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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대표] <간행> 보덕문집(寶德文集) 30
청년(靑年)들이여 <4> 청년(靑年)들이여 <4> 정작 이를 지켜보던 숙향은 심장이 타다 못해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이를 하소연해보고 픈 마음이 든 참에 연평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예배당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연평이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런 그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 그저 야속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며 숙향은 충포에게 인사를 하고 예배당을 나섰다. 숙향은 곧장 권번으로 발길을 돌렸다. 권번 안은 기괴하게도 조용했다. 거문고 소리며 가야금 소리며 둥둥 덩덕쿵 덩덩 덩덕쿵 북이며 장구치는 소리가 휘황찬란하게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는 낙으로 사는데 오늘처럼 야속하게 조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인 병자가 있는 때문이겠지만, 주위의 식도원이 우후죽순 생겨난 바람에 손님이 뚝 떨어진 까닭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이내 숙향이 권번 주인을 만나기 위해 그 집 방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형님. 방에 있우?" 숙향이 방문 안으로 들어서자 일어나며 "이런 우라질 ×!" 하며 웃는다. 그러더니 주인장은 숙향을 물끄러미로 바라본다. 숙향이도 이제 퇴기에 접어든 탓이었다. 나이는 숙향이보다 두 살 위였다. 권번 주인 행세하는 옥선(玉扇)이라는 이름의 이 퇴기는 넋두리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반기는 것이었다. 한번은 숙향이 그녀보고 식도원 하나 차리는 게 어떠냐고 묻자, 옥선이 대답이 가관이었다. "왜놈한테 몸 팔 일이 있어? 그깟 식도원을 갖다가 왜놈들이 세우고 생난리를 치는 판국에 얼어 죽을." 아무리 세파에 시달렸어도 자존심을 헌신짝 버리듯이 던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오직 절개를 중요시 하며 살아왔다. 그걸 알기에 숙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옥선이 병들어 시름시름 앓을 때 되자 숙향은 눈물을 흘리는 슬픔을 무릅쓰고 찾아왔다. 옥선이는 자신이 병든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아픈 내색을 해봐야 득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투기는 매일 반이었다. "숙향아. 이 권번 문 닫기만 하면 몸 파는 기생밖에 더 되겠니. 차라리 이 권번의 명맥을 이어서라도." "언니는 구더기 나는 옷을 입고 싶소, 아님은 깔끔한 비단 옷을 입고 싶소?" 시비조로 대하는 숙향의 태도에 쟤는 낯짝이 두껍다고 생각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옥선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병색이 짙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실 시한부나 마찬가지라서 숙향에게 믿고 물려주려는 간절한 마음이 샘솟았다. 그러나 식도원 얘기가 나오자 자신의 의지가 가로 막혀 있다는 현실에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호형호제하던 두 여자가 하루아침에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어 앙숙이 된 비참한 현실을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 집념이 강했던 옥선은 숙향에게 펄쩍 뛰며 식도원은 가당치 않은 소리라며 윽박지르고 펄쩍 뛰어대며 끝까지 권번의 명맥을 이어가야 하며 식도원 내에서 벌어진 기생들의 수모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대화가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권번은 조선에 있어 자존심과 맞먹는 격이라며 옥선이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숙향에게 대뜸 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숙향은 이제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 은퇴해야 할 나이인 것이다. "너도 인제 이 권번을 지켜야지 않겠니?" 하며 숙향에게 종용했다. 그러자 생각할 말미를 줄 것을 옥선에게 요구한 숙향이, 일 주일 뒤에 심사숙고하여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맙다. 고마워." 병석에 누운 옥선이 결국 동기인 숙향에게 권번을 물려주게 되었고 일주일 뒤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죽은 친구의 시신을 보고 오열한 숙향은 간곡한 옥선의 청을 받아들였다. 친구의 부고와 갑작스럽게 찾아온 권번의 주인 자리는 숙향이에게 더없이 과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고난의 시작이 되었다. 자기에게 일가 친척도 없고 거두어 줄 남매나 하다못해 조카에게도 신세를 지고 싶어하였을 숙향이건만 이토록 외로운 자리였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으리라. 그는 밤이면 밤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숙향에게 연평은 더없이 좋은 빛으로 다가왔다. 