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록
行狀錄
행장록서(行狀錄序)
조정에서 증직(贈職)하고 추증(追贈)하고 증시(贈諡)하고 추시(追諡)하는 것은 그 인물이 생전에 남긴 행적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하기 위함이다. 또 그 인물들의 행적을 본(本)으로 삼아 장차 나라를 이끌 왕좌지재(王佐之材)의 신하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 국초(國初) 이래 수많은 신하가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명신(名臣)의 반열에 이른 자가 몇이나 되는가. 조정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있는 자라면, 살아있을 때에는 조정에서 그에 알맞은 관직을 내리고 죽은 후에는 평생의 자취에 의거해 시호를 내리는데, 만약 관직이 높은 위치에 이른 신하에게만 예(禮)로 대우하고 시호를 내린다면, 공적이 출중한 신하만으로 재상(宰相)과 육경(六卿)을 임명하고 관작(官爵)이 모두 상대부(上大夫)의 반열에 이르도록 하겠는가. 생전에 그러한 지위에 오르지 못한 신하들이 있어, 죽은 후에나마 추증하고 추시하는 것이다. 추증과 추시에 앞서 행장을 찬(撰)하는데, 행장이란 어떤 한 인물이 남긴 삶의 행적이고 자취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장을 모아 한 권의 기록으로 남긴다. 옳고 그른 행적이 함께 공존하므로, 상세히 고찰하여 읽는다면 마음으로 느껴 행동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개국611년 6월 24일
증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 충의공 윤봉길 행장
贈資憲大夫 議政府左參贊 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忠毅公 尹奉吉 行狀
예로부터 의기(義氣)와 정충(貞忠)의 인물을 논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매헌(梅軒) 선생을 으뜸으로 쳤다. 이는 근거 없이 함부로 논했던 것이 아니고 일찍부터 직접 보고 들은 바를 전하고 전하였던 것이니, 가히 매헌 선생의 고매한 인품과 의로운 생각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본래 조선(朝鮮)은 예(禮)의 나라요, 문(文)의 나라라 사람들이 덕(德)과 천지(天地)를 논하고 수사(洙泗)와 무이(武夷)를 따질 줄은 알아도 정작 일어나 행동하기는 어려운 법이데, 선생께서는 과감히 나라를 위하고자 일어나 적들의 흉중(胸中)에 조선의 큰 충의를 떨치고 가셨으니, 비록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 다시 있더라도 이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조선의 다행(多幸)이요, 세세(世世)에 길이 남을 성덕(聖德)이라 할 것이다. 올해로써 선생의 70주기(週忌)를 맞아 아조(我朝)에서는 선생의 추시(追諡)와 추증(追贈)에 임하며, 선생의 행장(行狀)을 새로이 찬(撰)하게 되었다. 바로 선생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고 선생의 높으신 의(誼)를 다시금 드높이기 위함이다.
선생의 성(姓)은 윤(尹)이요. 휘(諱)는 봉길(奉吉)이니 상서로운 것을 받든다는 뜻이요, 본휘(本諱)는 우의(禹儀)이니 사람이 의로운 일을 하도록 돕는다는 뜻이며, 호(號)는 매헌(梅軒)이니 매화나무가 자라는 집이라는 뜻이다. 선생은 향년(享年) 25세이셨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라, 예로부터 명신충현(名臣忠賢)이 많은 명문으로 시조의 휘는 신달(莘達)이니 고려조 태조 대왕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에 봉해진 분이다. 신달의 4대 손(孫)으로 고려조 여진(女眞)을 격파한 문하시중(門下侍中) 문숙공(文肅公) 관(瓘)은 선생의 27대조가 되신다. 고(考)의 휘는 황(璜)이며 비는 경주(慶州) 김씨(金氏)이며, 개국517년(1908년:융희2) 6월 21일에 충청남도(忠淸南道) 예산(禮山)에서 선생을 낳으셨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체력이 출중(出衆)하시어 장사가 났다는 소리를 들으셨다. 개국527년(1918) 덕산보통학교(德山普通學校)에 입학하셨으나, 그 다음해인 개국528년(1919)에 고종황제께서 붕어(崩御)하신 직후 일어난 삼일독립운동(三一獨立運動)에 자극을 받으시어 일본(日本)의 식민지 노예 교육을 배격, 학교를 자퇴하셨다. 그 뒤 최병대(崔秉大) 문하에서 제(弟)인 성의(聖儀)와 함께 한학(漢學)을 배우셨으며, 개국530년(1921) 선생의 나이 19세에 성주록(成周錄)의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의 경서(經書)를 익히셨다. 아울러 독학으로 민족사와 신학문을 섭렵하셨다.
선생께서 어느 날 서숙(書塾)에서 글을 읽고 귀가하는 길에 인근 공동묘지에서 타인의 묘표(墓表)를 전부 뽑아다가 자신의 부친 묘표를 찾아 달라고 사정하는 무지한 한 청년을 접하게 되셨는데, 사정이 딱하여 그 청년의 부친 묘표를 직접 찾아주셨다. 허나, 그 무지한 청년은 어느 묘지에서 부친 묘표를 뽑아온 것인지를 기억할 수 없었기에 부친의 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글을 몰라 부친의 묘를 잃어버리게 된 청년을 접하신 선생께서는 '무식이야말로 일본보다 더 무서운 강적이다'고 생각하시게 되셨고, 또 '배움이야말로 나라를 구하는 구국(救國)의 길'이라 생각하시게 되셨다. 이에, 일본 퇴치와 함께 무식 퇴치를 2대 사명으로 정하게 되셨다.
개국535년(1926)에 서숙 생활을 마치신 후 야학회,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민계몽과 농촌부흥운동으로 농촌부흥에 전력하시었다. 이듬해인 개국536년에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농민독본(農民讀本)》을 저술하고 향리(鄕里)의 불우한 청소년을 지도하셨다.《농민독본》에 이런 글이 있다. "나는 농부요 너는 노동자다. 우리는 똑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높지도 낮지도 아니하다. 나는 밭을 갈고 너는 쇠를 다룬다. 우리는 세상이 잘 되도록 쉬지 않고 일하자." 이는 선생의 계몽정신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국538년(1929)에 선생께서는 부흥원(復興院)을 설립하시어 농촌부흥운동을 본격화하셨으며, 그해 정월 초부터 1년간《기사일기(己巳日記)》를 집필하셨다. 동년 2월 18일 부흥원에서 학예회를 개최하여 촌극인 '토끼와 여우'를 공연하였는데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자 이때부터 일본 관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선생은 이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지방 농민들을 규합하여 자활적(自活的)인 농촌진흥을 위해 월진회(月進會)를 조직, 회장으로 추대되셨다. 한편, 수암체육회(修巖體育會)를 설립, 운영하면서 건실한 신체 위에 독립정신을 고취하셨다.
개국539년(1930)에 "장부가 집을 나아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丈夫出家 生不還]."는 말을 가족에게 서찰로 남기시고 3월 초6일에 만주(滿洲)로 망명하셨다. 그때 선생의 나이가 23세였다. 망명 도중 선생은 선천(宣川)에서 미행하던 일본 관원에 체포되어 45일간의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하셨다. 그 뒤 만주로 탈출하여 그 곳에서 김태식(金泰植), 한일진(韓一眞) 등의 동지를 만나 그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준비하셨다. 그해 동짓달에 단신으로 대련(大連)을 거쳐 중국 청도(靑島)로 건너가 개국540년(1931) 여름까지 현지를 탐문하며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모색하셨고, 그 곳에서 세탁소의 직원으로 일하며 모은 돈을 고향에 송금하기도 하셨다. 이렇듯 선생은 일신이 멀리 타국에 있음에도 부모와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시는 마음이 이렇듯 간절하셨다.
