하러 간다고 핑계하고 모여서 분대를 편성하고 동교(東郊)에서 전투 연습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최충헌이 사람을 파견하여 체포케 하였더니 대부분 도망치고 겨우 50여 명을 잡아다가 고문한 후 모두 강물에 던져서 죽였다.

춘주(春州)는 그전에 안변주(安邊州)에 속했었는데 도로가 험난하였으므로 고을사람들이 최충헌에게 거액의 뇌물을 보내고 춘주를 승격해서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로 만들었다.

어느 날 최충헌이 왕궁으로 들어갔는데 어사대관(御史臺官)이 여경문(麗景門)에서 영접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잡단(雜端) 금의는 최충헌의 말(馬) 앞에 서서 이야기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가 아첨한다고 비난했다.

7년에 30여 명이 급사동정(給事同正) 지구수(池龜壽)의 집에 회합하여 최충헌을 암살할 것을 모의하였는데 일이 발각되어 지구수가 도망갔으므로 사람들이 그 아우 지구영(池龜永)을 잡아서 최충헌에게 고했다. 최충헌이 국문한즉 지구영이 말하기를

“장군 이광실(李光實)이 주모자이다”

라고 했으므로 이광실을 잡아다가 추궁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전부터 너의 불초(不肖)한 줄은 알았으나 단지 오랜 친구여서 장군 벼슬을 주었는데 네가 그럴 수 있느냐!”

라고 꾸짖었으나 이광실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에 이광실은 섬으로 귀양보냈다.

희종(熙宗)이 즉위한 후 최충헌은 벽상삼한삼중대광개부의동삼사수태사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상장군상주국판병부어사대사태자태사(壁上三韓三重大匡開府儀同三司守太師門下侍郞同中書門霞平章事上將軍上柱國判兵部御史臺事太子太師) 벼슬을 주었으며 왕은 특별히 최충헌에 대해서는 자기를 추대하여 즉위하게끔 한 공로가 있다고 해서 특후한 예우(禮遇)를 했으며 언제나 그를 ‘은문상국(恩門相國)’이라고 불렀다.

양광도 안찰사 곽공의(郭公儀)는 탐욕스럽고 야비한 사람이어서 관하의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으므로 해당 관리가 그의 부하 아전을 대신으로 잡아다가 국문했다. 곽공의는 전부터 최충헌의 바둑 친구로서 친근한 덕으로 그의 아전만 곤장 치고 그만두었다.

원년에 최충헌에게 내장전(內莊田) 1백 결(結)을 주고 또 특진알모일덕안사제세공신(特進홯謀逸德安社濟世功臣)의 칭호와 문하시중(門下侍中) 진강군개국후(晉康郡開國侯)의 관작(官爵)을 주었으며 식읍(食邑) 3천 호에 실봉(實封) 3백 호를 주었다.

최충헌이 남산리(男山里) 자기 집 옆에 정자를 짓고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급제(及第) 최이가 ‘쌍송시(雙松詩)’를 짓고 양제(兩制－한림학사와 지제고) 문사들이 모두 시를 지어 화답했는바 최충헌은 노숙한 선비 백광신(白光臣) 등을 초청하여 그것을 평하게 하였다. 그때 급제 정공분(鄭公賁)의 시가 제1위로 당선되고 최충헌은 그 시를 왕에게 고하니 왕이 정공분을 불러서 내시(內侍)에 속하게 했다.

2년에 왕이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문하시중 진강후 최충헌은 선군(先君)의 재위(在位) 때, 그리고 내가 왕통 계승 때로부터 오늘까지 충성을 다해서 나를 도와서 큰 공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부(府)를 세워 줌으로써 높이 표상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사(禮司)와 추밀원에 명령하여 도감(都監)을 내고 사신을 파견하여 최충헌을 진강후(晉康候)로 책봉하고 부를 설립해서 ‘흥녕부(興寧府)’라고 하였으며 속료(屬僚)를 배치고 흥덕궁(興德宮)에 속하게 하였다. 최충헌은 남산리 자택에서 왕명을 맞이하였는데 종친(諸王)들은 모두 그 집으로 축하하러 왔다. 예식이 끝난 후 책사(冊使)를 위하여 연회를 배설하고 또 선물로 서대(犀帶), 은, 능견(綾絹), 안마(鞍馬) 등을 매우 후하게 주었으며 그 외에 독책(讀冊) 이하 집사(執事)들에게도 은과 능견을 차등 있게 각각 선물했다. 또 밤이 깊어지도록 종친들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어 주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왕에게 고하고 책봉 정부사(正副使)를 하룻밤 유하게 하였다. 그 휘장 장식, 화과(花果), 풍악, 가무(歌無)의 성대함이 삼한이 생긴 이래 신하의 집으로서 으뜸이었다.

