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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봉한
작성일 개국629(2020)년 8월 8일 (토) 00:45  [자시(子時):삼경(三更)]
ㆍ추천: 0  ㆍ열람: 320      
[기념백일장] <공고> 창국 제20주년 기념 백일장 개최
예조에서 8월 8일부터 아조(我朝) 창국 제20주년을 맞이하여 백일장 기념 행사를 다음과 같이 진행합니다. 백성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1. 행사명 : 창국20주년 기념 백일장 "지나온 20년, 앞으로 20년"

2. 백일장 주제 :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이야기 (아래 가, 나 중에 1개 이상)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나. 사조의 앞날, 비전제시 등

3. 기간 : 개국629년 8월 8일(토)~16일(일) [9일 간 시행]

4. 참여방법 :
  가. 예조에서 읍내 행사 공간에 백일장 개최 글을 작성 (현재 보고 있는 문서임)
  나. 참여 희망자는 본 백일장 시행 게시글에 '답글(답변글)' 또는 '댓글' 형태로 글을 작성하여 제출

5. 참여대상 : 사조 내 모든 백성 (호적등록 완료 백성)

6. 참여혜택
  가. 참여자 가운데 최우수 1명, 우수 2명을 선정해 특별물품 지급
  나. 참여자 전원 30냥 및 창국 제20주년 기념장(물품) 지급


사이버 조선왕조의 뜻깊은 창국 제20주년을 맞이하여 이 기쁨을 아조 모든 백성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많은 참여 기다리겠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은 예조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개국629년 8월 8일
교서관판교 겸비변사낭청 홍봉한, 행교서관별좌 박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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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김막수
629('20)-08-09 19:58
주제 :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어렸을 적, 그러니까 친구들과 동네를 누비며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 쓰던 그 때, 제 꿈은 역사학자 였습니다.
사실 역사를 좋아한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집에 한국사 만화책이 20여권 정도 있었고 그걸 닳도록 읽었던 기억 뿐입니다.
어디 산속이라도 들어갈 일이 있으면 혹여 내가 유물이라도 발견하지 않을까 땅바닥을 헤집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주머니에 잔뜩 깨진도자기를 주워와 어머니께 핀잔 받았던 기억도 나고요. 하지만 머리가 좀 굵어질때 쯤 새로운 취미와 친구들을 접하고 그렇게 제 어린꿈은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에 사조를 하며 추억을 남길만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입조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제가 어떻게 사조를 발견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치 제 꿈이 왜 역사학자였는지 모르는 것 처럼요. 그냥 더 일찍 발견했으면 더 재밌게 놀지 않았을까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직 낯선것들 투성이 입니다. 그래도 어렸을적 그 마음으로 즐길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창국 20주년을 축하하며 다음 20년 후인 40주년 백일장에는 부디 끄적일 추억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한성부 정병 김막수
[2] 김신
629('20)-08-11 00:16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 부속품 론(論) *편의상 경어생략하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이트를 통해 활동해본 경력이 있는 필자로서는 이 체계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공명심에 젖어 빨리 관직에 나아가보고 싶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관직에서 물러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저 곳에 들어가 버틸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레 겁먹은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사이트에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라며, 활동을 모두 접고 칩거하다가 유튜브 영상으로 사극을 보면 문득 생각나는 곳이 이 곳 사조였다. 초기에는 천방지축으로 아무런 글이나 올리며, 이런 저런 댓글 보는 맛으로 활동했었다면 관속으로 어느 정도 활동한 때에는 타성에 젖어 빨리 시간이 가서 근무일수나 다 채우고 녹봉이나 받으면 그것이 전부였던 때도 있었다. 그 끝에, 관원으로 천거받은 때가 한 번 있었으나 일신상의 사유로 변심하여 거절하였다. 그때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여 관원이 되더라도, 현대 공무원들의 병폐로 꼽히는 소극행정 내지 무사안일주의를 그대로 답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직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런 상태에서 의무감에 젖어 여기에서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커뮤니티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어느새 의무의 연장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할 것 같았고, 아무 보람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 계속 가면 어느샌가 무책임하게 쌓인 의무들을 외면하고 도망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던 날들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형조로 전임되어 업무를 맡아보게 되면서 새삼 소극행정을 다짐했던 순간들(?)이 무색하게, 법조를 바꿔보고 문자열을 다듬어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고, 식사 시간 뿐만 아니라 휴식 시간에도, 심지어는 자기 전에도 한번씩 들어와서 법전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때 나는, 부품으로서의 정체성을 그렇게 부정해왔던 자신에 대해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부속품이 되기 싫다는 자기암시에 불구하고, 사회는 혼자 살 수 없는 곳이며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한 사회의 부속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부속으로서의 삶이 무가치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작은 영향력이 퍼지고 퍼져 끝에 가 닿으면 어떤 큰 울림이 될 수도 있었다.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쯤이었다. 얼마 있지 못하고 공조로 다시 전임되고, 다시 지방관으로 나가게 되었지만 이 때의 깨달음은 비단 사조의 '김신'의 생활 뿐 아니라 실제 생활 속의 나의 모습에도 영향이 있었다. 머뭇거리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당면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그리고 그것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해지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실생활은 조금씩 달라져있었고, 개인적으로 큰 성취를 거두기도 하였다. 사조에서도 소과 일등의 입격을 이뤄낼 수 있었다.

