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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홍보대행사 글원고 06
줄거리를 대략 말씀드리면 현대의 마케팅 팀장인 조대박이 조선시대 거제로 떨어져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장사나 마케팅으로 돈을 버는 한편, 한울회라는 비밀조직의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입니다. 웹툰은 1화에서 3화까지는 조대박이 현대에서 조선시대로 떨어지는 내용이며, 4화부터 조선시대의 내용입니다. 저는 4화부터 웹툰의 글을 맡아 쓰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고 대사를 구성하는 일이 꽤 재미있습니다. 특히 웹툰은 재미있어야 하기에 유머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웹툰 <조선홍보대행사>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웹툰과는 다른 느낌과 더불어, 웹툰 칸의 한계로 다 실리지 못한 내용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쪽 일을 해보려는 분들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냐면 저도 웹툰 글 작업은 이것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웹툰 내용으로는 3화까지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올리지 못하고, 조선에 떨어지고 난 4화부터 올립니다. 현재 41화까지 올라와 있군요. 웹툰도 많이 봐 주세요~. 네이버 화요웹툰입니다. ---------------------------------------------------------------------- 다음 날. 허름한 초가에 팔선과 까치, 대박, 그리고 일꾼 사내 셋이 앉았다. 그들은 쪼갠 대나무 살로 죽부인을 제작하는 중이다. 일꾼과 까치는 능수능란하고, 팔선은 일한다기 보다는 유유자적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으며, 대박은 서투르지만 점점 일이 손에 익는 중이다. 팔선은 가끔 손을 놓고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늘이 죽부인을 만드는 우리를 비웃는 거 같군.” “거,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좀 하세요.” 대박이 대꾸했다. “내사 일당만 받으면 되지만, 이거 참, 아무래도 희한하다-.” 납작코의 일꾼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내도. 죽부인을 이래 만들어도 되나?” 옆에 앉은 점박이 일꾼이 호응했다. 그러자 세 번째 일꾼인 뱁새눈도 거든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이게 뭔 죽부인이고? 이건 죽부인이지만, 이건 죽처녀고, 저건 죽알라다. 또 저건 죽똥글뱅이고.” 뱁새눈이 가리키는 죽부인은 저마다 생김새가 달랐다. 죽처녀는 죽부인보다 길이가 짧고 두께가 얇았고, 죽알라는 길이도 두께도 죽부인의 절반가량이다. 죽똥글뱅이란 것은 말 그대로 공처럼 동그랗다. 그들이 제작하는 죽부인은 기존의 크고 긴 죽부인 외에도, 그보다 짧고 얇은 2종류의 죽부인과, 공처럼 둥근 죽부인까지 총 4종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인체 굴곡에 맞게 형태를 다양화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시간도 걸리고, 기술도 있어야 하니 포기하는 거라고요.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한다! 는 거죠.” 대박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란데 죽부인이 이래도 되나?” “생선회에는 도미회도 있고, 참가자미회도 있고, 고등어회도 있죠?” “하모.” “아버지도 도미 아버지도 있고, 참가자미 아버지도 있고, 고등어 아버지도 있고요.” “도미아버지? 