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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대표] <간행> 보덕문집(寶德文集) 27
청년(靑年)들이여 <1> 청년(靑年)들이여 <1> 서울 안국동 안대치(安大治)네 사랑방에서는 청년들의 열띤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안대치의 아들을 비롯해 그 친구인 손동준(孫東俊)과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박자옥(朴子玉)이 자리해 있었다. 안대치의 아들 연평(延平)은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미국 유학을 갔다 온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 특히 그 부친되는 안대치는 본래 중인 출신으로 미국공사에 부임하는 공사관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통역관 노릇을 하던 사람인지라 개화에 일찍 눈을 뜬 사람이었다. 그 덕택으로 나라가 망할 즈음에 통역관 생활을 청산하고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들어오는 공산품을 팔고자 자그마한 상회를 차리고, 미국산 수입품을 팔아 막대한 부(富)를 축적했다. 그 부는 훗날에 와서는 연평으로 하여금 미국 유학으로 갈 수 있는 기회로 쓰여졌고, 이 이후에는 연평을 비롯한 네 명의 딸들에게도 서양문물에 쉽게 길들여놓을 수 있도록 여성 또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도록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 까닭으로 연평의 네 누이동생들은 모두 신식 교육을 받은 소위 신여성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된 지 이미 두 달이 지났다. 이들이 벌인 것은 바로 순종 임금이 붕어한 뒤에 일어난 만세운동 이후의 정국에 대해서였다. 그러니까 이번 만세운동은 삼일만세 이후에 두드러지게 일어난 사회주의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그 핵심을 짚어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 실마리가 이루어지기는커녕 산으로 산으로 향했다. “우리 청년단에 사회주의자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워낙에 강경한 부류의 사람들인지라.” 손동준이 먼저 근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연평은, “우리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는 터이죠. 물론 자연스럽게 일본의 자본들이 우후죽순 이곳 조선의 상권을 장악해보려고 벼르고 벼른단 말이오. 그러다보니 일본 자본가들은 그네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곳 조선의 노동자들에게 부여하고 있소. 그러나 우리 조선의 노동자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까막눈에 지나지 않소. 그런 것을 사회주의자들이 몸소 나서서 노동운동을 벌이는 게 아니겠소.” 일동은 묵묵부답이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박자옥이 입을 열었다. “일단, 노동운동하면 가장 취약한 이들이 생각납니다. 바로 우리 여성들이죠.” 그러자 일동은 박자옥의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까 단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조선이 노동력에 있어서는 값싸고 하니 그네들의 이익에 득을 낳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자본들 중에서는 방적공장을 비롯해서 여러 제조공장들이 잇따라 조선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 한 자 읽지 못하는 여성들이 자본이라는 것에 노예가 되어서 불가피하게 일본 자본가들로 하여금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때에 만세운동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불가피한 사정이었겠지요.” 이에 손동준과 안연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까 박자옥이 언급한 ‘단장님’은 바로 안연평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가 단장으로 있는 단체는 일종의 청년단 모임이었으며 이 단체가 결성된 건 불과 2년이 채 안되서였다. 이들은 주로 일본이나 미국을 유학하고 돌아온 이들에 한해서 회원을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 단체의 회원은 무려 마흔 명이었다. 이들은 주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조선 청년들이 지켜야 할 사항을 세 가지로 정하도록 해 다음과 같이 마련하였다. -. 사회주의든 민족주의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추구한다. -. 일본과의 타협은 용납하지 않는다. -.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되, 청년단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회원이 있을 시에는 그 회원으로 하여금 청년단으로부터의 제명을 가한다. 위의 사항은 세 사람의 의견에 의해 절충된 안건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의 사항을 내세우고 했어도 청년단 회원들의 의견도 절충해야 한다는 것이 손동준의 의견이었다. 