세칭 '꼰대'처럼, 열심히 살라고 말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는 없다. 방향설정부터가 잘못되면 열심히 산다고 해서 좋은 영향력을 가지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럼으로써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굳이 내가 나사나 톱니 같은 작은 부속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왕이면 CPU라든지 동물의 심장 같은 핵심적인 부속이라고 생각도 해보면서 살자는 것이다. 부속이라면 어떤가? 내 삶의 주인이 되면 되는 것을. 어차피 어떤 부속이건 고장나면 한 개의 동체는 멈추거나 멈추게 될 운명을 맞는다. 그것은 부속에게도 결코 이로운 결말이 될 수는 없다.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외국 속담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굴러가자, 나사여. 나와 나의 동체가 멈추지 않도록. 굴러가자, 회전날개여. 나와 나의 사회가 악취로 만연하지 않도록.
[3] 하유
629('20)-08-11 07:17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역사 드라마, 조선 역사에 흥미가 생겨 가입하게 되었네요. 처음에 관속부터 시작하여 성균관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병법에도 능하지 못하여 수료 및 졸업도 못한 상태에 성균관 유생으로 남아 아쉬운만 남았습니다.

관속으로 전전하다가 지방관 천거로 인해 문관에 올랐지요 문관으로써 맡은바 최선을 다하자 그리 다짐 하여 것만 며칠 지나다보니 저도 모르게 나태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처음 예조에 부임하여 권지교서관정자로 초입사교육을 하였고 예조에 여러 업무들이 있는데 항상 어렵게 다가가 지더라고요. 하지만 동료, 상관에게 물어보고 해쳐가니 예조 업무가 쉽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은 찾아서 익히다보니 저도 모르게 교서관저작으로 승직 되어 있었습니다. 지방관을 거쳐 예조, 공조, 호조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4년 만에 통훈대부까지 올라 관직 욕심이 너무 생겼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보니 저도 모르게 예조에 상관임에도 어려운 업무와 어전에 계하는 등 멘탈이 붕괴가 되면서 혼란이 오더군요 이게 한계인가 싶기도 하고 해야 할일은 태산같고 마무리 하는데 있었어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정상까지 오른다는게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하여 결국 어전에 청사직차를 올려 은퇴하고자 차자를 올렸습니다. 멘붕이 오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싶더군요. 은퇴하면서 내월아 세월아 시간만 보낸거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이조, 예조등 여러관청에 업무들과 어전에 계하는 등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4] 장지용
629('20)-08-11 13:21
나. 사조의 앞날, 비전제시 등

요즘 지역과 교육분야에서 활력이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특히 관원인 백성들이 지역과 교육분야 활동을 줄이면서, 이러한 위기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창국 10주년 시절만해도 관원이건 일반 백성이건 지역과 교육, 모임에서 어울리며 지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가 사라진 것이 대단히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언젠가는 관원과 일반 백성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 교육분야 훈장으로 있으면서 백성들도 은근히 관심가질 주제를 강의하는데도, 반응이 뚝 떨어져서 이것이 최근 강의에 대한 근심을 늘렸기도 한 것도 이러한 생각을 만든 원인입니다.

