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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175강 : 남명 시(詩)선(1)
5일만에 찾아뵙습니다. 주 1회는 조금 적은 듯하고, 주 2회는 장담할 수가 없어 이 정도(4-5일) 간격으로 진행할까 싶습니다. 남명 선생께서는 "시가 사람의 마음을 허황하게 만든다"하여 26세 이후로는 시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도 경계하도록 일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명집에 있는 시들은 대부분 서신 등을 주고받을 때 곁들인 것이 많나봅니다. 딱 나누어 이야기할 수는 없겠으나, 풍류로써의 시는 경계했더라도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써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볼 시는 아래 5편입니다. 칼자루에 써서 조원에게 준다 書釼柄贈趙壯元瑗 离宮抽太白 불 속에서 하얀 칼날 뽑아내니, 霜拍廣寒流 서리 같은 칼 빛 광한전까지 닿아 흐르네. 斗牛恢恢地 견우성 북두성 떠있는 넓디넓은 하늘에, 神游刃不游 정신은 놀아도 칼날은 놀지 않는다네. 조원(1544~?)은 남명 선생의 제자이자, 선생의 생질인 이준민(李俊民, 1524~1590)의 사위입니다. 생년으로 보시면 남명 선생과는 나이가 40 넘게 차이가 납니다. 어린 제자의 기상이 이와 같기를 바라고 칼자루에 써서 선물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강의에도 말씀드렸지만 남명 선생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칼입니다. 칼이란 지조(志操)의 상징이자 실천의 도구인 것입니다. 마지막 연을 한 번 더 음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정신은 놀아도 칼날은 놀지 않는다네.' 함벽루 涵碧樓 喪非南郭子 남곽자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진 못해도, 江水渺無知 강물은 아득하여 알 수가 없구나. 欲學浮雲事 뜬 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 高風猶破之 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버리네.  (사진: 합천군청)  함벽루는 경남 합천에 있는 고려시대의 누각입니다. 위의 시가 현판에 쓰여 걸려있고, 남명 선생의 시 만이 아니라 퇴계와 우암의 것 또한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번 가볼만 하겠습니다(저도 복학하면 여유있을 때 한번 찾고자 합니다). 남곽자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인물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며 멍하니 있는 것이 마치 그 베필을 잃은 것 같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에 남곽자처럼 멍하니 슬퍼하지는 못하고, 누각에 서서 끝없는 강물을 보니 도무지 모르겠는데, 문득 하늘을 보니 저 근심없는 부운(浮雲)의 일을 배우고 싶어지나, 정작 그것을 흩어버리는 건 높은 바람이라, 참으로 심오한 비유가 아니겠습니까. (7/27 내용 추가) 진리는 무릇 하늘을 이상으로 삼아야 하지만 우리가 발딛고 있는 땅을 떠나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그 속성상 영원불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변화무쌍해야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Derrida)는 이를 불꽃에 비유했습니다. 불꽃은 항상 거기에 있지만 어느 두 순간에도 같은 것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태용에게 준다 贈太容 脈脈如相見 서로 만나고자 해도 그리워만 하면서, 春山猶獨居 봄 산에 아직도 혼자 산다네. 分來南史筆 남사의 붓을 얻어와서는, 敎寫種稻書 벼 심는 법 기록한 책 베끼게 한다네. 태용은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의 처남인 김천우(1504~1548)의 자입니다. 남사(南史)는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인데, 한 번쯤 들어보셨을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제나라 대부인 최저가 임금을 시해하자 사관이 이를 그대로 적었다가 죽임을 당하고, 그 동생도 똑같이 썼다가 죽임을 당하고, ... 뭐 그런 이야기로, 곧은 글을 남사의 붓에 비유하곤 합니다. 남사의 붓 참고: http://www.unityinfo.co.kr/sub_read.html?uid=19178§ion=sc6 그런데 이 붓으로 벼 심는 법을 기록한다니 무슨 일일까요? 김천우가 조정에서 사관을 지내다가 물러나서 농사일에 관심이 많아 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 필요한 곳이 어찌 높으신 분들의 정치사 뿐이겠습니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백성들의 삶과 그 기반이 되는 농경(農耕),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미시사(microhistory)의 선구작인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가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우연히 읇다 遇吟 人之愛正士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사랑하는 건, 好虎皮相似 호랑이 털가죽 좋아하는 것과 비슷해. 生則欲殺之 살아 있을 때는 죽이려고 하다가, 死後方稱美 죽은 뒤에라야 막 칭찬한다네. 왕양명(王陽明)의 시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성립하는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희서의 죽음을 슬퍼하며 輓河希瑞 八十年非乏 팔십 한평생 적게 산 건 아니지만, 相知一夢如 서로 안 것은 한바탕 꿈과 같구나. 頭承章甫道 머리론 선비의 도를 받들었고, 口喫漢江魚 입으론 한강의 물고기를 먹었지. 若考塗丹雘 그대 아버지는 단청을 잘하였고, 諸孫好禮書 여러 손자들은 예서를 좋아하누나. 未將携手手 그대의 손 잡던 손으로, 摻執子之裾 그대의 소매 부여잡지 못하네. 하희서(?~?)는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 1553~1612)의 조부로 생원시에 합격한 기록이 있습니다. 애도하는 두 편의 시 중 먼저의 것입니다. 두 번째 시를 보니 남명 선생의 벗이었나 봅니다. 이 시는 그저 마지막 두 연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가져와봤습니다. 제가 한시를 많이 안 접해봐서 한시에 흔한 표현일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절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대의 손 잡던 손으로, 그대의 소매 부여잡지 못하네.' 한양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머리와 입의 대비에 겸해 '한강의 물고기를 먹었다'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이상입니다. 해설이 부실하여 부끄러운 점이 많으나, 소개하고 함께 읽자는 강의의 취지로 이해하셔서 시문 자체를 한 번씩 더 음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참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http://nmh.gsnu.ac.kr/ 개국626년 7월 26일 태백서당 훈장 한명회 |
http://www.1392.org/bbs?laed6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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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data/board/member/img/1/i_e2244709dd.gif "[1]")
서긍 626('17)-07-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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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가 역사 기행이나 천손서당 강의에서 역사관을 자주 비칠 것입니다. 저는 성리학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남명 선생은 예외입니다. 을묘사직소를 예습(?)했는데 정말 감탄이 나올 명문입니다. 당시의 오언시에 대해 저도 문외한이라 작가의 뜻을 1%도 읽지 못하겠지만 당대 지식인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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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ata/board/member/img/1/a_teacher.gif "[2]")
고무열 626('17)-08-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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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제 봐도 쉽지 않습니다. ㅠ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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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열
고무열
정병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