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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宗大王實錄 卷五 (장종대왕실록 권5)
- 개국609년 10월 초1일조부터 개국609년 10월 초10일조까지 -
실록 해제(解題)
실록 권5.는 개국609(2000)년 10월 초1일 임진(壬辰)부터 동월 초10일 신축(申丑)까지의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원명(原名)은『사이버 조선왕조 장종대왕실록 권5』이다. 승정원에서 개국609년 10월 17일에 편찬을 완수하여 당일로 사고(史庫)에 봉안(奉安)하였다.
10월 1일 임진(壬辰)
예조와 병조로 하여금 정기 대과의 시제(試題)와 시관(試官)의 명단을 정해 올리도록 전교(傳敎)하였다.
홍문관정자 박희웅(朴熙雄)이 상소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항상 올림픽이 시작되고 끝날 때쯤 되면 나타나는 여론이 있습니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육성이 그것입니다. 인기 종목 몇몇을 제외하고, 태권도를 비롯한 거의 모든 종목은 비인기 종목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경기 종목들을 지원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저 불가능하다고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남자 하키를 보소서. 연장을 마치고 끝내 승부치기로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화란(和蘭)은 하키 전용구장이 3백 개가 넘고 전국의 하키 선수단이 작은 책으로 한 권의 주소록이 된다고 합니다. 본국은 어떠합니까. 하키 전용구장은커녕 실업에 하키단이 단 3개 있습니다. 펜싱은 어떠합니까. 검사(劍士) 김영호는 연습상대를 찾지 못하여 코치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연습하였다고 하며, 아무도 없는 썰렁한 경기장에서 묵묵히 작은 공을 손으로 튀기고 던져대는 핸드볼 선수들도 있습니다. 배드민턴을 보소서. 과거 세계최강이라 불리던 우리가 이제는 8강에도 들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인기 종목으로만 편중된 예산을 거둬들이시어 비인기 종목에도 활력을 불어 넣으소서."
비답(批答)하기를,
"정기 과거가 끝난 후에 논의를 거쳐, 예조로 하여금 그와 관련된 본조(本朝)의 의지를 민국정부에 통보토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통사랑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단종과 정순왕후의 합장과 관련하여 상소하였다.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신 후 숙종대왕대에 이르러 단종(端宗)이라는 묘호(廟號)가 내려졌습니다. 소신의 생각에 중요한 것은 정순왕후와의 합장입니다. 두 분의 삶을 생각해 보소서. 한 분은 숙부이신 세조대왕에 의해 유배와 사사를 당하셨습니다. 마지막 소원인 중전(中殿)과의 동행도 허락받지 못하고 지금도 영월 땅에 잠들어 계십니다. 정순왕후께서도 평생 정업원(淨業院)에서 단종대왕을 그리워하며 사셨다고 합니다. 불쌍하신 두 분의 혼령이나마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10월 2일 계사(癸巳)
경상도 유생 신용호(辛庸浩)가 상소하기를,
"지난달 28일에 있었던 사옹원봉사 조성민(曺成旼)의 상소에 이어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청합니다. 소생 또한 현재의 호패 제도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나,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만백성이 부담 없이 본조의 정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소인도 부응하고 있으나, 요즘에는 강화된 신분 인증제가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봉사가 올린 상소에도 나타나 있듯 타인의 이름을 도용해 악한 일에 사용한다면 본래의 이름 주인이 화를 당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는 줄로 압니다. 누군가 타인의 이름으로 불충한 언사를 하여 본래 이름을 가진 주인을 모함하려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필체로 추적이 가능하다고 하나, 근래에 저잣거리에 널린 피씨방(皮氏房)을 옮겨 다니면서 범행을 저지른다면 찾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호패제를 강화하자는 소차(疏箚)가 많았으나, 과인이 그러한 제도를 시행할 수 없다고 하교하였던 것은 이전 상소문에서 비답하였던 바와 같다. 신분 인증을 위한 별도의 이름[別號]과 비밀번호를 두어 그 절차를 거친 후에만 교통(交通)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칠 경우에 고려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유생 잘 알 것이다.
우선 본국이 백성들의 자유로운 상소와 의견 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점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이는 과인의 의지와 대치되는 것이다. 또 억울한 사정이 있는 백성이 그 자세한 내역을 아뢰고자 하는데, 먼저 호적신고를 거치도록 한다면 이는 '언로를 열어 놓는다'고 하는 것이 부합되지 못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상소문과 빈청, 문답, 논쟁 등을 개방할 경우에는, 그러한 복잡한 인증 절차를 두는 것으로 인한 실효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니 역시 거듭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증번호를 신고토록 하더라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허나, 상소가 계속되므로 조만간 조정 공론에 부쳐 신하와 백성들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
하였다.