고등어아버지?” “하하. 죽부인도 저한테 맞는 게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팔릴까?” 조팔선이 의심스럽게 물었다. “생각만으로 결정한 게 아니에요. 사전 조사를 했어요.” 대박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크기가 다양하면 저마다 맞는 죽부인을 구할 수 있잖아요. 좋은 생각이에요!” 까치가 손을 빠르게 놀려 대나무 살을 연결하며 호응했다. “하긴. 지금까지는 무턱대고 크게만 만들었지.” 팔선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예. 말하자면 큰 신발만 만든 겁니다. 작은 발도 집어넣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발이 작은 사람은 그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편하죠. 그래서 죽부인을 대, 중, 소로 제작하는 겁니다.” “그, 그렇군.” 일꾼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만약 죽부인을 산다면 나한테 맞는 걸 사지.” 납작코가 말했다. “그야, 나도 그러지. 난 이 가운데 크기가 안아보니 딱 맞구만.” 뱁새눈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이 제일 작은 죽부인. 딱 품고 자면 좋겠구만.” “몸이 큰 사람은 기존의 大자 죽부인을, 몸이 크지 않거나 여인들은 中자를, 몸체가 매우 작거나 아이들은 小자를 사용하면 됩니다. 또 방이 작은 사람도 中자나 小자를 구입하면 돼죠.” “호오-.” 일꾼들이 입을 모아 감탄했다. “그러니까 지금 만드는 죽부인에 긍지를 가지세요. 한 단계 진보한, 고객 맞춤 상품이니까.” “알, 알았소.” “나도 알겠소.” “그런데 이건 뭐유?” 문득 점박이 일꾼이 공처럼 동그란 죽부인을 한손으로 퉁퉁 튕겼다. “아이들 용이에요. 아이들은 공처럼 동그란 것만 보면 즐거워하니까. 놀이 겸용 제품이죠.” “애들이 뭔 돈이 있다고...” “물론 돈은 부모한테 있죠. 하지만 주머니에서 그 돈을 끄집어내는 건 아이들이죠.” 쏴아아-. 오전 내내 소강상태에 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대박은 일꾼들이 빠르게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죽부인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조선시대는 인건비가 싼 것이 메리트군. 장마철 같은 비수기에는 먹고 노는 사람이 많으니 인건비가 공짜나 다름없어. 장마라고 다 나쁘지는 않군. 이런 비수기에 값싼 노동력으로 상품을 제조하고, 성수기에는 시장에 내놓는다면... 후후... 난 역시 천재야...’ 쏴아아아-! 쏴아아아-! 비가 갈수록 세차게 내렸다. 문득 대박은 들무가 걱정되었다. “까치야, 들무 씨는 어디 갔냐?” “아침 일찍 볼 게 있다고 나가던데요?” “괜찮을려나?” 대박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어두운 하늘 끝을 살폈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로 덮인 것 같았다. “걱정할 거 없어요. 들무 누나, 가만히 보면 못하는 게 없더라니까요. 남자들보다 백 번 낫더라고요.” 까치가 대답했다. * * * * 지심도. 지세포 앞바다에 길게 떠 있는, 해안선의 길이가 4km에 달하는 제법 규모가 있는 무인도다. 섬 전체가 거대한 동백나무 숲으로, 해안 절벽이 둘러싸고 있다. 한때는 조선의 어선만이 아니라, 왜국의 어선도 가끔 정박해, 어부들이 흙냄새를 맡고 쉬었다 갔지만, 지금은 결코 발을 디딜 수 없었다. 하지만 태풍과 해일, 풍랑에 흘러오는 것까지는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럴 때면, 지세포의 수군이 나서 그 연유를 살피고, 큰 문제가 없으면 해산물 등의 선적물을 빼앗아 돌려보내고,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관아로 잡아들였다. 그런데 오늘, 지심도가 이상하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지심도에는 배를 접안할 곳이 두 군데 밖에 없었다. 