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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대표] <간행> 보덕문집(寶德文集) 29
청년(靑年)들이여 <3> 청년(靑年)들이여 <3> 이렇듯 자옥의 헌신으로, 자옥의 희생 덕분으로 연평은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욱일승천하는 청년회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에는 격랑이 일고 있었다. 진실로 자옥이 고맙기 그지 없었다. 어쨌든 연평은 동대문 근처에 삼백 평 짜리 땅을 마련해 청년회관을 하나 차렸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 돈과 함께 30결 짜리 땅을 팔아가면서까지 마련한 돈을 보태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청년회관의 이름은 부영회관(富榮會館). 청년회가 번성하고 영화로이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임경선 씨가 직접 이름을 지어 현판을 손수 써 주었다. 마침내 종로의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동대문에서 새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에 연평이 11월 중반에 이르러 청년들을 소집했다. 이 집회에서 연평은 자옥을 청년회 소속 여성회장 겸 청년회 중앙 부회장으로, 자신은 중앙회장으로 하여 임명안을 내놓아 다수결을 정했는데, 만장일치로 통과하여 청년회의 쇄신을 단행하였다. 일련의 쇄신을 단행한 청년회는 자신감이 한껏 고취되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자조모임을 열어놓음으로써 장차 청년회의 앞날을 모색하는 기회의 장으로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내가 졸업하면 청년단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연평 자신의 미래가 그것이었다. 청년회의 수장으로 있는 이 시점에 졸업하게 되면 그 뒤에 바로 청년회의 일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그러는 사이에 부영회관은 겨울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듬해 2월초에 결실을 맺었다. 부영회관의 낙성식이 거행되었다. 주위의 지역 유지는 물론이고 독지가들이 이 기쁜 소식을 경축하며 낙성식 행사를 빛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연평은 단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바로 논산댁의 아들 영범이었다. 근래에 들어 청년단의 활동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청년단 단원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소식이 들리지 않은 건 당연하다. 어제 논산댁이 가뜩이나 아들의 소식을 알 만도 하건만 그도 모른다고 했다. "무슨 꿍꿍이로 집 밖에서 오지 않나." 이러면서 혀를 끌끌 찼다. 함흥차사라도 되었나. 하는 근심이 논산댁의 얼굴에 그늘로 드리워져 있었다. 영범 아버지 오 서방은 만일 오는 날이 되면 그때 가서 다리 몽댕이 부러뜨리겠다며 술로 나날을 보내는 날이 빈번했고 이를 보다 못한 논산댁이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로 밤을 새고 지내야만 했다. 일설에 의하면, 논산댁의 친가가 대전에 있는데 그리로 행랑살이 하러 간 것 같다고도 했는데 그럴바에야 왜 힘들게 공부했느냐며 뒷공론들이 대단했다. 그런 마당에 연평 아버지 안대치 영감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진 줄 모르는 오영범은 어떻게 지냈나. 그는 두달 전까지 중국 천진에 있다가 북경을 거쳐 대련에까지 유랑하다가 인천에 다다랐다. 인천에 다다른 오영범은 도착한 즉시 어느 암자에서 조용히 칩거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은 채로 말이다. 이날, 청년회의 회원으로 등록만 하고 활동하지 않는 이은형(李銀亨)과 연도길(淵道吉) 이렇게 두 청년이 영범이 있는 암자에 찾아온 거다. 그중 연도길은 모친이 직접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전력이 있어 왜경에게 감시를 받다가 끝내 옥고를 치르고 얼마 안있어 죽고 말았다. 아버지도 없이 홀로 고독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오영범과는 의리를 지켜가며 연락을 수시로 주고 받는 처지였다. 그런 연도길이 왜 오영범을 찾아왔을까. 순전히 청년회의 장래를 우려함이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청년들을 의식하고 말이다. 결국 이은형과 연도길 이 두 사람은 지나치게 나대듯 하는 사회주의 청년들에 실망과 환멸을 느껴 활동을 중단한 것이다. 청년회의 미래가 캄캄한 이 때에 영범을 찾은 이유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사회주의자들을 청년회 안에서 몰아내 타도하자는 속셈이었다. 경도되어 있는 사회주의 청년들은 부영회관이라는 무대를 마치 자기네들을 위해 세워진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한심스러운 작태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들이 맹목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접근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건대 그건 청년회에서 활동하는 범위 중 하나인 계몽운동에 의해서일 것이다. 계몽운동은 각각의 농어촌들을 두루 찾아가 그곳의 실상을 체험하고 이들의 정서에 맞추어 실생활에 맞게 생활개조를 이끌어가고자 한 궁극적인 신념에 의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조선 천지 곳곳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니 자연스레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부 청년들이 자신들의 말이 옳다고 하는 바람에 연평 등의 핵심 간부들에게 후폭풍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영범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잠시 중국으로 건너가 있었던 거다. 