이 의견을 수렴한 연평은 곧바로 종로에 자리한 청년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청년회관 2층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사무실이 연평이 수장으로 있는 청년회의 본부다. 이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안연평을 포함, 총 네 명이 청년회의 안에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서 단 한 명. 주목할 이가 있는데, 그는 오영범(吳英範)이라는 사내다. 오영범은 본디 안대치네 하인으로 있는 오 서방의 아들이기도 하고, 또 신분의 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막역지우로 지내기도 하면서 겸사겸사 청년회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무를 깍두기 모양으로 한 것처럼―메주처럼―네모로 각진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매도 풍채가 있어보이는 듯 어느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겼다. '이애는 무슨 소도둑놈 같이 생길 줄 알았더니 보기와는 딴판일세.' 하며 노상현(盧相鉉)이 농담같이 영범을 비아냥대듯 대하며 한 말이다. 오영범은 하인의 자식이라는 신분이 있음에도 안대치의 무한한 신뢰를 받아 연평과 같이 일본으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친구 이상으로 지내고 있는 편이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시샘의 대상으로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것도 남의 집 자식을 그렇게 대접하는 것이 말이다. 자기도 그런 대접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아마 노상현은 그리 했을 거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고 해도, 각자의 취향이 저마다 틀리니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들이 전공하는 분야가 틀릴 수밖에는 없었다. 자연히 연평은 평상시에도 역사에 관심을 두는 터이므로 바로 역사학을 전공한 반면, 영범은 영미 문학에 관심을 보이므로 영문학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비록 전공은 다르지만 서로 마음이 맞을 때도 있기도 했다. 바로, 셰익스피어니 헤겔이니를 끄집어가며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고 시험해보는 것이다. 물론 영범은 제 아버지가 몸종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꼬리표처럼 달린 탓에 하는 수없이 생존수단으로 어길 수밖에 없었겠지만, 연평은 그와는 다르게 자신의 지식에 어떤 약점이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는 자세로 유지하고 있는 터였다. 하여튼 이 두 사람의 처지를 보아서나 실력은 이들 모두가 출중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신분 질서가 무너진 지 삼십 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들 주위에는 오영범으로 하여금 차별과 시기, 그리고 질투를 맛보이게 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 움직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연평의 부친인 안대치가 이를 종종 목격할 때면, 보란 듯이 큰 불호령이 내려진다. "네놈들이 제멋대로 영범을 왜 짐승 취급을 하느냐. 영범인 비록 미천하다 하나 엄연히 사람이거늘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며 편가르는 네놈들이야말로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느니라." 이렇듯 안대치의 오영범에 대한 생각은 연평이 못지 않게, 친자식처럼 대하려고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가 어쩌다가 오서방네 자식을 살뜰히 대해주게 되었는지는 연평도 그렇고 그 친구들까지도 내막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연평이 노상현을 보고는 먼저 반긴다. "아니, 자네 어쩐 일인가." "내가 오지 못할 때라도 왔나. 청년단에서 어떤 모의를 꾸미나 보러 왔지." 농으로 상현이 대답하자 '예끼!' 하며 연평이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다름이 아니라 소문에 민족유일당이란 것을 하나 만들어 낸다는데, 우리도 그쪽과 같은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게 사실인가 해서 말이네." 그때――안대치의 사랑방에서의 토론회――상현은 핑계에 가까운 건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불가피한 볼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해 못내 미안한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때 연평이 피식 웃고는 "그와 비슷한 얘기였다네. 사실 우리 단체에 사회주의에 물든 청년들에 관하여 논하던 중이었지." 하며 일러준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했나?" "일단 강령부터 만든 후에 사회주의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네." 갑작스런 연평의 결론에 상현은 무언지 꺼림칙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색깔이 뚜렷한 집단과 과연 어울릴 수 있을지. 