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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개국615(2006)년 10월 4일 (수) 13:37  [미시(未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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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 서적이나 글에 대해 간단히 기록한 글
'발문(跋文)'이란 간단히 '발(跋)'라고도 하는데, '서문(序文)처럼 책이나 문장을 소개하거나 작가의 일생, 저작 동기, 간행 경위 등을 밝혀 적은 글이다.

흔히 '서문'과 '발문'을 아울러 '서발(序跋)'이라 지칭할 정도로 두 글은 그 성격이 비슷하나, 차이점이 일부 있으니 다음과 같다.

1) 서문은 보통 책의 앞에 놓이지만 발문은 뒤에 수록한다. 이 때문에 발문을 '서후(書後)', '제후(題後)'라고도 한다.

2) 일반적으로 서문은 자세하고 발문은 간단하다. 즉, 발문은 서문을 보충하는 것으로, 서문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서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책의 저술 또는 간행 경위), 뒤늦게 밝혀진 사실(책이나 글의 진위 여부, 고증) 등을 간단하게 수록한다.


서문처럼, 책이나 문장을 열람 혹은 편집하는 사람이, 본인 또는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의해 발문을 써서 책의 마지막에 수록한다. 역시 서문처럼 한 권에 여러 편의 발문이 있을 수 있다.

다음은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문충공(文忠公) 학봉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문집인 '학봉집(鶴峯集)'에 수록된 발문이다. 발문 중에서는 비교적 장문에 속하는 글로서, 형식의 대강을 알 수 있다.

기축년(1649년:인조27)에 학봉(鶴峯) 김선생(金先生)의 문집이 완성되었는데, 모두 몇 권이었다. 아, 선생께서 평소에 지으신 글의 양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인데, 병란에 불탄 나머지 이것만 남아 있으니, 이른바 '인간 세상에 떨어진 것은 태산 가운데 터럭 하나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선생께서 돌아가신 지 지금 57년이 되었다. 선생의 문하에 있던 인사들이 거의 다 죽어서 선생의 글을 영원히 전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여강서원 원장[廬江山長]인 전현감 이홍조(李弘祚), 전직장 남업(南礏)이 이러한 점에 대해 몹시 개탄하여 전참봉 유의남(柳義男), 박정(朴정), 생원 이설(李渫), 유숙(柳숙), 선생의 종손(從孫) 김시온(金是온) 등 여러 사람들과 의논을 모아 비로소 여강에서 간행하는 역사(役事)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도내 열읍(列邑)의 수령과 사림(士林)이 모두 비용을 도와서 몇 달 뒤에 역사를 마칠 수가 있었다.

얼마 후 제공(諸公)들이 내가 선생 사위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간행하게 된 전말을 책 끝에 기록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선생의 덕행은 사람들의 눈과 귀 속에 있으며, 공훈과 업적은 역사서[史冊]에 실려 있으니, 모아서 간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학문 조예의 깊고 얕음과 문장 체격(體格)의 높고 낮음에 대해서는 이 문집이 아니면 전할 수가 없기에 제현들께서 의기(義氣)를 내어 이 역사를 마쳤으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한 어찌 사문(斯文)의 흥폐와 관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아, 나는 이에 대해서 다시금 느껴지는 바가 있다. 무릇 천지(天地)의 순수하고 굳세며 바르고 큰 기운이 사람에게 모였는바, 그것이 축적되어서 덕행(德行)이 되고, 발하여서 문장(文章)이 되며, 시행되어서 사공(事功)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혹 축적된 것과 발한 것이 부족함이 없는데도 시행하기를 끝까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선생께서는 금과 같이 단단하고 옥과 같이 윤택한 자질을 가지고서 퇴계선생(退溪先生:이황)의 알맞게 키워 주는 교화를 받아 오랫동안 힘을 축적하여 얻은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조예(造詣)의 정밀함은 나와 같은 후생 말학으로서는 엿볼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문(師門)에서 권면하며 추켜줌이 저와 같아서 후학들이 더욱더 독실하게 존숭하였으니, 여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선생이 조정에 있을 적에 선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자들은 족히 말할 것도 없지만, 선생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조차도 혹 절개가 곧은 신하이고 문학에 뛰어난 선비라고만 여길 뿐이었다. 그러다가 일본(日本)에 사신으로 가서 성신(誠信)이 오랑캐에게 드러나고, 경상우도(慶尙右道)에서 명(命)을 받들어서 충의(忠義)가 사민(士民)들을 감동시켜, 왜인들의 짐승 같은 마음을 교화시키고, 망해가는 나라를 다시 회복시킨 공을 이룬 다음에야, 지난날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선생에 대해 이런 저런 소리를 하던 자들이 모두 다 선생을 바로 보게 되었다. 이것으로 말한다면 선생께서 험난함을 겪고 위급함을 당하였던 것은 불행이 아니라 다행인 것이다.

바야흐로 수십 명밖에 안 되는 외로운 군사를 데리고 백만이나 되는 강력한 왜구를 상대하면서도 호상(胡床)에 걸터앉아서 백우선(白羽扇)을 부치며 태연자약하게 담소하였다. 이것은 맹자(孟子)의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 것[舍生取義]'이나 정자(程子)의 '포기하고 달관한 것[舍去達去]'과 더불어서 천 년의 세월을 격해 있으면서도 그 도(道)가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흉악한 왜적들이 스스로 물러나 군사들의 사기가 비로소 떨치었으니, 하늘이 국운(國運)을 길게 하여 충신을 보호하였다는 것을 단연코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큰 공훈을 다 이루기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어 이 백성들로 하여금 경상우도의 사민들처럼 되지 못하게 하고 말았던 것인가. 이것은 축적된 것과 발한 것이 부족함이 없는데도 시행하기를 끝까지 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어찌 시대의 운수와 나라의 액운에 관계되어 천지에 유감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선생의 도가 당세(當世)에 행해지는 것은 한때에 그칠 뿐이지만, 선생의 도가 후대에 행해지는 것은 만대(萬代)가 흘러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문집을 후세에 전하는 것은 바로 이 도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세에서 행하여 한때에 그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과연 어느 것이 얻은 것이고 어느 것이 잃은 것이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능히 판단할 자가 있을 것이다.

기축년 4월 모일, 통훈대부 행홍문관부응교지제교 겸경연시강관춘추관편수관 김응조(金應祖:1587-1667), 삼가 기록함[謹識].


* 특히 문집과 같이 일정한 규모를 갖춘 서적의 경우에는 '서문'과 '발문'을 의례 수록하고 있다. 발문을 직접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청해 보는 것도 조선시대 체험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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