물론 연평과의 피할 수 없는 콤플렉스 탓이라고만 마냥 할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가닥 희망을 품고 다시 새 출발을 하게 된 연평의 청년회는 그러나 또 다른 태풍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동대문 부영회관은 흰 바탕에 크게 삼 층으로 지어졌다. 르네상스 식의 건물이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나름의 면모를 갖추기는 했다. 일층은 강당으로, 이층은 회관을 운영함에 있어서 필요한 기본적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와 청년회의 전반적인 업무를 일임하는 부서 등 각자의 집무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3층은 숙직실 등 청년회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청년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연평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낙성식이 끝나기 무섭게 연평의 주관으로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연설회에는 강당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연설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강당은 모두 꽉 차 마치 시루 속에 들어 있는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자리를 채웠다. 이번 연설회에서는 사회주의 청년들은 물론이고 이들을 동조하고 있거나 다소 간에 견해차이를 보이는 청년들이 이날 연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청년들이여!" 하며 소리치는 한 청년은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관련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식민지배의 착취를 당하면서 언제까지 그 설움을 가져야 하느냐며 소리친 이 청년은 설움과 눈물이 한데 엉켜져서 한떼 중단될 뻔했지만 목에 핏대를 서대며 하루 빨리 청년들이 힘을 모아 부르주아 자본가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성토를 하고 나섰던 거다. 이를 지켜보다 못한 몇몇 청년들은 얼굴을 붉히고 있는가하면 어떤 청년들은 다소 괴팍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듯 실소하고, 또 이건 마치 코미디와 같은 것이라는 듯 조소를 날리며 웃는 청년들도 있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사회주의는 6·10만세운동을 계기로 활개를 칠 수 있었다. 삼일운동의 영향으로 일제는 명목상으로나마 언론과 집회의 허용을 내세운 문화정치를 표방함으로써 잠시나마라도 조선인들의 화를 다독거리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을 까닭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 이간질을 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고자 한 간교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비열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사회주의 세력이 활개를 치자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내세워 사회주의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비단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과 만주 등 광범위하게 세력화가 이루어지니 간담이 서늘한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럴 때에 연평의 청년회 내에 있는 사회주의 청년들은 오히려 기고만장하게 활개짓을 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심정을 연평은 모를 까닭도 없었다. 그런 이때에 오영범은 부영회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침 연설회가 끝난 뒤였다. "아니 영범이." 흰 중절모와 흰 양복, 흰 구두 차림으로 찾아온 영범을 연평은 거리낌없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간 잘 있었나." 영범은 쓰면서도 엷은 미소로 연평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반가움이 앞서기도 하고, 벅차기도 했다. 영범이 이렇게 자신을 찾아주다니. 제게 미운 점이 많이 들었을 법하였을 영범이 이렇게 자신을 찾아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제 부모가 아버지의 노비로 지낸 것에 대한 굴레를 의식하고 있는 영범 자신은 자신대로 제 부모를 거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내색하기 어렵겠지만 연평에게 있어 은인의 자제 분이 아니던가. 나는 네가 미운 것보다도 내 죄의식이 심한 탓이 태반이라는 걸 알아주게. 영범은 연평에게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제게 안대치 영감이 공부 열심히 하라며 내준 돈을 가지고 학업에 전진하기는 했으나 제게 있어 공부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물론 제 부모의 은공에 힘입어 배운 공부라지만 험악한 식민지 사회에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에 짐을 짊어지게 할 수 없지만 마냥 이렇게 부모의 그늘에서 지낼 바에야 차라리 해외로 나가 도피생활이라도 해야겠다고 하며 한밤중에 홀연히 외국으로 도피한 그였다. 