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도 안내 과거 주관 행정 문과 시험장 무과 시험장 예조(문과) 병조(무과)
무과 과거시험장
* 문제는 '쓰기' 화면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제14차 별시 무과 과거시험 시행 기간 : 2020.08.15-2020.08.21
문서분류 원시
ㆍ추천: 0  ㆍ열람: 271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훈련원시 시제
 : 조선시대에 군역의무자가 직접적인 복무를 대신하여 삼베나 무명을 납부하는 방군수포제(放軍收布制)가 군역 제도의 하나로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군사력을 약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되어, 조선왕조의 대표적 폐단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군포를 납부받아 국고를 풍부하게 함으로써 부국강병의 논리에 의해 국방력을 강화하려 한 시행 목적과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응시자는 방군수포제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겠는가. 또 그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응시자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라. (200자 이상으로 답안 작성)

----------------------------------------------------------------------------------

답안 내용 :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방군수포제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본래 방군수포제의 목적은 시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납부 받은 군포로 국고를 충당하여 부국강병으로 국방력을 강화하려 한 것'과 더불어 군사들의 편의를 위한 점도 없지 않았다. 군역을 져야 하는 백성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고, 15세기 말에 군영의 군관들이 사정이 생겨서 본인을 서야 하는 날에 근무를 하지 못하게 되면, 한 달 기준 베 3필 혹은 쌀 9말을 거두었던 선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자신이 번을 서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대신하여 근무를 해주어야 하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벌금 형태이지, 아예 업무를 면제받는 면제권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군수포제의 경우에는 우선 그 시작이 소위 '돈 많고 권력 있는' 양반집의 자식들이 일국의 백성으로서 국가를 위해 응당 감당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돈으로 면제해 버리는 일종의 하이패스 같은 것이었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제도였다. 조선은 본디 사대부이건 일반 백성이건 할 것 없이 병역의 의무를 지는 양인개병(良人皆兵)의 국가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양반들은 실제로 군역의 의무를 다하는 대신에 포를 내고 군역의 의무를 면제받는 편법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관아에서는 이렇게 양반들에게 납부 받은 포보다 낮은 가격에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군역의 의무를 지우고, 그 중간 차액은 그 관리들이 개인적으로 착복하기까지 하였다. 당시 양반들이 보여준 이러한 행태는 사회적 계층 간의 갈등 및 박탈감을 유발할 소지가 분명히 있는 것이었다. 양반이건 양반이 아니건 힘든 것은 누구나 하기 싫고, 농사일이나 자신의 일을 해야 할 시간에 군역을 지는 것은 더더군다나 싫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지배층이었다. 그러나 ‘나 양반이고, 돈 있으니 군대 안 가겠네’라는 잘못된 선례를 남겨 처음에는 양반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이러한 행태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까지 평화의 시대가 계속되자 군역이 요역화되면서 양인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국가에서는 처음에는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러한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없자, 아예 이 제도를 공식적으로 합법화시켜 군포를 2필 내는 조건으로 군역을 면제해주었다. 즉,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무를 지운다’는 대립제(代立制) 형식의 방군수포제는 중종 36년(1541년) 합법적으로 돈으로 병역 의무를 면제받는 ‘군적수포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불법적으로, 음성적으로 존재하던 제도였다.

또한 방군수포제는 앞서 당시 언급한 관아의 행태에서 알 수 있듯이, 지휘관이나 관아 관속들의 사리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중앙의 힘이 미처 닿지 않는 지방군의 경우, 그 군사 감독권이 지휘관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일임되어 있었고, 특히 나중에는 대신 군역을 질 사람조차 세우지 않았기에 문제는 더욱 커졌다. 명부에는 머릿수에 맞게 이름이 올라있어 군인이 채워져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부대와 같으니, 조선의 국방력이 약화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의도가 좋다고 하여 결과까지 반드시 좋을 수는 없다’는 말이 있으나, 방군수포제는 목적도, 과정도, 그 결과도 좋지 못한 제도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
http://www.1392.org/bbs?sajoex2:520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서찰(메일) 수정/삭제 : 제한 (접속하십시오)     윗글 밑글 목록 쓰기
  | 비공개 설정 사조 백과사전 맞춤법 문법 검사기 0
2000
저장(입력)
번호 분류  문서 제목  이름 응시(작성)일 열람
486 원시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유건희 622('13)/03/06-23:02 207
485 원시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이현 622('13)/03/06-12:02 225
484 원시 [한량] 제76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장동현 622('13)/03/02-02:10 156
483 무과 [한량] 제44차 대과 무과 응시 윤강 622('13)/02/03-22:36 270
482 원시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이정윤 621('12)/12/21-02:10 178
481 원시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무효) 최준 621('12)/12/19-15:47 232
480 원시 [한량] 제75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진풍백 621('12)/12/18-22:25 271
479 무과 [한량] 제43차 대과 무과 응시 (무효) 오덕성 621('12)/10/27-19:21 242
478 원시 [한량] 제73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이여송 621('12)/09/28-23:16 214
477 원시 [한량] 제72차 소과 훈련원시 응시 서성일 621('12)/09/06-14:17 261
476 무과 [한량] 제42차 대과 무과 응시 정은호 621('12)/07/26-12:23 217
475 무과 [한량] 제42차 대과 무과 응시 (무효) 이이 621('12)/07/25-19:43 197
목록이전다음쓰기 123456789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