가장 좋은 곳은 파도가 잔잔하고 절벽이 끊어져 평지가 있는 내륙 쪽 해안이었다. 또 한 군데는 건너편,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곳으로, 절벽은 아니지만 커다란 바위덩이들이 많아 노련한 뱃사람이 아니고는 배를 대기 힘든 장소였다. 헌데 지세포진에서 운영하는 작은 배 한 척이 지심도를 휘돌아 안전한 접안지가 있는 내륙 쪽이 아니라 접안하기 힘든 바다 쪽에 정박한 것이다. 대략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해안의 큼지막하고 편편한 바위 위에 천막이 쳐지더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천막 안에 지세포 군관 둘과 어부 둘이 술판을 벌이고 있다. 천막 밖으로는 서로의 배에서 짐을 바꿔 싣는 어부들이 보인다. 그런데 군관들과 술잔을 부딪치는 어부들이 좀 이상하다. 어부라고 하기에는 눈매가 날카롭고 몸가짐이 단정하고 움직임에 격식이 배어있다. “수고하셨스므니다.” 어부 중 하나가 군관이 가져온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그렇다. 이 어부들은 쓰시마 도주 휘하의 사무라이들이었다. “하하. 와라바시 상과 스미마셍 상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소이다.” 사각턱 군관이 술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한다. “하이.” “하이.” “지세포 만호님과 쓰시마 소 도주를 위하여! 간빠이~!” “간빠이!” “흠, 술맛이 끝내주는군.” “좋스무니까? 야마다니시키(山田錦)에서 생산한 쌀을 사용한 순미대음양주이므니다. 최고급 청주이므니다.” 스미사셍이 말했다. “오~ 역시.” 코주부 군관이 잔에 입을 대고 감탄한다. “흠, 부드러운 맛~. 우아한 향기~.” “일곱 병을 준비했스무니다. 만호님과 군관님들 것이므니다.” “하하. 감사하오.” “그런데 모두 다섯인데, 두 병이 남습니다?” “두 분은 직접 여기까지 오셨스므니다~.” “하하. 역시 눈치가 있단 말이야.” “저, 그리고...” 옆에서 동료와 조선군관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사무라이 와라바시가 품에서 함을 꺼내 내민다. “무엇이오?” 함을 열어보니 둥그런 환이 가득 들어있다. “핫. 마무시데스.” “마무시? 살모사? 오홍~ 살모사 환이로군.” 두 군관이 세상을 가진 듯 환하게 웃었다. “정력 이빠이데스. 후냐후냐하므니다~.” “오옷!” “이번에도 간소 나마코(말린 해삼)을 이렇게 마니마니 준비해주셔서 특별히 감사하므니다.” “하하하. 말린 해삼은 걱정 마시오. 대신 왜국의 순도 높은 은이나 많이 준비해주시오.” “헤헤헤. 걱정 없스므니다. 은 이빠이이빠이 있스므니다. 간소 나마코 이빠이이빠이 있으면 와따이므니다.” “하하하. 알겠소.” 사각턱 군관은 호탕하게 대답하고 검은 바다를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쭈욱 훑어내린다. “하하. 이 지세포 앞 지심도에서 버젓이 쓰시마와 무역이 이뤄질 거라고 누가 알기나 하겠소.” “그렇스므니다. 초량 왜관에서만 무역이 허가되어 진짜 답답했스무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지 않나?” 사각턱 군관이 코주부 군관을 보며 웃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진짜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두 군관이 흡족해하는 바위 틈. 떠밀려온 검은 나무둥치가 물에 떠있다. 아니다. 더 가까이 가보면 작은 물개 한 마리가 찰싹 바위에 달라붙어 있다. 아니다. 잠녀다! 상반신까지 가릴 수 있는 반바지인 물소중이를 입은 잠녀가 물밖으로 얼굴만 살짝 내밀고 귀를 쫑긋거린다. 그녀는조선 군관과 쓰시마 번의 사무라이의 대화를 죄다 엿듣는 중이다. “하하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구나!” “예. 형님.” 사무라이도 즐거워한다. “헤헤헤. 등잔 밑 어둡스무니다~.” * * * * 어둑어둑한 새벽. 