그해 팔월에 선생은 큰 뜻을 품고 활동무대를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옮기셨다. 때 마침 상해에서는 상해사변이 발발하여 일본 군대와 중국 군대가 싸우는 대포 소리를 들으시며 고향의 어머니에게 보낸 서찰에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는 표현을 쓰셨다. 그 '꽝꽝'거리는 민족과 민족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시며 선생은 나라를 위해 헌신할 의사(義士)가 되시기 위해 꿈을 키우신 것이다. 선생께서 근거지를 상해로 옮기신 후, 생계를 위해 동포 실업가인 박진(朴震)이 경영하는 공장의 직공으로 종사하였고 얼마 후에는 채소장에서 장사를 하시면서 생계를 유지하셨다. 또한, 상해의 영어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며, 노동조합을 조직한 뒤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시었다.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찾아가 나라의 독립운동에 자신의 신념을 바칠 것을 호소하시었다. 이때 비로써 노(老) 혁명가와 나라의 독립에 피 끓는 젊은 선생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선생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을 하셨는데,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는 것은 행동을 앞둔 의사들이 조국에 대하여 고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다. 이렇듯 선생은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진정한 정의를 현양(顯揚)하는 꿈을 실현코자 하시었다. 선생께서 '영웅과 성인군자(聖人君子)는 살아서 명예가 있지만, 의사(義士)는 죽어서 말한다.'는 문장에 한 걸음 바짝 다가서신 것이다.
개국541년(1932) 정월에 한인애국단 소속인 이봉창(李奉昌:1900-1932) 의사의 일왕폭살의거가 실패로 끝나자 상해의 일대는 복잡한 정세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은 동월 28일에 일본인승려살해사건을 계기로 상해사변을 도발하였다. 일본은 백천의칙(白川義則)을 대장으로 삼아 중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군이 이를 기념하고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축하하기 위해 상해 홍구공원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신 선생은 4월 29일 아침에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을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나셨다. 떠나시기 전에 선생은 김구 선생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이때 김구 선생은 선생의 모습을 '태연자약함이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습과 같았다'고 말하신 바 있다. 또한, 김구 선생은 선생의 태연한 여유에 고개를 들지 못하셨다. 이렇듯 선생은 범인(凡人)이라면 두려움에 떨었을 것을 오로지 의(義)와 용(勇)으로 뭉치시어 두려움을 모르시고 태연하셨다. 드디어 선생은 기념식장에 접근하여 준비한 폭탄을 투척하시어 거만스럽게 자리에 앉아 있던 일본군 수뇌 및 외교사절 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을 하시는 민족적 쾌거를 이루시었다. 선생의 의거는 만고에 길이 빛날 진정한 충의 실천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의 백만 대군도 해 내지 못할 일을 오로지 선생 혼자서 해내셨으니 천하가 어찌 선생의 의거를 가벼이 볼 수 있었겠는가. 이로서 서서히 꺼져가던 독립운동에 다시금 불을 놓으셨으니, 조선의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날 업적이시다. 선생은 거사 직후 일본군 헌병에게 체포되시어 사형을 언도받고 일본 금택형무소(金澤刑務所)에서 12월 19일에 순국(殉國)하셨다. 이때 선생의 나이가 25세이셨다. 이렇듯 청운의 나이에 오로지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살신성인(殺身成人)하신 선생의 높으신 기개와 의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선생의 의거(義擧)는 오로지 선생 혼자만의 거사로 끝나지 않았으니 선생의 훈업(勳業)은 상해를 침략하여 점령한 일본군 사령부의 이동체(移動體)를 모두 섬멸함으로써 정치적, 군사적으로 일본군에게 매우 큰 타격을 주는 성과를 내었다. 이에 훗날 중국군 총사령관 장개석(蔣介石)은, "중국의 백만 대병(大兵)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단행하였다."고 하며, 선생의 의거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는 결코 장중정(蔣中正)의 미사(美辭)나 외교적 발언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니 선생의 사해정평(四海正平)을 위한 진심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라. 또한, 당시 국제도시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의 동태를 전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일본군 사령관과 그 사령부를 모두 섬멸한 것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한민족 불굴(不屈)의 독립정신과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큰 성과를 내었으니, 이것이 바로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의 경우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선생의 의열투쟁(義烈鬪爭) 성공은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으로 붕괴된 한중(韓中) 양 민족의 연대를 다시 회복케 하였고, 중국에서의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을 가능케 하는 여건을 회복시켜 주었다. 중국군 2개 군단이 약 1개월 간 막대한 희생을 내며 치열한 항쟁을 벌이고도 패배하여, 상해를 빼앗긴 치욕과 울분에 떨고 있던 중국인들이 선생의 의거에 일제히 환호하고 한민족에게 무한히 감사해 하면서, 만보산사건으로 인한 악감정을 하루아침에 씻고 도리어 감사와 협조로 급반전되어 독립운동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주었으니, 이것은 선생께서 실천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예라 할 것이다.
선생의 마지막 의열투쟁 성공은 국내외에 한민족의 독립정신을 더욱 크게 일깨워 주고 전반적으로 독립운동을 크게 고취시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선생의 의거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사에 영원불멸의 빛나는 공훈을 남기고,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里程標)를 세운 것이다. 비록 선생께서는 원수의 땅에서 생전에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한 이 나라와 이 민족의 광복(光復)은 보지도 못한 채 비통하게 눈을 감으셨지만, 관운장(關雲長)과 왕철창(王鐵槍)이 스스로 목을 바침으로써 그들의 이름을 드높였듯 선생의 민족을 위한 대의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정신만은 끝까지 남아서 영원히 선생의 이름을 사해(四海)에 떨치게 할 것이다.
[주(註)] 개국611(2002)년 6월 24일에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 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으로 추증된 윤봉길(尹奉吉) 의사(義士)의 행장이다. 시호를 '충의(忠毅)'라 하였는데, 시호법(諡號法)에 난세를 맞이하여 나라를 잊지 않음[臨亂不忘國]을 '충(忠)', 용감하게 행동하여 적을 섬멸한 것[致果殺敵]을 '의(毅)'라 하므로 그리 정한 것이다. 행장은 개국611년 5월 27일에 찬술을 시작하여 익월 초3일에 완결하였으며, 통덕랑 행예조정랑 겸녹훈도감부사 조조(趙造), 계공랑 행홍문관저작 강자아(姜子牙), 계공랑 수예문관봉교 최사강(崔士康) 등이 찬술에 관계하였다.
증숭정대부의정부우찬성 행정헌대부의정부찬정 충경공 최익현 행장
贈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 行正憲大夫議政府贊政 忠敬公 崔益鉉 行狀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천명을 받들어 본조(本朝)를 개창하신 이래 의(義)와 충(忠)을 크게 숭상하시니 동방의 충의지국(忠義之國)이 되어 수많은 충의열사(忠義烈士)가 나타나 나라를 지켰다. 그러나 드높던 충의의 횃불이 점차 사라져 마지막 남은 불씨를 태우게 되었고, 결국에는 나라의 존망이 일각을 다투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충의를 외치며 공(公)께서 나오셨으니, 이는 하늘이 본조를 도우심이라. 아아, 하늘이 공을 내리시어 조선의 충의를 세상에 다시금 드높아졌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름다운 태양의 광명이 천하를 밝게 비추듯, 공의 충의가 삼천리 동방에 밝게 비춰 어지러운 혼세(昏世)에 위로는 종묘사직(宗廟社稷)과 군주의 안녕(安寧)을 구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안위(安慰)를 지킨 것이다. 이는 만고의 빛날 충정의 표본이라, 이에 공의 충의를 높이 사고 만대의 후손들에게 충의의 본을 보이려는 뜻에서 국왕 전하의 어명을 받들어 공의 행장을 찬술한다.