가뜩이나 혼기가 다 찬 나이에 접어든 숙향이로서는 결혼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한 번 사모한 정을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숙향이기에 연평은 자기에게는 더 없는 행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숙향은 본래 있던 집에서 벗어나, 명륜동, 지금의 성균관 인근에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가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신세가 되어버리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숙향은 권번 안채에서 새 살림을 시작하기 위해 명륜동 집에서 나와 이곳으로 이사했다. 이 과정에서 연평은 숙향의 온갖 잔심부름을 해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사업 일에서 벗어나 짬짬이 숙향의 집에 드나드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이를 시샘하는 눈총들도 만만치 않았다. 연평의 청년단 소속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저마다씩, "안연평이 말세로다." "저기 기생년 하고 바람 났구먼." "저러다가 아주 주저 앉는 거 아냐?" "아이 설마 그럴라고?" "우스운 꼴 난다." "아이 부끄러워라." 청춘남녀들―이 시대의 청춘남녀들이 소문에 소문을 만들고 급기야는 서울 전역에 퍼지고 말았다. 이것이 종국엔 연평과 숙향이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불가피한 상황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범이나 자옥이에게 어떤 여운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소문이 나고 한 달 지나서야 본심이 드러났다. 오영범이 우연히 청년회관 문앞에서 울고 있는 자옥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범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가려던 찰나 그녀가 먼저 멈칫하고 제 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도 눈물은 주체없이 흘렀다. "왜 우십니까." 영범이 자옥에게 다가갔다. 초반에 영범과 자옥은 그저 서먹서먹한 사이였었다. 그런데 이런 영범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자옥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옥의 놀라운 눈은 마치 토끼눈처럼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어째서 저 남자가 내게 다가와 얘기하는가. 당혹스러움이 역력했고, 영범은 영범대로 자옥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아왔기에 동정심에 넌지시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자옥은 영범의 마음도 모른 채 소스라쳐 달아나는 것이다. 잡아보려 했지만 잡혀지지도 않았다. 달아나려고 하는 여자를 무슨 수로 잡나 싶었다. 그렇게 영범은 터덜터덜 집으로 가고 말았다. 집에 들어온 아들을 본 논산댁은 "아이고, 대감마님께서 손수 맛있는 것을 싸주셨다. 어여 저녁 먹자." 하며 저녁 식사 준비하기로 작정하고 있는 듯이 부엌으로 향했다. 논산댁은 평상시에도 연평이의 아버지 안대치를 항상 부모 이상으로 모시며 "대감마님" 이라고 깍듯이 대해 왔다. 마침 찬거리를 안국동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영범의 눈에서는 분노의 빛이 역력했다. "어머니, 왜 빌어먹고 있소!" 소리치는 아들에 어머니는 멈칫하며 놀랐다. 그 동안 맺혀온 한풀이였던가. 영범은 항상 연평이 집에서 종살이한 것을 부끄러워했고, 영범이 항상 연평을 질투의 대상으로까지 비쳐져 경쟁상태로까지 보였다. 때문에 영범은 불가피하게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영범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분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른 것이다. 아들의 돌발행동을 논산댁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러나 방금 자옥의 울고 있는 모습이 공교롭게 연평과 숙향이와의 염문 때문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연평이의 염문설과 더불어 사회주의 청년들의 독자적인 행보로 인해 청년회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2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전개되던 청년운동은 점차적으로 광주의 만세 시위(광주학생운동)가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되는 전후에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일부 청년들이 새로운 청년 조직을 결성하고자 줄줄이 연평의 청년단에서 탈퇴 사유를 밝히어 내 자리를 털고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연평은 자기의 사업 문제로 청년단을 소홀히 한 자신이 너무나 미울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속이 타는 건 당연지사였다. 내가 아니면 청년단을 이끌 수 없다는 자만심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더구나 동정심을 구실로 접근한 숙향이와 염문설이 나돌고, 급기야 자신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본 연평의 가슴은 찢어져 있었다. 누구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편이 없으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박자옥, 성은희, 황충포, 미국에 있는 민정호가 자신의 편에 서 있다지만, 그들은 아무런 힘도, 열정도, 포부도 없었다. 