그리고 설사 어울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현실상으로 타산이 맞게 될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박자옥 양도 찬동하던가." "응." 연평은 미소를 머금으며 인정했다. 상현은 무엇보다 가녀리고 가녀린 자옥이 찬성했다는 말에 과잉에 가까운 보호를 느끼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나 오늘 따라 자옥이 보고 싶을 지경이다. 이를 모를리 없는 연평이, "자옥이 보고 싶나?" 하고 그의 정곡을 찌르더니 "어쩌나 밤이 깊고 해질 테니 자옥이 대신으로 기생 낯짝 보러 가지." 하며 상현이로 하여금 놀이에 끼게 한 다음, 서둘러 청년단을 나선다. 연평과 영범, 그리고 상현은 효자동으로 방향을 돌린다. 이들이 효자동에 이르렀을 때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자그마한 한옥 한 채에 다다랐다. "숙향이 있나?" 연평이 큰 소리로 부르자 안에서 기척이 나더니 방문이 열리며, "뉘세요?" 한다. "나 안국동서 왔다네." 그러자 여종이 반기며 "지금 숙향 아씨는 출타 중이세요." 대답한다. 이때 연평이 "할 수 없군." 하며 가자고 해 일행들을 거느리려던 찰나, "나를 왜 안보슈?" 하는 앳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일행이 돌아보더니 "아니 성은희가 아닌가." 하며 상현이 소리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며 성은희가 웃음을 짓는다. 활달하면서도 쾌활한데다가, 얼굴은 자연스럽게 미인상을 띠고 있어서인지 박자옥과 버금가는 여성회원이었다. 그녀는 지금 전문학교 졸업반이다. "허허, 일개 아녀자가 어찌 기방에 있단 말요?" 노상현이 주체할 길 없이 특유의 농을 피우니, "여기 오지 말란 법 있음 순사가 한달음에 달려오겠소." 하며 성은희가 받아 넘긴다. 그녀는 또 별명이 여러 개라서, '성은이 망극'할 때 '성은이'와 '춘향이'로 많이 불려졌다.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에 일행은 배를 부여잡고 깔깔대며 웃는다. "어떤 귀신이 저것을 잡아갈까나." 노상현은 성은희의 못말리는 성격을 평한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숙향의 집에서, 가장 큰 방에 이르러 둥그렇게 모여 앉아 진지하게 토론을 이어갔다. 그 시각 민정호는 인사동에 있는 집에서 외롭게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자신의 뜻과는 다른 기류를 보일 때 무엇보다 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미 대다수가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규약을 정해버렸으니 이를 혼자 막아보았자 무용지물이 되는 건 불을 보듯 훤한 이치였다. 그때 그 곁에 있던 윌리엄――재미동포로 성은 양씨(梁氏)――이, "이미 청년단도, 세상도 사회주의라는 광풍은 결코 피할 수 없게 되었네. 억눌릴 대로 억눌린 저 가엾은 민중을 보게나. 영문도 모르게 왜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차별다운 차별을 겪고, 금쪽 같은 귀한 자식을 일본으로 보내고, 심지어는 일용할 양식마저 빼앗기니 그 울분이 오죽 대단했던가." 그때 민정호는 이런 감상주의에 가까운 윌리엄의 태도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런데 끼이고 싶지가 않네." 윌리엄의 말 한마디에 황충포(黃忠浦)가 피식 웃는다. "그럼 우리 청년단에 얼씬도 않겠다 그 얘기겠지?" 하며 황충포는 윌리엄의 심기를 은근히 건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단체 후원을 해준 안대치 영감의 호통 소리가 안날 수가 없겠구먼." 그 말에 윌리엄은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황충포로 말할 것 같으면 보부상이었던 아버지를 두어 그럭저럭 먹을만하게 살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충포가 열 살 되던 해에 서양식 옷감들이 유입됨에 따라 그걸 팔아서 떼돈을 번 탓에 서울 청진동 한복판에 집을 마련해두었더랬다. 그 덕으로 충포는 유학까지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의전(醫專)을 진학했다만 별로 흥미는 없는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충포의 말에 따라 단체는 연평의 부친인 안대치 영감의 후원 아래에 운영이 되는 셈이었으며, 더구나 이 단체를 총괄 관리하는 이가 대치 영감의 사랑을 받은 오영범인 점을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들은 더구나 사회주의를 혐오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색깔이 저돌적인 것인만큼 경계를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처지였다. 안연평이 모습을 드러낸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연평은 아버지와 그 일로 의논을 한 바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반대를 하시다가 곰곰이 더듬어 사회주의에 물든 청년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단순히 흑백의 논리만을 가지고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려서야 되겠느냐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년단 간부들은 희비로 엇갈렸고, 윌리엄은 사회주의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에 반대하여 곧장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고 민정호와 황충포는 윌리엄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지주 출신의 자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들고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기도 하였다. 