10월 3일 갑오(甲午)
오도암행어사 박희웅(朴熙雄)이 복명(復命)하니, 상이 인견(引見)하였다. 박희웅이 아뢰기를,
"소신이 경기도 땅에 이르러 보니, 수경기찰방 이이(李珥)가 관찰사 대행을 맡고 있는 바, 아직 관찰사직을 대행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전하의 '면학교서(勉學敎書)'를 받자와 직무에 충실하였기에 경기도 호구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는 찰방 이이의 공로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유례없는 '민관평회의(民官評議會)'라는 것을 개최한다고 하니, 이에 상대평가로 상상(上上), 절대평가로 상하(上下)라 매겼습니다.
경상도 땅에 이르니, 행경상검률 허생(許生)이 관찰사직을 대행하고 있사온데, 특별한 치적은 보이지 않으나 무난하게 집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상대평가로 상하, 절대평가로 중중(中中)의 점수를 주었습니다.
황해와 강원의 경우는 그 상태가 비슷하므로 함께 아룁니다. 황해는 옹진현령 양지원(梁志元), 강원은 수홍천현감 이순신(李舜臣)이 각각 관찰사 대행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황해의 경우는 호구가 2인, 강원의 경우는 4-5인은 되어 보이나 강원도에서는 실제 활동하는 이가 이순신 외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관찰사 대행이 아무런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소신이 은연중 확인하니 백성들이 오기를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양지원의 경우는 상대평가는 상하, 절대평가는 중중, 이순신의 경우 역시 상대평가는 상하, 절대평가는 중중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충청도의 경우는 행충청검률 황담사(黃澹沙)가 그 소임을 소홀히 하고 있어 봉고파직(封庫罷職)하고 도성으로 압송하였습니다. 황담사는 지난 대과에 급제하여 충청검률로 관찰사 대행에 부임하였으나, 전하의 어명에 따라 부임인사만을 한 후에 아무런 활동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나마 남아있던 백성들도 모두 충청 땅을 외면하였습니다. 충청도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를 방불케 하도록 방치하였으니, 그 죄가 적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어사 직임을 수행한 노고를 치하하고 이조로 하여금 박희웅의 품계를 1계 올릴 것을 명하였다.
수예조좌랑 허준(許浚)이 단종과 정순왕후 합장 문제에 관해 계(啓)하였다.
"지난달 12일에 경기도 유생 허균(許筠)의 상소에 의거하여 23일부터 예조에서 논의된 단종대왕과 정순왕후의 합장 문제에 대한 계문입니다. 승문원박사 이이(李珥), 홍문관정자 박희웅(朴熙雄), 통사랑 연개소문(淵蓋蘇文), 종사랑 정약용(丁若鏞)을 비롯한 여러 관리와 백성의 의견을 토대로 아룁니다.
단종께서는 부왕이신 문종께서 승하하시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셨다가 숙부인 세조께 왕위를 빼앗기시고 비운의 생을 유배지에서 마감하셨습니다. 단종대왕과 정순왕후께서는 서로 정이 돈독하시어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항시 서로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헤어져 만나지 못하고 계시니, 이 두 분의 애절한 사연이 만백성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두 분 또한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의 공론이 합장하는 방향으로 모아졌습니다. 단종대왕께서는 영월에 정순왕후께서는 남양주에 계시니 음택에서라도 두 분을 함께 사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장릉과 사릉을 합장하여 두 분의 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합장의 절차는 경기도 유생 허균이 일전에 상소한 바와 같이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상이 이르기를,
"곧 예법에 따라 합장을 진행토록 한다."
하였다.
수형조명률 묘청(妙淸)이 계사(啓辭)하였다.
"봉고파직된 전행충청검률 황담사(黃澹沙)를 논죄한 결과를 아룁니다. 암행어사 박희웅(朴熙雄)이 전하의 어명을 받아 5도를 암행 순찰하던 중 충청도에서 황담사의 근무 태만을 적발하여 파직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소신과 행전옥서봉사 권율(權慄)는 이번 건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문제를 다시 형조에서 논죄하여 그에게 죄를 묻는다는 것은 그를 궁지에 몰아넣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선비가 글을 읽거나 무예를 닦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하는 것은 예로부터 이 나라 선비들의 제일 자랑이자 소망입니다.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것이 바로 선비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선비의 죄를 물어 파직하였다면, 그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처벌한다면 같은 죄목을 가지고 두 번 처벌하는 것이 될 터이니, 형조에서는 황담사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근신토록 하는 것만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전교하기를,
"아뢴대로 하라."
하였다.
경기도 유생 이지려(李之驪)가 상소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본국에서 동명이인(同名異人)에 대한 호패 발급을 불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바, 미천한 소인이 이에 관한 문제점을 몇 자 아룁니다.
