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서양갑
작성일 개국618(2009)년 1월 3일 (토) 21:57  [해시(亥時):이경(二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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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배향인 행장록
행장록
行狀錄


수충승지창국공신 행중직대부한성부서윤 증자헌대부한성부판윤전원군 이방원 행장
守忠承志昌國功臣 行中直大夫韓城府庶尹 贈資憲大夫韓城府判尹全原君 李芳遠 行狀

예로부터 공신(功臣)의 행장(行狀)을 찬(纂)하는 것은 충절(忠節)과 인의(仁義)를 후세(後世)에 널리 전하여 후인(後人)들의 모범(模範)으로 삼고, 또한 공적(功績)과 행적(行蹟)을 널리 살피어 혹은 명예로운 시호(諡號)를 추시(追諡)하고 혹은 벼슬을 더하여 추증(追贈)하는 근거(根據)로 삼고자 함이다. 아조(我朝)가 창국한 이래 공(公)의 성정(性情)이 불의(不義) 앞에 엄정(嚴正)하고 조정 기강을 확립하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으시었으니, 내외(內外)가 모두 공의 엄격(嚴格)하심에 수긍(首肯)치 않는 자가 없었다. 공께서 오랜 지병(持病)으로 졸(卒)함으로 인하여 상하(上下)가 함께 애통해 하니 공의 행적을 후세(後世)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행장을 찬(撰)한다.

공은 전주(全州) 이씨(李氏)로 휘(諱)는 방원(芳遠), 호(號)는 사암(俟菴)이시다. 개국581년(임자:1972)에 전라도(全羅道)에서 출생하신 공은 개국609년 10월에 본향(本鄕)인 전라도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다. 이해 10월에 시행된 제3차 정기 대과 문과 병과에 급제(及第)하시어 정9품 종사랑에 봉작(封爵), 조정에 초입사(初入仕)하시었다. 초임(初任)을 선공감부봉사로 발령받으시어 부임하신 뒤 얼마 되지 않아 행함경도검률로 부임하시어 관찰사 대행으로서 목민관(牧民官)의 소임을 맡게 되시었다.

검률로 재임시 관내에서 모반사건이 일어나니, 세인들이 말하는 '정여립 역모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함경도 백성 정여립이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조정 장악을 기도(企圖)하였음이 고변(告變)으로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이를 문초(問招)할 국청(國廳)을 열게 되었다. 공은 관할 감영(監營)의 검률로서 국청 좌장으로 참여하여 정여립의 죄를 만천하에 밝혀내는데 크게 일조(一助)하시었다.

임기를 마친 공은 홍문관정자, 행전라도검률 등을 역임(歷任)하신 후 다시 홍문관정자로 부임하시었다. 재임시에 경기, 황해, 평안 등의 삼도암행어사(三道暗行御史)로 암행하시면서 지방관으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한 경기도도사 이이(李珥)를 봉고파직(封庫罷職)하여 압송(押送)하는 등 국법의 준엄(峻嚴)함을 널리 보이시니, 소임을 기망(欺罔)하는 탐관(貪官)에게 준열(峻烈)하셨던 공의 성품이 이때부터 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홍문관저작을 거쳐 행경기도검률로 나아가시니 공의 세 번째 목민관 부임이었다. 임기를 마친 공이 수사간원정언을 제수(除授) 받아 경직(京職)으로 돌아오시니, 불의(不義)에 추상(秋霜)과 같으신 공의 진면(眞面)이 상하에서 높이 인정받으신 연유(緣由)라 할 것이다. 정언 재직시에는 어명(御命)을 받잡아 천거어사로서 팔도를 탐문(探聞)하시어 인재 방운(方雲)을 천거 후 조정에 출사케 하셨으니 실로 종묘(宗廟)사직(社稷)을 튼튼히 하는 데에 공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

양사(兩司)에서의 공의 능력이 크게 돋보이시니 사간원정언 이후 잠시 행형조정랑으로 재임하신 것을 제외하면 사헌부감찰,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등 양사에서 재임하시며 조정의 기강(紀綱)을 바로잡고 전하의 어진 선정을 보필하는 간관(諫官)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시었다.

양사에서의 임기를 모두 마치신 이후 잠시 초야(草野)에 머물러 후학(後學)을 기르시며 향리(鄕里)에 묻혀 지내시다 개국612년 4월에 다시 한성부서윤으로 나가시니 목민관으로서 네 번째의 부임이시었다. 서윤으로 재임동안 선정을 베푸시어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한 가운데 개국612년 7월에는 그간의 공로가 인정되시어 수충승지창국공신(守忠承志昌國功臣)으로 책봉되시니, 실로 공의 공덕에 부합(附合)하는 광영(光榮)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성부서윤의 임기를 다하신 후 일신의 병고(病苦)로 인하여 향리에 물러나 계시며 병구완을 하시었으나 마침내 병마(病魔)로 인해 생을 마치시었으니 개국612년 10월 27일의 일이었다. 공이 오랜 지병으로 졸하심을 애석해 하신 상(上)께서 예조의 참상관을 보내시어 조문하시니, 경향(京鄕)의 선비들이 모두 통석(通釋)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공은 관직생활의 대부분을 삼사와 지방관으로 보임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직(內職)으로 들어오시면 추상같은 기강을 바로 하는데 진력(盡力)하시었고, 목민관으로 나아가시면 백성을 자애(慈愛)롭게 돌보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 하시었다. 공의 성정(性情)이 엄하고 고고(孤高)하시니 주변 동학(同學)들이 모두 어렵게 여겨 교분(交分)이 많지 않았으나, 불의 앞에 강맹하고 백성 앞에 유순하신 공의 성품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주(註)] 개국613(2004)년 6월 25일에 '익평(翼平)'으로 추시(追諡)된 증자헌대부 한성부판윤 행중직대부 한성부서윤 전원군 이방원 선생의 행장이다. 시호법(諡號法)에, 백성을 사랑하여 다스리기를 좋아함[愛民好治]을 '익(翼)'이라 하고, 정치를 행함에 강직하고 기강이 있는 것[有剛治記]을 '평(平)'이라 하므로 그리 정한 것이다. 개국612(2003)년 11월 17일에 대행왕(大行王)께서 공의 행장(行狀) 찬술을 일가(一家), 동문(同門), 문인(門人) 등에게 명하셨다. 이에 창국원종이등공신 가선대부 예조참판 이동진(李東珍)이 익년 6월 초6일에 공의 행장을 찬하였다.




수충승지광운창국공신 행봉정대부사헌부지평 증자헌대부형조판서영광군 유치의 행장
守忠承志廣運昌國功臣 行奉正大夫司憲府持平 贈資憲大夫刑曹判書靈光君 柳治義 行狀

예정

수충승지창국공신 행소위장군한성부서윤 증자헌대부한성부판윤경원군 강다소 행장
守忠承志昌國功臣 行昭威將軍韓城府庶尹 贈資憲大夫韓城府判尹慶原君 姜多笑 行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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