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지] 제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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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조선문학회 발행 - 단체 발행 소식지 제091호 - 개국626(2017)년 9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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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_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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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제33화
- 선안 작
이들은 또한 성은희가 소속된 청년회의 회원으로 지난 주에 입회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사회주의 청년들 가운데 이미 임원에 소속된 이들도 대개 있었지만 이미 물갈이 식으로 탈퇴서를 제출한 까닭에 마지못해 그들의 자취는 감추어졌다. 더욱이 오영범이 회장 직에 앉은 이후로는 연평의 뒤를 잇기라도 하듯이 청년회의 기존의 취지를 유지하고, 새 인물들을 발굴하여 청년회를 부흥하는 데에 도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은희는 두 후배로부터 조언 아닌 조언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백은 자신과는 사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았고, 한 번 불교에 귀의한 몸이 다시 세속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나온다면 무조건 파계되는 우를 범할 수 있었기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두 사람을 두고 업보(業報)란 말까지 꺼내들며 불쌍하다고 수군대기도 하고, 또 성은희가 더 불쌍하다고 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그 까닭을 모를 리 없는 성은희는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밝히기에도 다소 조심스럽기에 후배들한테조차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 했다던가. 은희는 후배들의 끈질기고 집요한 유혹에 넘어간 채 서둘러 학교 교내의 모임을 끝내고 곧바로 근처 봉원사로 걸음을 옮겼다. 어둑어둑한 시각이었다. 이때 문 앞에 다다르니 웬 스님 한 명이 합장하여 그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뉘신지요?"
그러자 은희도 합장하며 인사를 드렸다.
"저 은백스님이 안에 계신가요?"
은희의 물음에 이내 미소하더니
"지금 근처에 출타중인뎁쇼."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스님은 양광(陽光)으로서 은백스님과 같은 날에 출가하였던 동기였다.
"허면 언제쯤 오시는지요?"
"금방 오신다고 하셨는데"
하며 양광이 머뭇거리더니 이윽고
"그럼 잠시만 안에 들어가셔서 기다리시지요."
은희에게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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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몸소 겪어보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울 따름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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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실에 이른 은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가쁘게 내쉰다. 그로부터 십 분이 지났던가. 양광스님의 전갈을 받은 은백이 기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스님의 물음에 은희가
"긴히 할 말이 있어서요."
머뭇거리듯 은백에게 대답하였다.
"할 말이라뇨?"
설렘 반 기대 반으로 거듭 물어보던 은백 또한 가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두 사람의 진귀한(?) 광경을 봉원사 사람들은 창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양광스님도 마찬가지였다. 근래에 외부인이, 그것도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가 스님을 만난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낯설기만 했나 보다. 이곳은 원래 그럴만 하던 게 바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 청년들이 기거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기도 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 잡인들의 출입은 드물기도 했겠지만 여자가 당차게 절에 와서 스님을 찾는다는 것이 기이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햐, 저 아가씨 좀 보소. 아주 당차게 생기기도 했지만 귀엽기까지 하니. 만약 속세에 있었더라면 진작에 저 아가씨한테 장가를 들었겠구려."
양광스님의 옆에 있던 홍의(弘毅) 스님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청년회의 사무실을 나선 자옥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모임인 여성회에서 개최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이봐요."
하며 한 여자가 기척을 내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본 자옥은 그를 알아보고
"어머나."
하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바로 자옥의 모임에 갓 임원으로 나섰던 김현화였다. 김현화는 비록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연평이 청년회장으로 있는 동안에 적극적으로 청년회에 열성을 다하여 활동한 바가 있는 여학생이었다. 현화는 갓 여고보를 마치고 자옥이 다니는 전문학교 입학할 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또 다른 일행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었다. 바로 영빈과 아는 지인인 박은화와 최윤희였다. 박은화와 최윤희는 영빈의 권유로 청년회에 가입하여 누구 못지 않게 청년회에 열성을 다하여 활동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 세 사람이 한때 각 신문사에서 전개하고 있는 문맹퇴치(文盲退治) 운동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어서 결코 어두운 장래가 아님을 일깨워준 혁혁한 신여성들이었다.
이들 네 사람은 서로 반가워하며 안부를 주고 받았다.
이번 모임은 자옥이 회장 직을 맡은 여성회의 총회였다. 이번 총회의 안건은 농촌계몽 관련 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이야기는 이들이 경험담을 털어놓는 그야말로 좌담회 형식이었다. 특히 이번 모임에 있어 김현화와 박은화, 그리고 최윤희 이 세 사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였다. 이들은 서로 농촌계몽과 문맹퇴치에 참여하면서 겪게 된 에피소드를 한보따리를 안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저는 뭐랄까요. 청춘을 농촌운동에 바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해서 울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몸소 겪어보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울 따름이구요."
M여자전문학교를 다니고 있는 회원 양희정이 건넨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한 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가뜩이나 저희의 진실한 운동을 두고 오직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는 일환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당국의 태도도 태도지만, 무엇보다 글 한 글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고민이 드는군요."
S여자전문학교 학생인 회원 조윤자의 말이었다.
이들은 모두 제도적인 한계와 그리고 이들이 전개하는 운동에 대해 많은 의심을 사는 것에 대해서 더욱 가슴아파 했다. 이들은 밤이 깊어서까지 많은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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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_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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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의 봄_01
- 보덕 작
그 감명에 반한 나머지 옥희는 유원수에게 직접 찾아갔고 자신도 음악가의 길로 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였다. 그래서 맺어진 인연은 유원수로 하여금 결혼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마련해주었다.