일반적인 지역행사 이외에 관원과 일반 백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개발되었으면 하고, 조정 일이 대외적으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관보 발행을 비변사등에서 대행하는 형식으로 발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민보 발행을 장려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과적으로 사조의 앞날과 비전의 성패는 일반 백성들과 관원과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백성과 관원과의 소통을 통해 더욱 더 어울림이 있는 공간으로 발전해나갔으면 합니다. 그 시작은 지역과 교육 활성화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듭니다.
[5] 박세당
629('20)-08-11 18:10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어느덧 사조에서 직간접적으로 활동한지 7년차가 되었습니다. 광해군을 혜종대왕으로 추존한 커뮤니티가 있다고 하여 흥미를 가지고 접속해봤던 사이트에서, 이제는 주로 관직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업무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사조에서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개국626년 11월 입조 직후에는 한성부예방으로 약 5개월 근무하다가 다음해에 열린 제102차 소과에 입격하여 입격 직후에 정말 운이 좋게 천거를 받아 조정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천거 재가 직후에 제가 크게 몸이 아파 부득이 접속을 하지 못하여 파직이 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이 전하의 성은으로 면직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병이 완치된 이후에는 관직에 다시 나아갔고, 같은 해 7월부터는 충청도 정석학당에서 판소리를 주제로 약 8개월 동안 20여회 강의하면서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관직에서는 쭉 예조에 있다가 개국628년 1월부터 은율현감으로 지방에 나가게 되어 다른 지방관과 지방관회의, 그리고 백성들을 대상으로 만민토론을 열어 지역활성화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지방관으로 일하면서 기억나는 것은 재미있는 전국행사를 몇 가지 시행했었던 것인데, 매일 접속을 유도하기 위해 출석체크 행사, 제가 탐관오리 컨셉을 잡고 지역이동 기능을 이용하여 탐관오리를 잡는 행사 등 지역활성화를 위해 정말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는 다시 호조와 예조에서
좌랑을 지냈습니다. 이후 작년 하반기 정기포상 때에는 정석학당에서의 판소리 강의를 인정받아 동문선 한 질과 500냥을 하사받고, 문관 포상으로 이조표창과 평점 3점을 받고 또 1년 근속기장을 받아 더욱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 같네요. 10월부터는 실록찬수청이 개청되어 겸일방낭청으로 실록 찬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일하다가, 올해 1월쯤에는 갑자기 멘탈이 붕괴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실록 찬수 업무가 크게 부담이 되기도 했었고, 동시에 민국에서 바쁜 일들이 가중되면서 업무에 소홀하게 되었네요. 이후 파직되어 6개월 정도를 쉬다가 얼마 전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예조에서 여러 가지 창국 20주년 기념 업무들을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동안 즐겁기도 했고, 특히 관직에서는 난감한 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주로 관직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능력이 관직에 있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사직하고 지역에서만 활동할까 하는 멘붕의 순간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네요. 비록 미약한 존재이지만 앞으로도 사조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6] 최준
629('20)-08-12 13:04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사조에서 입조를 해서 활동한지가 벌써 9년에 가까워 지고 있는 시점에 영광스럽게도 사조의 20주년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 서적과 미디어를 통해서 사극도 많이 봐왔는데, 우연한 계기로 사조를 알게되어 입조를 하면서 사조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역시도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사조 내에서 많은 분들과 교류하기 위해 노력했었던게 생각이 나네요. 처음 입조를 했을 당시만해도 다양한 컨텐츠를 갖고서 생겨난 각종 모임과 양보다는 질적인 내용들을 추구하면서 강의를 진행시켰던 수 많은 훈장님들을 통해서 지금의 사조가 번영해서 오늘날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저는 그동안 너무나 쉽게 생각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조 역시도 엄연히 사이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도와 규칙이 있는 하나의 사회이며, 국가로 볼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동안 제 욕심에 그렇게 깊게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미스러운 일들도 생겨났던 것 같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제대로된 해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말았어야했는데 그런 제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자면 정말 많은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사조에서의 체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줄 수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라고도 느낍니다. 역사와 그리고 수 많은 이들의 일상적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세상사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으니까요.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또 이곳을 거쳐갈지는 모르겠지만 사조만큼 좋은 공간은 없다고 생각되는게 저의 지론입니다. 사조와 비슷한 곳에서도 잠시 경험을 해봤지만 사조 만큼의 느낌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이 애착이 가고, 그래서 더 자주자주 들어와서 미력하지만 그대로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내가 이 만큼 성장했구나 그래서 앞으로 내가 나가야할 길이 무엇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 몇 안되는데 사조에서는 그런 생각들을 많은 분들의 조언과 그 분들의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조에서 만큼은 모두가 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사조에서 만큼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고 또 많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작지만 큰 행복을 위해서 노력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사조는 30년, 40년 아니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유지하고 또 발전해 나갈 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래 새로 입조하신 분들이 몇 분 계신데, 그 분들 역시도 그동안 발전되어 온 사조를 천천히 둘러보시며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을 통해서 한 층 성숙해지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7] 이운
629('20)-08-12 23:21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그저 호기심에 들어온 이곳이 내 10대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고 20대인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일상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저, 또래 보다 한국사에 조금 더 관심이 많았고 컴퓨터 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아조에서 이런 저런 역사적인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관직 출사 이전에 하였던 정병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아조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사실 딱히 할 만한게 마땅치 않다. 각 지역 게시판에 글을 쓰기도 하지만 그걸로는 아조 생활에 재미를 느끼기엔 부족하다. 그렇기에 가장 쉽고 무난하게 아조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정병이다. 정병은 기본적으로 호적신고(가입)가 완료된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지원이 가능하기에 비교적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활동이다. 나 역시도 입조 초기에는 여기저기 둘러보다 한성부에 있는 훈련원에 정병으로 입대하여 의무복무기간을 거쳐 훈련도감으로 편입하였다. 그 당시 나는 정병으로서 훈련과 점고를 하며 제한적이지만 정병으로서의 역할을 체험하였고 정병들을 통솔하는 군영 무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실제 조선에서는 병조와 군영에 문관이 임명된 사례가 있었지만 아조에서는 병조와 군영은 오로지 무관만이 임명이 가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기왕에 관직에 나갈 뜻이 있는데 굳이 문관만 고집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관으로 출사를 하기 위해 소과 훈련원시에도 응시했고 다행히도 말석이나마 입격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곧바로 대과에 응시했으나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그렇게 대과 낙방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 질 즈음, 성균관 재개청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조의 성균관은 크게 문과, 무과로 나뉘어 각각 유생을 선발하였다. 이때, 나는 무관 출사에 대한 열망이 남았던 터라 당연히 무과 유생에 지원하였고 당당하게 12기 성균관 무과 유생으로 입학하였다. 무과 유생으로 무과 강의를 수강하였고 이외에도 문과와 교양과 강의도 수강하였다. 그리고 이제 12기 성균관 일정이 마무리 되고 졸업사정 결과 나는 무과 차석이었다. 당시, 무과 교임이었던 故서양갑님의 천거로 무관으로 출사를 하게 되었다.

