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음] 조정 풍토에 관하여

오늘 사인 이휘, 정랑 조조, 산사 부지훈 등의 상소에 관하여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전교하고 윤음한 바가 있지만, 지금 다시 조정의 여러 풍토에 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녹훈과 관련한 사무의 시일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사유로 과인이 징계를 내린 것을 두고 혹자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조정 세태가 어떠한가. 지금 조정은 대체로 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논죄하고 탄핵하고 징계하는 일을 주저하고 있다. 특히 그러한 직임을 맡아 행해야할 삼사(三司: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가 그러한데, 예전에는 약간이나마 징계할 것을 주청하는 기풍(氣風)이 있었지만,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타인의 원망을 감당하면서까지 직간(直諫)하려 하는 자가 극히 드믈다는 것이다.

이는 관리들 본성이 너그럽기 때문인가, 아니면 좋지 못한 명성을 듣게 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하기 때문인가. 여러 신하들은 혹 본래 직무에 시달려 그런 것이라고 하겠지만, 관직에 임명된 지 보름을 넘은 자가 태반인데 어찌 논의하여 아뢸 틈이 없었겠는가. 즉, 그러한 일을 행동으로 옮길 겨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조정 풍토가 대체로 유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어떤 일이 타인의 잘못을 밝혀 탄핵해야 하는 것에 이르게 되면, 모두가 그로 인한 원성이 자신에게 돌아갈까를 염려해 입을 다물고 있다. 때문에 신하들은 엄중하게 처단할 것을 주청하고 군주는 관대하게 처분하는 것으로 덕치(德治)의 면모를 달성한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일부나마 행동으로 옮길 방도가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지금 조정은, 임금이 마지못해 징계할 것을 명령하면 신하들은 나서서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거나 처분을 거두어 줄 것을 주청하는 풍토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인심을 얻고 몸소 덕(德)을 행한다는 명성을 군주가 아닌 신하들이 얻게 되는 격이니, 참으로 좋은 처지라 하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덕치의 일부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풍토를 개선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처분한 일도 대개 그로 인한 고심에서 나온 것이다. 비록 전교한 지 오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올라온 차자나 상소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어명이 지체된 것을 두고 죄를 청하거나 징계할 것을 주청하는 신하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임금이 훗날 경계로 삼고자 내린 처분을 관대한 처분으로 바꾸거나 아예 처분을 거둬 달라는 자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허물로 돌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일단 어명을 어겼다면 징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찌하여 관대하게 처분하라는 계청뿐인가.

지난 30일까지 어전에 계(啓:보고)하였거나 기한 유예를 청하였더라면 과인이 나서 징계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추가로 시간이 필요하다면 어전에 계목을 올려 윤허를 받으라 하였는데, 형조나 지방 관청에서 의정부와 호조에 보고 또는 연기할 것을 청했다 하여 어명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시일이 조급했더라면 간단히 계목을 올려 기한 연장을 주청하였으면 해결되었을 일이다. 이미 내린 전교가 있는데, 과인이 유예를 불가하다 하면서 파직이나 징계를 하였겠는가.

임금이 신하들의 허물을 잊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나라에는 기강이 있어야 하니 반드시 분명하게 신칙(申飭:타일러 훈계함)해야 할 사안이 있다. 근무일수 15일을 감산한 것을 두고 다소 지나치다 여길 수도 있겠으나, 어명에 관계된 것이고 유약한 조정 풍토에 일침을 가해 이후 경계로 삼고자 함이니, 사인 이휘 등이 아뢴 바는 가납할 수 없다.


- 개국611년 7월 초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