공(公)의 성(姓)은 최(崔)요, 본관은 경주(慶州), 휘(諱)는 익현(益鉉),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이다. 호는 공의 스승인 문경공(文敬公) 선생께서 주신 것이다. 화숙공(和淑公) 휘(諱) 현우(玄祐)의 19세손인데, 시조인 화숙공은 고려조(高麗朝) 충숙왕(忠肅王) 때에 관직이 문하시중에 이르신 분이다. 공의 아버지 휘는 대(垈)이며, 개국442년(1833)인 순조숙황제(純祖肅大皇帝) 치세(治世) 33년에 경기도 포천현(抱川縣) 내북면 가채리에서 공을 낳으셨는데, 공은 '호랑이 머리에 제비 턱'이라는 귀상(貴相)을 타고 나셨으며, 어려서부터 유달리 총명하셨다. 아명(兒名)을 기남(奇男)이라 하였고, 공께서 4세 되시던 해인 개국445년 병신년(丙申年)에 솔가(率家)하여 충청도 단양(丹陽)의 금수산 골짜기로 이주하셨다. 후에 공께서는 11세 되던 해인 개국452년(1843년:헌종9)까지 김기현(金琦鉉) 선생의 문하(門下)에서 유학(儒學)의 기초를 수학(修學)하셨다.
공께서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 선생의 제자가 된 것은 공의 나이 14세 때인 개국455년(1846) 병오년(丙午年)의 일이다. 공의 부친이 다시 솔가하여 경기도 양근(樣根) 후곡(厚谷)으로 이주한 후, 인근 벽계(蘗溪)에서 강학(講學)하는 화서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신 것이다. 화서 선생은 공자(孔子)에서 주자(朱子)를 거쳐 문정공(文正公) 선생으로 이어지는 도통론(道統論)과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학맥(學脈)을 계승하신 분으로, 위정척사(爲政斥邪)를 고수하는 재야유림(在野儒林)이며 중부 지방의 유림 거두(巨頭)이셨다. 이때 공과 함께 화서 선생의 문하에서 동문수학(同文修學)한 인물로는 화서 선생의 아들인 괴원(槐園) 이준(李埈), 황계(黃溪) 이복(李墣)을 비롯해 금천(錦川) 임규직(林圭直), 완이(莞爾) 이인구(李寅龜),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홍암(弘菴) 박경수(朴慶壽),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등이 있다.
화서 선생께서는 공의 자질을 살펴 '존심명리(存心明理)'라는 경구를 써 주며 격려하셨고, 이듬해 공의 나이 15세가 되는 해에 면암이라는 두 글자를 써 내려 아호(雅號)로 삼게 하셨다. 공께서 화서 선생의 문하에서 10년 가까이 수학하신 결과,《격몽요결(擊蒙要訣)》,《대학장구(大學章句)》,《논어집주(論語集註)》등을 통한 조선성리학을 기본 학업으로, 이외에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같이 사랑하고, 나라 걱정하기를 집안 일 걱정하듯 하라[愛君如父 愛國如家].'는 요지의 애군 호국의 정신을 배우셨다.
공께서 명경과(明經科)에 발탁되어 병과(丙科) 제11인으로 급제,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를 초직으로 출사(出仕)하신 것은 공의 나이 23세인 개국464년(1855) 을묘년(乙卯年)으로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 치세 6년이었다. 이후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사간원정원(司諫院正員), 이조정랑(吏曹正郞) 등을 거쳐, 30세 되시던 해인 개국471년(1862년:철종13)에 충청도 신창현감(新昌縣監)으로 부임하셨는데, 당시 충청감사 유장환(柳章煥:1798-1872)이 백성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통해 부정축재(不正蓄財)를 하는 것을 보고 항의하시다 벼슬에서 물러나셨다.
개국473년(1864) 갑자년(甲子年)에 다시 출사하여 예조좌랑(禮曹佐郞), 사헌부지평 등을 지내셨고, 도중에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侍墓)를 위해 사직하셨다. 탈상(脫喪) 뒤인 개국477년(1868년:고종5) 무진년(戊辰年)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관직에 나가셨다가 '시폐사조소(時弊四條疏)'를 올리고 물러나셨는데, 이 소장(疏章)에서 경복궁(景福宮)의 무리한 중건(重建)과 원납전 및 당백전 철폐, 사문세(四門稅) 폐지 등, 당시 대원군(大院君) 합하(閤下)께서 추진하신 시책으로 발생한 여러 폐해를 지적하셨다. 때문에 삭탈관직(削奪官職)이 되셨다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임명되셨는데, 곧 사직하셨다.
개국482년(1873년:고종10) 계유년(癸酉年)에 공께서 동부승지에 제수되자 '사동부승지소(辭同副承旨疏)'를 올리신 것이다. 소장(疏章)의 내용은, 당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합하께서 단행하신 서원(書院) 철폐의 부당함, 그리고 당시 정사(政事)가 옛 법도에서 크게 벗어나 조정이 간신들로 가득 차 있으며,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있다는 것 등이었다. 이로 인해 내외에서 공에 대한 처벌 요구가 있었으나,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께서는 그러한 공의 기개를 높이 사셔서 공의 관직을 더욱 높여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제수하시었다. 이에 공께서는 다시 사직소 '사호조참판겸진소회소(辭戶曹參判兼陳所懷疏)'를 올리셨는데, 이는 지난 '사동부승지소'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분명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만동묘(萬東廟) 및 서원 혁파의 문제점, 청전(淸錢)의 유통 금지, 경복궁의 중건을 위해 거둔 각종 세금에 대한 부당함 등이 그 내용으로, '친친(親親)의 열(列)에 속한 자'는 지위와 녹을 높여 줄지언정 정사에 관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는 바로 섭정(攝政) 대원군 합하의 하야(下野)를 지칭한 것이었으므로, 조정 신하들이 일제히 일어나 공에 대한 주벌(誅罰)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진노하신 고종태황제께서는 공을 제주도(濟州島)로 유배하셨다. 이 두 소장은 '계유상소(癸酉上疏)'라 칭해지고 있다. 공께서는 개국484년(1875) 을해년(乙亥年)까지 제주에서 1년 6개월간 유배 생활을 하셨는데, 비록 유배되셨으나 고종태황제께서 친정(親政)을 하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인 개국483년에는 상소문 내용처럼 청전의 사용 금지와 만동묘의 복원을 명(命)하시었다.
개국485년(1876년:고종13) 병자년(丙子年) 2월에 일제(日帝)의 강권에 의해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가 체결되자, 공께서는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서 병자조약을 강요한 일본국 사신의 목을 베어 죽일 것을 청하며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시니, 이것이 바로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다. 선정(先正) 조헌(趙憲:1544-1592) 선생의 고사(故事)를 따른 것으로, 공께서는 상소문에서 일본과의 조약을 무효로 해야 하는 이유 다섯 가지를 지적하셨다. 첫째는 우리 힘은 약하고 저들의 힘은 강하니 필연 왜(倭)가 필요한 것을 끊인 없이 일반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내용, 둘째는 생산 한계가 있는 우리의 농산물과 무제한 생산할 수 있는 저들의 공산품을 교역(交易)하게 될 것이므로 우리 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는 내용, 셋째는 왜인은 이미 양이(洋夷)와 일체가 되었으니 이들을 통해 사악한 서양 문화가 들어오게 되면 인륜이 무너져 조선의 인민들이 금수(禽獸)가 될 것이라는 내용, 넷째는 저들이 우리 땅을 자유 왕래하고 살면서 우리의 재물과 부녀자를 마음대로 약탈할 것인데 이를 막을 수가 없다는 내용, 다섯째는 저들은 재물과 여색만 탐하는 금수이므로 우리와 화친하여 어울릴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상소 형식의 과격함으로 인해 공의 처벌을 청하는 요구가 있자, 결국 공께서는 다시 흑산도(黑山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셨다. 개국488년(1879) 기묘년(己卯年)에 유배에서 풀려나시니, 이때 공의 나이 47세이셨다.