입조 초기에 나는 아조의 가장 기본적인 직역인 정병 활동을 하며 내가 아조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조에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렇게 나의 관직 생활이 시작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오늘 20주년을 맞이하여 이렇듯 수기를 쓰게되어 감회가 참으로 새롭다.
[8] 홍봉한
629('20)-08-13 00:26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제가 처음 아조를 접한 것이 2013년인가 그럴 것입니다. 당시에 판의금부사였나? 관직명 같은 걸 검색하다보니 우연찮게 해당 사이트를 발견하게 되어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판의금부사를 왜 검색했냐 생각해봤더니 고등학생 때 시청했던 드라마 '왕과 나'가 재방송하면서 어느 장면에서 판의금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검색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곳이 있었네~ 하면서 지역게시판에도 글을 올리고 관속도 해가며 즐겁게 활동을 하다가 소과를 보고 천거로 올라 관직을 시작했었네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인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더 예전에는 훨씬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 같아서 더 일찍 발견 못할 것을 상당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군 입대를 하게 되어 잠시 쉬다가 전역할 때 즘 되서 다시 복귀했습니다. 그 2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유효인구는 좀 줄어들긴 했지만 계속해서 계신 분들이 계셔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네요. 지금와서 생각하니 아조는 제가 취미생활을 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렇게 오래 활동한 적도 없었기도 했구요. 여러 재미들이 존재하지만 제일 큰 것은 역시 '조선'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이트를 찾아내기 전 고등학생 때 부터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조선시대 관직을 부여하며 놀았었는데(물론 저만) 실제 사이트가 이렇게 있으니 신기하기도 했고, 또 흥미도 생겼더랬습니다. 때문에 계목이니 계본이니 하는 새로운 용어들도 알게 되었고 육조 관청 이외에는 잘 몰랐던 아문들도, 이를테면 교서관, 선공감 등도 알게 되었고 여러모로 도움도 많이 되는 곳입니다.