해서 이 두 사람은 노법린(盧法隣)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법린의 집이 있는 가회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법린은 상현의 둘째 형으로 일찍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양약까지 파는 등 어느 정도 부유한 것은 그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처지였다. "여긴 어쩐 일인고." 집안에 들어가보니 상현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둘째형님은 어디 계신가." 네 살 위인 형을 찾는 손들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눈치였다. "형님은 왜 찾으슈?" "그거 몰라서 그래? 자네랑 자네 형이 우리랑 죽들이 맞아서 동네서 장난치고 놀았는데 생각 안 나나?" 두 사람은 키득 웃어댔다. 상현의 모습을 보니 오영범을 놀려먹던 그 버릇이 오히려 제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불쑥 튀어나와 공과 사를 가리지 않는 것이 흠이지만 나름대로 낙천적이라 할 만한 성격이었다. 유한 성품에 마음도 느긋한 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 집의 내면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나서 이렇게 왔네. 한데 어디 출타 중이신가?" 황충포는 덜렁대기는 하지만 상현과는 죽이 맞을 정도로 마치 하회탈과 같은 낯으로 대할 때면 주위의 청년단원들이 낄낄거리며 좋아했었지만 몸매도 풍만한 게 화근이다. 제 머리 위에 올려진 모자를 벗으며 묻는다. "형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지만." "아, 우리가 다 법린이 형님한테 한 술 배워서 그리 된 것일 뿐. 오해는 말게." 말을 가로막듯 충포는 못을 박는다. "알았소, 자네들 형님 방에 가서 조용히 계시소." 상현은 그러고는 어디론지 사라지는 것이다.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더 지났을까. 이윽고 법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왕년에 일본에 유학을 한다느니 미국으로 유학한다느니 극성을 부리더니 막판에 와서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황충포는 이런 노씨 집안을 두고 이랬다저랬다 변화무쌍한 집안이라고 하였다. ‘저것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려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법린은 민정호와 충포를 거느리듯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러잖아도 청년단에 안대치와 더불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노법린이었기에 이번의 사태를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함이었다. 어째서 윌리엄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또 사회주의에 물든 청년들을 포섭(包攝)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민과 황은 노법린을 사이에 두고 술상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일찍 장가를 든 탓인지 법린의 마누라가 직접 술상을 보아온 덕분에 번거롭게 여겨질 기방 출입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이 이렇게 안주상 푸짐하게 차려주니 고맙구려.” 웃으며 법린이 마누라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마누라는 수줍을 뿐. 달리 말이 없다. 황과 민은 꿀을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기만 할 뿐. 달리 대답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어이, 충포. 자네 어떻게 할 텐가.” 윌리엄의 미국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윌리엄 그 작자가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되던 지 말던지 내 알 바가 아니외다.” 날 잡아 잡수시게 하는 어투로 대하는 황의 태도에 순간 당황하였다. “흐흐흐. 호랑이 굴에 가 잡아먹혀도 할 말이 없겠구먼.” 이를 지켜보다 못한 민이 거들었다. “그래, 형님. 누이는 집에 있소?” 누이란 노씨 집안의 맏이인 희정(熹貞)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 동무들하고 여행을 간다고 합디다.” 웬일로 존대하는 투다. “어딜 여행한답디까?” “남이사 어디 가든지 신경을 쓰지 말라는데. 누이 동무들에게 물어보니 부산으로 간다는 둥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사키로 간다는 둥 하더이다.” 큭 거리더니 황의 웃음소리가 우렁차다. 어디 여행 갈 데가 마땅찮아서 일본으로 간다드냐. 나라도 여행 간다고 하면 미주(美洲)는 물론이고 구라파로 가겠다. 