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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宗大王實錄 卷十 (장종대왕실록 권10)
- 개국609년 11월 21일조부터 개국609년 11월 30일조까지 -
실록 해제(解題)
실록 권10.은 개국609(2000)년 11월 21일 계미(癸未)부터 동월 30일 임진(壬辰)까지의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원명(原名)은『사이버 조선왕조 장종대왕실록 권10』이다. 실록청에서 개국610(2001)년 12월 22일부터 편찬에 착수하여 개국611(2002)년 정월 초5일에 완결하였으며, 당일 승정원의 협조를 얻어 사고(史庫)에 봉안(奉安)하였다. 편찬에 관계한 실록청 관원은 다음과 같다.
통덕랑 행예조좌랑 겸실록청총재관 최영(崔瑩)
조봉대부 행홍문관수찬지제교 겸실록청편수관(兼實錄廳編修官) 유치의(柳治義)
과의교위 사헌부지평 겸실록청기주관선전관청선전관 강다소(姜多笑)
11월 21일 계미(癸未)
행의정부사록 최영(崔瑩)이 특별 평정과 품계 몰수에 대하여 계본(啓本)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어제 의정부에서 사헌부 탄핵안에 대해 육조의 관리들의 중론을 모았습니다. 작금의 실태는 조정에 관리가 있으면서도 공사(公事)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자성의 목소리로 조정의 위상을 혁신(革新)하고자 하니, 부디 소신 등의 청을 가납(嘉納)하여 주소서.
관직에 있으면서도 그 소임을 다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이조와 병조의 정기 평정으로 그 처우를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만, 정7품의 경우 평정 기간이 2개월이니, 이들의 대해서는 1개월 가량 소속 관청의 장(長)이 특별 평정을 실시하여 사유서와 함께 해당 관청에 통보 조치토록 중론을 모았습니다. 관청 수장인 경우에는 이조와 병조에서 기존 방식대로 정기 평정을 시행하며, 특별 평정은 활동이 미진할 경우에 한해 시행토록 하였습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품계를 받은 자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는데, 영예로운 품계를 받고 관직에 오르지 않은 것은 크나큰 불충(不忠)이니, 품계를 받았음에도 조정에서의 활동이 전무한 자에 대해서는 품계를 몰수토록 하는 것에 신하들의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그 기간을 1개월로 하여, 유예기간 1주일을 주고 마지막으로 서찰을 통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으로 의결하였습니다. 소신 또한 이들의 관직을 면하거나, 품계를 몰수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 다만, 대의(大義)를 위해 뼈를 깎는 마음으로 올리는 소신 등의 진언을 가납하소서."
상(上)이 전교(傳敎)하기를,
"조정의 관적(官籍)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서도 관직을 제수 받아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여럿이니, 그것을 두고 크게 나무랄 수는 없겠지마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의정부에서 아뢴 특별 평정 시행은 윤허할 수 없다. 인사 고과에 의한 시행하는 관리들에 대한 직무평정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집행되고 있는데, 이와는 별도로 다시 특별 평정이라는 이름하에 평정하는 절차를 둔다면 그 특별 평정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맡은 바 직무를 다하지 않는 관리들이 있다면 삼사(三司)에서 탄핵하거나 파직을 청하면 될 일이다.
관리들을 감찰하는 것은 사헌부와 사간원을 중심으로 하는 삼사의 직무이니, 이를 각 관청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 특별 평정을 시행한다면 각 관청 수장에 의해 소속 관원들이 정리될 것이며, 이조 또는 병조에 의해 각 관청 수장들이 제한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인사 행정을 위해서는 삼사에 견제 권한을 집중함이 옳다.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는 경우를 막지 않았으니, 이는 과거에 급제하여 품계를 받는 것이 반드시 관직을 얻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계는 있으되 관직은 없는 관리의 숫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니, 이로 인한 폐단이 적지 않으므로 의정부에서 아뢴 바를 참작하여 제도를 고쳐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품계를 받은 자로 2개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통첩을 보내 의사를 타진한 후, 10일간의 유예기간을 준 다음에 품계를 몰수할 것이다. 관직에 진출하였다가 물러난 경우에도 이와 같이 시행한다. 다만, 관직 활동이 없을지라도 본조에서 여타의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5품 이하 관리에 대해서는 이조와 병조가, 4품 이상 관원들에 한해서는 의정부가 품계 몰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당상관이라면 의정부에서 계목(啓目)을 올린다."
하였다.