첫째는 현실적으로 볼 때에 실명이나 역사적 인물의 이름으로 호적신고를 하더라도 동명이인, 동명삼인(同名三人)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재 본국에 호적신고를 한 백성이 80인을 넘어섰으니, 깊이 재고(再考)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호적신고를 한 자 중에서 관직이 없으면서 과거를 치르지 않거나 활동이 전무한 자가 있다면, 굳이 사망신고(死亡申告)를 받지 않더라도 자연사(自然死) 처리로 호적(戶籍)을 정리하는 방안을 아룁니다."
비답하기를,
"애초부터 동명이인을 허가하지 않았던 것은 기록상의 문제점을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본국의 여러 제도와 기록, 특히 실록에서 이름을 한자와 같이 표기하고 있는데, 만약 동명이인을 허락할 경우에는 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본적이나 관직을 붙이는 수도 있겠으나 역시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글로는 이름이 같아도 한자(漢字)가 다르면 호패 발급을 허가하고 있으니, 많은 수의 백성을 호적신고로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개 이름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을 허락하고 있으므로, 백성들 각자가 그 이름을 사용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고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 이조나 호조의 협의를 거쳐 이름을 강제로 회수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차후에 호적 제도를 강화하여 필명(筆名)을 두게 된다면, 동명이인 문제가 직결될 것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10월 4일 을미(乙未)
예조에서 한글날의 국경일 재승격에 관해 계(啓)하였다.
"예조에서 행이조좌랑 양지원(梁志元)을 비롯한 여러 관리와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접한 바, 한글날의 국경일 재승격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공론이 모아졌음을 아룁니다.
한글날은 우리 민족 최고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인 '한글창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전의 한글날은 국경일로서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전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날이었습니다. 허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여 오늘날 백성들은 단순히 노는 날로 인식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민국정부에서는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시키니, 우리 자신이 최고의 자부심을 버리며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문맹퇴치를 위해 힘쓴 사람을 위해 상을 주는데 그 상 이름이 바로 세종대왕상(世宗大王賞)이니, 이것은 세계가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반증(反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날을 국경일로 재승격을 하여도 백성들은 단순히 노는 날로 인식하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국경일로 지정한 한글날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 아예 국경일로 지정하지 말자는 한 관리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허나 이것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백성들이 한글날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한글창제의 의의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서둘러 한글날을 국경일로 재승격하시어 백성들이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진정한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또 각급 서원과 서당을 통해 이와 관련한 자세한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여,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비롯한 여러 집현전 학자들의 공덕과 업적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도록 조처하셔야 할 것입니다."
상이 전교를 내려 한글날을 국가경축일로 정하고, 이를 중외(中外)에 반포하였다.
수전라도찰방 최영(崔瑩)이 장계(狀啓)하기를,
"지방 관리가 공(功)이 있는 관내 백성에게 내리는 포상에 대하여 아룁니다. 학식 또는 덕(德)이 높은 이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지는 공적비(功績碑)가 관찰사의 전결(專決)로 처리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예조나 이조에 품의(稟議)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정해야 할 것입니다. 백성에게 내리는 포상 종류에는 공로비(功勞碑), 공덕비(功德碑), 열녀비(烈女碑) 등의 다양한 것들이 있으니, 이러한 것들의 종류와 격식에 관해서도 의논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직《창국대전(昌國大典)》예전(禮典)이 기초되지 않아, 조정의 여러 제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거나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자, 나라를 위해 애를 쓴 자, 환란에서 여러 백성을 구한 자는 매달 말에 각도 관찰사가 그 명단을 예조에 보고 하면, 예조에서 합사한 후 어전에 아뢰도록 하여 재가(裁可)를 거쳐 치하하도록 하겠다. 특별한 경우에는 정문(旌門)을 세워줄 수 있을 것이니, 행적을 자세하게 아뢰어야 할 것이다.
공덕비라는 것은 치적을 쌓은 관리에게 백성들이 세워주는 것이다. 공로비나 효자(孝子), 효녀비(孝女碑) 등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조정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 사이에 사사롭게 덕을 칭송하고 각종 비를 세워주는 것 또한 막지는 않겠다. 열녀비는 지금의 시속과 맞지 않으니, 시행하기 어렵다. 재능 있는 선비나 관속, 명망 있는 재야의 유생이라면 천거하도록 하라. 그들은 인재이니, 조정을 위해 과인이 따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각도 관찰사 이하 수령들이 진실로 백성을 위해 노력을 다한다면, 백성들이 그 공덕을 생각하여 상소를 올리지 않겠는가."
하였다.