이후 공께서는 재야(在野)에 머무시며 정세를 관망하셨다. 위정척사 운동이 고조될 때 잠시 선봉에 나서시고, 개국483년(1884) 갑신년(甲申年)에는 정변(政變)이 있자 대궐 앞까지 달려가셨으나 곧 수습되었으므로 거처로 돌아가셨다. 개국503년(1894) 갑오년(甲午年)에 일본공사(日本公使)가 군대를 이끌고 입궐하자 동대문 밖에서 통곡하신 후 돌아가시기도 하셨다. 공께서는 개국504년(1895년:고종32) 을미년(乙未年)까지 은둔하시며 화서학파 문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시고《화서문집(華西文集)》을 필사하시며 스승 화서 선생의 학풍을 계승하는 일에 전념하셨다. 또 그 와중에 부친상을 당하시어 3년 거상(居喪)하셨다. 갑오년에 흥선대원군께서 집권하시었을 때 공조판서(工曹判書)가 제수되기도 하였으나 출사하지 않으셨다.
개국504년 을미년 8월에 국모(國母)이신 명성황후(明成皇后)께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고 친일(親日) 내각으로 구성된 조정에서 단발령 시행을 강행하자, 공께서는 재야에서의 생활을 떨치시고 상소문 '청토역복의제소(請討逆復衣制疏)'를 올리셨다. 항일척사(抗日斥邪)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을미의병(乙未義兵)의 선봉이 되신 것이다. 이에 일본과 친일조정에서는 항일척사의 선봉이신 공의 상투를 잘라 그 분위기를 말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공에게 온갖 압박과 회유를 가해 상투를 자르려 하였으나 공께서는 끝내 굴복하지 않으시고 상투와 항일척사의 정신을 지켜내셨다. 이듬해 개국505년 병신년(丙申年)에 고종태황제께서 아라사(俄羅斯) 공사관으로 파천하신 후에 친일내각의 해산을 선포하시니, 이로 인해 공의 드높은 정신과 항일척사의 숭고한 뜻이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개국505년부터 개국513년(1904)까지 9년간 고종태황제께서 공에게 호조판서(戶曹判書), 선유대원(宣諭大員),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등의 관직을 제수하셨으나, 공은 오로지 사직상소를 올리시며 잘못된 정치의 시정과 올바른 왕도정치 실현 및 일본에 대한 배격을 주청(奏請)하셨다.
개국514년(1905년:광무9) 을사년(乙巳年)에 박제순(朴齊純:1858-1916) 등의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과 일본이 야합(野合)하여 '한일협상조약(韓日協商條約)'을 체결하니, 조선 팔도가 온통 끓는 불가마와 같았다. 장지연(張志淵:1864-1920) 선생이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오늘이야말로 크게 목 놓아 통곡할 날[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사설을 내었고 충정공(忠正公)께서는 '경고한국인민(警告韓國人民)'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셨다. 공께서도 '청오적토적소(請五賊討賊疏)'를 올리셨는데,
"박제순 이하 여러 역적은 본래 외적의 앞잡이로서 매국(賣國)을 예사로 알아 기탄함이 없이 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니 진실로 능지처참(陵遲處斬)을 해도 오히려 그 죄가 남을 것입니다. 한규설(韓圭卨:1848-1930)로 말하면 정부의 장관이 되어서 일의 시초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한 그 부하도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 직무를 감당치 못한 죄를 면하오리까. 또 왜놈들은 자기들이 조금 강한 것을 믿고 의기가 양양하여 이웃 나라를 위협해서 원망 사는 것을 능사로 삼고, 맹약을 파기함을 장기로 여겨 국교하는 대의도 생각하지 않고, 각국의 공론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남의 나라를 빼앗으려는 욕심만 부려 거리낌이 없으니, 세상에 만약 제환공(齊桓公)이나 진문공(晉文公) 같은 임금이 있다면 이 같은 자를 어찌 버려두고 죽이지 않겠습니까. 그러하니 이것은 일조(一朝)에 된 일이 아니라 그들이 여러 해 전부터 계획을 쌓아서 만든 것인즉, 그 형세가 다만 이에 그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관조약(馬關條約)'에서의 일로 전쟁을 한 이후로 무릇 우리의 독립과 영토를 보전한다고 말한 것이 몇 번이었고, 우리나라의 이익을 빼앗는 데는 번번이 한일 두 나라의 교의를 더욱 두텁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몇 번이었습니까. 그 우롱하고 속임을 예측할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소위 황실을 보호한다는 것을 폐하께서는 진실로 믿으십니까."
하시며 을사조약의 무효를 내외 선포 및 조약에 서명한 매국오적의 처단을 청하셨는데 이때 공의 나이 73세이셨다. 공께서는 이 일로 일본군의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에 구금되시어 심문을 받으시고 사흘만에 고향이신 경기도 포천으로 압송되셨다. 공께서는 곧바로 상경하시어 또 다른 상소를 준비하시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셨으며, 개국515년(1906) 병오년(丙午年) 2월에 충청도 정산(定山)으로 감금되셨다. 이에 앞서 개국514년 11월에 공께서 '포고팔도사민(布告八道士民)'을 지어 전국 각지에 보내 창의(倡義)를 호소하시기를,
"오늘날의 국사(國事)를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나라가 망할 때에는 종사(宗社)만 없어졌을 뿐이었는데, 오늘날 나라가 망할 때에는 인종(人種)까지 함께 멸망한다. 옛날에 나라가 망할 때에는 전쟁 때문이었는데, 오늘날 나라가 멸망할 때는 계약(契約)에 의한다. 전쟁이라면 그래도 승패(勝敗)의 판가름이 있겠지만 계약으로 하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 지난 10월 20일의 변고는 전 세계 고금에 일찍이 없었던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 이웃 나라가 있어도 스스로 외교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대신 외교하니, 나라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토지와 인민이 있어도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대신 감독하게 하니, 임금이 없는 것이다. 나라가 없고 임금이 없으니, 우리 삼천리 인민은 모두 노예며 신첩(臣妾)일 뿐이다. 남의 노예가 되고 남의 신첩이 되었다면 살았어도 죽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셨다. 나라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함께 망하는 것이니, 일본의 경제 침탈 방지와 을사오적 처단, 납세거부 및 외국문물의 사용금지 등을 준열하게 논파하신 것이다. 또한 공께서는 황제 폐하께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려 창의의 뜻을 고하셨다.