수사헌부감찰 박희웅(朴熙雄)이 계사(啓辭)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올림픽 국가 대표로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를 치른바 있는 이승엽에 대해 그 사실성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야구 대표단의 경우, 동메달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자 사실상 한국야구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에서 이들의 죄상을 은폐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국가대표단이 스스로 과오를 뉘우치고 뛰어난 성적을 이룩하자 그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이승엽이 스스로 기자 회견에서 밝히기를, 동료 올림픽 배구선수와 함께 선수단내의 오락실에는 들렸으며 재활치료 후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위 여부는 현재도 가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소신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어 정확한 진위 여부는 밝히지 못하였으나, 그간의 자료와 기사를 종합하여 볼 때 이승엽의 경우는 동료들과 함께 도박장에 가지 않았거나 도박장에 갔다고 하더라도 바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하오나 국가 대표이자 국민 타자로 추앙받던 공인의 신분이면서 스스로 처신을 잘못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연루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가택 구금 30일이나 형옥 7일에 처함이 가할 것입니다.
이하응과 관련된 건은 아직 조사 중에 있으므로, 진상 파악 후에 계(啓)하겠습니다."
상이 이르기를,
"아뢴대로 하라."
하였다.
수홍문관박사 김덕령(金德齡)이 차자(箚子)하였다.
"소신이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조정에 몸을 담은 지 벌써 3개월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또 수행평가의 폐단을 토론하여 보다 유익하고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빈청에서 논의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오나 소신이 미력하고 아둔하여 일에 진척이 없으니, 전하의 전교를 받아 빈청의 논의를 마감하려 합니다. 논의가 진척되지 못한 중벌은 소신이 논의의 결과를 상소한 연후에 달게 받겠습니다. 이미 기한을 넘겼으나, 소신이 임의로 중단할 수 없어 전하의 비답(批答)을 기다립니다."
비답하기를,
"논의를 마감한다. 참여가 저조한 것이 어찌 그대 때문이겠는가. 결과를 합계하여 아뢰도록 한다."
하였다.
11월 22일 갑신(甲申)
예조에 전교하였다.
"본조의 대외 선전과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영문사(英文司)를 개설하고자 하니, 예조에서는 이에 관하여 논의하도록 하라.
영문사를 개설한다면 그 규모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외국인들의 활동은 어디까지 허가할 것인지, 담당하는 관청과 관리는 어디로 할 것인지, 외국인에게 관직을 제수한다면 그 제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체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관련 제도의 마련도 필수되어야 할 것이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예조 주관 논의이지만 모든 관리들이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뢰는 기한은 27일로 하겠다. 예조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팔도 관찰사들이 이와 관련한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예조에 보고하도록 한다."
사헌부에서 계하였다[府啓]. 함경도 벽서사건과 관련하여 이하응(李河應)의 벽서인멸 여부에 대하여 수사 결과를 아뢰었는데, 이하응이 중병(重病)을 얻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 하였으므로, 벽서인멸건에 대한 시비(是非)를 가리지 않겠다고 전교하였다. 이어 각급 관청을 감찰한 결과를 아뢰자, 이르기를,
"헌부(憲府)의 감찰 결과가 다소 미흡하나, 이는 각 관청의 사정에 따른 것이므로 헌부의 수고로움이 적은 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포상에 관해서는 감찰이 아뢴 바에 따라 곧 전교하겠다."
하였다.
전라도 유생 이백(李伯)이 상소하였데, 대강 이러하다.
"소인이 듣건대, 민국 5인조 가수단(歌手團)의 구성원 중 1인인 안칠현, 예명(藝名) 강타라는 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낸 후, 500여 미터를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음주운전도 불법이거니와 사고 직후 도주를 하였다는 혐의까지 있겠습니다. 대중가수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공인(公人)으로 이러한 행동을 하였으니, 그 죄는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전하의 영(令)이 지엄함을 만천하에 보이소서."
비답하기를,
"한성부 관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유생의 상소를 한성부로 보낸다. 판윤 대행이 처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한성부 유생 박지석(朴志夕)이 상소하였다.
"과거 제도에 대해 상소하여 아룁니다. 현재 과거는 정월과 4월, 7월, 10월에만 시행하기 때문에 많은 시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응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홀수나 짝수달마다 과거를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대신에 급제 인원을 줄이면 관리가 많이 배출되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백성이 과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비답하기를,
"3개월에 1회 시행하는 것은 정기 대과이다. 그 사이에 임시 과거인 별시(別試)를 여럿 두고 있으니, 그 시행 간격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이외에 천거 등의 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하였다.
11월 23일 을유(乙酉)
행의정부사록 최영(崔瑩)이 백성들의 활동 공간에 대해 계본을 올리자 승정원으로 하여금 반영할 것을 전교하였다. 이어 19일에 전교한 별시 시행 문제와 관련하여 계본하였다.