그 후 최충헌은 궁중 출입 때에 평시 의복을 입고 일산을 드리우고 시종을 데리고 다녔으며 문객(門客)이 3천 명에 가까웠다. 당시 통역으로 근무하는 내전숭반(內殿崇班) 우광유(于光儒)가 임시 지합문지후(知閤門祗候)가 되었는데 성랑(省郞)이 의논하기를 우광유는 남반(南班)에 속한 사람인데 이제 참직(參職)으로 임명하는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라고 수개월 간이나 두고 고신(告身)에 서명치 않았다. 이때 최충헌이 성랑을 보고 말하기를

“우광유는 전자에 북조(北朝) 사신을 접대하면서 훌륭히 응대하는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참직을 주었는데 왜 제도만 가지고 고집을 하느냐!”

라고 하니 성랑이 즉시 서명했다.

왕은 최충헌에게 중서령(中書令) 벼슬과 진강공(晉康公) 작을 주었으나 최충헌은 사양하고 관작을 받지 않았으며 그 다음해에 또다시 중서령 진강공의 관작을 주었더니 최충헌이 말하기를

“공(公)이란 작위 5등의 최고위이며 중서령(中書令)이란 신하로서 더 없는 고관이다”

라고 하고 종내 받지 않았다. 이에 앞서서 어떤 사람이 익명방을 붙였는데

“장군 박진재는 그의 외숙 최충헌을 제거할 음모를 한다”

라고 하였다. 이로 하여 두 집 사이는 틈이 생겼는바 이때에 와서는 박진재가 대장군으로 있으면서 문객의 수가 최충헌과 비슷하고 그들 모두가 용맹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박진재는 자기의 문객들에게 벼슬을 적게 준다고 항상 불평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언제나 술기운이 들면 최충헌은 옳지 않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만약 최충헌이 없다면 국권을 독차지할 수 있다고 보면서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유언을 전파시켜 말하기를

“우리 외숙은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졌다”

라고 했으며 매양 문객들에게 말하기를

“하루의 영화야 없을 수 있는가?”

라고 하였다. 최충헌은 박진재가 반드시 자기를 모해할 것을 알고 박진재를 불렀으므로 박진재가 가서 뜰 아래에서 배알하니 최충헌은 앞으로 오라고 불러 세우고 말하기를

“네가 무슨 까닭에 나를 해할 생각을 하느냐!”

라고 하고 드디어 좌우에 명령하여 그를 결박하고 다리 힘줄을 절단해서 백영진(白翎鎭)으로 귀양 보냈다. 그곳에서 수개월 있다가 병으로 죽었다. 또 그의 문객 중에서 용맹스러운 자들은 먼 섬으로 분산해서 정배 보냈다.

4년에 왕이 최이(崔怡) 집으로 이어(移御)하였을 때 최충헌은 왕의 행차를 마중하여 활동(闊洞) 자택에서 왕을 위하여 축수의 연회를 베풀었는데 여러 종친들과 재추들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그 연회는 이튿날에야 끝났다. 그런데 비단으로 된 채붕(綵棚)들과 중국과 북방(北方)의 각종 놀이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이상스러운 구경거리였다. 그 후 수개월이 지나서 임금이 재추(宰樞)들을 위한 연회를 배설하고 격구(擊毬)를 관람하면서 최충헌에게 옥띠(玉帶) 1개, 통천과대 1개, 남방에서 생산하는 순금 15근, 금으로 새긴 향(香) 담는 은반(銀盤) 2개를 주었다.