이렇게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일면의 기사들 중에 구미로 여행을 갔다는 여행기가 이름이 있는 신문이란 신문에서는 대서특필을 해대는 통인데 너무나 싱거운 지경이다. 일본? 거 참 무식해서 못 봐주다 못해 우습기도 하다. 다소 가소롭단 듯이 터뜨린 웃음은 좀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거기 가면 뭐 볼 만한 게 있답니까? 볼 수 있다면야 사쿠라 밖에는 없을 테지요.” 벚꽃 밖에 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두 남자는 오만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들은 바로 임시정부에서는 사회주의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이승만(李承晩)이가 반대를 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래 이승만이가 구미위원부란 걸 따로 만들어서 제가 대통령 행세를 해보겠다고 들고 일어났나.” “물론 이승만이가 초반에 대통령을 맡은 건 그렇다고 합니다만 이념을 두고 마찰을 일으키고 했으니 조선독립은 흐지부지 되고 말겠지요.” “거, 말 되는 소리를 하게나. 그러면 자네가 친일파로 변절하지 그래. 그래서 대일본제국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든지 그러나.” 펄쩍뛰려는 듯 민정호가 들고 일어났다. “그게 그렇지 않은가. 윌리엄의 경우도 그와 같다는 건데.” 황충포가 말한 바와 같이 동감한 듯 법린이 끄덕인다. “앞길이 구만리(九萬里)입니다.” 피식 쓴웃음을 지으며 내뱉은 충포의 말이다. 충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대치의 아들 연평이 당도하면서부터 소식을 알려왔다. 사회주의 계열 단체와 민족주의 계열 단체가 서로 합심하여 민족유일당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다졌다는 소식이다. 1927년 봄. 연평은 영범과 함께 어디론가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호외(號外)를 외치며 신문을 내던지는 게 아닌가. 이를 영범이 급히 받아들고 연평에게 건네주었다. 민흥회와 합쳐 민족유일당을 건설하였다는 식의 내용이다. 이 내용을 보고 연평은 우리 청년단에도 여기에 일원이 되어 활동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신간회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이수철(李洙哲)의 아버지가 안대치네 집으로 찾아왔다. "세상에 이런 벱이 어디 있는교?" 경상도 말씨의 그는 안대치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행여나 자신을 해치지나 않을까. 쥐구멍을 찾느라고 분주했다. "무슨 말인지?" 안대치는 영문도 모른다는 듯이 그를 응시했다. "그 단체에 악질인 사회주의자란 놈들이 가담했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몰아친다고 하더이다." "……" "시상에 그런 벱도가 있기나 합니까?" 수철의 아비 이 직장(直長)은 본래 안동 근원에서 지주로 있어 왔고, 그 덕에 부유하게 지냈다. 그런데 일제가 나라를 강탈할 때 그는 주위 사람들을 따라―간헐적이기는 하나― 독립운동 자금을 내놓기도 했다. 그 터에 소작 쟁의가 벌어질 조짐이나 빌미가 주어졌을 때 제 손으로 일처리를 해왔고, 소작농들의 입장에 서서 대변해주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 노력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수포로 돌아갈 것을 염려해 안대치를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근처에 지회(안동지회)가 생겼십니다. 그래가 좌불안석이 되었십니다. 우짜믄 좋소." 그러자 안대치는 피식 웃으며 대답이 없었다. 그딴 일에 두려워하는 위인이었단 말인가. 이 직장을 비웃었다. 이 직장을 말할 것 같으면 진성이씨 가문의 직계손이다. 그렇다면 퇴계 이황의 후예인 셈이다. 그런 그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에 앞장을 섰어야 하거늘. 더구나 조상이 명망이 두터운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긴, 장차 당파(黨派)를 만들어내어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도록 만든 장본인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또 이황 본인도 나라의 녹봉을 먹다가 뱉어내어 당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안동으로 내려간 것은 파란만장한 현실을 부정하려는 수작이었음을 안대치는 무엇보다도 잘 알았다. 그 후손도 마찬가지의 경우가 아니던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보았지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기가 매우 어려웠던 점은 아쉽기만 하다. “어째 웃으시오?” 이 직장이 안대치의 기이한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허허, 당신 조상님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이 직장이야.” 안대치가 이 말을 남기고는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안대치의 집을 나온 이 직장은 한 달음에 신씨(申氏) 성을 가진 참찬(參贊)의 집에 들러보기로 하고 곧장 달려갔다. 