지금도 심심하면 친구들에게 권유하지만 역시 역사에 관심 없는 애들이라(사실 있어도..) 먹히지는 않네요. 여하튼 전 입조한지 8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아조가 20주년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앞으로 30주년, 40주년도 맞이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답니다.
[9] 이성필
629('20)-08-13 00:52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들

어쩌다 보니 소개로 들어온 것이 벌써 9년이다. 내년이면 10년인데, 나같은 경우에는 정병 생활을 한 적 없이 호적신고 한 그 달에 열린 제64차 소과에 입격하고 2달뒤에 열린 제39차 대과에 병과로 급제해서 바로 출사하고 관직에 나아간 거라, 정병이나 관속을 한 적이 없으니, 딱히 추억이라 할 것이 없었다. 물론 관직 생활을 하면서, 시관직 미수행으로 한번, 인사 평점상 하점 받아서 한번 파직을 당한 자이긴 하지만(잠깐, 이거 말해도 되나?) 그래도 삭탈 안 당하고 버티고 있는게 용하다 할까?

아마 내 수기 정안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나는 그렇게 글쓰는 재주는 없다. 전부 병과로 입격하는 바람에 업적 하나는 이루지 못했으니.... 그래도 목민관으로 오랫동안 돌아다녔으니, 그 업적은 이룬 것은 생애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지방관으로 있던 곳들은 유효인구가 썩 많지 않았는데, 그건 진짜 아쉬운 일이었다.

관원 생활을 하기 직전에 훈장을 한 기억도 확실히 나는데, 기회가 되면 예전 자운서당에서 강의를 완결지은 것처럼, 다시 강의를 해 보고 싶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생업에 빠져서 강의를 준비할 시간은 없으니... 법을 강의할 지, 자동차 경주를 강의할지, 무엇을 강의할지를 생각중이다. 언젠가 다시 아조가 다시 지역이든 어디든지 간에 불타는 시기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 이윤탁
629('20)-08-13 13:02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2007년도 가을쯤 도서관에서 인터넷검색을 하다 느닷없이 '1392.org'가 보여 클릭을 한 번 했을 뿐인데 이렇게 오랜 시간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즐기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처음 가입하고 조선 시대 역사가 궁금해져 책도 읽고, 논문도 보며 나름 열정을 가지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정모 모임에 나가게 되고, 그 모임에서 인연이 되신 분들과 함께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이 당연히 그리고 항상 '사이버 조선왕조'(이하 사조)의 여러 가지 현안이나 상황 등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대안 그리고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조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사조의 상황이 꽉 막혀 벽처럼 느껴졌고, 나름대로 대안을 찾고자 여러 가지 활동을 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당시 '나꼼수' 팟캐스트가 유형이었는데, 그와 비슷한 형태로 대담을 계획하고 진행하던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임은 시간이 흐르며 흐지부지되었고, 함께 했던 대부분의 분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재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핏 처음 가입하고 2년 반 정도는 열심히 사조 활동을 한 것 같습니다. 너무 과해서 분란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사건 이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번의 재가입을 하고 지금껏 나름대로 소소하게 재밌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장 열심히 활동할 때는 관직에 나가서 나름대로 사조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맘이 이었으나, 재가입 이후에는 관직에 나가지는 않고 아전, 정병, 지역이동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조의 20년이란 세월은 정말 엄청난 것이고,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모여 사조의 역사가 돼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웅장해 짐을 느낍니다. 사조를 통하여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 새로운 깨달음과 통찰, 개인적인 감정이 새롭게 정립이 되었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저의 삶과 행위에 대하여 반추하며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 삶에 한 부분을 고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 사조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항상 혼자지만 제 나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사조를 운영하신 운영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건승하시어 좋은 소식이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11] 김시습
629('20)-08-13 16:38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들

2011년 한글날에, 우연히 알게된 사조였습니다. 백성 가입을 하고서 이 글 저 글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하루도 안걸르고 매일 접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민국에서의 업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심지어는 해외 출장 중에도 짬을 내어 사조에 접속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냥 재미 있었습니다.

