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도 안내 과거 주관 행정 문과 시험장 무과 시험장 예조(문과) 병조(무과)
무과 과거시험장
* 문제는 '쓰기' 화면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제14차 별시 무과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20.08.15-2020.08.21
문서분류 원시
ㆍ추천: 0  ㆍ열람: 222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훈련원시 시제
 : 임진왜란의 조선군 3대 대첩 가운데 진주성 대첩이 있다. 당시 조선군의 승리 요인은 무엇인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2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

답안 내용 :

 임진왜란 초 왜육군은 무기의 우위성(조총, 일제사격 전술)을 바탕으로 한성까지 진격하여 조기에 조선의 수도를 함락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왜수군은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수군 공략에 실패하여 한성에 주둔한 왜육군 보급물자 수송에 실패하게 되고, 전쟁물자 보급 대안으로 추수철에 도래한 전라도를 공격하게된다.

 당시 진주성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목사 이경이 지리산으로 도망하여 전투를 수행할 지휘관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상황 타계를 위해 북방으로 몽진한 조정은 사천성, 고성 등 진주성 주변에서 왜군 공격을 효율적으로 분쇄한 김시민 장군에게 급히 진주 목사직을 임명하여 진주성 방어전을 수행하게 하였다. 이때  진주성 방어병력은 와해된 조선 정규군의 잔여세력과 약간의 의병을 합하여 3,800여 명이었다.

 나가오카 다다오키를 지휘관으로 한 왜군 약 2만 명은 김시민 장군 휘하 3,800여 명이 지키고 있는 진주성을 임진년 10.5~10일까지 6일간 치열하게 공격하나 조선군의 격렬한 반격에 부딪쳐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주한다. 이 전투의 결과로 조선은 전라지역을 보존하여 왜군의 초기 조선침공전략을 지연시켰다.


 위의 상황을 고려하여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조선군의 승리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김시민 장군의 리더쉽이다. 조선 정규군의 와해는 진주일대 백성의 불안 야기와 지역이탈을 가중시켜 왜군과의 전투의지를 무력화 시켰다. 장군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원 판관 시절 경험을 활용하여 일반 백성을 정규군으로 받아들여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훈련 시켰으며 , 백성을 격려하고 진주성 전투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시켜 전투의지를 고취시켰다.

 두번째로 의병과의 연합작전이다. 당시 전라도 최경희와 경상도 곽재우 의병장을 받아들여 이들로 하여금 왜군의 후미에서 보급과 집중을 분산시키는 게릴라전과 일본 도깨비 오니 복장을 착용하여 공포를 조성하도록 한 심리전 등을 시행하도록 하여 왜군의 군사력 집중을 분산 시킴과 동시에 아군의 전력 노출을 최소화하였다. 이는 왜군의 집중공격을 불가능하게 하여 왜군 본진의 진주성 공격시기를 지연시켰다.

 셋째로 화포무기의 활용이다. 왜군은 조총과 이를 활용한 일제사격 전술로 조선군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군은 개인 소화기였던 승자총통과 대량살상용 무기인 현자총통, 인마살상용인 비격진천뢰 등 화포무기를 확보하여 전투에 대비하였다. 당시 사용할 수 있는 화포무기의 확보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허를 찔러 조선군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후의 조력이다. 왜군의 진주성 집중공격으로 진주성 내 백병전이 발생하였으나 폭우로 인해 왜군의 조총 사용에 제약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조총이 주력무기였던 왜군은 전투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조선 수비군은 왜군의 공격에 의한 피해가 줄어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초 호남을 방어하여 조선군 반격의 동력을 제공한 전투이다. 이 전투의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김시민 장군의 민관군을 아울러 전투의지를 고취시킨 리더쉽, 의병과 정규군의 연합작전을 통한 시기 적절한 전략전술의 시연, 화포무기인 승자총통, 현자총통, 비격진천뢰 등의 활용과 기후의 조력이었다. 더불어 김시민 장군이 당시 조선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진주성 전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통찰력이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전쟁 시 전쟁의 양상을 역전한 인천상륙작전과 같이 진주성 전투는 향후 임진왜란의 전쟁 양상을 역전시켰기에 그러하다. 불굴의 의지로 전투를 수행한 장군의 용맹함은 조기에 와해되어 지리멸렬하던 조선육군에게 큰 자존심이 되었고, 이는 향후 전쟁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출처]
- 진주대첩 | 두산백과

----------------------------------------------------------------------------------
http://www.1392.org/bbs?sajoex2:525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서찰(메일) 수정/삭제 : 제한 (접속하십시오)     윗글 밑글 목록 쓰기
  | 비공개 설정 사조 백과사전 맞춤법 문법 검사기 0
2000
저장(입력)
번호 분류  문서 제목  이름 응시(작성)일 열람
486 원시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유건희 622('13)/03/06-23:02 202
485 원시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이현 622('13)/03/06-12:02 222
484 원시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장동현 622('13)/03/02-02:10 154
483 무과 [한량] 제44차 대과 무과 응시 윤강 622('13)/02/03-22:36 267
482 원시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이정윤 621('12)/12/21-02:10 175
481 원시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무효) 최준 621('12)/12/19-15:47 226
480 원시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진풍백 621('12)/12/18-22:25 268
479 무과 [한량] 제43차 대과 무과 응시 (무효) 오덕성 621('12)/10/27-19:21 238
478 원시 [한량] 제73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이여송 621('12)/09/28-23:16 211
477 원시 [한량] 제72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서성일 621('12)/09/06-14:17 256
476 무과 [한량] 제42차 대과 무과 응시 정은호 621('12)/07/26-12:23 216
475 무과 [한량] 제42차 대과 무과 응시 (무효) 이이 621('12)/07/25-19:43 192
목록이전다음쓰기 123456789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