신 참찬네 집은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호걸(豪傑)로 잘 알려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의 집인 운현궁(雲峴宮)이 있는 교동(校洞)에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제 실속을 다지려는 몸부림이 그저 우습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안쓰럽기까지도 했다. “게 있느냐!” 반가의 자제가 아니랄까 보아 서둘러 그가 다그치듯 묻고는 문을 다급히 두드린다. “누구세요?” 앳된 여자의 목소리다. “나 이직장이다.” 안에서 문이 열리고 허겁지겁 신 참찬의 사랑을 찾는다. 한때 조상이 공신(功臣)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서 신 공신 집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집을 여러 번 드나들었다지만 다급한 마음만큼은 따라주지 않으니 그저 애석하기만 하다. “나리마님을 찾으시나요?” 여종이 묻자 이직장이 그렇다고 하자 덩달아 사랑채로 모신다. 사랑채에 다다라 여자가 손님이 왔다는 기척에 문을 열어보고 그를 알아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버선발로 맞이하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 직장이 아니시오?” 이 직장을 반기는 신 참찬은 공손히 절을 하고 제 거처방으로 안내한다. “그러잖아도 안국동엘 다녀오는 길이오.” “아, 그 안 역관 집 말씀이신가?” “흥, 안 역관이 아니라 안 부사네 집이지.” “핏, 그게 그거지.” 대치의 직함이 부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건 조상들의 공덕에 의해 불린 이름일 뿐이었고, 실상 그가 맡은 거라고는 외무(外務)에 준한 직책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더구나 대치의 아버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민 출신이었다는 이용익(李容翊)의 전례에 따라 부사 자리에 있었는데 부사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뜬 바람에 대치는 얼떨결에 역관과 부사의 직함만을 받았다. 이를 두고 신 참찬이 비웃어대는 것이었다. “그 사회주의자란 놈들이 말이오. 내 작은 놈한테 듣고 보니 불온한 사상이라고 합디다.” “무슨 불온한 사상이오?” 의아해하며 신 참찬이 묻자, “지주 놈들을 없애고 상것들한테 그들 땅을 배분한답디다 그려.” “아, 그래요?” 제 대답을 듣고 의아하게 되묻는 신 참찬의 태도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덕분에 저녁을 마치고 바로 집을 나섰다. 제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이애 분아!” 제 딸을 부르는 아버지의 분주함에 놀란 나머지 딸이 들입다 달려와서, “어인 일이셔요?” 하고 묻는다. 그러자 이 직장이 다급한 어조로, “얼른 가서 돈을 꺼내오너라!” 그러자 딸이 영문도 모른다는 듯이, “어디에 있어요?” 하고 묻자, “아 얼른 가져오라는데 웬 잔말이야!” 이 직장의 호통소리에 딸은 벌떡 일어나더니 발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아마 금고가 밖에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허허, 이놈들이 나를 무식하게 보고는 깔보는 모양샐세. 허 참.’ 기가 차면서도 이 직장은 밖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누이에게서 듣고 온 수철은 기가 막힌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님, 어느 누가 아버님의 재산을 탐내고 훔치겠습니까. 사회주의라는 게 마냥 그렇다고는 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자 아비가, “그래, 너도 사회주의자란 놈들한테 경도(傾倒)된 게로구나. 그놈들은 왕을 내몰아서 그 목을 쳤다고 하잖니.” “하하하하, 그건 노서아의 사정이구요. 우리 사정은 뭐가 다르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순종황제께서 돌아가실 때, 그들이 앞장서서 왕의 비통한 죽음을 보고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어느 누가 왕을 타도하려고 들겠습니까.” 일자무식한 것도 아니련만 이 직장은 아들의 올곧은 논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네놈 말이 옳다 옳아! 마음 같아서는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꾹 참아냈다. 하― 인생이 무상타 저런 놈이 내 뱃속에서 나왔단 말이냐. 치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안대치의 비웃는 소리와 신참찬의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길 왜 하느냐는 눈빛이 오히려 자신으로 하여금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우친 순간이었다. 아니 상것들도 양반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세상이니 이 얼마나 기가 차고 피가 거꾸로 솟는단 말인가. 이 직장은 진종일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이 직장이 신 참찬 집에 있는 줄도 모른 채 참찬네 딸 영빈과 자옥은 축음기를 튼 것을 들으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는 사의 찬미다. 작년 현해탄에 몸을 던진 김과 윤이 일으킨 스캔들로 온 조선은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더랬다. 축음기 너머에 나오는 청승스런 여인네의 노랫소리. 