5년에 청교역리(靑郊驛史) 3명이 최충헌 부자(父子)를 살해할 음모를 하고 공첩(公牒)을 위조해서 각 절의 승도(僧徒)를 초모하였는데 그 공첩이 귀법사(歸法寺)에 전달되자 중이 문서를 가지고 온 자를 잡아다가 최충헌에게 고했으므로 즉시로 교정별감(敎定別監)을 영은관(迎恩館)에 두고 성문을 닫고 대대적으로 그 일당을 수색했다. 청교 사람들이 우복야(右僕射) 한기(韓琦)도 공모했다고 걸어 넣어서 한기와 그 아들 3형제를 죽이고 그 외에 장군 김남보(金南寶) 등 9명을 죽였으며 그 종자(從者)들을 먼 섬들로 귀양보냈다.

이듬해에 무기명 투서가 최충헌의 집으로 들어왔는데 이르기를

“직장 동정(直長同正) 원서와 재상 우승경(于承慶)이 최충헌을 암살코자 한다”

라고 하였으므로 원서를 체포해서 문초한즉 원서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이 투서는 반드시 나와 원수진 유익겸(庾益謙)의 소위이다. 전에 유익겸이 나에게서 은병(銀甁) 2개를 빌리어 간 일이 있었는데 몇 해가 지나도록 갚지 않고 어디로 도망가고 오지 않아서 누차 그의 처자에게 독촉하여 그 집을 빼앗았다. 그러니 이것은 반드시 유익겸의 소위이다”

라고 하였으므로 최충헌이 사람을 보내 유익겸의 집을 수사하였더니 과연 투서의 초안이 발견되어서 그를 섬으로 귀양보냈다.

최충헌이 일찍이 활동에 자택을 지었을 때 민가 1백여 채를 허물고 되도록 굉장하고 화려하도록 힘써서 집 둘레가 몇 리나 되었으며 규모가 대궐과 비슷하였다. 그리고 북쪽으로 시가지 전방(廛房)을 향해서 ‘십자각(十字閣)’이라는 별당을 지었다. 이 공사에서 토목 부역이 극심해서 국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며 또 헛소문이 돌기를

“비밀히 동남(童男), 동녀(童女)를 잡아다가 5색 옷을 입혀서 집터의 4귀에 생매장하여 토목(土木)의 재기(災氣)를 물리친다”

라고 하였으므로 어린애 있는 집에서는 모두 아이들을 깊이 감추었고 심지어 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도망가는 자까지 있었다. 그리고 간혹 무뢰배들은 소아를 잡아가는 척하여 놀란 부모들에게서 많은 재물을 받고서 아이를 두고 가는 일까지 생겼다. 그래서 최충헌은 어사대(御史基)를 시켜 시가지에 방(榜)을 붙여 이르기를

“사람의 목숨이 가장 귀중한 것인데 어찌 생매장하여 재앙을 물리칠 이가 있겠는가! 만약 어린아이를 잡는 자가 있으면 잡아다가 관아에 고발하라!”

라고 하였다. 그 후 요언이 점차 사라졌다.

최충헌의 권세가 임금을 압도하고 위엄이 일국을 흔들게 되었으며 자기 뜻을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즉시로 죽였으므로 모두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대장군 노준(盧俊)의 아들 노인우(盧仁祐)는 최충헌의 인척이어서 그 좌우에 가까이 있으면서 미친 척하고 여러 번 입바른 말을 하였으므로 최충헌의 미움을 받아 인주(仁州) 원으로 강직당하였다. 그 후 임기가 차서 조정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최충헌이 셋째 집을 짓고 금, 은 보화며 돈과 양곡을 많이 저장해 두고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부(府)의 창고에 저장해 둔 것 외의 금은 보화는 왕부(王府)에 헌납해서 국가 비용에 보탬이 되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라고 하니 모두 다 말하기를

“좋은 일이다”

라고 하였으나 노인우는 말하기를

“그럴 것 없이 그대로 두어 경비로 쓰고 다시는 백성들에게서 더 긁어 들이지 않는 것이 더욱 좋겠다”

라고 하였으므로 최충헌은 부끄러워서 낯을 붉혔다.