행전옥서봉사 권율(權慄)이 상소하기를,
"현재의 과거 제도는 백성들에게 너무 불편합니다. 과거엥 응시하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백성이 많고, 예조나 병조로 가야 하는 것은 알지만 그 관청이 조정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백성들도 많습니다. 매회 과거 때마다 조정에서 각지에 방문을 붙이는 것도 번거롭습니다. 설사 답안을 제출하였다 하여도 의정부로 찾아가 급제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다시 이조나 병조로 찾아가 관직을 신청해야 하니, 지금까지의 제도가 조정 관리나 민간의 백성 모두에게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신 청하건대, 과거 시험장을 별도로 만드시어 그곳에서 모든 과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예조와 병조에 전교를 내려 별도의 상설 과거시장(科擧試場)을 세우도록 하였다.
수경기도찰방 이이(李珥)가 상소하였는데, 대강 이러한다.
"소신이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기에 전하께 아룁니다. 백성들과 함께 하는 평의회(評議會)를 개최하고자 하였으나 어리석은 소신이 백성과의 약속을 어기고 불참하였습니다. 어찌 한 도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이가 다른 것도 아니고 백성들과 스스로 한 약속을 파기할 수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소신의 죄를 벌하여 주십시오. 죄를 물으시어 소신을 파직하시기 바랍니다."
비답하기를,
"사직은 윤허할 수 없다. 더욱 노력한다면 백성들도 찰방의 행동이 실수였음을 이해할 것이다. 충청감사(忠淸監司) 대행까지 파직된 직후이니, 그대가 사직한다면 과인은 또 누구를 관찰사 대행으로 임명해야 하겠는가. 과인의 심정을 헤아리기 바란다."
하였다.
전라도 유생 이백(李伯)이 광해군 복위와 관련하여 상소하였다.
"광해군께서는 세자 시절에 임진란(壬辰亂)과 정유란(丁酉亂)을 겪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적 감각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런 연유로 외교적인 면에서 치적을 남기셨는데, 광해군의 외교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실리적 중립외교입니다.
광해군께서 왕위에 오르신 때는 명청(明淸) 교체기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명나라가 본토를 지키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명나라는 청 세력이 거세게 밀려오자 만주의 여진족(女眞族)을 정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명은 임진란 때 10만이란 대병(大兵)을 우리 조선에 원군으로 보낸 후 국력이 많이 쇄진한 상태라서 우리 조선에게 병력 1만을 빌리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7년여에 걸친 왜란으로 국토가 대부분 황폐화되고 수많은 백성이 살상당하여, 조선에서 1만의 병력이라 함은 임진란 당시 명나라의 10만보다 오히려 큰 것이었습니다. 또 여진 정벌이 가능하지 않음을 광해군께서는 이미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이에 고민하시던 중, 명분과 실리를 모두 차릴 수 있는 방책을 고안하셨습니다. 원군을 이끌고 가던 장수에게 '원군으로 가되 여진과 만나게 되면 그 대장에게 항복하라. 그리고 여진과 싸울 뜻이 없음과 명나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진하였음을 고하라.'라는 내용의 밀지를 내려 1만 병사의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도 여진의 공격을 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광해군께서 남기신 치적은 외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임진란을 세자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셨기에 백성들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선정을 베푸셨는데, 이로 인해 조선은 임진란, 정유란의 어려움을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광해군께서 계속 집권하셨다면 우리 조선은 호란을 겪지 않고 조금 더 빨리 크나큰 어려움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10월 5일 병신(丙申)
홍문관정자 김덕령(金德齡)이 상소하여 도성 곳곳에 수예조좌랑 허준(許浚) 등의 관원을 비방하는 벽서(壁書)가 나돌고 있음을 고하였으나, 상이 문제 삼지 않았다.
전라도 유생 임승민(林承珉)이 광해군 복위와 관련하여 상소하였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하여 왕위에서 물러나셨는데, 인조반정의 명분을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을 각각 유폐시킨 후에 사사하여 천륜을 어긴 죄, 둘째 명(明)에 사대하지 않고 후금(淸)과의 사이에서 중립 외교노선을 표방했다는 죄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명분은 반정을 일으킨 인조대왕과 서인측이 만든 명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인이 그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것과 영창대군을 사사시킨 것은 부득이 하게 왕권강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역대 어느 왕이 왕권강화를 위해 피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반정을 성공시킨 인조대왕 역시 세자가 병사하자 무엇 때문에 세자빈(世子嬪)과 세손(世孫)들을 무자비하게 유배하고는 끝내 사사하였단 말입니까. 그것 역시 왕권강화와 효종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또 태종대왕 역시 재위 시절은 아니지만 강씨 소생의 두 아들 방번(芳蕃)과 방석(芳碩)을 1차 왕자의 난(亂) 때 제거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역시 왕권강화를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서인들이 말하는 두 번째 명분으로 인해 인조대왕은 광해군이 애써 이룩해놓은 청나라와의 친선관계를 깨고 명나라를 돕다가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삼전도에서 겪었습니다. 세자시절 등의 여러 행실 등으로 보아 광해군께서는 폭군(暴君)이 아닌, 성군(聖君)이라 칭송받아야 마땅한 줄 압니다."