옥구슬이면서도 매우 처량해 듣기가 거북한 이 노래를 듣고 왜 흐느끼던가. “한 많은 이 세상이 너 찾는 건 허무.” 가녀린 여인네 목소리가 마치 세상을 저주하리라는 선전포고로 들렸던 탓일까. “자옥 언니. 넘 무서워.” 영빈이 질질 짜댄다. “오뉴월이면 서리가 내린다더니. 무섭구나야.” 이 둘 다 공포에 질린 모습을 즐기는 이가 있었다. “피, 너희들 그 청승스런 노래 듣는다구 무어가 나오니? 흐흐흐.” 성은희다. 이 직장이 나가고 나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화여전(梨花女專)에 다니는 엘리트였다. 그런 그녀를 박자옥은 외면했다. “아 어째서 훌쩍거려? 훌쩍거리길. 등이 따사롭기만 하면 뭐하냐고 해대는 것들이 바보지. 흐흐흐.” 그녀가 히히 거리며 웃는 바람에 축음기의 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순간 두 여자는 은희를 째려본다. 왜 자기네 방에 들어와서 있던 감흥을 떨어뜨리려 드느냐는 식으로. 그러나 성은희는 화통한 성격답게 웃어 재끼며 슬쩍 넘어가려한다. 별꼴 다 본다는 듯이 대하는 그녀를 두 여자는 말없이 한심한 태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간회가 조직된 이후에 사회주의에 물든 청년들은 일제히 기세가 등등해졌다. 윌리엄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서구의 문물에 물든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하루빨리 연평의 청년단에 탈퇴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때문에 연평은 큰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단을 맡은 수장으로서 이를 해결할 방법이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힘들 따름이었다. 아버지 안대치에게도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으나 천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의 깊은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일일이 청년들에게 설득을 하고 잔류(殘留)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하는데도 요지부동하니 연평이 자신으로서는 한심하고 통탄할 뿐이다. 국운이 기울어져 망해가는 판에 단지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을 들어 제 잇속만을 챙기려 드니 차라리 청년단장 직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할 따름이었다. 허나 이 속마음을 꿰뚫듯이 아는 이가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출가했던 옛 청년단원인 은백(恩魄) 스님이었다. 그 스님은 비록 출가하여 청년단원으로서 살 수 없게 되었으나 마음만은 항상 청년단원으로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주위에서는 그런 그를 만류하기도 했으나 제 집이 망하고 하여 딱히 머물 곳도 없고 또 청년들에게 공연한 신세를 지기가 싫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겠다고 하여 과감히 물러났다. 그런 은백 스님에게 불가에 귀의하라고 권한 이는 실은즉 공의(恭義) 대사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세상에 있으면 업보가 더할 것이니 서둘러 절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공의대사는 나라가 망하자 일본의 불교와 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과감히 거부하고 산간에 들어가 칩거하였다. 그러다가 십년이 가까워져서야 산에 내려와 만세운동에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있는 재산을 털어 광릉(光陵) 인근의 봉선사(奉先寺)에 희사(喜捨)하고 그곳에 기거하여 불자들에게 강론하여 많은 신뢰를 쌓았다. 그런 그에게 제자가 되게 해줄 것을 청하여 승려가 되었던 것이다. 은백 스님이 서울로 오게 된 것은 그제 밤이었다. “허허허허, 혈기가 방장하여 앞뒤를 가릴 줄도 몰랐었구먼.”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은백이 연평의 비위를 맞추어보려 하자 연평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예 자네같이 신중한 사람을 내치려고 벼르고 있을는지도 모르지. 어르신이 졸지에 대지주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혁명을 일으켜보려는 속셈이겠지.” 은백은 다시 말을 이었다. “기미년에 만세운동이 터지고 나서 이때가 기회다 해서 사회주의 단체들을 우후죽순 세웠지만 왜경들에게 짓밟혀 지하운동을 벌인 거겠지. 해서 비공식적인 활동을 벌이려다보니 자신들의 입지가 비좁아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래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인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서 제 입장을 같이 하는 인사들을 발견하고 옳다구나 하고 덤벼들었던 게지. 그래서 민흥회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의 단체들에 사회주의자들이 들어왔던 게야. 그래서 민족유일당이란 기치를 내세운 신간회에도 손을 대는 게지.” 연평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기는 저들이 몇 차례 공산당 조직을 하려고 벼른 적이 있었다. 