하루는 최충헌이 무슨 일이 있어서 수창궁(壽昌宮)으로 가서 왕을 배알하였는데 조금 있느라니까 왕이 내전으로 들어가고 중관(中官)이 나와서 최충헌을 시종하는 사람들을 속이어 말하기를

“임금의 분부로 주식을 준다”

라고 하고 궁중 깊이 유인하여 데려간 후에 복도에서 갑자기 중과 속인(俗人) 10여 명이 무기들을 들고 뛰어나와서 최충헌의 하인을 몇 사람 때려 눕혔다. 이에 최충헌은 사변이 생긴 줄 알고서 당황해서 임금에게 말하기를

“주상은 저를 구원하여 주시오”

라고 하였으나 임금은 잠자코 문을 닫고 들여 놓지 않았다. 그래서 최충헌은 어찌 할 도리가 없어서 지주사(知奏事) 방(房) 문창지 틈에 숨어 있었더니 중 하나가 세 차례나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 김약진과 최이의 장인 지주(知奏) 정숙첨(鄭淑瞻)이 중방(重房)에 있다가 일이 위급한 것을 알고 즉시 들어가서 최충헌을 구출해 내었고 최충헌의 도당 지유 신선주(申宣胄), 기윤위(奇允偉) 등은 중들과 서로 얽히어 격투가 시작되었다.

최충헌의 도방(都房) 6번들이 궁성 밖에 집합해 있었으나 최충헌의 생사(生死)를 몰랐는데 다봉(茶捧) 노영의(盧永儀)란 자가 최충헌을 따라서 내전에 들어가서 있다가 대궐 지붕 위로 올라가서 큰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우리 집 대감이 무고하다.”

라고 하였으므로 도방들이 앞을 다투어 궁중으로 돌입해서 최충헌을 구출했고 중의 무리는 패해서 도망갔다. 이때 김약진이 최충헌에게 말하기를

“내가 군사들을 인솔하고 궁으로 들어가서 궁중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죽이고 또 임금도 처단하겠다”

라고 하였으나 최충헌은 말하기를

“그렇게 하면 나라는 장차 어찌 되느냐, 후세의 말거리가 될까 두려우니 너는 경거망동하지 말라!”

라고 하고 상장군 정방보(鄭邦輔) 등을 시켜서 사약 정윤시(鄭允時)와 중관(中官)을 체포하여 인은관(仁恩館)에 가두고 국문한 결과 주모자는 내시낭중 왕준명(王濬明)이요, 참정(參政) 우승경(于承慶) 추밀 사홍적(史弘績) 장군 왕익(王翊) 등이 공모자로 판명되었다. 최충헌은 왕을 원한하고 폐위시켜서 강화도로 보냈다가 이어 자연도(紫燕島)로 옮겼으며 태자 왕지(祉)는 인주(仁州)로, 덕양후(德陽侯) 서(恕)를 교통(喬洞)으로, 시녕후(始寧侯) 의를 백령도(白翎島)로 각각 추방한 후 최이와 평장사 임유(任濡)를 파견하여 한남공(漢南公) 정(貞)을 그 집에서 맞아다가 강안전(康安殿)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는데 그가 강종(康宗)이다. 최충헌은 왕준명과 우승경, 사홍적, 왕익 등을 외지로 귀양 보냈다. 강종은 충헌의 흥녕부를 진강부(晉康府)로 고치고 문경무위향리조안공신(文經武緯響理措安功臣) 칭호를 주었다.

고종(高宗) 원년에 최충헌의 처 임씨(任氏)를 수성택주(綏成宅主)로 왕씨를 정화택주(靜和宅主)로 삼았다. 임씨는 본시 장군 손홍윤(孫洪胤)의 처인데 최충헌이 손홍윤을 죽이고 그의 용모가 아름다운 것을 알고 처로 삼았으며 왕씨는 강종의 서녀(庶女)이다.

그 후 최충헌은 별제(別第)로 이사하였는데 무장한 위병이 몇 리 사이에 가득 찼으며 조정의 관원들도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았다. 이전에는 재상으로서 수행하는 자가 없었는데 이때에 첨서(簽書) 추밀원사(樞密院事) 금의(琴儀)와 추밀원부사 정방보(鄭邦輔)가 처음으로 최충헌을 수행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겼다.

최충헌이 장군 이광유(李光裕)를 파견하여 희종을 교동으로 옮겨 두었는데 이광유가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왕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으며 또 공급이 결핍되어 쌀 6섬밖에 없습디다”

라고 했더니 최충헌은 낯빛이 변해지며 모진 목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어질지 않았더면 왕 부자의 목이 오늘날까지 붙어 있었겠느냐! 왕준명의 사건을 회상하면 나의 모발이 모두 곤두선다”

라고 하였다.