개국515년에 이르러 공의 높은 충의가 빛을 발휘하니, 윤4월 13일에 전라도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聖書院)에서 "왜적이 나라를 도둑질하여 5백년 종사와 삼천리 이 나라 강토가 망하게 되었으니 국가를 위하여 싸우다 죽자."라고 호소하시며, '의거소략(義擧疏略)'을 통해 일본의 16가지 죄목을 열거하셨고 일본의 조선침략의 부당성을 외치셨다. 정읍(井邑), 순창(淳昌), 곡성(谷城) 등에서 군비를 보강하여 1천여 군세를 이루시었는데, 공께서 순창에서 북상계획을 수립하시던 중에 전북관찰사 한진창(韓鎭昌), 순창군수 이건용(李建鎔)이 이끄는 진위대(鎭衛隊)가 공격해오자 '동포와는 싸울 수 없다'고 하시고는 일체 대응하지 않으셨다. 진위대가 의병을 공격하여 제자 정시해(鄭詩海) 등이 전사하고 대부분의 의병들이 흩어졌으나, 공의 문인(門人)인 전낙안군수 임병찬(林炳瓚), 고석진(高石鎭), 김기술(金箕述), 문달환(文達煥), 임현주(林顯周), 유종규(柳種奎), 조우식(趙愚植), 조영선(趙泳善), 죄제학(崔濟學), 유기덕(柳基德), 이용길(李容吉), 유해용(柳海瑢) 등의 12의사(義士)가 스승인 공을 호위(護衛)하였다. 공께서는 체포되실 당시 흩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려고, 새 도포를 입고 갓끈을 고쳐 매셨으며 양손을 포개 바른 자세로 앉아 계셨다. 또한 공의 선창(先唱)에《맹자(孟子)》호연장(浩然章)과 능어장(態魚章)을 외었는데, 이러한 당당한 모습을 본 백정 경철(景哲)이 포위망을 헤치고 들어가 공과 함께 죽기를 원하였다. 그해 8월 14일에 공은 3년형, 임병찬은 2년형을 선고받고 대마도(對馬島) 암원(巖原)으로 압송되었으며, 나머지 문인들은 갖은 고문과 고초를 겪은 후에야 방면(放免)되었다.
공께서 압송되신 대마도에는 이미 홍주(洪州) 의병에 참여한 이칙(李侙), 유준근(柳濬根), 안항식(安恒植) 등 아홉 의사가 이미 감금되어 있었다. 일본의 온갖 회유와 탄압에도 공께서는 굴복하지 않으시고 "지금 이미 이 지경에 이르러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도 의(義)가 아니니, 지금부터는 다만 단식(斷食)하고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결연하게 단식하셨다. 이로 인해 결국 개국516년(1907:광무11) 정미년(丁未年) 정월 초1일에 순국하셨는데, 이때 공의 나이 74세이셨다. 순국하시기 전에 고종태황제 폐하께 구술로 유소(遺疏)를 올리셨는데,
"신이 이곳에 온 뒤로 한 숟가락의 밥이든 한 모금의 물이든 그것이 모두 적에게서 나온 것이니, 설사 적이 신을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마 굶주림 때문에 자신을 더럽힐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물리치고 옛 사람의 '자신을 물리치고 선왕(先王)에게 나아간다'는 의리를 따르려고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신의 나이 일흔 네 살이니 지금 죽는다고 해서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다만, 나라 안의 역적을 치지 못하고 나라의 원수를 능히 멸할 수 없었으며,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강토를 도로 찾지 못해 사천 년 동안 간직해 온 공맹(孔孟)의 정도(正道)가 더러운 흙탕물에 빠졌건만 그것을 붙들지 못했고, 삼천리 강토에 사는 선왕의 백성들이 어육(魚肉)이 되어가건만 그것을 구해내지 못했으니, 이것이 신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고 하셨다. 참으로 공의 충의가 만고(萬古)의 표상(表象)인 것이다.
정월 초5일에 공의 유해(遺骸)가 부산 초량(草梁)에 도착하니 공을 추모하는 행렬이 길을 가득 메웠고 상인들은 사흘 동안 철시(撤市)하여 공의 순국의 애도하였다. '춘추대의 일월고충(春秋大義 日月高忠)'이라는 만장(輓章)을 앞세운 공의 영구(靈柩)가 지나는 곳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으며, 백성들이 진심으로 공의 순국의 슬퍼하고 애도하였다. 정월 25일에 정산 본제(本第)에 도착한 공의 유해는 노성(魯城)의 무동산(舞童山) 기슭에 안장되었다.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최후까지 진충보국(盡忠保國)하고자 하셨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지(敵地) 대마도 옥사에서 순국(殉國)하셨지만, 공의 우국애민(憂國愛民)의 정신과 위정척사 사상은 항일의병운동과 이후 민족운동, 독립운동의 지도 이념으로 계승되었다.
후인(後人)들이 공의 순국을 애도(哀悼)하며 공을 평하기를,
"동방의 예의가 있는 군자국에 당당한 대의는 해와 달처럼 밝아 있어 의사 충신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태산과 숭악(崇仰) 같은 기상이요, 광풍(光風)과 제월(霽月)과 같은 속마음을 지니셨습니다. 날마다 심경(心經)을 강론하셨고, 조석으로는 그것을 가만히 음미하셨습니다. 평소와 같이 궁궐에 드시어 임금을 보필하심에 요순(堯舜) 같은 어진 임금과 어진 백성으로 이끄시었고 경륜이 있으신 크나큰 군자로 이루셨으니..."
라고 하였으니, 공의 충절(忠節)과 기개(氣槪)가 가히 후인들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또한 공의 경륜(經綸)과 학문이 일세(一世)의 기절(奇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주(註)] 개국612(2003)년 9월 24일에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 겸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兼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으로 증직되고, 개국616(2007)년 12월 18일에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우찬성(議政府右贊成) 겸판의금부사지경연춘추관사홍문관제학동지성균관사(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事弘文館提學同知成均館事)로 가증(加贈)된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행장이다. 시호를 '충경(忠敬)'이라 하였는데, 시호법(諡號法)에 자기 몸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든 것[危身奉上]을 '충(忠)', 정의를 지켜 굴복하지 않았음[守義不屈]을 '경(敬)'이라 하므로 그리 정한 것이다. 행장은 개국612년 5월 초10일에 찬술을 시작하여 익월 21일에 완결하였으며, 통훈대부 녹훈도감부사지제교 강자아(姜子牙)가 짓고 통훈대부 행예조정랑 이동진(李東珍)이 고쳐 썼다.
증자헌대부형조판서 행평리원검사 충경공 이준 행장
贈資憲大夫刑曹判書 行平理院檢事 忠景公 李儁 行狀
공(公)은 종성(宗姓)으로 휘(諱)가 준(儁)이니, 이는 '세상에 널리 빛난다'는 뜻이요, 호(號)는 일성(一醒)이니, 이는 '세상을 한 번 깨우친다'는 뜻이다. 자(字)는 순칠(舜七)이고, 본휘는 성재(性在)이시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니, 공의 18대조 완풍대군(完豊大君) 겸영종정경(兼領宗正卿) 양평공(襄平公) 휘 원계(元桂)는 환조대왕(桓祖大王)의 별장자(別長子)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황형(皇兄)이 되신다. 일찍이 태조께서 나라를 여실 때, 의(義)로는 여조(麗朝)의 중신(重臣)이요, 정(情)으로는 본조(本朝)의 종실(宗室)이라, 태백(太伯)과 중옹(仲雍)이 형남(荊南)으로 떠난 고사를 본받아 필명시(畢命詩)를 남기고 자진(自盡)하셨다. 선고(先考)의 휘는 병관(秉權), 선비(先비)는 청주(淸州) 이씨(李氏)이시며, 개국468년(1859년:철종10) 기미년 12월 18일에 함경도 북청(北靑)에서 공을 낳으셨다. 공이 삼 세 되던 해 양친(兩親)이 모두 작고(作故)하셨으므로 공은 조부(祖父)의 슬하(膝下)에서 성장하셨다.
공은 17세에 북청을 떠나 홀로 서울로 이거하셨다. 개항(開港)의 혼란기에 약관(弱冠)의 나이로 국운(國運)을 걱정하는 여러 객손과 더불어 접촉하고 마침 운현궁(雲峴宮)에 거처하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을 만나 시론(時論)을 나누었는데, 언행(言行)의 분명(分明)함과 식견(識見)의 비범(非凡)함을 드러내셨다. 이에 놀란 흥선대원군은 당시 형조판서 김공병시(金公炳始)에게 공을 소개하였다. 판서공(判書公) 또한 선생의 탁견(卓見)을 높이 평가하여 그의 사저에 머물러 수학(修學)할 것을 권유하고 늘 가까이 대하였는데, 이에 주위 사람들은 공을 일컬어 말하기를 부대신(副大臣)이라 할 정도였다.