사실 컴퓨터와는 거리가 있는 세대여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던 저로서는, 사조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컴맹에 다름 아닌 사람이 컴퓨터에 관한 것들을 주위에 묻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사조 안에서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번개라는 모임을 통해서 밖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게 참 신박한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나이차가 많이 나다보니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고 상대방도 나와같이 어색하리란 생각이 들어 번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는데, 그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저는 사조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진중한 사조민이 있는가 하면 너무 경솔한 사조민도 있었고, 재능이나 능력이 특출난 사조민과 성실함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조민 등 등.하지만 제가 알고있는 사조민 모두는 제게 있어 너무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때로는 사화에 버금가는 풍파가 일기도 하고, 민심이 요동치는 변고가 일어나기도 하는 와중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조민과 새로 입적하는 신규 사조민들. 그들이 모두 어우러지고 부대끼고 하면서 사조가 묵묵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다보니 문득, 사조만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저의 역할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자신의 역할이 있을 수 있는 공간. 사이버상의 공간에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해 안타까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조는 사조민 모두에게 각 각의 역할을 부여하는 매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직책의 있고없음은 자신만의 역할에 아무런 영향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이곳도 엄연히 사회인 만큼 구성원 간의 갈등이나 알력이 존재할 수도 있고요.
매력은 맘껏 발산하거나 누리면 될테고, 갈등이나 알력은 겪으면서 때로는 성장하고, 때로는 성숙하는 계기로 삼으면 될테지요. 그것이 바로 사조의 강점일테니까요. 나의 분신을 통해서 성장하는 나를 투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갈등이나 알력 - 사실 대부분은 별 것 아닌 사소한 입씨름 내지는 의견 차이 - 에 마음을 닫고 사조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누군가가 중재하거나 조정하면 됐을 일이었기에요.

독수리타법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9년 동안 독수리타법에 발전이 없는 게으름을 반성하며 이만 줄입니다.
[12] 김지수
629('20)-08-14 13:11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아주 먼 옛날 통신망이 구축되고, 조금씩 속도도 빨라지던 그 시절. 전화선을 연결해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광케이블이 나오면서 전화와 분리돼 온라인 게임도 하고, 인터넷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던 어느날 조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역사에는 무척이나 관심이 많지만 실력은 못따라가는 한사람이었고, 이미 아는 분들은 아는 바 기사거리 찾다가 발을 들여놨을 뿐이었죠.

처음에는 뭐 이런 곳이 있나 하면서 취미가 회원가입이기에 호적신고부터 하고서 여기저기 쓱 둘러본 후 안녕! 흑역사가 시작되는 줄도 모른채..
아.. 이때만해도 지금같은 회원제가 아니어서 이런저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잊고 지내다가 학기중이 아닌 시기에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왔는데 이 사회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더랬죠.
그때쯤 소과기간이라 시험삼아 진사시를 봤는데 입격.
당연한 것으로 여겨 대과 문과 봤더니 또 입격.
그렇습니다. 백지상태에 아무런 준비없이 무방비 상태로 과거입격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학기가 아닌 기간에는 일을 하면서 사조에 대하여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막과 관직생활을 통해 느끼고, 학업에 힘쓸때는 조금 멀리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못볼꼴도 보고, 연명소에 이름도 넣어보고, 모르던 것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느껴봤으며 북적거리는 사조내에서 많은분들을 알게됐지요.

1년 정도 공백기가 지난 후 재정비하면서 호패발급, 이런저런 물품들도 생겨나고. 사칭이 난무하던 게시글 시절의 것들이 정리되면서 조금은 조용해졌던 기억이 있고, 하나씩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민국의 일들이 잘 흘러가나 싶었는데 상황이 안좋게 흘러가기도 했고, 처음하는 업무로 인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또 잊고 지내게 됐습니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옛기억을 더듬어 이곳을 찾아봤는데 우아아. 그대로 있어서 깜짝 놀라고 또 놀라고, 알고있던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다른 곳들은 몇년 지나면 부풀려졌다가 침체기를 맞게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져서 아쉬움을 남기는 곳들이 몇곳 있었기에 당연하다 여겼는데 그대로 있다는 거, 유지한다는 것이 힘듦을 알기에 더 반가웠습니다.

너무 한적해서 놀란가슴 부여잡고, 감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지역활동, 서당강의, 농사부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적응후 품계회복 및 재출사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냥 조용히 초야에 묻혀 지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지금의 모습으로 와버렸습니다.