3년 5월 단오(端午)에 최충헌이 백정동궁(栢井洞宮)에다 그네를 매고 3일간에 걸쳐서 4품 이상의 문무관을 초청해서 연회를 베풀었다. 최충헌이 때때로 중방(重房) 장군방(將軍房)에 출입했는데 그럴 때는 반드시 채붕(綵棚)을 가설하고 맞이하여 큰 연회를 차렸으며 돌아갈 때에도 그와 같이 하였다.

최충헌은 일찍이 나라가 부유하고 병력이 강대하다고 자인하고 변방에서 적의 침입을 급보할 때마다 꾸짖어 말하기를

“무슨 사소한 사건을 가지고 역마를 괴롭히고 조정을 놀라게 하느냐!”

하면서 보고하러 온 사람을 귀양 보냈으므로 변방에서 경비하는 장수들의 마음이 모두 이반하여 말하기를

“그럴진대 적병이 2∼3곳의 성을 함락시킬 때까지 기다려서 급보하는 것이 옳겠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와서 거란의 군사가 침공해 오니 서울에는 아무런 방비가 없어서 인심이 흉흉해졌으며 모두 최충헌을 원망했다.

전에 이지영(李至榮)이 삭주분도장군(朔州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양수척(楊水尺)이 흥화(興化), 운중도(雲中道)에 많이 거주했는데 이지영은 양수척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본래 부역이 없으니 나의 기생 자운선(紫雲仙)에게 예속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드디어 자운선이 그 명부를 적어 두고 공납을 끝없이 징수하였으므로 이지영이 죽고 최충헌이 또 자운선을 첩으로 삼은 후부터는 인구를 조사해서 공납을 더욱 심하게 징수했다. 그러므로 양수척들의 원망이 대단했는데 거란병이 침입하자 그들이 마중 나가 항복하고 길 안내를 한 까닭에 적병이 산천, 요해지며 도로의 원근을 모조리 알았다. 본래 양수척은 태조가 백제를 공격할 때에도 제어하기 어렵던 사람들의 후손인데 본시 관적(貫籍)도 부역도 모르며 즐겨 수초(水草)를 따라서 유랑생활을 하면서 사냥이나 하고 버들 그릇을 엮어서 팔아 먹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 대체로 기생(妓生) 종자는 근본이 유기쟁이(柳器匠)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후에 양수척들이 익명서를 붙였는데 이르기를

“우리들이 반역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기생집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여 거란 외적에 투항하여 길 안내가 되었다. 만약 조정에서 기생의 무리와 순천사주(順天寺主)를 처단해 준다면 당장 창끝을 돌려 대고 나라를 위하여 일하겠다”

라고 했다. 최충헌이 듣고 즉시로 기생 자운선 상임홍(上林紅)을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그리고 순천사주는 세만 믿고 방자했으며 기생들과 난잡한 행동을 한 자인데 이 소식을 듣고 도망했다. 그때 장수들을 파견하여 거란병의 침략을 방어하였는데 용맹하고 쓸 만한 사람들은 모두 최충헌 부자의 문객이었으며 관군이란 약질로 쓸모가 없었다. 그때 최충헌은 가병(家兵)을 열병하였는데 좌경리(左梗里)로부터 우경리(右梗里)에 이르는 어건에 몇 겹으로 대열을 편성했는바 그 길이가 2∼3리나 되었다. 그리고 창대에다가 은병을 3개, 혹은 4개씩 달아 매어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보이면서 병정을 모집했다. 최이의 가병은 선지교(選地橋)에서 숭인문(崇仁門)까지의 사이에서 깃발과 북을 가지고 전투 연습을 했다. 그리고 문객 중에서 관군으로 가겠다는 사람은 즉석에서 먼 섬으로 귀양 보냈다.

최충헌이 자기 집에서 전투 연습을 검열하였는데 댓돌이 높아서 말(馬)이 올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으로 말처럼 짜서 들락날락하면서 서로 싸웠으며 또 거란 장군이 금패를 차고 있는 모형을 만들어 잡아다가 목을 베고 개가를 부르며 돌아왔고 또 기생들을 가장하여 봉래선녀(蓬萊仙女)가 축하하러 온 것처럼 연출시켜 놓고 최충헌은 대단히 즐겁게 관상하면서 은병과 명주 포목을 상주었다. 그 가운데서 시어사(侍御史) 김주정(金周鼎)이 황색 등거리(背衫)를 입고 대오 속으로 들어가서 전투 연습을 했으므로 식자들이 야비하게 여겼다.