공의 성품(性品)이 단직(端直)하여 간혹 과격(過激)할 때가 없지 않았으므로 판서공이 늘 경계하였는데, 하루는 대감의 아들 김용규(金用圭 )의 담뱃대를 허락 없이 공이 객(客)에게 빌려주었기에 김용규가 이를 나무랐더니, 공이 강개(慷慨)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나고 물건이 있지, 양반의 물건은 사람 위에 있다는 말이냐' 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리고 그 날로 행장(行裝)을 차려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김용규가 함경감사 이돈하(李敦夏)에게 공을 욕보일 것을 청하였는데, 이 소식을 듣고 주위가 공에게 피할 것을 권하자 태연히 감사를 찾아가 준절(峻節)히 시비(是非)를 가리니 과연 감사가 감복(感服)하여 오히려 공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개국496년(1887년:고종24) 함경초시(咸鏡初試)에 합격하였으며, 개국497년(1888년:고종25)에는 북청에 경학원(經學院)을 설립하셨다. 이 학교는 후에 북청공립농업학교(北靑公立農業學校)로 개칭하여 북도(北道)의 인재를 양성하는데 중요한 학교가 되었다. 이어 개국503년(1894년:고종31)에는 함흥(咸興)의 순릉참봉(純陵參奉)이 되셨다. 이듬해에는 37세의 나이로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를 1회로 졸업(卒業)하시고 한성재판소(漢城裁判所)의 검사시보(檢事試補)가 되셨다. 이후 간흉(姦凶)한 탐관오리(貪官汚吏)를 결처(決處)함에 있어 어떠한 겁박(劫迫)에도 굽히는 일이 없으셨다. 비록 무함(誣陷)을 입어 33일만에 면관(免官)되셨으나, 굽히지 않는 선생의 기개가 대개 이와 같았다.
비록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때부터 공이 나라의 질서(秩序)를 바로잡는데 몸을 아끼지 않으셨으니, 이에 통감한 여러 지사(志士)들과 뜻을 모아 나라를 좀먹는 간세지배(奸細之輩)를 규탄하는데 본격적으로 앞장서셨다. 개국505년(1896:건양1)에 서재필(徐載弼), 이승만(李承晩)과 함께 독립협회(獨立協會)를 결성하시고, 그 평의장(評議長)을 맡아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행하는데 관여하시어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하시고, 또한 연설 활동을 통해 대중을 계몽(啓蒙)하셨다. 하지만 불안정한 시국이 이어지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시고 일본으로 망명하시어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법학과(法學科)에 입학하셨다. 개국507년(1898년:광무2)에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시어 독립협회에 다시 가담한 후,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를 개최하여 헌의6조(獻議六條)를 결의하는 등의 본격적인 척왜(斥倭) 활동을 이끄셨다. 와중에 공께서는 이승만, 이동녕(李東寧) 등 17인과 더불어 투옥(投獄)되는 등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셨다.
이어 개국511년(1902년:광무6)에는 민충정공(閔忠正公) 영환(泳煥)을 비롯하여 이상재(李商在), 이상설(李相卨), 이동휘(李東輝), 양기탁(梁起鐸) 등과 비밀결사인 개혁당(改革黨) 운동을 추진하셨다. 개국513년(1904년:광무8) 일본이 러일전쟁(露日戰爭)을 일으키고, 군대를 한반도에 불법 상륙시켜 제1차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체결을 강제하고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등의 침략정책을 강화하자, 이에 대한 반대시위운동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다. 동년에 일본이 전국의 황무지개척권(荒蕪地開拓權)을 요구하자, 송수만(宋秀晩), 원세성(元世性) 등과 함께 대한보안회(大韓輔安會)를 조직하여 그 총무(總務)를 맡으시고 반대투쟁에 투신하셨다. 이후 보안회가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해산되자 그 후속 단체로 이상설과 함께 대한협동회(大韓協同會)를 조직하여 부회장(副會長)을 맡으시고, 또 다시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강력히 반대하여 결국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셨다.
동년 12월 부왜역도(附倭逆徒)들이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하여 매국(賣國) 활동을 개하자 이에 대항하여 윤하영(尹夏榮), 양한묵(梁漢默) 등과 공진회(共進會)를 조직해 회장(會長)이 되시고, 반일진회(反一進會) 투쟁에 진력(盡力)하시다 일인(日人)의 공작으로 황해도 철도(鐵島)에 6개월 동안 유배(流配)를 당하셨다. 이후 민충정공의 주선으로 석방되셨으며, 이어 법안연구회(法案硏究會)를 구성하여 회장을 맡으셨다. 개국514년(1905년:광무9) 5월에는 윤효정(尹孝定), 양한묵, 홍재기(洪在箕) 등과 함께 법안연구회를 확장(擴張)하여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를 조직, 회장에 취임하시어 헌법(憲法) 시행의 기초를 닦기도 하셨다.
개국514년 11월에 결국 일본이 무력(武力)으로 핍박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고 국권(國權)을 박탈하자, 상동교회(尙洞敎會)에 모인 전덕기(全德基), 최재학(崔在學), 정순만(鄭淳萬), 이동녕(李東寧) 등 동지(同志)들과 함께 을사조약 폐기 상소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신 후, 손수 그 상소문(上疏文)을 지으시고 대한문(大漢門) 앞과 한성부 시내에서 이를 방해하는 일본의 군경(軍警)과 투석전(投石戰)을 벌이는 등 준열(峻烈)한 구국시위(救國侍衛)를 주도하셨다.
이듬해인 개국515년(1906년:광무10)에는 만국청년회(萬國靑年會) 회장에 취임하여 국제친선(國制親善) 운동을 제창하셨고, 정부(政府)에 국정구폐진언서(國政舊弊陳言書)를 제출하셨다. 동년에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 회장에 재선되어 이동휘, 이갑(李甲), 안창호(安昌浩), 유근(柳瑾), 유정수(柳正秀), 유승겸(兪承兼), 홍재기 등과 국민교육 운동을 전개하면서 보광학교(普光學校)를 설립하셨는데, 이후 전국적으로 야학(夜學)과 같은 문맹퇴치(文盲退治) 운동이 널리 파급된 데에는 공의 이러한 움직임에 힘입은 바가 컸다. 공께서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 회장으로 서우학회(西友學會)와 합동하여 서북흥학회(西北興學會)를 발족(發足)하신 뒤, 이갑, 안창호, 이종호(李鍾浩) 등과 교육 사업에 총력을 집중하여 결국 서북흥학회를 모태(母胎)로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세우셨으며, 아울러 광신중상업고등학교(光新中商業高等學校)를 설립하셨다.
이어 동년 6월 공은 평리원(平理院) 검사(檢事)를 거쳐 특별법원(特別法院) 검사(檢事)에 겸임되셨다. 이 때 정부에 인재등용론(人才登用論) 제안서를 제출하고, 법부대신(法部大臣) 이하영(李夏榮)에게 권고문을 보내는 등, 공은 법치주의의 기틀을 갖춘 근대국가로 나라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 분투하셨다. 또 동년 10월에 고종황제(高宗皇帝)의 은사안(恩赦案)을 작성하면서, 오적(五賊)을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복역 중이던 나인영(羅寅永)과 오기호(吳基鎬)를 사면 명단에 포함하려다 이를 저지하려는 법부 형사국장(刑事局長) 김낙헌(金洛憲)을 오히려 고소하는 기개를 보이셨다. 이 사건으로 공은 장(杖) 70대의 형을 받으셨으나, 집행 다음날 태연히 출근하여 무뢰배(無賴輩)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하셨다. 아울러 이하영, 김낙헌을 고발하고, 공개 재판에서 그 죄상(罪狀)을 준엄하게 통박(痛駁)하셨는데, 이 때문에 법관(法官)의 체모(體貌)를 훼손하였다는 명목(名目)으로 결국 면직(免職)되셨다.