까치는 마루에 앉아 두 손을 꼭 쥐고 검게 물든 바다와 하늘을 응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어둠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수평선이 흐릿하게 드러나면서 점점 선명해지면서 붉은 해가 톡 떠올랐다. 햇살에 드러나는 하늘은 쨍하다. “장마가... 끝났다아~~~~!” 까치는 벌떡 일어서 소리를 질렀다. 안방과 건넛방에서 조팔선과 대박이 각각 中자 죽부인과 공 죽부인을 안고, 안방 아래 광에서 들무가 小자 죽부인을 안고 뛰쳐나왔다. 그들은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보며 해처럼 밝은 얼굴로 입을 모아 소리친다. “장마가 끝났다~~~~~!!!” “까치야!” 대박이 높은 목소리로 까치를 돌아봤다. “예!” “오늘은 장이 어디서 서냐?” “장은 읍치(관아가 있는 중심지)를 중심으로 5일장 6개가 서죠. 5일장이지만 차례로 돌아가면서 서니 30일이 다 장날! 거리도 30-40리 간격으로 하루면 장을 볼 수 있어요. 거제에서는 오늘 아주에서 2일, 7일장이 서고, 내일은 견내량장이 서요. 그 다음날은 4일, 9일장 거제 읍내장이 서죠. 제일 큰 장이에요.” “여기서 아주장까지는? 죽부인을 쌓아 올린 지게를 지고!” “빠른 걸음이면 약 한 시진 반(1시간30분)이면 됩니다.” “좋다. 지게에 죽부인을 쌓아 올려라!” “넵.” 대박은 들무를 돌아봤다. “들무 씨. 오늘도 지세포 구경 다닐 겁니까?” “아, 아뇨. 오늘은..... 쉬려고요.” 들무가 멈칫하며 대답했다. “좀 도와주세요. 아주에 먼저 가서 말솜씨 좋은 여인 다섯만 섭외해 주세요.” “예?” “특별한 기술은 필요없어요. 목청 좋고 말하기 좋아하는 여인이면 됩니다.” “알았어요!” “저기, 나는 뭘 하면 되겠는가?” 조팔선이 대박에게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어르신이 가장 중요한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네!” 조팔선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저희에게 힘을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공맹의 글을 알려줄까? 호연지기의 시를 읊어줄까?” “밥.” “응?” “당장 밥을 만들어주십시오! 먹어야 힘이 나죠!” “어? 밥.... 말인가?” “지심도! 물풀! 시체!” “알, 알겠네. 급히 누룽지를 끓이겠네.” * * * * 오늘은 아주에서 장이 열리는 날이다. 거제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답게 해산물로 유명하다. 여러 척의 배에서 내린 다양한 물고기와 해초류, 주민들이 말려온 어포, 각종 젓갈류가 장터 물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늘의 아주장은 특별히 더 들썩거린다. 긴 장마가 그치고 열리는 첫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짚신, 미투리, 체, 바구니 같은 생필품과 여인들의 장신구 같은 수공예품이 유독 많다. 장마 동안 바다에 나가지 못한 이들이 집에서 알음알음 만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이를 팔아서 양식을 구해 가족의 주린 배를 채울 요량이다. 이외에도 거제의 장돌뱅이 장사꾼들과 멀리서 온 보부상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 물건을 펼쳐놓으니 구색이 볼만했다. 그런 장터의 한 곳에 사람들이 왁자글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푸핫. 저게 뭐꼬?” “신기하다, 신기해-.” “요상-하네. 죽부인데 자는 너무 작고, 자는 똥그랗네.” “하하하. 죽부인이 아이라 죽처녀, 죽소녀, 죽동자다-.” “허허허. 글케 말이다.” 아주장을 찾은 사람들이 저마다 대박 일행이 내놓은 4종류의 죽부인을 보며 한마디씩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크기가 다른 3종류의 죽부인과 동그란 공 모양의 죽부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까치가 히죽 웃으며 목청을 높인다. “자, 여름 필수품 죽부인입니다아-. 