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서양갑
작성일 개국618(2009)년 7월 17일 (금) 17:34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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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배향인 창국공신교서
창국공신교서
昌國功臣敎書

고(故) 봉정대부 행사헌부지평 유치의(柳治義) 창국공신교서

옛 성현(聖賢)들이 이르기를, '공(功)을 높이 치하(致賀)하여 상을 내리는 것은 치세(治世)의 근본(根本)이요, 죄(罪)의 전후(前後)를 명백하게 밝혀 엄히 다스리는 것은 치민(治民)의 도리(道理)이다.'고 하였다. 과인이 열성조(列聖朝)의 뜻을 이어 나라를 다시 일으킴에, 그간 어려운 여건하에서 충절(忠節)을 근본으로 군주(君主)를 보좌하고 신의(信義)를 기반으로 백성들을 보살펴, 나라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헌신한 제신(諸臣)들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특별히 포상할 틈이 없었다. 이에 지금 공이 출중한 신하들을 가려 치사(致謝)하고 그 훈적(勳積)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바이다. 이는 자손만대(子孫萬代)들이 공신들의 행적을 본받아, 나라의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만세(萬世)를 영원토록 이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대는 식견(識見)이 출중하여 행동에서는 충효(忠孝)의 아름다움이, 학문에서는 경사(經史)에 통달한 모습이 보였다. 위로는 나라에 충성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널리 교화하였으니, 나라를 번창하게 한 공로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때문에 이처럼 포상하는 것이다.

그대는 행홍문관수찬지제교 겸실록청기주관으로 있을 때 진개창국대전전(進改昌國大典箋)을 지었으며, 당시 대중국(對中國) 외교 망신의 죄를 저지른 민국(民國) 관리들을 논죄하고 처벌하는 데에 크게 공로를 세웠다. 특히 형조에서 7개월간 근속하면서 수많은 사건 논죄와 판결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양형(量刑) 기준을 마련하여 관리들이 판결하는 데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수사논죄절목 개정에 참여하고 형조 기사록(記事錄)을 만드는 등, 형정(刑政) 분야에서 공로가 특히 지대하였다. 또 실록청에 소속되어 실록 찬술에 관계하였으니 학문과 경륜이 어떠한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본향(本鄕)인 함경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지극하여, 많은 백성들이 함경도에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문장에도 능하여 관내(官內) 선비들에게서 인망(人望)이 드높았다.

이에 책훈(策勳)하여 정공신(正功臣) 이등(二等)으로 봉(封)하고 그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품계를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추증(追贈)하고, 교서(敎書)와 녹권을 반급(頒給)하고 수충승지광운창국공신(守忠承志廣運昌國功臣)의 훈호(勳號)를 내린다.

백두산(白頭山)이 닳아 없어지고 동해(東海)가 말라 평지(平地)가 되도록 충절이 변하지 않겠다는 맹세(盟誓)를 더욱 굳건히 하고 그 마음을 영원토록 간직하여, 조정의 고굉지신(股肱之臣)으로 대업(大業)에 더욱 정진할 것을 당부하노라.

일등(一等). 이휘(李輝), 이완(李浣).

이등(二等). 조조(趙造), 최영(崔瑩), 유치의(柳治義), 노사신(盧思愼).

삼등(三等). 양지원(梁志元), 이방원(李芳遠), 신용호(辛庸浩), 강다소(姜多笑), 허준(許浚).

개국612년[施命之寶] 7월 28일


중훈대부 전행한성부서윤 이방원(李芳遠) 창국공신교서

상동(上同)

그대는 본래 이치(理致)에 밝아 일을 행하는 것이 치밀하였으므로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아 정무(政務)를 살피는 것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왕법(王法)을 시행함에 매사 노력하는 마음으로 임했으므로 백관(百官)들로부터 신뢰가 두터웠다.

그대는 사헌부, 홍문관, 공조 등의 관청에서 근무하며 오래 관직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맡은 바 역할을 다하였다. 형조에 있을 때 수사와 치죄(治罪)하는 일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으니, 별시(別試) 부정응시자 처벌에 관여하고 민국(民國) 성범죄자 논죄 등을 주관하고, 형조 판례집(判例集)을 마련한 것은 대개 이때의 일이다. 경기도 지방관으로 재직할 때 관내 문화재 무단발굴 사건을 수사하여 처벌하였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일반 백성의 신분으로 적극 활동한 바가 있다.

이에 책훈(策勳)하여 정공신(正功臣) 삼등(三等)으로 봉(封)하고 그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품계를 한 자급 초수(超授)하여 중직대부(中直大夫)로 삼고, 교서(敎書)와 녹권을 반급(頒給)하고 수충승지창국공신(守忠承志昌國功臣)의 훈호(勳號)를 내린다.

하동(下同)


고(故) 소위장군 행한성부서윤 강다소(姜多笑) 창국공신교서

상동(上同)

그대는 무관(武官)이면서도 일을 갖춰 행하는 것이 문관과 같았다. 담당한 일을 공정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리 특별하였으므로 재조(在朝)나 재야(在野)에서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대는 병조에 오래 근속하였다. 특히 수장이 되었을 때 직분에 충실하여 병조가 맡은 모든 일에 두루 통하였으므로, 당시 병조 업무가 모두 그대의 손을 거쳐 집행되었다. 또 경기도에 정문(旌門)을 세우는데 단초를 제공하여 충의(忠義)를 배양하는 일조하였다. 실록청기주관으로 있을 때에는 실록 제8권부터 제12권까지의 찬술에 관여하였으므로 문(文)에도 충실하여 다른 무관들의 모범이 되었다. 또 변역(邊域)인 평안도의 부흥을 위해 크게 매진(邁進)한 바, 그대가 황망(慌忙)히 병사(病死)하자 내외(內外)의 백성들이 크게 애통(哀痛)하게 여겼다.

이에 책훈(策勳)하여 정공신(正功臣) 삼등(三等)으로 봉(封)하고 그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품계를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추증(追贈)하고, 교서(敎書)와 녹권을 반급(頒給)하고 수충승지창국공신(守忠承志昌國功臣)의 훈호(勳號)를 내린다.

하동(下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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