개국516년(1907년:융희1)에 대구(大邱)에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지지하시고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한성(漢城)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國債報償聯合會議所)를 설립하시고 소장(所長)이 되시어 모금 운동을 벌이셨다. 동년 4월 양기탁, 안창호, 전덕기 등이 중심이 되어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 신민회(新民會)를 창립하자, 여기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셨다. 또한 자강회(自彊會)가 주최한 기독교청년회(督敎靑年會)에서 '생존(生存)의 경쟁(競爭)'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셨고, 아울러 [한국혼부활론(韓國魂復活論)]을 저작으로 남기셨다.
동년 6월과 7월 사이 화란(和蘭:네덜란드)의 해아(海牙:헤이그)에서 세계평화회의(世界平和會議)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자, 선생은 전덕기, 이회영(李會榮), 상궁(尙宮) 박씨(朴氏) 등의 도움을 받아 고종황제를 알현(謁見)하시어, 이 평화회의에 특사(特使)로 파견되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고종황제의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무단으로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無效)라는 것을 세계만방(世界萬方)에 선언하고 한국독립(韓國獨立)에 관한 열국(列國)의 지원을 요청할 것을 제의하시여 황제의 윤허(允許)를 받으셨다. 이에 공은 헤이그 특사단(特使團)의 부사(副使)가 되어 개국516년 4월 22일에 서울을 출발,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러 정사(正使) 이상설(李相卨)과 합류하시고, 다시 노서아(露西亞:러시아)의 수도 성파득보(聖彼得堡:생 페테르부르크)로 가시어 이위종(李瑋鍾)과 만나 6월 25일 해아에 도착하셨다.
세계평화회의(世界平和會議) 의장(議長)에게 고종황제의 친서(親書)와 신임장(信任狀)을 전하시고 평화회의에 한국대표(韓國代表)로서 공식적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셨으나, 일본 대표와 영국 대표의 방해로 성사하지 못하셨다. 이에 세 특사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폭포, 규탄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控告詞)를 작성하여 평화회의 의장과 각국 대표에게 보내는 한편, 신문을 통해 이를 공표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켰다. 신문기자와 언론들은 세 특사의 활동에 호의적이었으나, 열강(列强)의 대표들은 냉담하여 이에 격분(激忿)한 선생은 통탄(痛嘆)을 이기지 못하시고 해아에서 순국(殉國)하셨다. 이 때가 향년(享年) 49세이셨다.
[발(跋)] 지난날 왜노(倭奴)의 간휼(奸譎)한 계략으로 오백년 종사(宗社)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형지에 놓이고 동방의 백성들은 모두 어육(魚肉)이 되어 도탄지고(塗炭之苦)의 위경(危境)을 당하니, 뜻 있는 이 치고 옷자락을 떨쳐 일어나지 않는 이가 없었고 제 몸을 죽여 애국의 의지를 드높인 이들은 기백만(幾百萬)이 넘었다. 따라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눈과 귀를 갖춘 자로서 이들의 행적을 사모(思慕)하지 않는 이가 없다. 우리들은 불행히 늦게 태어나 선인들로부터 나라를 보존한 은택(恩澤)을 입었으니 마땅히 이를 글로 남겨 사적(史籍)의 자세함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미는 두 번 일러 말할 것도 없다. 삼가 생각하건대, 비록 공이 난세를 만나 요절(夭折)하여 비록 품은 뜻에 비추어 성취한 공업이 크지 않으나, 의기(義氣)로운 죽음으로 간적을 통렬히 공박하고 충용(忠勇)한 기상으로 왜적의 예기(銳氣)를 좌절토록 한 것은 선열(先烈) 중에서 공이 으뜸이다. 예로부터 본조에서는 백이숙제(伯夷叔齊)를 숭모(崇慕)하여 청사(靑史)에 의인(義人)이 끊인 적이 없었으니, 이러한 공의 절의는 오히려 굴원(屈原)과 포은(圃隱)에 비길 만하다. 이에 공께서 밝히신 일월(日月)과 같은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만대토록 전하고자 성상께서 고인의 행적을 글로 찬수(撰修)하고 특별히 공의 작위를 높여 명예를 드높일 것을 명하였으므로 이를 공손히 받들어 이 행장을 지은 것이다.
[주(註)] 개국618(2009)년 6월 12일에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형조판서(刑曹判書) 겸지의금부사동지성균관사(兼知義禁府事同知成均館事)로 증직된 이준(李儁) 열사(烈士)의 행장이다. 시호를 '충경(忠景)'이라 하였는데, 시호법(諡號法)에 난세를 맞이하여 나라를 잊지 않음[臨亂不忘國]을 '충(忠)', 의를 펴고 강직하게 행동함[布義行剛]을 '경(景)'이라 하므로 그리 정한 것이다. 행장은 개국617(2008)년 12월에 찬술을 시작하여 다음해 5월 22일에 완결하였으며, 통훈대부 행대구도호부사 겸대구진관병마첨절제사 박연(朴堧), 승훈랑 행홍문관박사 이벽(李癖) 등이 찬술에 관계하였다.
증가선대부 병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신태호 행장
贈嘉善大夫 兵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總府副總官 申泰浩 行狀
공(公)의 성(姓)은 신(申)이요, 휘(諱)는 돌석(乭石), 본휘(本諱)는 태호(泰浩), 본관(本貫) 평산(平山)이다. 공은 개국487년(1878년:고종15) 11월 3일에 경상북도(慶尙北道) 영해군(寧海郡) 남면(南面) 복평리(福坪里)에서 석주(錫柱)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은 장절공(壯節公) 휘(諱) 숭겸(崇謙)의 후예이다. 장절공은 고려태조(高麗太祖)의 공신(功臣)으로서, 불의(不義)하고 무도(無道)한 태봉주(泰封主)를 몰아내고 고려태조를 세우는데 앞장섰다. 나아가 싸우면 맹호(猛虎)와 같고, 물러나면 곁에서 충언(忠言)을 아끼지 않으니 고려태조가 아끼는 마음이 마치 한 핏줄을 대함과 같았다. 또한 저 공산(公山) 싸움에서 후백제주(後百濟主)에 포위되어 고려태조의 처지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을 적에 스스로 변장(變裝)하여 군주(主君)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으니, 충절(忠節)에 누가 이를 수 있을 것인가. 그 후예(後裔)인 공이 충의(忠義)와 의리(義理)를 숭앙(崇仰)함은 그 기상이 피에 면면(綿綿)히 흐르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공이 19세 되던 개국504년(1895년:고종32) 왜적(倭賊)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죄를 범하였으니, 국모(國母)께서 간악(奸惡)한 저들의 손에 시해(弑害)를 당하셨다. 나이가 많고 적음과 신분이 높고 낮음과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놀라고 또 분개(憤慨)한 사건을 맞이하니, 공께서 평시 사귀어 온 동무 100인을 이끌고 고향 영해에서 떨쳐 일어나셨다. 아아 장절공의 현신(現身)이던가. 나아가 싸우면 이기니, 이해에 영해의병진(寧海義兵陣) 중군장(中軍將)이 되셨다. 7월 초에 김하락(金河洛)이 이끄는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이 영덕(盈德) 방면으로 이동해 오자 동월 5일에 이들과 연합하였고, 다시 동월 9일에는 유시연(柳時淵)의 안동의진(安東義陣)과 합세하니, 공이 인화(人和)함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으리라. 허나 어찌할 것인가. 인화는 있으되 천시(天時)가 따르지 않으니, 동월 14일에 영덕 강구(江口)에서 적병(敵兵) 수백의 습격을 받아 김하락이 전사하고 대패하니, 공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으셨다.