평주(平州)에서 거란병 2명을 생포해 보내 왔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아군이 이 달 그믐날에 서울을 침공할 계획이다”

라고 하였다. 최충헌은 이 말을 듣고 신선주(申宣胄), 기윤위(奇允衛) 등으로 하여금 시가지에 군대를 집결하게 하고 최충헌 부자는 수만 명의 군사를 데리고 자기의 신변을 호위했으며 최이는 선의문(宣義門) 밖에서 군력을 시위했다.

4년에 최충헌 부자는 자기 집에서 큰 무력을 늘어놓고 계엄(戒嚴)하고 있었다. 그 때 거란병이 박근하여 왔으므로 백관(百官)에게 성을 수비시켰으며 성 밑의 인가들을 허물어 버리고 참호를 팠다.

당시 흥왕사(興王寺), 홍원사(弘圓寺), 경복사(景福寺), 왕륜사(王輪寺) 안양사(安養寺), 수리사(修理寺) 등의 중으로서 종군한 자들이 최충헌을 살해할 것을 음모하였다. 그리하여 패전하여 달아 온 것처럼 가장하고 새벽녘에 선의문으로 와서 급하게 호통치기를 거란병이 벌써 들어왔다고 하였으나 문지기 군사가 막고 들여 놓지 않았으므로 중들은 북을 치고 고함치면서 수문 군사 5∼6명을 죽이고 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낭장(郞將) 김덕명(金德明)이란 자가 일찍이 음양설(陰陽說)을 가지고 최충헌에게 곱게 보여서 벼슬이 지태사국사(知太史局事)로 승진되었었다. 그가 바친 바 신력(新曆)은 모두 구력법(舊曆法)을 변작한 것이어서 일관(日官)이나 대간(臺諫)들이 내심으로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으나 최충헌이 두려워서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는 자주 공사(工事)를 시작해서 각 사찰들의 재산을 소모하였으므로 중들이 모두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중들은 먼저 그의 집을 파괴하고 최충헌의 집으로 향해서 들어가다가 저잣거리에서 순검군(巡檢軍)에게 쫓겨 신창관(新倉館)에 이르렀다. 이때 전투가 벌어졌는데 최충헌은 가병을 파견해서 협공(挾攻)하였으므로 중의 두목이 화살에 맞아서 쓰러지고 그 졸도들은 도망을 쳐서 신이문까지 왔으나 현문(縣門)이 내려서 나가지 못하고 드디어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 추격하던 최충헌의 군사가 3백여 명의 중들을 죽이고 그 일당을 생포해서 국문했더니 사건이 중군(中軍) 원수 정숙첨(鄭叔瞻)에게 관련되었다. 그 이튿날 최충헌은 성문을 닫고 도망한 중을 대수색하여 모두 죽였다. 때마침 큰 비가 내려서 피가 개울물처럼 흘렀으며 또 남계천(南溪川) 가에서 중 3백 여 명을 죽여서 전후 거의 8백여 명의 중들을 죽였으므로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몇 달 동안은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했다.

최충헌은 태창(太倉)을 열고 가병(家兵)과 서울에 있는 5령(領) 군사들에게 5일간의 식량을 주고 주야로 계엄하였는데 기후가 심히 추워서 군사들이 길가의 버드나무를 찍고 또 공가(公家)의 재목을 훔쳐다가 우등불을 놓고 방한하였다. 거란병이 선의문 밖까지 쳐들어와서 황교(黃橋)를 불 태우고 물러 나가니 조정 내외가 크게 들끓었다.