큰 사람은 큰 죽부인, 작은 사람은 작은 죽부인, 어른은 어른 죽부인, 아이는 아이 죽부인-.” “죽부인... 이오...” 조팔선은 양반 체면에 물건을 판다는 것이 부끄러워 개미 소리를 냈다. “조선에서 유일한 맞춤형 죽부인입니다. 지체 높은 양반도,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도 가지지 못한 조선에서 하나 뿐인 죽부인이에요-.” “죽부인- 좋소-.” 까치는 머뭇대는 조팔선을 살짝 노려보고 다시 소리를 지른다. “죽부인 사이소-. 쏙 품에 안고 있으면 뼛속까지 시원한 죽부인입니다-.” 그때였다. “여기로구나! 여기!” 폭포수처럼 시원한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 반색하며 달려왔다. 그녀는 몰려든 사람들을 뚫고 들어와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 죽부인을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일순 그녀를 주목한다. “와아-. 진짜네! 나한테 꼭 맞는 죽부인이 있다더니 바로 이거다!” 그녀는 죽부인 中자를 꽉 끌어안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딱 맞다, 딱 맞아!” 그때였다. 이번엔 두 여인이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듯 뛰어온다. “저기다아----!” “찾았다----!” 둘은 죽부인을 만지며 소리친다. “조선에서 여기뿐이란다. 이런 죽부인은.” “하모. 안 그래도 내가 늘 이상했다 아이가.” “뭐가?” “생각해 봐라. 사람마다 몸피가 다른데 우예 죽부인은 크기가 다 똑같노.” “내 말이! 게다가 우리는 달랑 방이 두 개다. 시아부지 시어마시가 한 방을 쓰고, 내랑 남편이랑 아 새끼 둘이 한 방에 때려 박혀 잔다. 안 그래도 좁은 방에 커다란 죽부인을 어예 쓰노?” “그라믄, 이거 해라. 제일 날씬한 거. 쪼매한 게 안고 자면 조오타!” “하모 하모. 딱이다. 딱이야. 안성 유기만 맞춤이 아니라, 거제 죽부인도 맞춤이다.” “호호호. 맞데이. 거제맞춤이다, 거제맞춤.” “이봐요, 내 하나 주소. 지금 안 사면 또 언제 사겠는교?” “예. 예. 잘 생각했어요.” 팔을 걷어부친 까치가 환하게 웃었다. “자자, 죽부인 사세요. 거제에만 있는 거제맞춤 죽부인 사세요. 큰 죽부인, 작은 죽부인, 더 작은 죽부인 사세요-. 동그래서 즐거운 죽부인도 있습니다. 거제맞춤입니다아-” “죽부인... 좋아요...” 까치의 목소리는 하늘에 닿는 반면, 팔선의 음성은 지렁이처럼 꾸물꾸물하다. 사람들 틈에서 구경꾼처럼 팔선을 지켜보는 대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장사해서 돈 번다는 양반이 저래서야, 쯧쯧.“ 그의 얼굴이 까치를 보며 활짝 폈다. ‘똘똘한 아이야. 노비만 아니었다면 크게 성공했을 텐데... 아쉽군...’ “이야아아-. 어무이, 이 죽부인 좀 보소.” “와, 뭔 일인데?” 이번엔 지나가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멈춰 선다. “어무이가 찾던 그거니더. 죽부인이 너무 커서 싫다지요? 이거 보소. 어무이한테 딱 맞겠는데요?” “이야, 그라네. 죽은 영감 생각 한 개도 안 나겠다-.” “아이고, 요 귀여운 공 죽부인은 우리 만식이한테 주면 좋아하겠니더.” “맞다. 우리 집안 4대독자 만식이가 시원하게 안고 자고, 심심하면 굴리고 놀고...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맞니더. 어디 양반집, 부잣집 자식만 자식인교? 못 살아도 자식 중한 건 매한가지니더.” 순간, 아침부터 술에 취한 구경꾼 중 하나가 욱 하고 치밀어 올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모. 그 말은 맞지! 우리 아들 개죽이랑 개구가 정승판서 자식보다 못할 게 뭔데? 못난 애비를 둬서 그렇지, 개죽이랑 개구가 을매나 똑똑한대! 나도 하나 줘 봐라-. 똑똑한 걸로.” 그러자 다른 구경꾼들도 한발 앞으로 나서 죽부인을 집어 든다. “이 얇은 거는 우리 아배 사주면 좋아하겠네. 기력이 없고 몸이 쇠약해서 잘 맞게구만... 시원하고 가볍고... 