연평이는 이제 서른 가까이에 접어 들었다. 속은 탈 대로 타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밤이면 밤마다 잠을 설치는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큼 청년단의 미래를 떠안은 연평의 짐이 그만큼 컸다. 그렇게 근심으로 나날을 보낸 연평이에게 어느 주말에 연락이 왔다. 오창수가 인편을 보내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연평은 옳다구나 하고 양복 차림으로 파고다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다다랐을 때 이미 한 쌍의 남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평이 앞에 보이자 남자가 손을 흔들며 반겼다. 오창수다. "연평이 잘 있었나?" 창수의 물은 말에 연평은 미소로 대답한다. "근데 이 사람 누군가." 연평은 옆에 있는 여자를 보고 묻는다. 여자는 검은 색깔의 양복으로 치장하고 연평을 맞이했다. "아, 이 사람. 유명한 여류 소설갈세." "그래?" "그 왜 임노월이라고 알지? 이름 있는 작가. 그이의 누이동생이라나 사촌동생이라나." "사촌동생요." 여자가 창수의 농담에 부끄러워 하며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러자, "이이가 임노월과 친척지간인 임경선이네." 임경선. 그는 일본 유학을 한 대표적 신여성이다. 박자옥과는 비교되지 않는 지적인 미가 갖추어진 인텔리 중에 인텔리다. 그런 그가 이렇게 오창수와 가까워진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잇었다. 오창수가 현재 모 잡지사에서 사원으로 근무하며 문예부를 담당했는데 이때 우연히 M신보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작가의 신작을 가져오며 잡지사 사장이 창수에게 원고를 보고 평가를 내려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받고 소설을 읽었다. 처음에 웬 애송이가 제게 글을 보여 달라면서 자기자랑하며 늘어 놓는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읽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작품을 잡지사에 싣게 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작품을 잡지사에 싣게 되는데 제목이 <여자의 목요일>이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한 여자가 시내 한복판에 매주 목요일만 되면 서서 낮이건 밤이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자리에서 타지로 떠난 사내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내용이다. 이 하잘 것 없는 소재를 바탕으로 소소하면서도 담백하게 묘사하는 작품은 생소했다. 그렇기에 오창수는 이후에 줄곧 임경선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연인도 아니었고, 오직 동지로서 만나는 사이일 뿐이었다. 창수가 자신을 소개하자 경선이 목례하며, "임경선이에요." 인사했다. 연평도 자신을 인사했다. "안연평이올시다." 그러자 창수가 "이 친구 나와 같이 청년단 활동하면서 아는 사이일세." 하며 연평을 으레 챙겨주는 것이다. 경선은 연평을 바라보며 저 사람의 속이 꽉 차보이기는 하고 해서 틈이 없어 보이는구나 하고 느꼈다. 주위의 여러 친구들이 연평의 사업 수완이 뛰어날 정도의 실력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랬기에 연평의 안목이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되어 갔다. 연평, 창수, 경선 세 남녀가 종로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창수가 연평이에게, "자네 사업 잘 되나." 물어보았다. "그저 그렇네. 요즘 대공황 때문인지 이익이 되지 않는구먼." 연평이 한숨 쉬며 대답한다. 그는 주로 자전거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초창기 때는 흑자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저냥 체면 치레를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달아온 대공황의 여파가 조선 땅에까지 번져나가니 밑져서 본전까지 건지지도 못했다. 서글픈 순간이다. 그러니 청년단이 자연스레 눈에 띄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걸 딱하게 본 창수가 연평의 체면을 살려 주고자 일부러 콧바람 쐬게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창수와 연평이기에 잠자코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처에 다방 앞에 이르렀다. 이들은 안에 들어가자마자 커피를 시켰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향후 청년회의 정국에 대하여 논하고 있었다. 작금에 있었던 청년단원들의 잇따른 탈퇴 소식이 그것이었다. 그 사정을 오창수가 알고 있었기에 연평에게 내막을 설명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일본 유학 중에 사회주의 서클에 가담한 모양이데. 그래서 거기에 경도되어서 세상을 개혁하자고 하면서 '얼토당토 않은' 짓거리들을 늘여놓더라는 게야. 그런데 이들이 운이 좋게 졸업하고 우리 청년단에 가입했고 장차 그것이 자신들의 독무대로 비쳐져서 적극적으로 청년단의 임원을 꿰차고 앉았다는 게 아닌가. 한데 이들 때문에 집회 하나만 열었다 하면 일경이 달려들어 무조건 간섭하고, 하다 하다 못해 무작정 해산만 하려고 들었어. 그러니 골치인들 안 아프겠나." "……." 일동이 말을 못 잇고 침묵하며 듣는다. "그러는 와중에 자중하시라고 말할라 치면, 눈을 치켜들고 덤비는 게 아닌가. 허 참,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게다가 오영범이는 오영범대로 고래고래 악 써가며 나가라고 악쓰다시피 하며 덤비더군." 