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제176강 : 남명 시(詩)선(2)

 


경전
經傳

廣文頗似子雲家 광문은 자못 자운의 집과 같아,
稽古由來得力多 종래부터 옛일 상고하면 득력함이 많다네.
活法會須堂下斵 살아있는 법은 모름지기 마루 아래 수레 다듬는 사람이 이해했나니,
五車書在一無邪 다섯 수레 많은 책의 의미도 ‘사가 없는 것’ 한 가지 속에 있나니.

광문은 이원이 지낸 훈도 직을 말하며, 자운은 한 대의 학자 양웅(揚雄, BC53~AD18)의 자로, 칩거하여 학문연구에 몰두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법은 마루 아래 수레 다듬는 사람이 이해했다’고 했는데, 이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오패로 유명한 제환공(齊桓公)이 마루 위에서 글을 읽는데 이 사람이 무슨 책을 읽으시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성인의 책이다.”하자 그 사람이 살아있는지를 물었고, 이에 죽었다고 하자 그럼 “그것은 성인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고사가 전합니다. 학기유편의 인용문 한 구절 보고 지나가겠습니다.

소자(邵子)가 말하였다. "배움은 사람의 일을 근본으로 삼나니, 지금의 경전이란 곧 예전 사람의 일이다.“ - 上, 爲學之要 5.1.

성인의 글을 공부하는 것은 다 오늘날 사람들의 일에 통찰을 주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게 전도되는 상황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다섯 수레 많은 책이 ‘無私’ 한 단어로 요약된다고 하였습니다. 첫 강에서 인용했는데, 성인의 천만 가지 말이 ‘敬義’를 벗어나지 않는다고도 하였습니다. 남명 선생은 수많은 성인의 글을 읽느라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경계하였습니다. 학기유편도 일종의 ‘요점정리’로, 성현들의 글을 핵심만 빠르게 짚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책이라고 합니다.
『논어』를 보시면 공자는 같은 것을 물어도 제자에 따라 다른 답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점을 짚어주는데 이는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취 정도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선불교 화두(話頭)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남명 선생이 보기에 청향당에게 필요한 단어 하나가 이 ‘無私’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가원에게 준다
贈可遠

可遠氏尊平安否 존경하는 가원씨 평안하신지요?
春懷多爲子成吟 그대 때문에 봄 회포 많이 읊조렸다오.
乾封百複芭蕉葉 말라붙은 백 �횬� 파초 잎이,
得雨何時細展心 어느 때나 비 얻어 속을 하나하나 펼 수 있을는지?

가원은 대곡 성운의 형인 성근(成近, ?~?)의 자입니다. 이 시도 단순히 문장이 아름다워 가져와 봤습니다. ‘말라붙은 백 �횬� 파초 잎’은 만나지 못해서 쌓이고 쌓인 하고 싶은 말을 뜻하니 벗을 그리는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완구정에 쓴다
題玩龜亭

金馬何嫌上策遲 금마문에서 대책 늦게 올리는 것 뭘 싫어하랴?
此江無主亦非宜 이 강에 주인 없다면 또한 옳지 못하리.
玩龜自是觀頤事 거북 구경하는 건 수양하는 일이고,
飮酒方知得意時 술 마실 때가 득의한 때라는 걸 바야흐로 알았도다.
東畔野延河畔遂 동쪽 들판은 강가로 뻗어 이루어졌고,
北邊山走日邊馳 북쪽 산은 해 쪽으로 달려가누나.
潺湲一帶凝江水 한 줄기 졸졸 흐르는 물 강물과 어우러졌으나,
不及雲門萬丈奇 만 길 운문산 기이함에는 미치지 못해.

완구정은 경북 영천에 있는 안증(安增, 1494~1553)의 정자입니다. 형조좌랑까지 지내다 을사사화 때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했다고 합니다. 대책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쓰는 문체의 일종으로, ‘좀 놀다가 숙제가 늦으면 어떠냐’ 뭐 이런 뜻으로 보시면 비슷하겠습니다.
강의 경치가 이렇게 좋은데 보는 이가 없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거북을 구경하는 것도 임하는 이의 태도에 따라서는 좋은 수양이며, 술을 마시는 것 또한 득의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앞의 시 거문고 소리의 해설을 다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유두류록을 강한다면 또 언급할 일이 있겠지만, 항상 몸가짐을 살피기 위해 방울을 달고 다니고, 물을 가득 담은 대야를 들고 밤을 새우는 등 극도로 삼가면서도, 동시에 술 마시고 경치 즐길 줄을 아는 것은 상당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고무열

626('17)-08-07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