전자에 김덕명이 최충헌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현종이 목종의 능(陵)을 개장하고 경술년(庚戌年) 거란병의 침략을 초래하였고 이번에는 후릉(厚陵)을 그 옆에 장례하고 거란병이 또 침략해 왔으니 이것은 아마도 풍수(風水)로 그런 것인즉 속히 개장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니 최충헌이 옳게 생각하고 개장하기 위해서 택일을 지시했으나 사천대(司天臺)에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즉시로 택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최충헌은 판사 최계량(崔季良)을 고란도(高鸞島)로 귀양 보냈고 그 후 또 대장군 이부(李孚)를 섬으로 귀양 보냈다. 이부는 지혜와 용기가 있고 기마와 궁술도 능숙했으며 사졸들의 인심을 얻어서 큰 일을 위임할 만하였으므로 듣는 자들이 애석히 여겼다. 왕이 최충헌의 아들 장군 최향과 신선주 김윤위, 박세통(朴世通), 최준문(崔俊文) 등이 영솔하는 5영군(領軍)의 군사 1명에 쌀 1섬, 베 1필씩 주었으므로 최충헌이 각 부대를 소집하고 그것을 분배하였는데 그중 기윤위의 부대가 까닭 없이 고함을 치며 떠들었으므로 최충헌은 독단으로 그 부대에 대한 분배를 정지하였다. 전례에 의하면 도목정사(都目政事)는 연말에 하는 것인데 당시 병란으로 인해서 뇌물을 쓰면서 벼슬을 구하는 사람이 없어져서 최충헌은 적군의 침입을 칭탁하고 다음해 정월로 연기하여 비로소 도목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전투 상공로라는 핑계로 이례(異例)의 임관을 하였으나 막상 공로가 있는 사람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종시 관직을 얻지 못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연령이 70세가 되었다는 이유로 연로 사직을 청원하려 하였으므로 왕은 그의 본심을 알고서 해당 기관에 명령하여 예의를 갖추고 궤장을 주어서 국사를 계속 보게 하였다.

최충헌은 최이를 시켜 성곽을 순찰하고 병기를 검열하게 하였으며 가병으로 자기 신변을 보위했는바 무장한 자가 몇 리(里) 사이에 연달려 있었다. 또 최충헌은 무사(武士)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서 낭장 대집성(大集成) 등 5명을 차장군(借將軍)으로 임명하였는바 대집성은 수하에 기본 부대(本領)가 없다고 해서 중이든 노예든 불문하고 자기 부대의 군사로 삼으면서 서울 안팎을 크게 소란케 하여서 집집이 문을 닫고 외출을 못했으며 심지어는 산에 나무하러 가지도 못했다. 이 소문을 최충헌이 듣고 노하여 그 직을 박탈하였다.

6년에 임금이 최충헌에게 왕씨 성(姓)을 주었다.

이때에 조충(趙沖)이 거란병을 격파하고 개선하였는데 최충헌이 그 공을 시기하여 영아례를 정지하고 출정한 장수들을 위하여 죽판궁(竹板宮)에서 사적인 연회를 배설하고 백관(百官)들에게서 은(銀)을 추렴시켜서 그 비용에 충당하였다. 처음에 조충이 서경에 머물고자 하였으나 최충헌은 그 군공으로 하여 사변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서 급보를 띄워서 상경을 독촉하였다. 군공을 평가할 때는 최충헌이 주관하면서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많이 원망하였다. 그 중에서도 교위(校尉) 손영(孫永) 등 10명이 저자에서 모여 술 마시다가 술김에 탄식하여 말하기를

“전자에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은 세우고도 뇌물을 주지 못해서 벼슬을 얻지 못했다”

라고 하였더니 그 좌석에 있던 사람이 최충헌에게 고발하였으므로 최충헌이 가병을 보내서 체포하고 그의 동료 1백여 명과 함께 보정문(保定門) 밖에서 목 베어 죽였다. 낭장 기인보(奇仁甫)가 최충헌을 처단하고자 했으나 되지 않아서 도리어 최충헌에게 살해당했다.

최충헌이 병이 생겨서 왕에게 표문(表文)을 올려 사직하고 궤장도 반환하였으며 또 사성한 왕씨도 도로 반환할 것을 청하였고 국내의 모든 죄수들과 섬으로 귀양 보낸 자를 석방하였다.

그때 달(月)이 화성(熒惑)을 범해서 일관(日官)이 귀인이 죽을 징조라고 보고하였는데 최충헌이 악공(樂工) 수십 명을 불러다가 종일 주악(奏樂)하고 밤 3경이 되어 풍악이 끝나기도 전에 과연 죽었다. 나이는 71세요 시호를 경성(景成)이라 하였으며 백관이 소복을 입고 회장했다. 장례식에서는 비기(秘器), 우보, 고취(鼓吹－행렬 내의 악기) 기상(旗常－깃발)이 왕의 장의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