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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차 소과 훈련원시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19.08.24-2019.09.01
문서분류 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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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제73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무과 시제 (시험 문제)
: 제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나치 독일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소련을 침공하는 '바로바로사 작전'에 돌입하였다. 하지만 이 작전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어 독일이 연합군에 패배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바로바로사 작전이 초기 승리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실패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2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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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안 내용 :

히틀러의 바로바로사 작전은 나치의 입장으로는 분명 절대적으로 옳고 반드시 필요한 작전이었다. 당시으 상황을 보면 히틀러는 정확한 분석을 해내었다. 그는 예리한 파악력으로 이미 독소불가침조약은 곧 휴지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련은 나치와 대적하는 당시 유일한 경쟁자였기에. 그리고 소련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나치 독일이 사라질 것이라는 그의 생각도 결국 맞았다. 그만큼 히틀러에게 소련은 큰 존재였으며, 그것은 그만큼 히틀러에게 소련 정복은 중요했음을 의미하며, 또한 바로바로사 작전은 그만큼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히틀러는 바로바로사 작전에 실패했다. 어째서일까? 필자는 그 힌트를 히틀러로부터 몇십년 전, 또다른 유럽의 패자였던 나폴레옹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 역시 히틀러와 생각이 비슷했다. 러시아를 정복해야 유럽을 정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는 강력한 화력으로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초기,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화력과 군사력에 밀렸다. 모스크바까지 점령당한 러시아는 곧 러시아만의 술책을 꺼냈다. 그것은 바로 겨울이었다. 러시아의 겨울은 혹독하다. 두툼한 털모자를 쓰지 않으면 겨울엔 뇌에 손상을 입을 수 있으며, 나무 위에 공기가 얼어붙는 추위를 지닌 겨울이 바로 러시아의 겨울이다. 나폴레옹은 그 겨울을 작전에 고려하지 못했다. 또한 모스크바 주민들은 프랑스 군사에 대한 증오심으로 휩싸여 식량을 불태우고 우물을 메운 후 피난을 떠나버렸다. 결국 그의 군사들은 추위와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갔으며, 나폴레옹은 포 한 번 쏘지 않고 모스크바를 차지했듯이 포 한 번 쏘지 못하고 모스크바에서 후퇴해야 했다. 히틀러의 바로바로사 작전 시기는 6월부터 12월까지였다. 이미 11월부터는 치명적인 추위가 군사들을 덮쳤을 것이다. 히틀러는 바로 이 러시아의 추위를 작전에 감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론상으로 보았을 때 적군의 경제적 중심지를 적극적으로 파괴하여 내부에서 잠식시키려는 그의 작전은 매우 훌륭했다. 또한,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작전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로만 군대를 몰아넣은 반면, 히틀러는 세 방향으로 나누어 진격시켰던 것이다. 그의 의도는 광대한 러시아 땅 전부를 짓밟아 점령하는 것이 아닌 경제와 보급을 무너뜨려 내부에서 잠식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훌륭한 술책이 오히려 그를 옭아매었다. 오늘날 전쟁사학자들은 그가 모스크바로만 진격시켰다면 겨울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있었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병력을 분산시켜 소련의 방어력을 감당 못 할 소규모의 군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결국은 소련이 나치를 막아냈다. 또한, 소련의 방어력 때문인지 작전이 길어지자, 겨울이 다가와 독일군은 무너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전투에서 패하여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히틀러는 바로바로사 작전의 실패로 전체적인 전투작전이 틀어지고 말았고, 장교들과의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히틀러는 소련 정복이라는 같은 길을 걷다 쇠락한 나폴레옹의 예를 따르지 않으려고 모스크바에 전력을 투입하지 않고 북부, 중부, 남부로 소규모 군대를 조직해 분산시켜 보냈다. 그러나 소련의 방어력을 감당하지 못한 소규모의 독일군이 작전을 끌어 겨울까지 다가오고, 혹한에 히틀러의 작전은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히틀러의 작전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훌륭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부의 레닌그라드는 러시아혁명의 발상지이자 자원지대이며, 남부의 키예프는 유전으로의 길목임과 동시에 소련 최대의 곡창 지대였다. 아마 히틀러가 아닌 다른 작전가였더라도 레닌그라드와 키예프를 그냥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필자가 생각하기에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혹독한 겨울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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