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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홍보대행사 글원고 07
줄거리를 대략 말씀드리면 현대의 마케팅 팀장인 조대박이 조선시대 거제로 떨어져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장사나 마케팅으로 돈을 버는 한편, 한울회라는 비밀조직의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입니다. 웹툰은 1화에서 3화까지는 조대박이 현대에서 조선시대로 떨어지는 내용이며, 4화부터 조선시대의 내용입니다. 저는 4화부터 웹툰의 글을 맡아 쓰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고 대사를 구성하는 일이 꽤 재미있습니다. 특히 웹툰은 재미있어야 하기에 유머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웹툰 <조선홍보대행사>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웹툰과는 다른 느낌과 더불어, 웹툰 칸의 한계로 다 실리지 못한 내용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쪽 일을 해보려는 분들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냐면 저도 웹툰 글 작업은 이것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웹툰 내용으로는 3화까지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올리지 못하고, 조선에 떨어지고 난 4화부터 올립니다. 현재 41화까지 올라와 있군요. 웹툰도 많이 봐 주세요~. 네이버 화요웹툰입니다. ---------------------------------------------------------------------- 약 한 시간이 흘렀다. 들무는 장터의 주막에서 국밥을 퍼먹는 중이다.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듯 그녀 옆에는 국밥그릇이 높다랗게 쌓여있다. ‘역시 장날에는 장국밥이야!’ “주모 할머니, 여기 국밥 한 그릇 더요! 김치도 더 주고요!” “야야, 니 그라다 배 터져 죽겠다!” “하하. 괜찮아요.” 그때, 대박이 주막 안으로 들어선다. 얼굴을 새빨갛고 걸음은 비틀댄다. “끄억- 여기가 8번째 주막이네. 주모-. 여기 막걸리 주시오~. 막걸리~. 끄어-.” 만취한 대박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주문했다. 들무가 입에 넣던 숟가락을 멈춘다. ‘어머, 대박 씨네. 장사가 잘 안 된 건가?’ “막걸리 먹고...” 대박은 양팔을 벌려 소리친다. “나 돌아 갈래에~~~!!! * * * * 팔선의 집, 좁은 마루에 대박이 큰 大자로 뻗어있다. 완전히 취해 정신을 잃는 그의 몸 위로 여름의 늦은 노을이 붉게 내려앉았다. “왜 이리 취했대요?” 까치가 들무를 보며 물었다. “아주장의 주막이란 주막은 다 쳐들어가서 막걸리를 마셨다니까.” 들무가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다고 머리를 휘저었다. “게다가 청주나 소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막걸리만 주구장창. 또 혼자서.” “쯧쯧. 곧 관을 맞춰야겠구나.” 팔선이 혀를 찼다. “네?” “<해동농서>를 지은 서호수 선생께서 ‘홀로 술과 함께 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고 하셨느니라.“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까치가 말했다. “하여튼 이 사람 대단하긴 대단하다.” 팔선이 대박을 보면서 뇌까렸다. 까치와 들무도 머리를 주억거린다. “놀랍죠.” “그래요.” “가져간 죽부인을 다 팔아 치우다니...” “그래도 아직 창고에 가득해요.” 까치가 창고를 돌아봤다. “그렇긴 하지...” 팔선이 대꾸했다. “일주일만 지나면 여름이 끝날 거예요. 시간이 없어요.” 그때였다. 대박이 몸을 뒤집으며 중얼거렸다. “음냐- 며칠 안에 다 팔 거야.” 팔선과 까치와 들무가 대박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대박이 다시 뇌까린다. “빨리 한양 갈래. 집으로 돌아갈 거야...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시고 싶어. 빠싹한 후라이드치킨도.... 고르곤졸라에 맥주 한 잔....” * * * * 짹짹짹. 