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조정 정상화에 관한 교서

임금이 하루라도 정무를 돌보지 않으면 조정 신하와 백성들이 그로 인한 폐단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과인의 신병(身病)이 극에 달하는 등,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하여 부득이 조참(朝參:조회)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간이 당초 다짐하던 것에 비하여 크게 지체되어 철조(輟朝:조회를 중지함)로부터 14개월이 가량이 흐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비록 조정 외부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과인의 부덕(不德)에 의한 것이다.

이제 다시 조정 각 관청의 기능을 회복하려는 이때에, 과인이 스스로를 책망하는 '자책(自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철조는 이미 발생한 사건이므로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즉, 임금과 신하가 자책하고만 있을 시점이 아닌 것이다.

지금 조정을 다시 복구함에 있어,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그대로 두고, 장차 미래의 일에 대비해야 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 때라고 여긴다. 다시 말해, 과인과 조정 관원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철조 사태를 오히려 이제까지의 법령과 제도가 지니고 있었던 각종 모순과 한계를 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 몇 가지를 전교한다.

一. 이조와 병조에서는 이른 시일 안으로 주요 관청의 관원을 의망(擬望) 혹은 단망(單望)하라. 서둘러 제기능을 발휘해야 할 관청은 이조, 호조, 예조, 병조, 공조, 한성부 등이니 이들 6개 관청을 우선 정상화하고, 승정원, 삼사, 각도 감영 등은 여력이 있을 경우에 차례대로 구성한다. 팔도 각지의 민원은 한성부에서 임시로 접수 및 처리하도록 하며, 승정원에 당장 명할 관원이 없으면 가주서(假注書)를 두는 형태를 취한다.

一. 새로 개편된 호적제도에 의거하여 금월(今月:10월) 안으로 신고를 마친 관원은 관직 교체 전까지 이전의 관직을 그대로 인정하되, 그렇지 못한 자는 철조일인 개국614년 8월 16일을 기점으로 소급하여 면직 처리한다. 또 금년 안에 신고를 완료하지 않은 자는 일체 삭직(削職)하도록 하라. 유품자(有品者)의 품계 몰수 조건을 비교하면 그리 불리한 조치가 아닐 것이다.

一. 전현직 문무관 신하들은 팔도의 인재를 살펴 중앙에 천거하라. '조정 재개(再開)'라고는 하나 철조 이후의 일이니 그것이 경과(慶科:별시 과거) 시행의 명분으로 마땅한지 의문이고, 설령 적합하다 하더라도 현재의 조정 여건상 즉시 과거를 시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천거제를 통해 관원을 충원하여 조정 내외를 든든하게 하려는 것이니, 차자(箚子)나 상소, 예조 추천 등을 통해 인재를 천거할 것이다.

一. 모든 법령과 제도는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 조정 관원의 업무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이 관련 규정을 손쉽게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관원 충원 및 호적 유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진 기존의 법령, 제도 등의 개정을 더 이상 늦추기 어려우니, 주요 관청이 구성되면 현재 초안(初案)으로 작성된 절목(節目), 사목(事目)을 먼저 논의하여 확정한다. 이것이 철조 이후 조정 재개의 성패(成敗)와 득실(得失)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一. 당시에 조정을 중지한 것은 개국(開國) 이래 처음 있던 일이었으니, 그 안팎의 사정을 신하들이 나서서 말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말한다 하여도 과인이 차마 들을 수 없으며, 설령 듣는다 하여도 달리 처분할 수 없는 문제이다. 즉, '금령(禁令)'에 해당하니, 이를 언급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승정원에서는 이와 관련한 내용의 봉입(捧入)을 엄격하게 하라.

조정 관원과 백성들이 새로 마음을 가다듬어 함께 노력한다면, 반드시 창국(昌國) 초기와 같은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개국615년 10월 16일
어제(御製) 조정선유교서(朝廷宣諭敎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