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개국616년 정해년 연두교서

정해년(丁亥年) 연초에 교서를 내린다.

이번 연두교서(年頭敎書)는 갑신년에 이어 만3년만에 반포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상황이 초래된 원인은 대개 과인의 부덕(不德:덕이 없음)과 불능(不能:능력 없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행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후에 다짐하고 하명하고 당부한 일이 적지 않았으나, 과인 스스로가 먼저 그러한 것들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 못하였다. 철조(輟朝:조회를 중지함)로 인해 조정 사무가 장기간 중지되기까지 하였으니, 지하에서 열성조(列聖朝:여러 선대왕)를 뵐 면목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그러한 변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인 것이다.

따라서 창국 8년째 해, 즉위 4년 째 해를 맞이하여 간략하게나마 올해의 국정 지표를 밝혀 제시한다.

一. 지난 10월의 선유교서에서도 명시한 바와 같이 국정 제일 목표는 조정의 주요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천거(薦擧), 별시(別試) 등을 통해 인재를 취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도감(都監:임시 관청)을 구성하거나 어사(御使)를 파견하는 사업을 고려할 필요성을 느낀다. 선전관청의 기능이 개편되고 외부에 함부로 선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등, 이에 관하여는 고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조정 관원들이 합심한다면 좋은 방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외 선전과 관원 충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마련된 여러 제도를 궤도에 올려 놓는 것이 중요하니 이점에 있어서도 특히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一. 백성의 실질적인 활동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 역시 올해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누구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간결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친절한 설명과 안내로 부족한 면을 보충하는 관원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처음에는 간소하게 마련된 규정이라도 점차 의견이 덧붙여지고 조항이 추가되면서 어느덧 복잡성을 띄게 되는데, 이러한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본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나 전문 용어를 다른 백성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례(儀禮)에 관한 문서가 아니라면, 혹시 무의식적으로 고어(古語)나 한자(漢字)를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할 필요가 있다. '조선풍(朝鮮風:조선 고유의 면모)'을 잃지 않으면서도 백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매사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 단 두 가지만을 교서에서 언급하였다.

군신(君臣)이 함께 노력하여, 이를 바탕으로 좋은 결과가 이룩된다면 실로 종묘사직에 다행한 일이겠다.


- 개국616년 2월 18일 (음력 정해년 정월 초1일)
어제(御製) 정해연두교서(丁亥年頭敎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