짹짹짹. 햇살이 쏟아지는 여름 아침. 팔선의 집 마당에 세 남자가 지게를 지고 섰다. 팔선, 까치, 대박이다. 오늘은 견내량 장에 가서 죽부인을 팔기로 했다. 셋은 서로를 보며 히죽 웃더니 힘차게 발을 뗀다. 곧 산길로 들어서면서 팔선이 대박을 돌아본다. “어제는 한 지게였는데 오늘은 세 지게나 파는가?” “네.” “견내량장은 큰 장이 아닌데 다 팔 수 있을까?” “믿어요.” 대박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 아무렴.” 팔선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제가 봐도 세 지게는 너무 많아요.” 까치가 말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게 내 일이야.” 대박이 대꾸했다.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어요?” “어제 아주장에서는 소비자 맞춤이라는 제품 특성을 강조했지?” “네. 4가지 크기의 죽부인이 인기 최고였어요.” “오늘 견내량장에서는 2가지 미끼를 첨가한다.” “오- 2가지 미끼요?” “그게 뭐냐?” 팔선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후후. 곧 알게 됩니다. 어르신은 오늘은 힘 좀 내십시오. 개미 같은 목소리로 어떻게 손님을 끕니까?” “양반 체면에....”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은 딱 네 글자로 된 세 단어만 반복해서 외치면 됩니다.” “네 글자 세 단어? 그 정도야...” “대신 소리 좀 키워요. 지심도 물풀이 안 되려면.” 번개처럼 팔선의 눈앞에 지심도 물풀에 휘감긴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알, 알겠네.” 산 속의 오솔길을 따라 세 사람은 견내량 장으로 향한다. “그나저나 자네 소원이 뭔가?”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서 팔선이 대박에게 물었다. “네?” “죽부인을 다 팔면 내 자네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잖나.” “내 소원은.... 어르신의 장원급제입니다.” “응?” “어르신이 장원급제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정말이었어요?” 옆에 있던 까치가 놀라며 되물었다. “응. 네 주인 조팔선 어른의 장원급제가 내 소원이다.” “그게 어째서 자네 소원이 되는가?” 팔선이 턱주름을 잡았다. “소원이야, 내 마음이죠.” “소원….” 그때 보따리를 안아 들고 앞장 서 걷던 들무가 깜빡 놀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베어낼 듯한 무시무시한 눈길로 대박을 노려본다. “왜, 왜 그래요?” 대박이 움찔했다. “혹시 진짜 성상의 밥상에다가... 그 짓을...” * * * * 견내량에서 장이 열렸다. 생선과 말린 물고기와 소금과 젓갈, 조개류와 해초류가 제일 크다. 어디 그뿐이랴? 곡물로는 쌀은 물론이고, 콩, 보리 조 같은 상품작물이 있고, 직물로는 면포, 마포, 명주, 저포가 놓였다. 이외에도 조반기, 대접, 주발, 탕기, 양푼, 쟁반, 접시 등의 그릇류, 짚신, 삼신, 나막신, 미투리 같은 신발류, 향낭이나 비녀나 노리개 따위의 여성 장신구, 향로, 촛대, 문방사우와 담배, 책, 말총, 가죽, 초, 실, 약재, 갓끈, 빗, 바늘, 분가루, 농기구 등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대박 일행은 다른 보상과 부상들처럼 장터의 빈 곳을 찾아, 장세를 받으러 온 견내량진의 공방의 하리(下吏)에게 장세를 내고 지게를 내렸다. 들무도 봇짐을 풀고 작은 난전을 펼쳤다. 잠시 후 행인들이 색다른 죽부인에 흥미가 동해서 하나둘 몰려들었다. 까치가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고, 팔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친다. “조선팔도에서 유일한 맞춤형 죽부인이 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누구한테나 자-알 어울리는 거제맞춤 죽부인이 왔어요-” “죽부인 대끼리-.” “자자, 어서 오세요. 부피와 길이가 다른 죽부인이 왔어요- 품에 딱 들어오는 죽부인이 왔어요-” “죽부인 강추-.” 뒤이어 자연스럽게 다섯 여인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어제 아주장에서 열연을 펼쳤던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녀들의 열연에 장터가 술렁이고, 사람들이 다투어 죽부인에 달려든다. 