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음] 공신 개정 논란과 관련한 사태 수습에 관하여

창국공신(昌國功臣) 개정에 관한 진사 이덕무(李德武) 등의 연명소(聯名疏)를 접하고, 이후로 발생할 적지 않은 파장을 우려하여 상소를 물리고 싶었으나, 그리하지 못한 것은 본국(本國:본조)의 정체성 때문이다. 본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위치를 조금씩 낮추어 과거와 공존(共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님이신 대행대왕께서 과거에 존호(尊號)를 급구 사양하시고, 2품 당상의 1품 가자(加資)를 제어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여긴다. 비록, 창국공신 책봉 당시에 인정상 훈급(勳級)을 차마 조정하지 못하시어 작금의 사태가 초래되었으나, 언젠간 과인이 해결해야 할 유업(遺業)인 것이다.

다만, 공신(功臣) 개정에 관한 사안은 매우 민감하여 군주(君主)라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개정을 거론(擧論)하기에 앞서 반발에 따른 이탈 공신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나라의 인사 형편을 충분히 고려한 뒤, 거론 시기를 정해야 하고 공신의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일을 거론할 때에 시간을 두며 강요가 아닌 지속적인 설득으로 공신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야 금번과 같은 국가 혼란이 초래되지 않는다. 국가에서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공신들의 훈급 조정 또는 삭훈(削勳)할 것을 요구하더라도, 그것은 곧 해당 공신들에게는 일방적인 희생(犧牲)을 강요하는 것이 되니 관련 공신들이 쉽게 순응하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當然之事)가 아니겠는가. 일례로 이덕무 등이 상소한 방안대로 개정할 경우에 1등 공신과 2등 공신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 3등 공신과 원종공신은 과인이 삭훈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나, 훈급이 내려가는 1등 공신과 2등 공신의 상처는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품계가 2품이니, 가자는 어렵고 그렇다고 훈장(勳章)을 수여하고 금전을 내린다고 해서 1등과 2등 훈급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과인이 일전에 관련 빈청(賓廳) 논의를 지시하며 양측(兩側) 모두에게 금령(禁令)을 내린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논의문화(論議文化)가 바로 정착되지 못한 본국의 과거 전례(前例)로 보건대 민감한 사안에서 관계자(關係者)가 나서면 논의가 핵심에서 벗어나고 사태가 극단적으로 치달아 결국엔 상호간 상처만 내어 사망하거나 사직하는 자가가 즐비했던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하였지만 공신 개정은 군주라 하여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할 사안인데, 그간 하빈군과 덕수군의 실정(失政)을 줄 곧 상소한 바 있는 이덕무에 의해 공신 개정이 제기되었고 공신이 개정될 시에 최대 피해자도 하빈군과 덕수군이었기 때문에 양측이 논의에서 대립할 경우에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날 것이 자명(自明)하였기 때문이다.  

과인이 일전에 이덕무를 함경에 유배하여 격리한 이유는, 이덕무가 있는 한 사직(辭職)을 청한 현직 공신들이 복귀할 수가 없을 것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으로, 실로 불가피한 조처인 것이다. 공신 개정이 가납될 때까지 명분(名分)을 내세워 연일 상소할 것이 분명한데, 공신들이 복귀하여 과인의 설득을 들을 처지가 될 수 있겠는가. 과인이 이덕무를 처벌하면서 다른 연명자를 처벌하지 않은 의도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실지로는 이덕무를 처벌할 의사가 없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금번 사태에서 과인이 추구한 해결 방향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이덕무를 일시 격리하여 공신들이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을 우선 만들어 주되, 공신들이 복귀하면 과인의 지극한 설득으로 공신들이 대의(大義)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개정 문제가 일단락되고 공신들의 격한 감정이 다소 수그러들면 공신들의 계청을 유도하여 이덕무를 방면(放免)함으로써 상호간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일부라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헌데, 과인을 불신(不信)한 일부 유생과 관리의 상소로 인해 극히 자극을 받은 현직 공신들이 삭훈을 언급하며 일제히 사직소를 올리게 되어 더 이상의 중재(仲裁)는 어렵게 되었고, 결국 공신들의 사직도 윤허하게 되었다.

작일에 공신들의 사직소를 처결하며 심기(心氣)가 심히 불편해진 과인이 삭훈을 천명하고, 당분간 정사(政事)를 방치할까 하였으나, 과인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신민(臣民)과 과인을 믿고 종사(宗社)를 맡겨주신 형님을 생각하여 다시금 혼란을 수습하기로 용단을 내렸다. 이에, 온 신민에게 당부하노니 시간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순리(順理)대로 창국공신 개정 건을 마무리 짓고, 국가 혼란을 수습하여 종사를 반석 위에 세울 것이니 과인을 믿고 따르라.


- 개국613년 9월 초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