부모에게, 그 누구에게도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 자신이건만 오히려 영범을 대하는 연평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어라고 할까.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그 그리움을 그리움이라는 정을 느낀 까닭일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 연평의 말에 영범은 쓴웃음을 띠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왔다네." 하며 대답하곤 했다. "그래?" "중국이 생각보다 넓은 곳이더구먼. 이곳 조선보다, 일본보다 더 번성하였지." 변방에 자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본보다 조선보다 더 번성한 중국이 영범은 더 충격적이었나보다. 비록 서구 열강들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조차지로 쓰이는 곳이기는 하지만 영범에게 더 없이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되었다. 상해 사마로 거리는 물론, 홍콩과 마카오를 두루 돌아다니고 천진과 대련까지 주로 바다가 위치한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을 하였다. 하기는 영범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아니 구석진 데에 버려진다 할지라도 살아남을 팔자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영어를 구사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상거지가 되고도 남았다. 아니 거리 한복판에 버려져 행려병자가 되고도 남았다. 어쨌든 무사히 귀환한 영범을 연평은 새 건물인 부영회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번에 보았던 청년회 사무실이 눈에 선한데 이렇게 새 건물에서 맞이하는 청년회 사무실을 보고자 하려니 왠지 낯설기 그지 없었다. 연평이 내세운 새로운 변화로의 쇄신이 보여준 첫 모범 사례였다. 이곳 사무실에 다다르고 두 사람은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오영범의 모습을 여직원 한 명이 영범을 보더니 그저 수줍음을 타는 듯 시선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일을 하고 있었다. "중국이 군벌이다 뭐다 하며 반목하여 서로 같은 동족을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고, 장제스가 공산당을 타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서 공산당을 토벌하는 모양새를 내비쳤다네. 하지만 일부 군벌들이 국민당에 손을 들어주고 해서 거의 안정적으로 평화롭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일이 터질지도 모르는 일일세. 마치 시한폭탄처럼 말이지." 영범의 입에서 나온 중국의 정세를 연평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영범을 통해서 그 의중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이곳 청년단 안에서도 새로운 기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날이 갈수록 번성하는 사회주의 청년들이 청년회의 집행부를 위협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막강한 힘을 어떻게 하면 누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청년회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회주의 청년들과 협력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얘기를 영범과 진지하게 나누던 연평은 한가닥 결정을 내렸다. "자네 내 후임 회장으로 일해보겠는가." 난데없는 회장 직의 제의에 영범은 당황하였다. 물론 회장이 되고 싶은 욕심을 지우기는 어렵겠으나 연평은 영범에게 있어 큰 산맥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그 산맥을 넘어야했다. 노비의 자식이라는 콤플렉스와 내 부모가 나어린 청년에게 굽신거리며 구걸하며 당신의 무지함만을 탓하며 상전으로 받들던 부모. 그런 부모들 사이에 태어난 영범은 내내 저주스러워 밝은 하늘을 높게 보지 못했다. 아니 하늘 아래 자신만이 노비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있지 않느냐는 피해의식이 그를 오랫동안 짓누른 탓인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에 있는 자식이라고는 나 혼자인데 혈혈단신 외롭게 지내는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주위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모임이 있으면 참석하고, 다른 자조모임이 있을 때도 참석하고는 한다. 심지어는 학교 내에서 방송 모임이다 신문사 모임이다 하며 회원으로 또는 집행부의 일원으로 감투 써가며 활동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 자리를, 그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임을 주도적으로 나서서 진행할 줄 모르는 탓에 리더십이 부족한 걸까. 그건 아니다. 그럼 무엇이 영범으로 하여금 세상 밖을 막고 있었을까.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 사람 속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그럴 것이다. 그동안 많이 위축했으니 아픈 속내를 내색할 새도 없을 것이다. 단지 콤플렉스로 인해 욕심만 더해갔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단순한, 모호한 결론만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범은 졸업반이라는 연평의 말을 듣고 공연히 시기심과 질투심이 들었다. 