"의정부에서 아룁니다. '당초 금월 하순경에 이북 3도 도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시를 시행하고자 하였으나, 지난 15일 이후 호구수가 크게 증가하였으니, 팔도의 모든 유생과 한량을 대상으로 응시 인원으로 정하는 것에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교가 있었기에, 이에 대하여 금월 22일까지 의정부에서 논의한 결론을 아룁니다. 이북 3도민을 위한 별시에 강원과 충청을 포함하자는 의견과 이북 3도의 토관직 제도를 개수(改修)하여 활용하는 것으로 별시를 대신하자는 의견, 그리고 12월에 전국적인 별시를 시행하고 내년 정월에 정기 대과를, 다시 2월에 이북 3도민만을 위한 별시를 시행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소신의 소견으로는, 이번 이북 3도의 별시를 후일로 미루심이 좋을 듯합니다. 예정대로 12월에 소과(小科)를, 정월에 정기 대과를 시행하소서. 예정에 따른다면 12월 무렵에 국모를 간택한 후 별시가 시행될 것이니, 이번 이북 3도에 한해 별시를 시행한다 하여 고향을 버리고 타향으로 이주를 하는 백성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별시 참여 인원이 극소수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며, 행여 많은 인원이 참여하였다고 하더라도 급제자는 소수일 것이니, 백성들을 이북 3도에 정착시킨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 사료됩니다.
이북 3도만의 별시를 후일로 미루시어 조금 더 상세히 신하들과 논의를 거치도록 하소서. 별시 이외에 다른 대안도 함께 찾는다면 충분히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답하기를,
"높은 학문을 쌓은 선비들을 시취(試取)하는 것은 나라의 중대한 정사(政事)이다. 지난달 29일에 이북 3도 도민만을 위한 별시 시행을 어전회의에서 결정하였는데, 이후 별시 응시 지역을 팔도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있어, 그와 관련된 논의를 의정부에 하명한 바가 있다.
지금 행사록 최영이 합계하여 논의 결과를 아뢰었는데, 과인은 그 아뢴 내용을 가납할 수 없다. 이미 내린 전교를 고쳐 행할 수는 있어도 다시 거두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의정부에서 아뢴 3개 의견 가운데 어느 것이 다수 의견인지도 의문이고, 또 최사록의 사견(私見)이 계본의 다수를 차지하므로 논의 결과에 민의(民意)가 반영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별시 시행을 장차 후일로 미루면 그때가 언제가 될 것인지도 기약하기 어렵다.
국모를 간택하는 것이 나라의 경사라고는 하나, 과인은 그 절차와 관련하여 별시 시행을 확정한 적이 없음을 지적한다. 간택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 벌써 20여 일을 넘었는데, 지나치게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만약 국모 간택에 즈음하여 별시를 치른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때가 언제일지를 기약할 수 없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과인이 참상관 이상의 관원과 각도 관찰사 대행에게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라 하였는데, 아직 그 성과가 미미하므로 이에 다시 독려한다. 과인은 궐내에 있지만 신하들은 그렇지 않으므로 반드시 장대한 뜻을 품은 유생이나 한량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선비들이 적시(適時)에 등용되지 않는다면 나라가 과연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인재가 출사하지 않으면 조정의 기강은 그로 인해 허물어질 것이고 인심 또한 그것으로 인해 혼탁해질 것이다. 계본을 의정부로 돌려보낸다. 다시 합계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11월 24일 병술(丙戌)
행의정부사록 최영(崔瑩)이 별시(別試) 시행에 대해 계하였다.
"소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전하께 심려를 끼쳐드려 그 죄가 매우 큽니다. 이북 3도의 별시에 대하여 다시 보고하라는 지엄한 어명을 받자와 소신 죄를 무릅쓰고 다시 계합니다. 금월 20일이 있었던 의정부 회의에서 체직(遞職)과 품계 몰수에 대한 안건 이외에 별시에 대해서도 논의한 바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이북 3도의 별시를 시행한다. 그 제반사항은 별시에 준하며, 급제 후에 일정 기간을 해당 도(道)에 기거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일부에서 반대 의견이 제시되어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하였기에, 금월 22일까지 의정부에 의견을 제출토록 하고 회의를 종료하였습니다.
이후 제출된 내용은, 전일 계본한 바와 같이 이북 3도민을 위한 별시에 강원과 충청을 포함하자는 의견과 별시를 이북 3도의 토관직 제도를 개수하여 활용하는 것으로 대신하자는 의견, 그리고 12월에 전국적인 별시를 시행하고 내년 정월에 정기 대과를, 다시 2월에 이북 3도민만을 위한 별시를 시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제3안이 다수 의견이었습니다. 한성, 경상, 전라의 관찰사가 보고한 설문 결과에 의하면, 전국적인 별시를 시행하는 것에 일반 백성들의 민의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지엄하신 전하의 어명(御命)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충스럽게도 소신이 그와 같이 계하였습니다.