밤이 깊어서도 옥희의 울부짖음은 그칠 줄 몰랐다. 빈소에 온 이들은 다 가고 사라졌지만 두 사람만큼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방이 되어서도 원수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장인어른에게 손을 벌리기가 일쑤였고 오히려 바깥활동을 안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럴 적이면 옥희는
"왜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하고 물을 적이면 안 간다고 잡아떼듯 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입에 풀칠을 하지 못하고 거기다가 식량을 마련해야 하는 터인데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 하인들에게 닦달해서라도 양식을 가져오게 하고 말이 많고 탈도 많은 인생사였다.
게다가 시아버지 되는 사람은 해방되기 1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그저 빈한한 삶을 살아야 했다. 아우 원복은 그런 형의 처지를 아는 모양인지 모 신문사―신문사라고 해봐야 하나 밖에 없지만―에 촉탁으로 근무를 한다고 하여 그곳에서 월급을 받아오기도 하면 그걸로만 생계를 꾸려가야 했으니 옥희의 마음은 천근만근 찢겨져 나간다.
미군정이 들어왔다고 하여 원수에게 한 번 수입을 짭짤하게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옥희가 물어볼 적에 원수는 싫다고 한사코 싫다고 하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막판에는 병자처럼 앓아 눕게 되었다. 빈둥빈둥 노는 베짱이가 되던 그가 졸지에 곯아 떨어지는 환자가 되어 버렸으니 그 심경을 오죽 말해서 무엇하랴.
이를 듣고 있던 장인어른 당신이 손수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사위에게 보약을 손수 지어다가 먹일 정도로 극진히 대하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무심한 탓인지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장례를 치르기 첫 날에 장인이 찾아와서는,
"내가 사위를 잘 못 들였네. 들였어."
하며 진작 정 자작네 아들하고 맺어줄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정 자작네 아들이란 현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 자작은 아버지가 일본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뒤 자작이라는 작위를 덤으로 받아온 탓에 그가 죽은 뒤에 물려받은 직함이었다. 정현수는 특히나 일본 유학을 한 터에 그 경력을 바탕으로 모 제대에 조교수로 근무하기도 했었다. 이후 의학박사가 되어, 중국대륙으로 건너가 일본군 군의관으로 일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대대손손 일본에 충성하던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한 건 당연지사 해방이 되고 나서 부터다. 아이고, 내 집안은 어떡하나. 어떡해! 하며 전전긍긍해대던 자작은 궁여지책으로 미군정에 손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현수로 하여금 제 재산에 손을 대지 않도록 손을 쓴 것이다. 그 덕으로 재산은 지켜냈지만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문옥희의 아버지는 정 자작네 어쩌고 하며 후회막심하는 것이다.
장례를 다 치른 뒤 유씨네 문중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재산에 관한 사안 때문이었다. 그 재산이란 바로 유원수네 명의로 되어 있는 땅 십만여 평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십만 평은 아흔아홉 칸 기와집을 짓고도 넓은데 이를 두고 볼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집의 재산은 누구에게 넘기는 게 좋을꼬."
하며 좌장 되는 사람이 물어보니 일제히 유원복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문옥희가 방방 뜨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을 하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더라."
하며 헛기침을 해대는 것이다.
그렇게 옥신각신해대며 문옥희와 유씨 문중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골이 깊어지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그 재산에 탐을 내는 사람은 비단 문옥희만이 아니다. 그 정 자작네 아들인 정현수도 한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군의관으로 승승장구하다가 낙마하여 지금은 만년 건달패가 되어 있었다. 진즉에 그와 결혼하지 않길 잘했다며 문옥희가 비웃곤 했다. 그런데 유씨네 주인이 죽고 나자 옳다구나 하고 정현수가 옥희에게 접근해대는 것이다. 물론 원수의 장인이 되는 문 영감의 꾀임에 의해서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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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_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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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獨裁者_09
- 봉당 작
A는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울부짖고 싶은 본능이 그의 온몸과 온 뇌리를 지배하고, 하다못해 제 몸을 휩싸고 돌었다. 주형은 한낱 자신에게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그가, 바로 주형이가 진실되게 쓰레기로 처분되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굴러 다니는 돌조각도 쓰임새가 있건만 왜 이를 무시하는가.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이 원망스럽다.
아까운 인재를 이대로 잃다니 어림택도 없는 소리.
A는 다시 한 번 주형이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보리라고 다짐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주렴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그건 바로 동방순 씨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다.
주렴을 두고 탈북자의 권익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두어 자신들의 세력화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러자 주렴이 코웃음쳤다. 그러나 동방순 씨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정치활동에 참여하기를 종용했다. 그리고는 통일부 장관 자리를 감투로 내놓을 것을 선언했다.
이때 불현듯 황주형이 생각나더라면서 주렴은 A를 호출하였고, A는 중간에서 황주형과 주렴을 연결시켜주었다.
모 아니면 도라고 했다. 주형은 드디어 주렴의 수하로서 험하고 풍진 세상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동방순이 주렴과 같이 동업하는 조건으로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는 모처의 사무실을 임대하여 그곳에 주렴의 아지트로 삼게 하였다.
주형은 이때에야 비로소 전화위복 임을 알았다.
이윽고 주형은 주렴의 충견 노릇을 자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주형이 A에게 단문의 편지를 받았다.
A군의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그러자 주형의 편지를 본 A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별말씀을. 담번에 도와줄 일이 있으면 내게 편지하시오.
도움이 필요할 때 편지하라는 글을 본 주형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직 흘려야 할 눈물이 많을 법하건만 그는 뜨거운 동지애를, 뜨거운 의리와 뜨거운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A의 희생정신에 감격하는 주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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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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