자신은 집안 핑계, 직업 찾는다면서 직업 핑계, 요 핑계 저 핑계대며 오직 남탓을 하며 지내온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연평은 이미 졸업 후에 다가올 법한 꿈을 개척한 상태임에 비해 영범은 신분 성분을 구실 삼아 오히려 세상을 가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연평을 가까이할 수 없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연평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다만 영범이 제게서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에 대한 조심성 없음을 탓한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적용해보는 정도일 뿐. 다른 요소는 없다. 연평은 제게 건넨 회장의 자리. 그 자리를 선뜻 받을 수 있을까. 싶은 지레짐작이 그의 가는 길에 발을 잡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뿐이었다. 회장 자리는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였다. 이때 그런 의미에서 영범은 연평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자네가 나이듦을 탓하면서 내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한 게 아닌가." 같은 집에서,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지내온 사이인 탓에, 제 허물까지 터놓는 까닭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 그럴리가." 약점에 찔린 채 학을 떼고 기겁하는 연평을 보고, 영범은 그저 고소해 "왜 그리 펄쩍 뛰나." 하며 이를 즐기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영범은 넌지시 얘기해보는 것이었다. "우리 청년단의 규약에 연령제한이 걸리는 대목이 있던가?" 영범의 물음에 연평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더니 "우리 청년회의 규약은 정확하고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네만 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문학교 또는 대학교 졸업 후에는 청년단원으로의 자격을 정지해야 한다.'는 규약을 정하고자 한 움직임이 있었다네." 영범은 이내 무릎을 탁! 치는 표정으로 하고 "옳거니! 그러면 청년단의 규약에 그걸 명시하면 되겠군." 하며 연평에게 넌지시 떠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합의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청년단의 회원 자격 정지는 전문학교, 또는 대학교 졸업 이상으로서 단.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 그리고 결혼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행하도록 한다. 이후에 곧바로 규약 개정 건으로 청년회에서 회의를 개최하여 다수결로 정하니 단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다수결로 채택되었다. 이때는 그 다섯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른 청년회를 조직한다고 떠든 뒤 사라졌다. 청년회 안에 활개짓하던 사회주의자들을 보기 싫은 까닭에 미국으로 도망치던 윌리엄이 돌아온 건 1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국제정세는 급변하게 변해갔다. 만주 군벌인 장작림이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폭사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일본군은 자신들의 소행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민당의 손에 의해 폭사되었다는 억지를 내놓고 있었고, 그 때문에 대륙침략으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됨에 따라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는 긴장감이 더해가고 있었다. 이 어수선한 때 연평은 무사히 전문학교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청년회의 총괄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윌리엄이 찾아온 거다. "그래, 어떻게 지냈나?" 사무실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신을 반기는 연평과 서로 포옹했다. 반가움이 더 해져 연평이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윌리엄은 피식 웃으며 애인이 있다고 했다. 조선 여자냐고 물어보는 연평의 물음에 긍정적으로 끄덕이는 것이다. 그 여자가 어째서 좋은 거냐고 물으니 윌리엄이 "When he sees me, he always smiles at me."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조선 물을 반만 먹지도 않는 티를 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 윌리엄을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연평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년단의 운영에 있어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자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청년회에 어느 정도 몸담근 바가 있는 그에게 직책을 내맡겼던 것이다. 이후에 연평은 청년회의 막중한 임무를 내려놓고 전문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자 학교생활에 집중하였다. 이듬해 1929년 2월 중반경. 연평은 무사히 전문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연평의 졸업 이후 정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장작림의 폭사를 구실로 만주로의 진출을 구체화시켰다. 우선 일제는 조선을 병참기지로 만들어 대륙으로의 침략을 도모하였다. 도요토미의 환생이 아닐 수 없었다. 