이미 전하의 어의(御意)가 정해졌사온데, 소신의 불충이 너무도 크니 몸 둘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소신의 어리석음이 전하의 혜안을 가렸으니, 의정부 수장에서 물러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조정을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조정의 인재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하였으니, 소신의 부족함이 이와 같습니다. 사직을 청하오니, 부디 가납하여 주소서."
상이 전교하기를,
"명월 초1일에 전국적인 별시를 시행하고, 명년 2월에 이북 3도 별시를 시행토록 하겠다. 예조와 병조에서는 11월 별시에 준하여 시제와 시관들의 명단을 정한 후, 어전에 아뢰도록 하라. 기한은 29일이다. 최사록이 사직하고 물러나 한가롭게 집에 있고자 하나, 과인은 그것을 윤허할 수 없다. 각 관청 수장들의 진퇴는 조정의 흥(興)하고 망(亡)함과 직결되는 것인데, 과인의 한마디 말이 문득 미쳤다 하여 쉽게 사직을 청해서야 되겠는가. 조정의 풍토가 이러하다면 과연 과인이 바른 정사를 펼 수 있겠는가.
과인의 부족한 점은 여러 신하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신하들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더군다나 지금 조정에 여러 문제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므로 관원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차례 비답을 듣고 사직하려 하여서야 되겠는가. 한가하게 지내려는 마음이 있거든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사은(謝恩)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일관(一官)이 한 번 작은 허물로 사직을 청한 일이 있은 이후로 관리들의 행동이 대개 이와 같았다. 이것이 풍토가 되어 백관(百官)이 작은 허물이나 실수에도 중대한 직무를 쉽게 놓으려 하니, 관리들이 참된 마음으로 그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는지에 관해 식자(識者)들이 걱정하였다.]
수사헌부감찰 박희웅(朴熙雄)아뢰었는데, 대강 이러하다.
"경관과 외관 관청마다 관리가 부족하였으나, 이제 각 관청마다 관리가 충원되고 호패가 발급된 백성들의 수 또한 급증하고 있으니, 감개무량(感慨無量)할 따름입니다.
사헌부의 중책을 맡고 있음에 항상 소신의 부족함과 미거(未擧)함을 한탄하였는데, 홀로 좌충우돌하고 천방지축 지내며 잠시 맡은 직분을 망각하였습니다. 함경도 벽서사건 때에 이르러서야 소신의 부족함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헌부는 주상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조정의 맑은 기운을 유지하는 곳이니, 다른 관청과는 달리 추호의 과오도 용납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스스로 허물이 있는 자가 어찌 타인의 허물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소신이 미거한 탓에 그저 열의만 앞서 앞뒤 재어보지도 않고 죄 없는 한 신하를 무고(誣告)하였으니, 어찌 감히 사헌부의 관리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부끄럽고 고개를 들지 못하였으니, 어찌 이런 자를 사헌부의 관리라 하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일전에 주상께 그에 대하여 진언을 드렸으나, 소신이 스스로 벌여놓은 일이 있어 당시에는 명을 받고서 그저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헌부의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에 소신이 사헌부의 소임을 그만 두고 낙향하는 것을 가납하여 주소서.
다음달 초1일이 홍문관박사 김도민(金道民)의 평정일입니다. 김도민은 사리가 공정하고 덕이 있으며 청렴결백(淸廉潔白)하니, 사헌부의 중책을 맡기기에 아무런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사헌부의 책임을 맡을 자가 없다고 하지 마시고 소신의 청을 가납하여 주소서."
상이 이르기를,
"박사 김도민은 정7품이니, 품계 승진에 필요한 근속일수가 2개월이므로 명월 초1일은 평정일이 되지 못한다. 지금 헌부에 명할 마땅한 인재가 없고, 감찰의 허물이 크지 않으니 일단 그 직을 계속 수행하게 한다. 헌부가 청렴결백을 지향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어찌 그것이 조정의 대사보다 중대한 일이겠는가."