얘기하는 오창수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 갑을 태우려 했지만 숙녀가 있기에 담배 대신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다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 "이건 아마도 민족유일당이라고 표방한 신간회의 움직임과 맞먹은 격이네. 신간회가 학생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고, 또 그것을 기회 삼아 사회주의자들이 오지랖 넓게 기득권을 잡으려 하니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거지." "……." "그나 그뿐인가. 오영범이 대표 감투 쓰고 며칠 동안은 시끄러웠다네. 오영범이 무미건조하고 주관도 뚜렷하지 않지. 허나 그뿐인가. 이러니 사회주의자들이 기세등등하게 정면으로 덤벼드니 이 또한 난감한 일이 아닌가. 그때만 생각하면 끔직하이." 오창수가 얘기한 그날. 그날은 총회가 있었다. 당시 오영범은 일방적으로 사회주의에 경도된 청년단원 네 사람을 입회금지시켰다. 그러자 이에 반발하여 일방적으로 덤벼 들었다. "당신 뭐건대 우리의 입회를 막는 게요!" 부영회관에서 열린 총회에서 청년 1이 소리쳤다. "무슨 권리로 우리들을 막았소!" 옆에 청년 2가 악을 썼다. "오영범 당신 일본의 앞잡이요?" 청년 3이 악다구니 치며 영범을 압박하자, "우리들을 막은 이유를 대시오." 청년 4가 경위를 재차 따졌다. 그러나 영범은 안하무인 격으로 이들을 대했고, 그것이 결국은 네 사람이 청년회의 탈퇴를 선언한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연평은 이 소식을 듣고 영범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단지 감투 욕심이 생겨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이유가 있을까. 혼란스러워 했다. "그 뒤로 이 네 사람이 새로 사회주의 서클을 하나 만들고 B청년단 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네. 그런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청년단을 폄하하고 격하시켜서 우리 청년단의 목을 조른다네." 그예 일이 터져 버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 못하는 사이에 임경선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부으라고 했다고 기왕에 일어난 일 오영범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물으면 되지 않겠어요. 화를 자초한 이가 바로 그니까요." 하자 경직되어 있던 오창수의 얼굴에 화색이 만면했다. "옳거니, 그 방법이 있었구먼. 고마우이. 마이 피앙세." 창수는 그런 경선을 보고, "우리 청년단에 가입해 주시겠소?" 청을 하자 그녀가 흔쾌히 "그러죠. 원하시다면야." 하며 가입을 승낙했다. 연평은 경선의 아이디어에 대해 긍정적인 미소를 띠고 응낙해주었다. 경선의 가입승낙에 연평은 그녀의 진면목을 알고 깨우쳤다. 한줄기 빛과 함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임경선이 던진 한마디는 연평에게나 창수에게는 나쁠 것이 못되었다. 오영범의 자질을 그러잖아도 내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하루빨리 분열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일주일 뒤 연평을 대표로 하는 총회―아니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오영범에 대한 불신임 투표와 사회주의자인 회원들의 거취 건을 가지고 안건으로 삼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80명 가까운 회원들이 대부분 불신임을 던졌다. 이에 오영범은 심한 배신감과 박탈감을 느꼈다. 그는 치가 떨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앉은 회장 자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다. 이번에 회원 3명에 대한 거취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들 대부분을 회원에서 제명시키고 박탈시키고자 했는데, 이 역시 순풍에 돛을 단 듯 통과되었다. 이것으로 수습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영범이 이를 앙심품고 연평의 청년단에서 나와 탈퇴하고, 또 다른 청년단체를 조직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사회주의 청년 세 사람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결국 청년단의 세력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그로부터 5년 동안은 풍파가 많은 세월이었다. 일본이 만주로 진출하여 침략하고, 또 중국 대륙을 침략했다. 더 나아가서 조선을 병참기지로 삼으면서 언론과 집회의 자유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결국 사회주의단체들이 치안유지법에 의해 강제로 해산될 수밖에 없었고, 민족유일당이라 하던 신간회가 해산되는 비운을 맛보았다. 하지만 연평의 후배들이 청년단을 이끌어주었기에 청년단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연평의 사업이 날로 번창함에 따라, 영범의 뒤를 이어 다시 연평은 청년단의 대표에 앉아 이름 있는 신문사에서 벌이고 있는 농촌계몽운동과 문맹퇴치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새로운 청년단 회원들로 하여금 독려하도록 이끌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독립자금을 마련하여 은밀히 해외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연평은 숙향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결혼 후 숙향은 점차적으로 허영심에 찌든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의 이런 활동에 탐탁지 않게 생각한 숙향은 청년단에서 손을 떼라고 들들 볶아댔다. 