노골적인 대륙 침략의 본성을 저버리지 못한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그 땅에 괴뢰국을 세워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보다못한 국제연맹의 제지가 있어왔지만, 국제연맹의 위상은 이미 추락하고 오히려 일제는 그 둥지를 벗어나겠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또 조선은 일본 학생과 조선 학생 간의 차별에 대항하여 학생만세운동의 불길이 일어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에 일부 청년회 안의 사회주의 청년들이 주도권을 잡아 나섬으로써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주도권을 잃은 일부 청년들이 이를 구실삼아 사회주의 청년들을 청년회 밖으로 내치도록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윌리엄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에 양보하는 진영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회주의 청년들이 탈퇴서를 제출하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청년단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탐탁치않게 바라보는 통에 차라리 지하운동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흐지부지 되고야 마는 건 시간 문제였다. 연평은 청년회의 대표 자리를 오영범에게 넘겨 아버지의 지원금을 받아 사업에 뛰어들었고, 박자옥도 여전에 졸업하여 모 잡지사에서 촉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은희는 차일피일로 미룬 학교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막바지 졸업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한데 그런 성은희에게 한 가지 근심거리가 생겼다. 바로 은백이라는 이름의 스님이었다. 그 스님은 은근히 세속과의 인연을 끊지 않고 있는 탓인지 그녀에 대한 미련을 못 잊어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짝사랑하면 뭐하는가? 청년회의 회원이었으면 뭐하나. 제 물정조차 모른 채 그저 짝사랑만 했던 그였다. 그는 출가한 몸이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고 또 세파에 시달리기 싫어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불가에 몸담그고 있는 몸이라 성은희에 대한 정욕이 샘솟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구보다 그는 나이에 걸맞게 태산을 집어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력을 절간에서 썩혀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면에서 성은희는 자신의 정력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성은희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은백의 구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언니는 맹하군요. 맹한 구석이 있어요. 한 사내가 언니께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내색하지 못하는 속좁은 그 성품 때문에 스님이 언니께 다가가지 못한 것이야요." 은희와 같은 과에 재학 중인 후배 강의숙이 건넨 말이었다. 같은 과내 모임에서 넌지시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예 한술 더떠 "언니는 언니대로 맹하다지만 사내가 더 큰 문제야요.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사내답게 진실을 털어놔야 되지 않갔시요? 기라면 걸릴 기이 없잖갔시요?" 강의숙과 덩달아서 김진숙도 은희의 성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김진숙 또한 은희의 후배로서 강의숙과 함께 같은 평안도 사람이었다. 거의 학교를 평안도에서 공부한 탓에 억양은 다소 심할 정도로 눈에 띄었으나 서로서로 호형호제하며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터였다. 이들은 또한 성은희가 소속된 청년회의 회원으로 지난 주에 입회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사회주의 청년들 가운데 이미 임원에 소속된 이들도 대개 있었지만 이미 물갈이 식으로 탈퇴서를 제출한 까닭에 마지못해 그들의 자취는 감추어졌다. 더욱이 오영범이 회장직에 앉은 이후로는 연평의 뒤를 잇기라도 하듯이 청년회의 기존의 취지를 유지하고, 새 인물들을 발굴하여 청년회를 부흥하는 데에 도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은희는 두 후배로부터 조언 아닌 조언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백은 자신과는 사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았고, 한 번 불교에 귀의한 몸이 다시 세속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나온다면 무조건 파계되는 우를 범할 수 있었기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두 사람을 두고 업보(業報)란 말까지 꺼내들며 불쌍하다고 수군대기도 하고, 또 성은희가 더 불쌍하다고 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그 까닭을 모를 리 없는 성은희는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밝히기에도 다소 조심스럽기에 후배들한테조차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 했다던가. 은희는 후배들의 끈질기고 집요한 유혹에 넘어간 채 서둘러 학교 교내의 모임을 끝내고 곧바로 근처 봉원사로 걸음을 옮겼다. 어둑어둑한 시각이었다. 이때 문 앞에 다다르니 웬 스님 한 명이 합장하여 그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뉘신지요?" 