하였다. 이에 감찰 박희웅 재차 사직을 청하기를,
"옥당(玉堂) 수장인 김도민은 정7품 무공랑으로 10월에 입조(入朝)하였으니 12월 첫째주에 정기 평정 대상이 됩니다. 금번 11월 첫째주 평정되지 않고 누락되었던 것이 그 까닭입니다. 이조의 착오가 있었습니다. 12월 평정을 받는다면 소신이 생각하건대 승품이 당연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 대행하고 있는 한성판윤 역시 12월 첫째주가 체직일(遞職日)입니다. 박사 김도민이 승품하게 되면 종6품 선교랑으로 참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니, 사헌부 감찰의 직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조정 대사를 지키는 것 또한 중(重)하나 헌부는 조정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상께서는 어찌 조정을 맑게 비추어야 할 거울을 탁하게 유지하려 하십니까. 조정 대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것을 수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디 조정의 맑은 기운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소신이 낙향하여 편히 지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소신을 지방으로 좌천하십시오. 그 죄를 씻고 마음가짐을 바로 가다듬겠습니다. 가례도감 첨사직과 공신도감 부사직은 그대로 수행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다시 이르기를,
"박사 김도민이 10월 초1일에 관직을 제수 받기는 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여 무공랑의 품계를 받은 것이 동월 15일이었으므로 평정일은 12월 중순이다. 11월 초 평정은 누락된 것이 아니고 규정에 의해 시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인이 헌부를 탁하게 하려 하는 것이 아님을 감찰은 모르는가. 사령을 한다면 익월(翌月) 15일 이후가 될 것이니, 그리 알라."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조야(朝野)에서 박희웅의 사직 차자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비록 허물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정 대사가 우선이니, 개인의 거취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한성부 유생 조준(趙浚) 이 상소하였다.
"지금 민국(民國)의 사회는 실로 말이 아닐 정도로 침체되어 있습니다. 관리들의 기강(紀綱)은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지고 소위 공직에 올라 있는 자들 또한 제 잇속을 챙겨 먹기에 급급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아 제2의 외환위기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 나라 억조창생(億兆蒼生)들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정쟁(政爭)에만 치우쳐 있는 공직자들은 대체 어느 민족(民族)의 뿌리를 타고났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행히 오늘 민국의 국회가 정상화되었다고 하니 안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언제 또 어떤 문제가 터져 나올지 알 수 없는 실정입니다. 사회도 날로 흉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소위 공인이라는 연예인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의 도덕적 문란과 나날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일부 부유층들이 초호화 사치를 한다고 하니 어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전하, 이대로 가다가는 민국이라는 사회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빠지게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시련의 시기가 있다고 하나, 이렇게 심각하게 나간다면 더는 방치할 수 없습니다. 민국을 하루 속히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로 할 때입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시고 사회를 도탄에 빠뜨리는 무리들을 과감히 제거하시어 널리 올바른 정치를 펴시기 바랍니다. 그리 하여 백성들의 소망에 부응하십시오. 아울러 과거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을 과감히 복권하시고, 그 가해자에 대한 단죄도 분명히 하십시오. 그리 하신다면 이 나라는 정기가 바로 설 것입니다."
비답하기를,
"유생이 아뢴 상소를 여러 번 읽으니, 중외(中外) 백성들이 소망하는 바를 잘 알겠다. 과인은 천하의 옳지 못한 일을 시정하는 선비들의 의지를 아름답게 여긴다. 그러나 옛사람이 이른, '날마다 폐단을 외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사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진실된 말이다.
민국의 문제에 관한 것은 유생과 한량들의 수차례 상소로 이미 뜻이 통하였으니, 이제 중지하고 유생들 스스로 일상에서 그러한 것들을 고쳐 나가려는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좋겠다. 민국의 대략적인 문제점들을 나열하여 연달아 상소하는 것은 아마도 합당한 처사가 아닌 듯하다. 나열한 여러 문제들이 특정한 사안을 지적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이 모두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유념하겠다."
하였다.
11월 25일 정해(丁亥)
홍문관박사 김도민(金道民)이 아뢰기를,
"근자에 소신이 민국에서 발생하는 사회 지도층의 부패된 모습과 공인들의 일탈된 모습을 자주 접하니, 심중(心中)이 편치 않습니다. 민국의 도덕적 해이와 윤리 멸실(滅失)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조정에서 이들에 대한 논죄를 행하고 있습니다. 본조에서 민국의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하여 비판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문득 다른 것이 소신에게 보여 아룁니다.
그것은 현재 문무백관이나 백성들이 행하는 비판과 비평이 혹 민국의 언론기관이 행하는 비판을 위한 비판, 자신들이 주목받기 위한 것이나 어두운 일들에만 매달리는 모습들과 구별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소신의 노파심(老婆心)일 수도 있겠으나, 이를 경계함이 옳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둔한 소신이 판단하기로는, 민국은 물론 조정에서도 그러한 잘못된 일들을 논죄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 사료되는 바, 오히려 혼란함을 진정시키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아름다움 모습들을 발견하여 이를 칭송하고 장려하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의 성덕을 팔도 백성에게 베풀어 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옥당이 아뢴 바는 유념할 만하다. 만조백관 모두가 경계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함경감영 이방 정여립(鄭汝立)이 상소하였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함경도와 평안도를 비롯 이북 4도에는 거의 인적(人跡)이 뜸합니다. 그에 반해 한성을 비롯한 이남 4도에는 인적이 들끓는다고 합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인구 불균형 현상은 물론, 지역별로 많은 편차가 나게 되어 백성들 사이의 교류와 협력에도 커다란 불편과 오점을 남게 될 것입니다. 선대왕께서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백성의 집단 이주를 활용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이북으로의 집단 이주를 장려하시되,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강제 이주를 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답하기를,
"상소한 바는 고려할 수 없으니, 그리 알라. 이북 3도에 백성이 없다 하여 어찌 강제로 이주시킬 수 있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함경감영 이방 정여립의 상소는 내용이 편협하여 시행하기가 매우 곤란하였다. 집단 이주가 실현 가능하며, 강행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이 과연 조정에서 시행해야 할 올바른 행정이겠는가.]
