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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림
[경상도/생원] <상소> 이번 천거에 대하여
이미 전하께서 매 해 연두교서에서 그리고 윤대에서 여러 번 하교하셨듯이 작금의 조정은 관원이 부족하여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조정에 사람이 없다는 것에 탄식만 할 뿐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누차 천거나 직부 등에 대해 때로는 엄히 때로는 망극하게도 간절히 하교를 하셨으나 이를 제대로 받들어 이행한 신료는 몇 없었습니다. 천거방목의 기록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목과 지침 등에 천거에 대해 명시가 되어 있으나 현재 천거제는 몇 년 간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정에서는 궤(櫃) 속에 숨겨진 진주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뜻이 있는 재야의 선비들이 과거장으로 몰려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의 조정의 모습은 그간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라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조정의 형편이 한가롭게 대과 급제자만 기다려 인력을 충원할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는데 어찌 인재를 구함에 과거(科擧)에만 의존할 수 있겠습니까. 인재는 과거가 아니라 천거(薦擧)로도 등용할 수 있습니다. 아조(我朝)에서 과거는 그저 문필(文筆)을 검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문필이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장에서 이름을 드높였다 하여 그 사람의 됨됨이를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량한 글재주만 믿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보다는 글재주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언행이 일치하여 정직하고 강직하며 실천궁행(實踐躬行)에 힘쓰는 사람이 오히려 더 조정에 필요한 인재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상사회라는 아조의 특성상 정말 중요한 활동력이나 행정에 대한 감각적인 이해 등은 시권을 통해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과거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천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 천거를 담당하는 주무관청인 예조에서는 피천거자 하유에 대하여 관리로 입사하여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아뢰면서도 조정다운 조정을 만들고, 조정에 신인을 들이는 중차대한 일이니 소과에 입격한 후 천거를 다시 진행하자고 합니다. 신은 조정다운 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조정에 신인을 들이는 또 다른 중차대한 일인 과거는 문필 이외에 다른 능력은 검증할 수가 없는 제도임에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시권에 대한 채점과 감시가 끝납니다. 홍패를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품행이나 자질은 살펴보지 않고 급제자를 조정에 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반면 천거는 과거제와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여 상대적으로 더욱 오랜 시일을 소모합니다. 백성들의 활동 의욕과 관련된 업무이기에 시관이 일주일 이내에 채점을 완료하지 않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파직되는 과거제와 대비됩니다. 천거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피천거자의 문필과 더불어 그 외에 다른 능력들을 살펴볼 수 있음에도 피천거자를 조정에 들이는데 저어합니다. 조정에 신인을 들이는 일은 천거뿐만 아니라 과거 또한 역시 중요한 것이고 백성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는 과거뿐만 아니라 천거도 중요한 업무인데 이 두 제도 사이에 차이가 있으니 신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 예조에서는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함이 아니라 전례가 그러하니 조심하자고 합니다. 그저 활동력만을 믿고 입사를 시켰다가 전처럼 혹여 잠적이라도 한다면 조정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다며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경험적으로 증명된 주장이 맞는 것입니까. 소과에 입격하고 잠적한 선비들이 부지기수이며 심지어 대과까지 급제했음에도 출사하지 않거나 도중에 물러난 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소과에 입격한 것을 천거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가까운 예만 하더라도 지금 조정을 떠받치고 있는 두 당상인 동부승지와 공조참의는 각각 소과에 입격하기 전에 천거를 받아 출사하였고 소과에 입격하기 전 활동 내역만으로 은생원(恩生員)의 자격을 얻었으며 이후 문필을 증명하였습니다. 지금의 예조에서 내세우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오늘날의 두 당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문필은 출사 이후에 증명을 하게 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또 일단 등용한 후에 교육을 시키면 될 것이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리면 그 뿐입니다. 예조의 예단과 염려가 시세(時勢)를 앞서는 듯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피천거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떨어질 조정의 위신보다 관료가 없어 현직 관원들의 사직은 생각할 수조차 없고, 겸직이 빈번한 것이 별 일이 아니며, 중앙에서 지방관조차 제대로 차송하지 못하는 현재 눈앞에 보이는 조정의 위신을 염려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재주를 알아보고 그에 맞게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쓰는 것도 위정자가 할 일입니다. 준마는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어도 밭을 갈 때는 소보다 못합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인사(人事)가 이러할진대 피천거자 하유는 이미 다른 방면에서 특출남이 입증되었고 출사의 의지가 있음에도 문필이 증명되지 않아 쓰이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소신은 문필이 관료의 자격에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천거에 관한 조문에 소과 입격은 천거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 그저 피천거자의 관직과 품계를 결정하는 데에 참고할만한 자격이나 경력 중의 하나로 명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하여 소신 감히 예조의 계본을 가납하지 마시고 소신 이외의 다른 피천거자도 전하께서 다시 살펴봐주시기를 청합니다. 특히 피천거자 하유는 지난 2월 27일에 천거를 받았으나 그간 예조의 사정으로 지금까지 일이 미루어졌으니 더욱 늦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관계 관청이 천거 업무를 조속히 이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여 주십시오. 소신이 일개 미천한 백성에 불과하지만 사사로이 다른 뜻을 품은 바는 없고 그저 조정의 안위가 염려되어 아뢰는 것이니 부디 소신의 상소를 물리치지 말아주십시오. 삼가 물러나 전하의 하교를 기다리겠습니다. 개국624년 04월 22일 경상도 생원 신 정예림 |
http://www.1392.org/bbs?sangso: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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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624('15)-04-2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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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내리신 비답입니다. "상소한 뜻은 잘 알았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처분은 따로 염려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다." 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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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
이강
정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