그러자 은희도 합장하며 인사를 드렸다. "저 은백스님이 안에 계신가요?" 은희의 물음에 이내 미소하더니 "지금 근처에 출타중인뎁쇼."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스님은 양광(陽光)으로서 은백스님과 같은 날에 출가하였던 동기였다. "허면 언제쯤 오시는지요?" "금방 오신다고 하셨는데" 하며 양광이 머뭇거리더니 이윽고 "그럼 잠시만 안에 들어가셔서 기다리시지요." 은희에게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였다. 접견실에 이른 은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가쁘게 내쉰다. 그로부터 십 분이 지났던가. 양광스님의 전갈을 받은 은백이 기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스님의 물음에 은희가 "긴히 할 말이 있어서요." 머뭇거리듯 은백에게 대답하였다. "할 말이라뇨?" 설렘 반 기대 반으로 거듭 물어보던 은백 또한 가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두 사람의 진귀한(?) 광경을 봉원사 사람들은 창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양광스님도 마찬가지였다. 근래에 외부인이, 그것도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가 스님을 만난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낯설기만 했나 보다. 이곳은 원래 그럴 만 하던 게 바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 청년들이 기거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기도 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 잡인들의 출입은 드물기도 했겠지만 여자가 당차게 절에 와서 스님을 찾는다는 것이 기이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햐, 저 아가씨 좀 보소. 아주 당차게 생기기도 했지만 귀엽기까지 하니. 만약 속세에 있었더라면 진작에 저 아가씨한테 장가를 들었겠구려." 양광스님의 옆에 있던 홍의(弘毅) 스님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청년회의 사무실을 나선 자옥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모임인 여성회에서 개최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이봐요." 하며 한 여자가 기척을 내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본 자옥은 그를 알아보고 "어머나." 하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바로 자옥의 모임에 갓 임원으로 나섰던 김현화였다. 김현화는 비록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연평이 청년회장으로 있는 동안에 적극적으로 청년회에 열성을 다하여 활동한 바가 있는 여학생이었다. 현화는 갓 여고보를 마치고 자옥이 다니는 전문학교 입학할 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또 다른 일행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었다. 바로 영빈과 아는 지인인 박은화와 최윤희였다. 박은화와 최윤희는 영빈의 권유로 청년회에 가입하여 누구 못지 않게 청년회에 열성을 다하여 활동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 세 사람이 한때 각 신문사에서 전개하고 있는 문맹퇴치(文盲退治) 운동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어서 결코 어두운 장래가 아님을 일깨워준 혁혁한 신여성들이었다. 이들 네 사람은 서로 반가워하며 안부를 주고 받았다. 이번 모임은 자옥이 회장 직을 맡은 여성회의 총회였다. 이번 총회의 안건은 농촌계몽 관련 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이야기는 이들이 경험담을 털어놓는 그야말로 좌담회 형식이었다. 특히 이번 모임에 있어 김현화와 박은화, 그리고 최윤희 이 세 사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였다. 이들은 서로 농촌계몽과 문맹퇴치에 참여하면서 겪게 된 에피소드를 한보따리를 안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저는 뭐랄까요. 청춘을 농촌운동에 바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해서 울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몸소 겪어보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울 따름이구요." M여자전문학교를 다니고 있는 회원 양희정이 건넨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한 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가뜩이나 저희의 진실한 운동을 두고 오직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는 일환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당국의 태도도 태도지만, 무엇보다 글 한 글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고민이 드는군요." S여자전문학교 학생인 회원 조윤자의 말이었다. 이들은 모두 제도적인 한계와 그리고 이들이 전개하는 운동에 대해 많은 의심을 사는 것에 대해서 더욱 가슴 아파 했다. 이들은 밤이 깊어서까지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억조창생에게 불쌍히 여기시어." 청년회관 근처에 있는 교회의 예배당. 이곳 예배당에 담임 목사는 기도를 강복하고 있었다. 기도드리는 이 자리에 뜻밖의 여자가 있었다. 숙향이었다. 그녀는 한낱 기생에 지나지 않았으나 실은 개화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개화가 아니라, 제 자신의 개화를 추구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천한 종×의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며 첩실로 보내려고 하는 마음에 겸사겸사 그녀를 데려다 권번에 맡기기 시작했다. 