10월 6일 정유(丁酉)
행홍문관정자 박희웅(朴熙雄)이 아뢰기를,
"소신이 예조에 등청하여 보니, 행전옥서봉사 권율(權慄)이 예조 관원에게 보낸 글이 있었습니다. 소신이 홍문관의 관리로 그 글을 읽고 이렇게 전하께 아룁니다. 대저 조선이 건국된 이래 형조의 일개 관리가 어찌 전하의 어명도 없이 삼사와 예조의 관리를 사사로이 하옥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를 바로잡아 주소서."
하였다. 이어 승문원박사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권봉사는 급제한 이후로 많은 활동들을 해 왔습니다. 금번 일은 봉사가 전하께 충성하고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려다가 벌어진 일인 줄로 압니다. 봉사가 품계를 무시하고 직권을 남용한 것에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모르고 저지른 일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앞으로 조정을 이끌어갈 후세 백성들에게 위축감을 주게 될 소지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본래 과거가 시행되기로 하였던 것은 5일 새벽[昧爽]이었으나, 병조에서 시제에 관한 계가 늦게 올라와 부득이 하게 6일로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6일 새벽은 대부분의 관리들이 퇴궐 또는 퇴청한 이후이니, 어찌 그들이 과거 시행에 관한 방문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승정원에서 예조와 병조 관원들에게 통문을 보낸다고는 하나, 모든 관리들이 입궐(入闕) 또는 등청치 아니하고는 과거가 시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만약 전옥서봉사가 6일 새벽에 잠시 등청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예조 관원들을 문책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이번 대과 시행은 예조에서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의정부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예조와 병조는 각각 문과와 무과의 시행에 있어 시제를 출제하고 시관을 임명하는 등의 직무를 다할 뿐이다.
권봉사가 예조에 통보한 문서는 직권을 남용한 것이다. 형조는 각종 법령을 정비하고 일방 사건에 대한 상급 판결 및 수사를 담당하고 있을 뿐인데, 어찌 스스로 관리들을 문책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가. 관리들의 직무 태만이 있다면 그것은 삼사 관원들이 아뢸 성질의 일인 것이다.
행전옥서봉사 권율의 행실에 관해서는 사헌부나 사간원, 홍문관의 계문이 올라오면 논죄할 것이다. 권율이 스스로 소임을 다하기 위해 행할 일이라고는 하나, 양사 또는 삼사가 합계(合啓)하여 아뢴다면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일개 정8품 참하관(參下官)이 종6품 참상관(參上官)이 수장(首長)으로 있는 예조의 관원들에게 무조건 압송하여 하옥하겠다고 통보하였으니, 죄를 면하기 어렵다."
하였다.
수형조명률 묘청(妙淸)이 계사하였다.
"어명을 받자와 전옥서에 하옥되어 있는 서태후(徐太后)의 논죄 결과를 아룁니다.
서태후의 죄상은 너무도 명명백백하여 더 이상의 논죄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논의의 초점은 전하께서 하명(下命)하신대로 서태후에 대한 주살(誅殺) 여부였는데, 형조 관원과 형조에 의견을 제출한 대다수의 관리들의 의견은 서태후를 사사(賜死)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빈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현재 본조에서 서태후를 사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논의 기간 내내 소신을 비롯한 관원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으나, 본국은 천하 백성 누구에게나 출입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입니다. 이러한 제도상의 맹점을 악용하여 그동안 서태후와 같은 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며 본조를 유린했던 것이 현실입니다.
계사의 결론은, 본국의 현재 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사형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향후 제도를 고치고 난 후에는 사형 제도가 가능할 것이나, 지금 상황에서는 적용 불가능한 제도이니 서태후의 국적을 박탈하고 영구 추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고도 그 자가 다시 들어와 난동을 자행할 때에는 외인(外人)으로 간주하소서."
형조에 전교하기를,
"죄인 서태후의 논죄에 대해 관리들이 사사를 청하였으나, 사사는 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사약을 내려 자결케 하는 것이다. 서태후의 죄는 이미 그간 쌓았던 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금일 자정을 기해 사형에 처한다.