다투기는 매일반이었다. 한편 자옥도 결혼했다. 공교롭게도 논산댁의 아들 오영범이가 신랑이다. 논산댁의 간곡한 청과 영범이의 집요한 구애에 마지못해 결혼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갈등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연평의 집에서 강제로 나오다시피 한 논산댁은 영범이의 눈칫밥을 먹으며 근근이 살아갔다. 그리고 양복점의 점원이 되어 일하던 영범은 마치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주색에 빠져 돈을 낭비하고, 식구들에게 돈을 대주지 않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자옥이 나설라치면, 오영범이 도끼눈을 치켜뜨며 "아녀자"를 들먹이며 안연평이 만나느냐고 하면서 심한 의처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평은 연평대로 숙향이의 허영심 때문에 심신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단도리를 할라치면 "네 까짓 게 뭔데. 자옥이가 좋으면 가든지." 하며 숙향이가 덤비니, 대관절 무슨 날벼락인가 하며 얼이 빠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두 부부의 모습은 쇼윈도와 같았다. 천진 공략! 천진. 천진이라면 구한말에 흥선대원군이 볼모로 잡혀갔다는 그 고장이었다. 그곳에 시가전이 벌어졌다는 기사가 첫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일본의 점령이었다. 그렇건만 신문에서는 일본군을 '아군'으로 칭하며 맹렬한 전투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아, 이 기사를 본 연평은 근심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공들여놓은 청년단이 이제 서서히 문을 닫을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시한 것이다. 엊그저께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압력이 가해져 왔다. 장차 일본이 전쟁을 벌여야 할 터이니 자신들에게 협조하려는 제스처가 있다면 흔쾌히 허가해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일본인화가 되어 조선 청년들을 저들의 총알받이로 삼도록 이끌어달라는 얘기가 아닌가. 주위에 자신의 단체에서 떨어져 나간 청년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일제에 동조하고 있었다. 아부하는 형상을 바라본 연평은 순간 구역질이 나기 시작하였다. 숨이 턱까지 막힐 정도로 정국의 형세는 그야말로 어수선하였다. 그럼에도 청년회를 버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연평이 자신에게 있었다. 연평은 왜경의 서슬 퍼런 눈을 피하여 은밀히 독립자금을 대어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자신의 단체 임원들을 물론하고 다른 회원들의 의지를 담보로 서로 독립운동 기지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니 굳이 해산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박자옥이 탈퇴서를 제출한 거다. 박자옥은 어김없이 오영범의 핍박을 받고 있었던 거다. 다른 단체 대표로 있는 오영범 자신이, 굳이 라이벌 격이나 다름없는 연평의 단체에 계속 몸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것도 있기는 했다. 그렇기에 제 마누라를 핍박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남의 가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수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박자옥의 탈퇴서를 눈물을 흘리며 흔쾌히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나라 잃은 백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야 한다는 현실이 연평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슬프고 슬프다! 시시때때로 잠들 때나 잠깰 때나 오직 박자옥이 생각이 났다. 자신이 버티다가, 왜경에게 잡혀가 전향서를 작성해볼까 궁리해보았다. 그러나 그건 더 없이 수치스러움만 자극할 뿐이었다. 얼마 전 연평은 지나사변(支那事變)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어느 잡지에 기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왜놈들의 충견이 되겠노라고 선언하고 나섰던 거다. 결국 오영범이 '변절'을 택했던 거다. 얼마나 자신이 싫었으면 친일의 길에 접어들었던가. 한편으로는 가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렇게 힘든 투쟁을 한다는 것에 대해 더 없는 괴로움에 몸서리를 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이 캄캄한 요즘이다. 그러나 마냥 청년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일군 조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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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http://www.1392.org/bbs?moim09: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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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