오전 한나절 만에 싣고 온 지게의 절반가량을 팔아 치웠다. * * * * 해가 중천에 떴다. 너무 바쁜 나머지 일행은 죽부인 좌판에서 국밥을 배달시켜 먹었다. “오늘 다 팔지는 못하겠구나.” 말하는 팔선의 얼굴이 기쁘다. 세 지게를 싣고 오면서 내심 한 지게만 팔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건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이만하면 정말 많이 팔았어요. 오전 장사에 거의 절반을 팔았어요.” 까치가 즐거이 대꾸했다. “이제 살 사람은 다 샀으니 오후에는 대충 하고 일찍 들어가자.” “훗. 말도 안 되는 소리.” 팔선의 말에 대박이 콧방귀를 꼈다. “오늘 다 팔 겁니다.” “너무 많네. 어제는 한 지게였지만, 오늘은 세 지게야.” “맞아요. 게다가 읍내장처럼 큰 장도 아니라서 살만한 사람은 다 샀어요.” 까치가 덧붙였다.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을 사게 하는 게 진짜 마케팅이다.” “마케팅이 뭔진 몰라도 그게 가능하답니까?” 들무가 국밥을 뜬 숟가락을 입에 넣다가 멈췄다. “오후에는 미끼를 풀 겁니다.” “아! 아침에 말한 2가지 미끼 말이죠?” 까치가 되물었다. “대체 그게 뭔가?” 팔선도 의문스러웠다. “밥 먹고 말하려 했는데, 잘 들으세요.” “예.” “알겠네.” 대박은 팔선과 까치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오-.” “오-.” 두 사람이 대박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감탄했다. 설명이 끝나고 대박이 말한다. “오후 장사 때는 팔선 어르신 목에 힘 빡 주고 소리쳐야 합니다.” “알, 알았다.” “목에 힘 빡!” “알았대두...” 그때 무심히 들무가 두 번째 국밥을 끌어 당기면서 대박에게 물었다. “오늘은 주막 순례 안 해요?” “할 겁니다. 다 팔아 치우고.” * * * * “자아-. 오늘 견내량 장에서 특별히! 4인 가족 분들을 위해서 4종류 전부를 사시면 3할(30%)을 할인해 드립니다. 3인 가족은? 2할(20%)을 할인해 드립니다! 다들 알다시피 죽부인은 나눠 쓰는 게 아닙니다. 나눠 쓴다고 해도 식구마다 몸집이 다르니 맞지도 않고요! 식구마다 딱딱 맞는 죽부인을 판매합니다! 파격 할인입니다. 조선에 유일한, 아니 청나라도 없고, 왜국에도 없는 거제맞춤 죽부인 4종을 사세요-.” 까치가 피를 토하며 소리친다. 가격 할인에 여러 종류를 다 구입할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4종류를 다 구입하시면 3할, 세 종류는 2할을 할인해드립니다. 하늘 아래 하나 뿐인, 거제맞춤 죽부인 4종으로 가족들과 즐거운 여름을 보내세요-. 자, 자, 줄 서요, 줄 서.” “아까는 큰 걸 살라믄 중간 게 맞는 거 같고, 중간 걸 살라믄 큰 게 맞는 거 같아서 못샀다. 다 사면 깍아준다니 잘 됐다-.” “내도. 내 꺼만 사면 마눌래미한테 욕 처 먹을 거 같아서 못 샀다 아이가. 깎아준다니 4개 다 사뿌면 되겠다.” “3할이면 무려 5전 7푼이 이득이 아닌가?” “하모. 4개의 본 값이 19전이니 3할을 제하면 13전 3푼이다.” “5전 7푼이 아 이름이가? 이런 기회가 또 있겠나?” “내는 보자, 세 개만 사면 되는데... 2할이 이득이면 개안타.” “이봐라, 그라믄 4개를 사서 1할 이득을 더 봐라.” “그카까? 하나 남는 건 장인어른 선물 해야겠다.” “하하. 자네 마누라가 좋아하겠다-.” 돈주머니를 꺼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박이 빙그레 웃음을 물었다. ‘훗. 제 주머니에서 13전 3푼이 나가는 건 생각하지 못하고, 수중에 들어오지도 않는 5전 7푼을 이득 보았다고 여기는 것이 소비자지. 자, 이제 저 양반 차롄데...’ 그리 말하면서 대박은 팔선을 노려봤다. 그의 따가운 시선에 팔선은 뜨끔하면서 질끈 눈을 감고 소리친다. “독점 판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까치가 덧붙여 설명한다. “죽부인 4종은 천하에 이곳, 거제 견내량 장에서 여기서만 판매합니다아아아아-.” “우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대박이 피씩 웃는다. ‘후훗. 독점판매. 이곳에만 있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이란 뜻. 하나 뿐인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의 가치가 높은 이유지.’ “한. 정. 판. 매!” 눈을 감은 팔선의 목청이 좀 더 커졌다. 이번에도 까치의 설명이 이어진다. “자자,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제 곧 떨어집니다. 한정 제품, 거제 맞춤 죽부인입니다!” “우와- 얼마 없다니더. 마카 서두르소.” 대박이 다시 속으로 생각한다. ‘한정판매. 물건이 곧 떨어진다? 지금이 아니면 내게 기회가 없다는 뜻, 당장 구해야겠지!’ 마치 공짜라도 되는 양 사람들이 허겁지겁 달려든다. 팔선이 살짝 눈을 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헉.’ 놀란 팔선은 더 크게 소리친다 . “마감 임박!” “자자, 오늘 장이 끝나면 다시 못 봅니다. 다시 안 와요-.” 다음 주면 여름이 끝나니 당연한 소리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의 마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우성을 친다. “이봐라, 내 차례다-! “그거는 내가 찜해 둔 거다!” 대박은 콧방귀를 낀다. ‘홈쇼핑 채널에서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소리를 들려주고, 쇼 호스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라고 소리치는 이유다. 곧 사라진다는 위기감, 영영 소유할 수 없다는 불안이 소비자들을 자극하고 상품을 구매하게 만든다.’ “대단하네요.” 들무가 옆에 서서 감탄했다. “희귀성의 법칙입니다. 가질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한정판매, 마감임박, 독점판매…. 언제든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빼앗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강렬하게 원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지갑 아니 복주머니를 열죠.” “인생처럼요?” “예?” “인생이 소중한 건 언젠가 죽기 때문이잖아요.” “아. 그렇죠.” 대박은 스스로를 칭찬하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뜬다. ‘자, 막걸리를 마시러 가볼까.’ * * * * 어슴푸레한 새벽. 술에서 깬 대박은 등불을 놓고 쪽마루에 앉았다. 그는 멍청하게 무수하게 반짝이는 새벽 별을 올려다본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21세기로 돌아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가 머물고 있는 자리는 영락없이 1778년이었다. “후-.” 대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자지 그러냐?” 조팔선이 안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흠뻑 취해서 일찍 잠든 걸요” “고맙네.” 팔선이 옆에 앉아 꾸물꾸물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약속 지키세요.” “선비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할까? 헌데 임금께 특별한 볼 일이 뭐냐?” “예? 어떻게...” 대박은 팔선이 어떻게 자신이 정조를 만나려는 걸 아는지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더군. 내 장원급제가 자네한테 뭐가 도움이 될까? 나를 통해 성상께 하고픈 말이 있지?” “통해서가 아닙니다. 직접 만나야 합니다.” “성상께서 장원급제의 소원을 물으면 자넬 만나게 해 달라?” “꼭 그게 아니라도 일단 궁궐에 들어가면 어떻게라도 방법이....” “크게 원통한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대박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곧 울음이 터질 듯 하다. “히잉- 원통하고 말고요-.” ‘난데없이 조선이라니....’ 새벽 별이 두 사람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웃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저기, 이런 말 해서 미안하다만…….” 여러 대화 끝에 팔선이 말끝을 흐렸다. “말씀해 보세요.” “거짓말로 이익을 취하고 싶지는 않다.” “예?” “마감 임박 말이다. 장이 끝나면 다시 못 본다고 하지 않았느냐? 