민국(民國) 역시 본조 아래에 있으니, 추방이라 함은 가당치 않다. 설령 추방한다 하더라도 그 자가 몰래 속이고 들어와 활개칠 경우, 이를 제어할 장치가 없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숨긴다면 어떻게 알고 외인으로 대하겠는가. 사형에 처하거나 영구 추방하는 것 모두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이어 명률 묘청이 다시 아뢰기를,
"행전옥서봉사 권율(權慄)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전하와 여러 신하에게 무례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무슨 말로서 이 일을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잘못은 평소 부하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무능한 소신의 죄입니다. 소신 묘청, 전하의 보위 아래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席藁待罪)를 청할 뿐입니다. 소신이 형조의 수장을 사직하겠습니다. 부디 다른 훌륭한 신하에게 수장 직책을 맡기십시오. 부디 소신을 벌하여 주소서. 근신하며, 전하의 처벌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니, 행홍문관정자 박희웅이 아뢰기를,
"명률 묘청이 자신의 말처럼 수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간의 공이 크니, 어찌 명률에게 물러나라 할 수 있겠습니까. 평소 명률이 사리분별이 있고 공정하며 책임감 또한 투철하여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으므로 서로가 본받기를 마다하지 않으니, 어찌 묘명률을 파직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묘청의 사직은 가납할 수 없다. 지금 형조의 관리들 가운데 제임무를 다하고 있는 자는 행전옥서봉사 권율과 그대 묘청 2인뿐이다. 권봉사의 행실과 관련된 논죄는 삼사의 계사에 맡길 것이므로 장차 어찌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수명률 묘청의 사직은 윤허할 수 없다. 명률은 어찌하여 관직을 그만두겠다고 과인에게 청하는 것인가. 소속 관원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본인이 천거한 자가 분란을 일으킬 경우에는 스스로 사직을 청하거나 죄를 받으려 하는 것이 선비된 자의 당연한 도리이겠으나, 지금 본조의 현실이 그러한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조정의 관리들은 자신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것 같으면 두서없이 사직소를 올리는 것을 예사로 하고 있다. 과인이 관직을 내릴 때에는 믿고 의지하고자 하였던 것인데, 이렇듯 쉽게 과인의 믿음을 저버리니, 참으로 과인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의 청명함을 보이기 위해 조정의 관직을 쉽게 버리는 등의 행동은 결코 장려될 수 없다. 인재가 부족하다 하여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니, 사직을 가납할 수 없는 과인의 심정을 헤아리기 바란다."
하였다.
사형죄인[死罪人] 서태후(徐太后)를 정형(正刑)에 처하였다.
10월 7일 무술(戊戌)
단종대왕의 장릉(莊陵)과 정순왕후(定順王后)의 사릉(思陵) 합장을 거행하였다. 장릉을 이장하여 사릉에 합장하였으며, 사릉의 이름을 장릉으로 개칭(改稱)하였다. 장릉표석음기(莊陵表石陰記)에 이르기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은 개국50년 신유(1411:세종23) 음7월 23일에 탄신하셨고, 무진년에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되셨으며, 경오년에 세자(世子)로 책봉되신 후, 임신년 음5월 14일에 즉위하셨다. 을해년에 상왕(上王)으로 물러나시고 정축년(1457:세종3)에 승하하셨으며, 개국125년(1516:중종11) 영월에 봉분을 갖추고 개국307년(1698:숙종24)에 묘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왕위에 3년 2개월간 계셨고, 수(壽)는 17세이시다.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는 개국49년 경신년(1440:세종22)에 탄신하셨고, 갑술년에 왕비(王妃)로 책봉되셨다. 신사년(1521:중종16) 음6월에 승하하셨고, 사릉에 장사지냈다. 수는 82세이시다. 개국609년 10월 초6일에 사릉에 합장하여 동봉(同封)하고 장릉이라 한다."
하였다. 어제(御製).
행홍문관정자 박희웅(朴熙雄)이 청대(請對)에서 아뢰었다.
"소신이 홍문관에서 신하들의 진언을 감히 살펴보니, 그 대부분이 문제점만을 나열하는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점들이 본국에만 존재하는 것이겠습니까. 똑같은 내용을 지적하는 상소가 겹치는 것 또한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으며, 대부분이 점진적으로 하나씩 실시해야 비로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심히 모호하여 구름을 잡는 식의 상소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소신이 일전에 전하께 청하여 아뢰기를 허례와 허식을 버리고 과감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이는 극히 당연한 일이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오나 소신이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과거 조선(朝鮮)의 제도를 서서히 고쳐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일전의 제도를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이 500년을 지속되도록 병조(兵曹)가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만일 병조가 그 소임을 맡을 바가 없어 과감히 병조를 폐한다면 과연 그것을 조선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본국을 찾는 까닭은 바로 조선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대로 모든 제도가 변화되어 간다면 과연 어느 날 어떤 백성이 본국을 찾아왔을 때 조선도 아니고 고려도 아니고 대한민국은 더더욱 아닌, 아무도 모르는 어떤 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소신은 스스로 그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비답을 내려 무지한 소신을 깨우쳐 주십시오. 과거 실학파에서 주창하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본국에서 제대로 이행될 수 있겠습니까. 소신의 무지를 깨우쳐 주소서."