11월 26일 무자(戊子)
이조와 예조, 병조에 전교하였다.
"감찰이 종료되니, 비록 당초 헌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각 관청별로 감찰 결과에 따른 성과가 나오게 되었다. 관청의 점수를 매겨 서열을 정하는 것은 앞으로 지양해야 하겠으나, 이미 감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하여는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최우수 아문(衙問)으로 선정된 한성부 관리들의 근무일수(勤務日數)를 30일 더하는 전지(傳旨)를 내린다. 아울러 우수 아문인 황해도와 전라도 관리들도 근무일수 15일을 더한다. 포상 기준은 감찰 당시 해당 관청에 있던 관원과 관속에 한(限)한다.
예조와 병조는 12월 별시의 시제와 시관 명단을 29일까지 계하도록 하라. 시제와 시관을 계하는 절차와 범위는 11월 별시와 같다. 병조 수장 성삼문(成三問)이 직무를 다할 수 없다면 신용호(辛庸浩)가 그 직임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무과 시관은 무관에 한한다."
행의정부사록 겸공신도감정사 최영(崔瑩)이 도감(都監)의 일로 계하는데, 공신도감의 성격을 왕조의 중흥에 대한 공을 평가하는 것으로, 공신 명칭을 재건공신(再建功臣)으로 아뢰었다. 정사와 부사의 인원과 공신의 등급, 논공(論功)을 하는 절차와 예우 등에 대해서도 아뢰니, 상이 이르기를,
"공신 명칭이 가지는 의미를 작다고 할 수 없는데, '재건(再建)'이라 하는 것은 민국정부에서 60, 70년대에 주로 쓰던 구호(口號)이니 과인의 생각으로는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듯하다. 나라의 기초가 되는 법전의 이름이 '창국대전(昌國大典)'이 될 것인데, 그렇다면 이를 '재건대전(再建大典)'으로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정사와 부사가 추천하는 인원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인원 중복으로 인선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첨사(僉使)를 포함하는 여타의 관리와 백성들의 추천으로 이를 보완한다고 하더라도 만전을 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공신은 조정을 흥하게 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인데, 관리가 포함되지 않은 백성 2인 이상이 추천하는 자를 명단에 넣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논의 과정에서 등외(等外)로 결정하는 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례를 상고하여도 논공에 있어 점수에 의한 평정을 방법으로 취한 예가 없었으니, 비록 1차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공신도감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논공 과정에 점수제나 평정을 도입하는 것은 가납할 수 없다. 무엇을 측정하기 위한 일이 아닐 것인데 어찌 점수로 등락(登落)을 정한단 말인가. 또 명단이 정해지기 직전에라도 추천이 접수된다면 논의하여 등급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였다.
11월 27일 기축(己丑)
행사역원봉사 조동선(趙東瑄)이 영문사(英文司)에 대하여 계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빈청 논의에서 5인이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들 대다수가 영문사의 개설은 시기상조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영어(英語)에 관한 걱정, 그리고 아직 조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것들을 들어 추후에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영어에 관한 것은 전하께서 따로 잡과 시행을 명하시어 역관(譯官)을 뽑으면 될 듯하고, 조정에서 활동하는 몇몇 관원들이 바다건너에 거주하는 듯하니 이들도 잘 가리시어 쓰시면 될 것입니다. 소신의 의견은 이에 대해 조금 더 장기적으로 논의하는 것입니다. 현재 조정에 별시를 비롯한 여러 시급한 사안들이 있기 때문에 관리들의 영문사에 대한 관심이 다소 저조하였습니다. 빈청을 따로 설치하여 한 달 가량 의견을 듣는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소신, 감히 전하께 미욱한 소견을 아룁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영어에 관해 걱정하는 듯하였으나, 소신의 생각으로는 능한 역관만 있다면 가능하다 여겨집니다. 요즘 학생들 중에 영어 이외에도 다른 외국어 하나쯤은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양이(洋夷)의 말이라 하나 배워두면 유용할 것이니 이득이 많을 듯 사료됩니다. 또 국어에 관심이 있거나 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소신이 감히 청하오니, 전하께서 우선 명을 내리시어 이러한 사안들을 처리해 주소서."