관리하는 분들의 노고가 가장 크다 여겨지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또한 유입되는 백성들이 있음으로 하나둘씩 체험하면서 출사를 하게 되고, 관직생활을 하던 유품자들은 잠시 쉬어가기에 고여있지 않은 물처럼 흐르고 있어서 지금까지 온거라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민국의 일정을 살펴가면서 사조생활을 했던터라 깊이있는 일을 못했고,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제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13] 정예림
629('20)-08-16 00:38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조를 모르고 살아온 날과 사조를 알고 살아온 날이 거의 비슷해져가고 있습니다. 사조가 계속 명맥을 유지한다면 사조를 알고 살아온 날들이 더 길어지는 날도 오겠죠. 사조를 알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아무래도 생업에 치이다보니 그로 인한 영향이 있을 수 있겠고, 마치 부식되는 것처럼 시간이 오래흘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억도 부식하게 된 걸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들이 있었기에 오늘날도 있었다고 생각하여 지난날들을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기억들이 흩어져버리는 것이 꽤나 속상합니다. 이젠 자세한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조를 하면서 느낀 희노애락(喜怒哀樂) 같은 감정들은 마음 한 구석에 남겨져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희노애락 조차도 이제는 빛바래고 은은한 향기처럼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그마저도 아련하기만 합니다.

누군가의 소개와 또 역사에 관심이 있어 검색을 하다가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아조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저 혼자서 스스로, 알아서 활동을 해나가며 어려움을 헤쳐나가고자 했다면 금방 그 의욕은 사그라들고 진작에 아조의 역사 속 저편의 일개 백성 중 한명으로 남아있었겠지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하나 둘 알아가면서 아조에 쉽게 적응하고, 또 많은 깨달음을 얻고, 그리고 창국 제20주년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나고 알게 된 많은 분들이 설령 한 때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티격태격 했을 지라도 그런 분들도 포함하여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것 같습니다. 일개 제 자신에게도 이 아조에도 말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깨닳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기를 빕니다.

이 자리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조에 함께하시는 분들도 있고 멀리 떠나신 분들도 계십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빌며, 또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14] 한명회
629('20)-08-16 01:50
가. 사조를 하면서 느낀 체험 수기, 추억 등

저는 중학교 때 조선을 배경으로 한 모의 역사 카페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서 관직표 등을 찾다가 본조로 흘러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만들려고 하던 것보다 더 나은 커뮤니티가 있으니 당연히 좋다고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다른 분들처럼 관속도 열심히 하고 훈장도 하고, 당시에 재미있게 읽었던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 만화를 조악하게 따라 그린 그림으로 만화 대행대왕실록(당시에 장종대왕께 묘호가 아직 없으실 때라)이라는 걸 연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자결도 했다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네요.

가원들과 같이 일군 가문, 여러 인연, 정적들(앗)... 떠오르는 추억이 끝도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세자책봉례입니다. 관력이 길지 않았지만(통훈 달고 1년 남짓이었으니깐요)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중책을 맡게 되어 밤낮으로 국조오례의 같은 걸 상고해서 나름 대행사를 치뤄냈습니다. 의궤청까지 마치고 그 성과로 당상에 올랐어요. (그 뒤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자리보전만 해서 지금도 그대로인 품계이지만) 지금도 가끔 오대산 사고에 들어가서 책례도감의궤를 살피곤 합니다. 이걸 정말 내가 한 게 맞나 싶고,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힘들 때 자존감 회복에도 조금 도움이 됩니다. 작은 사회이지만 그 안에서 뭔가를 창조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 사조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군대 갔다 와서 조정 복귀 전에 태백서당에서 짧게 남명집 강의를 했는데요, 지금 관직 생활보다 훨씬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제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조선시대와 연관지어 다른 분들과 같이 공부하고, 의견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고, 무엇보다도 의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제102차 소과에서 제가 윤지당유고에서 시제를 출제하였는데, 나중에 물러나면 이 책을 여러분과 같이 공부하면서 강의하려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끝으로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제가 형조에 있을 때 (개국620년) 조두숭 사건 재판에 검사로 참여하면서 30년형 판결을 이끌어 내었는데, 당시 절친했던 재판관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습니다. 이 형기가 끝날 때까지 관직생활 같이 하자고. 그 분은 명을 달리하셨지만 저는 이래저래 아직 버티고는 있네요. 그 때처럼 패기있게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지만, 아직은 좀 더 남아서 사조의 매력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좀 더 많은 분들께서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는 글이 길었는데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15] 김지수
629('20)-08-16 23:28
<사조의 앞날, 비전제시 등>