상이 이르기를,
"아뢴 바는 유념하도록 하겠다. 의정부와 삼사, 육조는 관제의 기틀이니 결코 폐(廢)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단지 그 임무를 조정하는 것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니,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하였다.
사옹원봉사 조성민(曺成旼)이 상소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조정을 위해 바꿔야 할 것이 있기에 상소를 올립니다.
첫째, 관직의 직무가 자세하게 명시된 지침서가 조속히 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로 소신의 사정을 들어 보겠습니다. 소신은 별시에 급제한 후 이조에서 사옹원의 관직을 제수 받고 막상 활동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사옹원봉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위의 여러 관원에게 문의하니, '이조의 공통 업무를 하면 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하여 서고(書庫)에 가 보았으나 대부분 이조좌랑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을 뿐, 소신이 원하는 대답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관직을 채우기 위함이시라면, 이러한 허식은 버리심이 마땅할 줄로 압니다. 육조 가운데 실질적인 사무가 없는 병조는 폐(廢)하시기 바랍니다. 병조의 일을 형조와 공조에 분할하시고 현재의 육조(六曹)를 오조(五曹)로 바꾸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둘째, 10월말에 국모 간택이 있을 것이라 하셨는데 그에 대한 마땅한 기준이라도 세워두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셋째, 칭제건원의 청을 받아주소서. 연호를 정한다고 하는 것은 민족적인 일이면서, 본조가 독자적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연호를 정하십시오.
넷째, 소신의 미천한 소견으로는 금전 제도를 마련하였으면 합니다. 많은 부작용이 있을 것이나, 장점 또한 많을 것입니다. 관리에게 녹봉을 주거나 한 달에 한 번 관리를 선정하여 친히 포상을 내리신다면 이를 보고 다른 관리들도 더 많은 열정을 쏟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행시(行詩)나 한시(漢詩) 대회 같은 곳에서 상금을 제시한다면 더 많은 유생과 한량들이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 중에 효자, 열녀 등에게도 포상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균관의 기능을 공조(工曹)의 전용 교육기관으로 하셔야 할 것입니다. 공조는 전산(電算)을 잘하는 사람들만 운영할 수 있으니, 성균관에서 교육하여 일정 과정을 거친 후에 공조의 관리로 등용하소서."
비답하기를,
"관직에 대한 직무지침서가 완비되지 못한 것은 과인이 실로 그러한 사업을 마무리할만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법전조차 완비하지 못하였는데, 관직 제도 또한 서둘지 못하고 있으니 과인의 부덕이 하늘에 닿아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초에 금월 초10일까지 상세한 안내서를 완비하고 직무지침서를 보완하려 하였으나 여러 제도를 개선하는 작업 때문에 다시 그 기일을 늦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관련 제도가 완비되게 전까지 신하들이 기다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허례와 허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곳이 예전 조선과 같은 기풍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병조는 무관 인사와 무과 관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관청이다. 앞으로 논의를 거쳐 적절한 직무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일이 없기로는 호조와 공조가 으뜸이나, 과인이 그러한 관청을 폐지하지 않는 것은 육조가 의정부 및 삼사와 더불어 관제의 기간(基幹)이기 때문이다. 사유는 홍문관정자가 앞서 아뢴 바와 같다. 외적의 침입이나 모반이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고 하여 병조를 폐하고 무과를 실시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은 그 나름대로 직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니, 이러한 제도와 관직은 차차 보완하여 마땅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뿐인 관직은 현재 직무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설령 직무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어찌 모두를 없앨 수 있겠는가. 그러한 것을 강행한다면 과연 몇 개의 관직이 남을 것이며, 이를 두고 어찌 관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그러한 제도로는 수많은 유생과 한량들을 관직에 포용하기 어렵다.
왕비를 간택하는 것은 가례도감을 설치한 후에 예법에 따라 시행할 것이다. 내명부의 품계와 같은 것은 대전(大典)상의 관제가 아니라 실제 조선의 관제이다. 과인은 후궁이나 상궁(尙宮) 등의 내명부를 두고 있지 않으며, 종친을 비롯한 왕실 친인척 역시 간택 등의 방법으로 선발할 계획이 없다.
제(帝)를 칭하는 것 역시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재 타국의 연호를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개국기년'이라는 독자적인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금전 제도와 같은 것은 도입하면 좋겠으나, 과인이 누차 말하였듯이 지금의 상황으로 그러한 제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한 상금이 단지 숫자만을 의미할 뿐, 아무런 구매력도 지니지 못한다면 시행하지 아니함만 못하며, 제도의 시행을 가능하게 할 기술력 또한 없다. 행시대회와 같은 것은 사설(私設)로 여는 것이니, 그것을 장려하기는 하겠지만 그 결과를 두고 관직을 내린다거나 품계를 올려줄 수는 없다. 효자, 충신 등에게는 작위를 주거나 정문을 세워주면 충분하다.