이거 얼마고?” “大자는 6전, 中자는 5전, 小자와 동그란 건 4전이에요!” 까치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사세요- 사세요. 거제맞춤 조선유일 죽부인 사세요-!” “죽부인- 좋습니다-.” 조대박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장단을 맞췄다. “야야, 나도 하나 줘봐라. 거제맞춤이니 거제 사람인 나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휴, 잘 생각했습니다. 거제 사람이면 거제맞춤이죠!” “난 中자랑 小자로 줘. 집에 있는 큰 거는 내가 쓰고, 우리 마누라랑 딸래미 주면 좋아하겠다-.” “동그란 죽부인 잘 생긴 걸로 하나 챙겨줘 봐라. 내 새끼들이 가지고 놀면 좋아하겠구만. 잘때는 안고 자고 말이다.” “네네. 아이들의 기쁨이 부모한테는 제일 큰 즐거움이죠.” 까치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라모 내는 동그란 거 줘봐라. 저 치 죽부인보다 더 잘생긴 걸로다. 우리 택이는 이 거제에서 제일 미남이거든.” “하하하. 아저씨를 닮아서 그렇군요!” “하모.” “에잇, 오늘은 주막에 안 갈란다. 나도 주라. 中자로. 마누라 생일 선물이다-.” “내도 하나 사야겠네.” “내도.” “내도.” 구경꾼들이 앞다투어 소리쳤다. “예. 예. 다 드릴 테니까 재촉하지 마세요. 조생원 어른-” 까치가 옆에 앉은 팔선을 빤히 내려다봤다. “응? 응.” “뭐하세요? 바빠 죽겠는데. 앉아서 중처럼 중얼대지 말고 계산 좀 하세요.” “어. 어, 그, 그래.” 팔선이 뻘쭘하게 일어선다. 대박은 죽부인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즐겁게 바라보다 문득 죽부인 난전 옆의 잡화물에시선이 떨어졌다. 들무가 펼쳐놓은 난전이었다. ‘그나저나 들무 씨는 어딜 갔나?’ 대박이 걸음을 옮긴다. 그는 장터의 으슥한 골목에 이르렀다. 다섯 여인들이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가 치마를 털며 일어섰다. “잘 하셨습니다.” 대박은 엽전을 꺼내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내민다. “이걸로 점심 먹고, 오후에도 두 번 더 있습니다.” “걱정마슈. 헤헤.” “일당은 다 끝나고 1전씩 드리겠습니다.” “하이고, 감사하니더. 점심 줘도 충분한데...” “밥도 주고 돈도 주니까 오후에는 더 열심히 해주세요.” ‘조선시대는 인건비가 너무 사서 좋단 말이야. 밥만 줘도 일하겠다니...’ “하모요.” “참, 변장 잊지 마세요. 할 줄 모르면 얼굴에 점이라도 찍어요.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우, 우리는 어쩔까?” 시어머니 역할의 할머니가 물었다. “이번엔 친정엄마로 해요.” “아, 그라믄 되겠네.” “저, 저기요...” 그때 가장 어린 며느리 역의 처녀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연기를 할 때와는 다르게 주눅든 목소리다. “좀 싸게 안 되는교....” “뭘 말입니까?” “죽부인 中자요. 내도 가지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안 됩니다. 조선에서 유일한 제품입니다. 귀한 거죠.” ‘깎아주면 가치가 떨어진다.’ 대박은 냉장하게 돌아섰다. ‘인정에 휘둘려서는 실패자가 될 뿐이다.’ 장터 큰길로 나서며 대박은 주위를 둘러본다. “자, 이제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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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紀雲)
http://www.1392.org/bbs?moim09: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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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강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