상이 이르기를,
"빈청에서 다시 논의를 하도록 하여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겠다. 주관은 예조(禮曹)에서 하되, 논의하여 아뢰는 것은 조봉사가 한다. 기한은 12월 초10일까지로 하겠다."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백성들은 내심(內心) 영문사 개설에 찬성하고 있었으나, 조정의 여력과 영문(英文)에 대한 우려로 인해 감히 나서서 도모하려는 관리가 없었다.]
행예조좌랑 겸경기도찰방 이이(李珥)가 예전(禮典) 초안에 대하여 아뢰었는데, 대강 이러하다.
"초안의 기틀이 잘 잡혀 있어 크게 수정할 부분은 없었으나 부분적으로 보충이 필요한 곳이 있었습니다.
조회의식[朝儀] 항목의 '설날, 동짓날, 국왕의 생일, 왕비의 생일에는 세자 이하 모든 관리들이 축하를 드린다.'라는 부분에서 마땅히 기념하고 축하를 드려야 할 전하의 탄신일이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를 명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과 시행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한 기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소과 시행을 한성부 및 각도에서 치르도록 한다면, 한성판윤 및 각도 관찰사들이 소과에 응시할 수 있을지 여부, 그리고 시관을 대과와 마찬가지로 예조에서 맡는 것인지 아니면 각 감영에서 자체적으로 감당할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 소과에는 5품 이하 관리들도 응시할 수 있는데, 이들이 입격(入格)한다면 어떤 포상을 해줄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관찰사와 관속들만으로는 소과 시행에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예조에서 1인을 파견하여 도움을 주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상이 비답하기를,
"과인이 영원히 치세(治世)하는 것이 아니므로 과인이 태어난 날은 법전(法典)에 명시할 수는 없다. 생원과 진사는 일종의 학위(學位) 자격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미 관직에 진출한 자라고 하여 응시를 막기는 어렵다. 소과를 거치지 않은 별시 급제자나 천거 출신자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판윤 및 각도 관찰사들은 소과 시험을 주관하는 관리들인데, 어찌 해당 과거에 응시를 허락하겠는가. 다른 지역에서도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소과 시관은 각도 관찰사 및 관속들과 예조 관원으로 구성하되,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예조의 결정에 따라 전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겠다. 관속이 없거나 관찰사의 역량이 부족한 지역이라면 예조에서 관원을 파견할 수 있을 것이며, 관원을 파견하지 않더라도 입격 기준을 평준화하기 위하여 여러 경로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생원과 진사 입격자는 절대평가로 결정한다. 그 명단은 따로 공시하게 될 것이므로, 5품 이하 전현직 관리들이 입격한다고 해서 별도의 포상이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였다.
한성부 유생 김설난(金雪蘭)이 영친왕(英親王)을 황제로 추존(追尊)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상이 비답하기를,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영왕(英王)을 황제로 추존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사안이므로 과인의 한마디 비답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백관 이하 모든 백성의 뜻이 일치하지 않고서는 시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야의 공의(公議)를 묻기 이전에 먼저 백성들의 상소가 이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11월 28일 경인(庚寅)
유품무관직자(有品無官職者)의 품계 몰수에 대하여 삼사에서 합계(合啓)하였는데, 대강 이러하다.
"금번에 의정부에서 주상께 계한, 선달(先達) 중 조정 내에서 활동이 없는 자들의 품계를 몰수하는 문제에 대하여 전하께서 전교하시기를, '2개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자에게 통문을 보내 의사를 타진한 후, 10일간의 유예기간을 준 다음에 품계를 몰수한다. 관직에 진출하였다가 물러난 경우에도 이와 같이 시행한다. 다만, 관직 활동이 없을지라도 본조에서 여타의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5품 이하 관리에 대해서는 이조와 병조가, 4품 이상 관원에 한해서는 의정부가 품계 몰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당상관이라면 의정부에서 계목을 올린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의정부 회의에서 고심하여 결정한 바가, 활동하지 않는 기간이 1개월이 되면 그 자에게 경고 서찰을 보내고 그 서찰에 답할 기간 7일을 주어, 스스로 활동할 의지가 있음에도 잠시 망각하였거나 급한 일로 인해 활동할 수 없어 발생할 수 있는 선의의 피해자를 방지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사간원의 의견에, 서찰을 확인할 시간을 7일을 주며 7일후에 다시 한 번 최종 통보 서찰을 보내 모두 14일간 소명할 기회를 주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비활동기간 1개월의 경우에는 신하들이 동의한 바입니다. 이에 삼사의 논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후 아뢰오니, 부디 세 번 생각하시어 가납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비답하기를,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판단 기준을 2개월로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삼사의 보고가 올라오니 이를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다. 기준 일수를 1개월로 하고, 7일 간격으로 2회에 걸쳐 통문을 보낸 후에도 활동이 없으면 품계를 몰수한다. 단, 휴가를 청한 자나 관직 이외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자는 예외로 한다."