성균관을 공조 전용 교육기관으로 설정할 수 없으니, 그것은 본래 제도와 부합되지 아니하며,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균관에 입교 후 수학(修學)했다고 하여 무조건 관직에 등용할 수는 없다. 관직 진출은 반드시 과거나 천거를 통해야 한다. 단, 이전 제도와 같이 성균관 유생들만이 치르는 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균관을 가동하지 못한 것은 성균관에 충원할만한 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였다.
전라도 유생 임승민(林承珉)이 과거에서 다른 사람의 답안을 응시하는 자들이 볼 수 없도록 할 것을 상소하였으므로, 상이 예조와 병조에 전교를 내려 다음 과거부터 그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수예조좌랑 허준(許浚), 승문원박사 이이(李珥), 행홍문관정자 박희웅(朴熙雄), 홍문관정자 김덕령(金德齡) 등을 문과 시관으로, 수병조좌랑 김알지(金閼智), 군기시직장 성삼문(成三問), 행충청도검률 지눌(知訥) 등을 무과 시관으로 명하였다.
10월 8일 기해(己亥)
예조에서 전국의 서원과 서당 현황을 계하였다.
"현재 서당은 한성부의 청암서원(淸巖書院)을 포함하여 5곳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친히 편액을 내리신 청암서원과 경기, 경상, 전라, 강원의 서당 등입니다. 청암서원 이외의 서당은 아직 특별한 명칭이 없고 단지 서당으로만 불리고 있습니다. 청암서원은 사간원정언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설립하였다가 지금은 신임 책임자인 참군 김도민(金道民)이 새로 맡아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 경기도 서당은 행홍문관정자 박희웅(朴熙雄)이 맡아 강의하고 있으며, 역시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 전라도 서당은 수내수사전곡 고정우(高淨瑀)가 9월에 강의하다가 현재는 찰방 최영(崔瑩)이 강의하고 있으며, 강원도 서당은 수예조좌랑 허준(許浚)이 강의하다 수홍천현감 이순신(李舜臣)이 10월 초4일부로 재개하여 현재는 훈장(訓長)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서당은 수병조좌랑 김알지(金閼智)가 9월 초6일까지 강의한 상태이며, 그 이후 강의는 없었습니다."
감찰 이허생(李許生)이 행전옥서봉사 권율(權慄)에 관한 계사하였다.
"소신과 삼사 관리들이 보기에도 권봉사의 이번 일은 잘못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첫째는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직무유기라고 하여 무고한 점이며, 둘째는 형조는 일반 백성을 담당하고 관리의 탄핵은 삼사에서 하거나 상소를 올려야 하는데 형조에서 그 일을 처리하려는 직무 남용을 한 점, 셋째는 본인이 형조의 수장이 아님에도 본인보다 관직이 높은 관원이 수장으로 있는 예조 전체를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여 관직과 품계를 무시한 점, 넷째는 본인이 형조의 수장이 아님에도 본조(本曹) 수장인 묘청(妙淸)과 상의 없이 형조와 동등한 서열의 관청인 예조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여 공무(公務) 계통을 무시한 점입니다.
이상 네 가지가 소신과 삼사의 관리들이 본 권봉사의 잘못입니다. 이에 따르면 마땅히 권봉사를 처벌하여야 함이 당연하겠으나, 그동안 권봉사가 명률 묘청이 부임하기 전까지 홀로 형조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였고 아직 본조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일어난 일이므로 봉사에게 따끔한 주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를 하심이 좋을 듯 사료됩니다."
상이 이르기를,
"아뢴대로 하겠다."
하였다.
10월 9일 경자(庚子)
수형조명률 묘청(妙淸)이 차자(箚子)하기를,
"지난 며칠간 소신의 사직소로 인해 전하를 비롯한 조정 대소신료에게 걱정을 끼쳤습니다. 수일간 근신하면서 전하의 비답을 비롯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격려와 근심어린 글을 많이 받았습니다. 과연 소신이 이렇게 많은 누를 끼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염치없게도 다시 입궐하였습니다. 심기일전하여 형조의 일을 다시 맡아보겠습니다. 하오나 소신은 형조의 수장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닌 듯하니, 속히 수장 자리를 소신보다 훌륭한 신하로 하여금 수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상이 이르기를,
"명률 묘청이 다시 등청하니, 과인이 비로소 근심을 덜게 되었다. 형조 수장으로 명률만한 자가 없으니, 과인이 기대에 부응해 직책을 다하기 바란다."
하였다.
10월 10일 신축(辛丑)
전교하여 예조와 병조로 하여금 과거 제도를 개선하는 방법을 논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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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의궤 
장종대왕실록 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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