사이버 조선왕조(일명 사조)를 찾아오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굵은 줄기로 본다면 두어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얉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찾는 경우가 첫번째 경로, 지인들의 추천으로 오는 경우가 두번째 경로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또한 민국의 역사드라마와 함께 공존하곤 했었다. 오래전에는 정통 사극이 많았고, 단편보다는 장편 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었기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흐름을 지켜보면서 검색경로를 활용하다가 자연스럽게 사조로 직행. 물론 이때 여러 백성들이 개인홈에 살짝 이곳 이야기를 흘려놓으면 몇번의 누름으로 들어오게 되는 부분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요즘은 퓨전형식, 웹드라마가 유행하게 돼 가볍게 보고 끝내는 쪽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깊이있는 지식을 쫓기보다 잠깐 보고 마는식으로 변해서 검색경로로 찾는 횟수가 줄었을 것이다.
지인 추천의 경로도 활성화됐던 시기에 어린 학생들이 이런 곳이 있다면서 알려주면서 같이 소통의 경로로 이용했다면 지금은 소통공간도 작은 납작상자로 이동했으며 입시만 길게 6년, 짧게 3년으로 문화도 바뀌면서 바빠졌다. 스트레스는 게임에 빠져있거나 이런저런 영상을 보면서 푼다는 사실, 그들보다 윗세대도 예전의 대학문화와 조금 달라져 노는 형식이 달라졌을터.
예전 세대와 비슷하게 보일수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달라져서 다른 부분들이 많아졌다. 이래서 '우리때는 안그랬는데.'라는 말은 계속 전해져간다.

많은 부분들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검색을 한다. 잘만 활용하면 유입인구는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들어오기는 할 것이다.
'안녕'하고서 돌아섰던 백성들은 잊지않고 다시 오거나 여유가 생겨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건망증이 심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면 어렵긴 하나 아마 50~60%는 오지않을까 한다. 아니면 할말 없지만.

있는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폐했던 여러 기관들을 열어놓거나 지역 활성화를 위해 조금씩 노력한다면 같이 있으려 할 거 같긴한데 이것들은 그냥 생각일 뿐이니 뭐라 할말은 없다.
조금 더 흥미로운 활동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계획해보고, 활용하는 정도로 활성화 방안을 생각해봤지만 반짝이는 회전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긴 하나 많은 분들이 생각해본 활동아이디어를 지방관을 할때 적용해본다면 유효백성들이 활동할 때 괜찮으리라 생각해본다.
열정, 애정, 관심을 두고 활동 하는 백성들이 많아진다면 앞날은 아주 부정적으로 흐르지 않을거라 믿는다. 꾸준히 조금씩 흐르는 샘처럼 갑작스러운 변화없이 이끼가 끼지않을 정도로 조금씩 변화 된다면 30주년, 40주년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민국의 일들과 겹치면 어쩔수없이 민국을 택해야하나 결국은 돌아오니까. 끝.
(두서없음의 끝판왕 작성)
[16] 남세준
629('20)-08-16 23:59
나. 사조의 앞날, 비전제시 등

여유가 되면 사조의 옛 글들을 읽어 보곤 합니다. 초창기 시절부터 사람이 많았던 시절, 중간에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다시 부흥하게 된 시절 등...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지역과 관청이 활성화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암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20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인터넷 환경도 많이 변했죠. 인터넷이라는 게 막 나오던 시기에 시작되어, 텍스트 기반에서 어느덧 동영상이 주가 되는 시대가 되었고, 집에 오거나 PC방에라도 가야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인터넷이 지금은 누구나 어디서나 손에 쥐면서 확인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의 트렌드는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홍보"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상 세계 커뮤니티' 를 하고 싶어하는 수요는 꾸준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새롭게 유인되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요인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선전관' 이라는 직책이 있어서, 유명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홍보글을 올린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 왔지만, 지금은 그렇게 홍보 목적이 크게 드러나게 되면 외면받기 쉬우니, 다른 방법으로 홍보를 해서 사람을 끌어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영상 시대, 할 것이 없으면 '유튜브부터 본다' 고 하는 시대에, 사조도 홍보 동영상이나 소개 동영상을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요. 사조는 20년동안 쌓아 온 체계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체계가 복잡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을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간편하게, 영상을 만들어서 유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요? 돈만 있다면 역사 관련된 유튜버를 섭외하여 영상을 찍는다거나 하면 좋겠지만 수익이 나는 사이트도 아니니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홍보라는 것이 그만큼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대응해야 하는 부분이 어렵기는 한데,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조금씩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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