이때 나이 어린 숙향을 바라본 노파 하나가 그녀를 보더니, "이것 절세가 아주 뛰어나구나. 이것아 나 따라 오니라." 퇴기나 다름없는 늙은 노파를 따라 들어간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와의 그 마지막 모습을 숙향을 잊지 않았다. 초반에는 불가에 귀의하여 비구니로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백팔번뇌를 들먹이며 그는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하지만 고요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찾을 길 없던 숙향이 절을 뛰쳐나와 지금처럼 교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여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 미천한 것을 받아들이시어 천당에 이르게 해주옵소사, 이 기도를 드립나이다.'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만을 믿은 숙향은 믿던 믿지 않던 물불가릴 새 없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눈을 꼭 감은 그녀의 눈에서는 집념이 넘치기 시작했다. 집념의 바다에, 집념의 바다 한가운데에 그녀는 출렁거리는 배 한가운데에 있었다. 배는 가라앉을 듯 말 듯 그녀의 마음을 저울질하듯 휘청거리고 있었고, 파도는 끊임없이 밀어닥쳐왔다. 하늘은 먹구름이고 벼락을 치려는 듯 천둥소리만이 그녀를 더욱 궁지로 내몰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비가 굵게 내리고 파도는 성난 모양으로 그녀와 그녀가 타고 있는 배를 덮쳤다.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눈을 번쩍 떴다. 예배가 끝났는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자매님. 괜찮으세요?" 하며 남정네가 다정스럽게 깨우기 시작했다. 순간 깨우쳤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 수렁을 건진 사람은 안타깝게도 연평이 아니었다. 황충포라는 사람이었다. 평소 연평에 대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던 숙향이 꿈속에서 연평을 보게 된 것이다. 연평의 학문과 덕망, 그리고 사람 됨됨이가 더 없이 있다고 생각하는 탓도 있지만, 그로 인해 숙향이 자신에게는 롤 모델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상 달라질 게 없는 현실 속에서 숙향은 헛된 꿈이라는 생각이 들어 허망하다 못해 우울하기만 했다. "여기는 어떻게." 그러나 숙향은 태연하게 충포에게 어떻게 교회에 왔는지 묻는 것이다. "그야 예배드리러 왔지요." 이에 실망 어린 눈초리로 숙향은 약간 떨떠름하게 충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근데 여기 연평 씨, 아니 연평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나요?" "아, 연평이 지금 서울엔 없지요." 순간 숙향의 실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낙담하다 못해 허탈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 어디로 출타하셨나요? 아니면 출장 가셨나요?" 그러자 충포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 연평이 그 친구 논산으로 선산 보러 간다고 갔는 걸요." 하긴 연평이 이미 졸업한 몸이고, 자신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사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무시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부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논산으로 갔다는 소식을 접해들은 숙향은 한달음에 논산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올해 솔직히 숙향의 신변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나날이 많았다. 첫째로 권번 주인장이 내일 모레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자칫 까딱하다가 권번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대륙침략의 야심을 보인 일제의 서슬 퍼런 규제도 있는 까닭도 있지만, 최근 경제 대공황이 전 세계적으로 불어온 까닭에 맘껏 소비할 수 있는 여력도 못된 탓도 있었다. 장사도 되지 않아 본전도 뽐내지 못한 권번 주인이 혀를 끌끌 차대며 밑천도 건져 보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우선 나이 든 퇴기부터 권번을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한데 퇴기들이 정작 들고 일어나서는 제 눈 속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안 된다며 파업하듯 들고 일어났다. 게다가 자신은 죽을 병에 걸려들어 운영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양날의 칼도 이보다 날카롭지 않을까. 밤이면 밤마다 권번 주인은 눈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 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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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http://www.1392.org/bbs?moim09: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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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