하였다.
행의정부사록 최영(崔瑩)이 병조에 대해 아뢰기를,
"지난 19일에 병조 수장이 교체되어 군기시주부 성삼문(成三問)이 수병조좌랑으로 승직(陞職)되었습니다. 하오나 좌랑은 단지 금월 11일에 어전에 고하여 자신의 죄를 청하였을 뿐, 관청에 부임조차 하지 않아 자성(自省)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신변에 사정이 생겼다면, 마땅히 어전에 계하여 합당한 조치를 받아야 하건만 금일까지 이렇다 할 행동이 없는 바, 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여 좌랑 성삼문의 파직(罷職)을 청합니다. 현재 병조의 정무(政務)는 군기시직장 신용호(辛庸浩)가 대행하고 있으나, 병조에 관리가 적으므로 외관(外官)의 임기가 다한 홍천현감 이순신(李舜臣)을 병조로 부르시어 수장의 소임을 맡기심이 옳을 것입니다. 직장 신용호의 평정 기간이 지나 인사상의 불이익이 우려되니 함께 처리하심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임시로 병조 수장을 수행한 공로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좌랑 성삼문을 파직하고, 직장 신용호의 품계를 1계 올려 병조 수장에 명한다. 홍천현감 이순신은 외관직에 있었으므로 갑자기 병조의 중책을 맡길 수 없다."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성삼문은 제2차 별시에 갑과로 급제하여 출사한 후, 다시 제3차 대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군기시직장, 군기시주부, 수병조좌랑 등의 관직에 있었다. 출사한 이후 줄곧 직무태만으로 다른 관리들의 지탄을 받아오다, 마침내 이때에 이르러 파직되었다.]
전라도 유생 김서방(金書旁)이 민국 대통령(大統領)의 문책(問責)을 상소로 청하자, 상이 비답하기를,
"민국정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관하여 신칙(申飭)을 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노벨상 수상 때에도 치하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거듭 상소가 올라온다면 조정의 공론에 부칠 수도 있겠다."
하였다.
11월 29일 신묘(辛卯)
황해도 유생 광개토(廣開土)가 상소하였다.
"소인, 요사이 민국의 정치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릇 나라에서 백성들의 삶의 기반을 지켜주는 것이 하나의 의무일 것인데, 민국의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소인 광개토 또한 민국의 백성인데, 통일과 대국(大國) 건설을 어찌 생각하고 바라지 않겠습니까. 허나 통일을 위한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든다는 사실이 소인의 허리끈을 줄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하께는 과연 이러한 통일이 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성들의 허리끈을 매어 이루어야 할 정도로 통일이 급박한 일입니까. 소인은 주변에서 어려운 처지의 백성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소인은 통일을 위해 모은 비용이 모든 백성들에게 쓰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주상께서 이를 신중히 헤아리시어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소서."
비답하기를,
"무엇이 진정한 정치인가. 민생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통일을 제쳐 둘 수도 있는 것이 진정으로 바른 정사인가. 남북간의 격차가 동서독(東西獨)과 같은 수준이 되더라도 백성들의 고통이 크게 적지 않을 것인데, 지금의 상황하에서 통일이 된다면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난 반세기 동안 벌어진 문화적 간격을 해소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허나 상황이 이와 같다고 하여 한 민족(民族)이 영원히 갈라져 살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민국정부가 북(北)에 대해 여러 시책을 펴는 것이 어찌 당장의 통일만을 염두에 둔 것이겠는가. 원만한 남북관계가 조성되고 평화적인 질서체제가 구축된다면 남북 모두의 군사비 지출이 줄어들게 될 것이니, 결국은 민생고(民生苦) 해결에도 크게 기여하는 바가 될 것이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발판이 되지 않겠는가. 때문에 아직 민국정부의 시책을 두고 그 결과를 논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시급한 민생 현안을 해결하는 문제에 수백 조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인데, 민국정부가 이를 추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역시 '민본(民本)'이란 지극히 행하기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통일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수천 억의 자금이 아닌,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기백 조의 공적자금이 보다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유생의 상소는 조정의 공론에 부쳐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였다.
군기시직장 신용호(辛庸浩), 용양위부사맹 이호랑(李虎郞), 전옥서참봉 남이(南怡), 형조검률 정초(鄭超) 등 4인을 별시 무과 시관으로 명하였다.
11월 30일 임진(壬辰)
행예조좌랑 이이(李珥), 홍문관박사 김도민(金道民), 홍문관정자 이황(李滉)을 별시 문과 시관으로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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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의궤 
장종대왕실록 권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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