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음] 제위 등극과 외교 관계 수립에 관하여

얼마 전 평안도에서 올라온 상소에 칭제(稱帝:황제를 칭함)와 외교 관계 수립이 언급된 바 있다.

제위에 오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하게 전교를 내렸음에도 이러한 상소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팔도 유생들이 과인의 확고한 의지를 충분히 인지하기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윤음 형식을 빌려 재차 과인의 뜻을 말한다.

군주가 황제가 되는 것은, 호칭 하나를 '왕(王)'에서 '황제(皇帝)'로 격상하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전하, 교지, 세자 등의 호칭을 폐하, 칙명, 태자로 바꿔 부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나, 왕이 황제가 되면 '제국(帝國)'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조정 체계를 고쳐 일신해야 하는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령과 관제(官制:관직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어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또 외면으로나마 제후왕과 제후를 책봉하고 영지를 할당해야 할 것인데, 이러한 제반 조치가 없다면 칭제라는 것이 군주의 명호만 왕에서 황제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과인이 스스로 제(帝)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백성들에게 덕(德)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일에 많은 노력과 땀을 쏟아 허비하는 것보다는, 현재 위치에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펴고 나라를 유지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도 더욱 보람된 일이다. 이에 관하여는 지난 개국610년 12월에 한 유생의 상소에 대해 비답(批答:상소에 대한 하답)한 내용,

'존호를 고치고 그에 따르는 제반 격식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좋은 제도를 펼치고 선정을 베푸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 한다면 천하가 진심으로 왕실을 존숭(尊崇:존경하고 숭배함)하게 될 것이니, 이는 호칭을 고쳐 존호를 얻는 바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 수 차례에 걸쳐 전교하고 비답하였던 바와 같이, 사대(事大:큰 나라를 섬김)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왕으로 칭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 자주지국(自主之國)의 국호와 군주의 존호가 반드시 제(帝)일 필요는 없으며, 군주가 스스로를 낮춰 천하를 대하는 격이니, 칭제하니 않는 것을 정통성과 결부하여 생각할 것이 아니다.'

에서 명확하게 밝힌 바 있으니, 이를 잘 읽는다면 과인의 뜻을 능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상소문에 외교 관계 수립을 청하는 내용이 함께 있었는데, 이는 참으로 모순된 것이다. 황제의 위(位)에 오르라는 것은 군주와 나라를 높이자는 것인데, 다른 사이트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자는 것은 군주와 국가의 격을 크게 낮추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공긴된 엄연한 국가와의 외교라면 모르겠지만, 그 이외의 외교 관계 수립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본조(本朝:본 조정)가 민국(民國:대한민국) 정부 및 세계 열국(列國:여러 나라) 중앙정부와 대등한 지위하에서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는데, 어찌 일개 사이트와 외교, 협정, 동맹 등을 체결을 할 수 있겠는가. 각도 감영(監營)조차도 민국의 광역자치단체와 관내 기관, 단체 등을 관할하고 있음에야.

외교 관계 수립에 관한 건은, 본조의 위치를 스스로 어떻게 정할 것이냐와 결부된 사안이다. 따라서 현행 체계를 유지하는 한, 외교 대상에 여느 사이트는 고려될 수 없다. 조약이나 협정을 수립 체결한다든가,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또는 공사(公使), 사신을 파견한다든가 하는 등의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외교 관계 추진은 실로 가능한 일이 아니니, 팔도 유생들은 이를 잘 알도록 하라.


- 개국612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