거짓으로 이익을 취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거짓말 아닌데요?” “견내량장은 5일마다 계속 있고...” “오늘 거제장이 끝나면 모레는 거제를 떠날 겁니다.” “뭣이?” “죽부인을 다 팔고, 한양으로 달려갈 겁니다. 그러니 거짓이 아니죠.” “아직 창고에 물건이 절반이나…….” “오늘 다 팔아 치울 겁니다.” “허어-” 마침 까치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타났다. “두 분 일어나셨어요?” “응.” “오냐?” “잘 잤어?” 까치는 자연스레 마루에 앉은 팔선과 대박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니 곧 도자기를 쥐고 나타난다. “어?” 순간 대박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틀림없는 익숙한 도자기다. ‘저, 저건!’ 대박의 눈이 빠질 것처럼 커졌다. “까, 까치야. 그 고려청자 어디서 난 거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우리 집안 가보다!’ “이거요?” 까치가 도자기를 쓱 내려다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머리를 돌린다. “크- 요강요.” “뭐?” “내 요강일세.” 팔선이 대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첫 번째 일이, 어르신 요강을 치우는 거예요. 아함-” 까치가 길게 하품했다. “요, 요강이라니! 그건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집안의 가보…….” 대박은 말을 목구멍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니, 아니야...” 잠시잠깐 생각에 잠겼던 대박이 팔선에게 묻는다. “어디 조 씨라고 했죠?” “한양 조 씨 총관공파일세. 이조판서를 지낸 인자 옥자 조상님과 찬성사를 지낸 온자를 쓰시는 조상님은 이 나라의 개국공신이며, 동방사현으로 일컬어지는 광자 조자 조상님은 내가 항시 흠모하는 진정한 유학자시네.” “광자, 조자 라면 조광조?”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대박이 잘못을 할 때마다 조광조라는 이름 석자를 들먹였다. ‘네 이놈아! 우리 집안에 조선 제일의 도덕가이자 성리학자이신 조광조 어른이 계셨다, 네가 감히 그러한 조상님을 두고...’ 대박은 팔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사람이……. 내…… 조상…….’ “뭘 그리 봐?” “아, 아닙니다.” “여하튼 네가 그렇게 자신이 있다니, 나도 곧장 한양에 가서 과거를 볼 준비를 해야겠다.” “잠깐만요!” “왜 그러는가?” 대박은 마당에서 까치가 씻고 있는 요강을 힐끔 쳐다봤다. “취, 취소입니다.” “취소? 한양 안 가? 빨리 가자며?” “가긴 갑니다만……. 좀 돌아다녀야겠어요.” “갑자기 왜? 장돌뱅이도 아니고…….” “돈을 벌어야겠어요.” “돈에 욕심이 많구만.” “팔선 어르신을 큰 부자로 만들어야겠어요.” “나?” “예. 장원급제 해서 권력을 잡는 것도 좋지만, 돈을 모아 갑부도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돌고 도는 팔도의 장터가 최고죠.” “권력? 갑부? 내가?” “예. 조팔선 어르신이요.” “왜?” 팔선은 어리둥절하다. “후손을 금수저로 만들어야죠.” 대박이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내 운명을 바꿀 겁니다! 아니 내가 바꾸는 거로군.’ 그때, 안방 옆, 광의 문이 열리면서 들무가 밖으로 나온다. “저도 전국을 떠돌며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여러분과 함께 다니면 좋겠어요.” “좋, 좋습니다.” 대박이 빨개진 얼굴로 들무를 보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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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紀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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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강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