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학당]<별강>역사의라이벌 여운형vs박헌영

   민족적 공산주의자와 원칙론적 공산주의자



여운형과 박헌영은 같은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여운형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신봉하지 않았다. 때로는 우파와의 연합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박헌영은 달랐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우선 나이를 들 수 있다. 여운형은 1886년 생이고 박헌영은 1900년 생으로 14년의 나이 차가 있었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한 때가 여운형은 30대 중반 무렵이었지만 박헌영은 20세 전후의 청년 시절이었다. 여운형은 이미 사물과 사건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으나 박헌영은 새로운 사상에 쉽게 빠질 수 있는 나이였다.

다른 하나는 출생 신분의 차이였다. 여운형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함양 여씨 정현과 경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양반집이었다. 그는 임진왜란 직후 일본에 수호사로 간 여우길의 11대 손이었다.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여성제가 그의 선조였다. 생활도 부유한 편이었다.
반면 박헌영은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쌀장사를 하던 아버지 현주와 소실로 들어온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였던 것이다. 그 콤플렉스가 그를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만든 한 요인이었다. 아버지가 쌀장사를 했다는 것은 노동자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여운형은 일찍이 1913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활동했다. 1919년 1 월 파리평화회의에서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하자 이에 고무돼 신한청년단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임정이 유명무실해지자 그는 독자행동에 들어갔다.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투옥된 후 나름대로 준비를 하다가 1944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건국동맹의 조직이 그것이다. 건국동맹은 좌익과 우익을 구분하지 않고 조직된 단체였다. 그는 전국 10개 도의 책임자를 임명해 지방조직을 갖춰나가는 한편 경기도 용문산에서 농민 동맹을 조직하기도 했다. 국외 해방운동 세력과의 연계도 꾀했다.

박헌영은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대표자회의에 여운형과 함께 참석한 이후 국내에 잠입했다. 1년 6개월간의 감옥생활 후 조선 일보 사회부 기자를 하다 해직당한 그는 1925년 김재봉·김약수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을 조직했다. 일부 청년들을 뽑아 모스크바에 유학 보내기도 했다. 이 유학은 당시 상하이에 있던 여운형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여운형과 박헌영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신의주에서 청년회원이 변호사를 구타한 사건을 계기로 그 조직이 탄로났다. 박헌영은 체포됐으나 수사관들이 깜박 속아넘어갈 정도의 정신착란증세를 연출해 결국 석방됐다.
1928년 그는 모스크바로 탈출, 그곳의 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거기서 상하이로 내려와 ‘콤뮤니티’라는 기관지를 제작, 국내에 배포하다 다시 체포돼 6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1939년 만기 출소 후에는 김삼룡 등과 경성 콤그룹을 결성했다. 1942년 일경의 탄압이 강화되자 광주의 벽돌공장 인부로 가장해 활동하다 해방을 맞았다. 이처럼 박헌영은 준비 없이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여운형은 달랐다. 건국동맹을 조직했다. 1929년 상해에서 체포돼 국내로 이송된 여운형은 조선중앙일보사 사장, 체육회 회장 등의 직함을 걸고 공식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 만큼 그는 국내의 여러 가지 상황을 누구보 다 잘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의 몇몇 요인들과 친교를 맺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과의 동침이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한 방패막이였다.
1940년 조선총 독부와 용산 조선군사령부의 주선으로 일본에 가게 됐다. 그는 거기서 일본 육군성 병무국장 다나까 다카요시(田中隆吉) 소장 등을 만났다. 결국 여운형은 일본 정계나 학계, 군인들에게 제일 잘 알려진 인물이 됐다. 국내에만 틀어박혀 있던 박헌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은 여운형에게 제일 먼저 찾아와 행정권 이양 교섭을 벌였다. 그는 이를 수락하고 건국동맹을 모태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은 좌익계인 여운형, 부위원장은 우익계인 안재홍이 맡았다. 좌익과 우익이 같이 손을 잡은 조직이었다. 박헌영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러나 ‘건준’은 얼마 안가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심해 안재홍이 사퇴함으로써 좌익 세력이 우세한 조직이 돼버렸다.
뒤이어 1945년 9월 6일 ‘인민공화국’을 선포해 ‘건준’은 해체됐다.

박헌영도 9월 3일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다. 여운형과 박헌영은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과 함께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10. 23). 그러나 박헌영은 친일파를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한 다는 논리를 내세워 ‘독촉’에서 탈퇴했다(12. 5).

한편 11월 23일부터 귀국하기 시작한 중경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국내에 과도정권이 성립되기 전에는 자신들이 정부 역할을 할 것이라 선언했다. ‘인공’이 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해방정국에서 ‘임정’과 ‘인공’의 두 정부가 공존하는 상황이 됐다.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격화됐던 것이다.

이 무렵 북한에서는 이미 김일성의 주도하에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실시됐고 친일파도 숙청됐다. 남한의 이승만도 정읍 발언(1946. 6. 3)을 통해 남한단독정부 수립 가능성을 발표했다. 이에 놀란 여운형과 김규식 등은 좌우합작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여기서 나온 것이 ‘좌우합작 7원칙’이었다(10. 7).

이 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박헌영은 단호히 이를 거절했다. 박헌영은 이때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미군정청에 의해 수배 중이었다. 해방 직후만 해도 박헌영은 미국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1945년 11월에는 반도호텔에서 남한 주둔 미군사령관 하지와 비밀회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체포령이 내려진 이후 그는 반미로 돌아서서 9월 총파업을 주도하고 대구폭동 사건을 조종했다. 그해 11월에는 남조선노동당(약칭 남노당)을 조직했다.

그런 가운데 신변의 위협이 다가오자 시신으로 위장해 관속에 누워 북한으로 탈출했다. 거기서 그는 1948년 부수상 겸 외무상, 1949년 조선공산당 중앙 위원회 부위원장, 1950년 군위원회 위원 등 권력서열 제2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가 1953년 북한 내부에서 패전에 대한 책임문제가 거론되면서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돼 2년 뒤인 1955년 12월 56세의 나이로 처형됐다.

여운형은 남한에 남아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1947년 7월 19일 괴한의 총격으로 숨을 거뒀다. 그는 좌익과 우익이 다같이 꺼리는 인물이었다. 어느 한쪽이 끌어들이기에는 그의 위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영남학당의 강의주제인 정치/경제와도 관련이 있고 현대정치사의 라이벌 중의 하나인 여운형과 박헌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듯 합니다. 이전 강의 주제인 <역사의 라이벌>중에서 골랐습니다. 역사의 라이벌 중에 아직 소개되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별강으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개국 611년 8월 24일
영남학당 훈장 이동진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