공은 이후 10여년을 전국 각지의 지사(志士)를 만나며 견문을 넓히시니, 허위(許蔿)의 제자로 훗날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박상진(朴尙鎭),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의 유격장(遊擊將)으로 용맹을 떨친 이강년(李康년), 군대해산 직후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장병들을 이끌고 의병항쟁(義兵抗爭)을 수행하였던 민긍호(閔肯鎬) 등이 이때 만난 이들이었다. 공은 이때에 견문만을 넓힌 것이 아니고 왜적에 대항하는 여러 활동을 하셨다.
허나 시간은 멈추지 아니하고 나라의 위기(危機)는 점점 더하여 가니, 청국(淸國)과 노서아(露西亞:러시아)와 왜적이 우리 땅에서 싸움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왜적이 청국과 러시아를 모두 물리치니, 아아, 나라의 위태로움이 지난 임진년(壬辰年)과 정유년(丁酉年)에 비하여 나은 것이 없었다. 왜적은 영국(英國), 미국(美國)과 손을 잡아가며 아조(我朝) 침탈(侵奪)을 획책하였으니, 개국514년(1905년:광무9) 11월 18일에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을 내세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불법적으로 체결하였다. 국권(國權)이 위기에 처함이 이와 같으니, 공은 가슴속 우국충정(憂國衷情)을 감추지 못하고 평해(平海) 월송정(越松亭)에 올라 시를 읊고, 마침내 개국515년 3월 13일에 영해 부평리(福坪里) 축산(丑山)에서 아우인 신우경(申友慶)과 함께 활빈당(活貧黨) 300여 인을 모아 거병(擧兵)하시니, 그 부친께서는 가산(家産)을 아끼지 않고 내어 공을 도우셨다. 이에 기치(旗幟)를 높게 세우고 영릉의병장(寧陵義兵將)이 되었다. 아아, 고려태조의 충신(忠臣) 장절공의 나라를 향한 충심(忠心)이 대(代)를 이어 전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공은 거병 직후 영해 군대동(軍大同)에 주둔하고 각지로 격문(檄文)을 띄우니, 사방에서 애국애민(愛國愛民)하는 이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3,000인에 이르렀다. 군기(軍氣)가 충천하여 나아가 싸우면 이기니, 영해 부근에 주둔하던 왜군(倭軍)을 격파하고, 동년 4월에 울진(蔚珍) 장흥관(長興館)을 급습하여 정박중이던 왜선(倭船) 9척을 격침하였다. 또 동년 6월에는 의병(義兵) 1,000인을 이끌고 대구진위대(大邱鎭衛隊), 원주진위대와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삼척(三陟), 강릉(江陵), 양양(襄陽), 간성(杆城) 등 동해안 일대, 영양(英陽), 청송(靑松), 의성(義城), 봉화(奉化) 등 경북(慶北) 내륙 지방, 정선(旌善), 원주(原州) 등 강원도 내륙 지방 등 가는 곳 마다 왜적을 물리치니, 왜적 중에 차마 두려워 공과의 싸움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공이 군사(軍士)를 부림이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니, 동년 11월 11일에 문경(聞慶) 지역 이강녕의 의병대(義兵隊)와 함께 순흥(順興)을 공략하였는데, 대구(大邱)에 머물던 왜적이 몰려왔으나 이미 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공은 개국516년(1907년:융희1) 봄에 중군장(中軍將) 백남수(白南壽), 김치헌(金致憲) 등 용맹한 휘하 장병들과 함께 영덕 일대 농민들의 지원을 얻어 친일세력(親日勢力)들을 없애고, 동년 8월 20일에 300인을 거느리고 경상도 영양읍(英陽邑)으로 나아가 왜군 헌병분파소(憲兵分派所)와 관아(官衙)를 소각하였다. 이후 경상도 영양(英陽), 문경, 영해, 평해 등지에서 군자금(軍資金)을 수합(收合)하면서 등전(藤田), 국지(菊池) 등이 이끌던 왜군과 수 차례 싸웠다.
공의 이러한 활약에 많은 이들이 방방곡곡(坊坊曲曲)에서 일어나니, 바야흐로 의병이 일어남이 임진년과 다름이 없었다. 하여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을 결성(結成)함에 영남지방(嶺南地方)을 대표하는 교남창의대장(嶠南倡義大將)으로 선임되셨다. 허나 왜군이 공을 두려워함이 매우 커 공이 경기(京畿)로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 서니 끝내 십삼도창의군에 합류하지 못하셨다. 어찌 아니 안타까운가.
공은 그러함에도 개국517년(1908)에는 전력(戰力)이 강해져 가는 왜군에 맞서, 영남(嶺南) 지방에서 소규모 부대를 동원해 동시다발적으로 왜군을 공략(攻略)하니, 왜군은 차마 공이 있는 곳에 저들의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날이 밝을 때만 움직일 수 있었다.
아아, 그러나 어이할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고, 탐욕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의리와 충효(忠孝)를 저버리고, 대의(大義)를 한낱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어 버리니, 동년 겨울에 전력 보충을 위하여 잠시 군을 해산(解散)한 공이 그 가족을 산중으로 피신케 하고, 11월에 영덕 눌곡(訥谷)에 이르러 옛 부하 김상렬(金相列)의 집에 머물렀을 때, 욕심과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옛 부하가 의리와 충의를 잊고 그 동생 김상태(金相泰), 김상호(金相浩)와 함께 공이 깊게 잠들기를 기다렸다 공을 해(害)하고 말았다. 공의 나이 향년(享年) 31세요, 개국517년(1908년:융희2) 11월 18일의 일이었다.
[발(跋)] 영웅(英雄)은 난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떨쳐 일어나고, 국운이 쇠퇴한 이후에야 비로소 지극한 충정(忠情)을 분간할 수 있다. 저 을미년(1895)의 흉변이 있은 후로 끊임없이 간적(奸賊)들이 팔도를 횡행(橫行) 하며 위로는 종사를 위협하고 아래로는 국토를 침탈하는 기세가 자못 흉흉하여 창천(蒼天)이 굽어보고 있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따라서 공이 충의로써 몸을 일으켜 닿는 곳마다 신무(神武)한 용병(用兵)으로 오랑캐를 토멸(討滅) 하니 비로소 조선에도 용장이 있음을 알고 심히 놀랍고 당황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장군의 영준(英俊)한 용자(勇姿)는 태백산 호랑이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고, 탁월한 용력(勇力)은 능히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勢)의 경지에 이르렀다. 수만의 적도를 앞에 두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과 기개는 공의 선조 장절공(壯節公)의 풍도를 물려받았다 할 수 있다. 비록 수하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용렬(庸劣)한 위인을 가까이하여 결국 해침을 당하고 말았으나, 짧은 세월 동안 이룬 전공(戰功)은 공을 일세의 준걸(俊傑)이라 칭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본조에서 공을 추증하여 천추만대의 본보기를 삼고자 하는 성상의 하교에 따라 이와 같이 행장을 마련한 것이니, 후인들은 힘써 따르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주(註)] 개국618(2009)년 6월 12일에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總府副總官)로 추증된 신태호(申泰浩:신돌석) 장군의 행장이다. 개국617(2008)년 12월에 찬술을 시작하여 다음해 5월 22일에 완결하였으며, 봉훈랑 행공조좌랑 이화(李和), 승훈랑 행홍문관박사 이벽(李癖) 등이 찬술에 관계하였다.
|
대전 
사목 
등록 
기록 
역사 
문집 
예비 
행장록(行狀錄)
전체 86
병조 업무지침 
비변사운영절목 
비변사운영절목 
특정직 임면안(任免案) 
사마방목(司馬榜目) 권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