그랬지만 공식적인 곳이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검열을 하려 드는 총독부 당국의 눈길을 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일은 두고두고 청년단에로 손을 뻗히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기는 하겠어. 자네가 절간에 꼭 갇히는 줄로만 알았지.” 의외의 태도를 보인 은백에게 공연히 연평은 저들 속셈을 알지 못하는 부끄럼을 드러내었다. “마냥 갇힌 것은 아닌지도 모르지. 그러잖아도 공의스님한테 여러 차례 접근을 해왔으니까 말이지.” 웃으며 은백이 말했다. "그나저나 대사님께서는 안 계시네." 연평이 공의대사를 찾는 모양을 보이자 웃으며, "서울로 가셨네." "응?" "총독부에서 대사님을 뵈옵고자 하니." "그러면 왜놈의 앞잡이가 되시려는?" 놀라는 연평에게 은백스님은 주의주려는 듯 쉿 한다. 그리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조선 불교계의 원로 격이시니 하는 수 없이 극진하게 모시려는 속셈이겠지." 특유의 웃음으로 연평의 불안한 심리를 달래는 은백이었다. 연평과 은백이 절간에 있는 동안, 청년단 임원들은 청년회보를 만들고자 고심을 하였다. 그 와중에 양종수(梁鐘洙)가 머리를 싸매어 글을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흥, 자네 창작의 고통이 시작되나 보구먼." 코웃음을 치며 놀려대는 이는 노상현이었다. 그 곁에서 이수철은 담배를 태워대고 있었다. "자네는 하루 안에 작품을 쓰지 못할 걸세." 양종수의 맞은편에서 호언장담하듯 대하는 황충포의 비아냥거림에 눈을 가늘게 뜬 채 째려보던 양종수가, "가만히 있게, 좀!" 공연하게 짜증을 내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동인지를 하나 만들어야 말이지." 동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노상현의 말에 가시가 있음을 안, 종수는 이내 자포자기하듯 소파에 드러눕는다. "안 회장이 내일 중에 회보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어쩌겠나. 차라리 나중에 우리끼리 동인지나 하나 만들어내지 뭐. 기왕지사 안 회장에게 설득도 해보아야 되지 않나?" 그러잖아도 연평을 대신해 편집인을 맡은 이수철이 다 태운 담배를 눌러끄며 포기할 것을 충동질하는 것이었다. 이에 짜증이 났는지 종수는 원고지를 갈기갈기 찢고 구겨서 내동댕이친다. "흐흐흐흐, 자네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그 누가 꺾으리오?" 노상현이 비아냥거리며 대하자 종수가 머리를 싸매어 괴로워한다.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길래 머리를 싸매는지 종내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충포가 곁에 지켜보다 못해 이렇게 말했다. "하 참,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건 분명하군. 그래 내가 직접 필사라도 할까?" 필사라도 한다는 말에 자존심이 팍 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무어라고 윽박지르기가 오히려 상할 지경이다. 만약 시국에 대한 글을 쓴다면 당국에서 두고볼 리가 없을 테고, 또 세태에 맞는 글을 쓰려고 하면 젊은 층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기 십상이니 어느 것이 된장이고 어느 것이 ×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지켜보다 못한 노상현이 "허허, 거, 자네 보기가 딱하구려. 면목이 없으이. 자, 자, 주저하지 말고 시라도 한 편 써주게." 그러자 마지못하다는 듯이 그래, 까짓 것 시 한 편을 쓰면 그만이겠지 하며 양종수는 시를 한 편 썼다. 그 시 한 편의 시작이 이렇게 써져 있다. 청록의 잎들이 푸르니 우리 젊은이들의 마음도 푸르리라. 그때 종수의 원고를 지켜보던 수철이 킬킬거리며 "이딴 글을 갖고 어데 내다 놓을 수 없겠구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차라리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쓰신 "님의 침묵"이란 시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느냐며 놀려댄다. 보다 못한 노상현이 원고를 그만 쓰라고 하며 원고지를 가져다 갈가리 찢어버린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이 갔습니다." 자신이 마치 음유시인인양 수철은 완벽하게 "님의 침묵"을 읊어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술 더 떠서 충포가 "복종"이라는 시를 읊조린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금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랴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두 사람이 마치 작당하듯 같은 시집을 읽었다고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괴로웠는지 종수는 화가 벌컥 나 제 앞에 놓인 책상을 내동댕이치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던 세 사람은 놀란 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지지리도 못한 녀석들이 청년회지를 만들어 놓는다는 사실이 더욱 한심할 따름이다. 게다가 자신이 문학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단정을 내세우는 친구들에 대한 섭섭함과 야속함이 만감해 마음이 심란한 터인데 그것을 부추기라도 하듯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양으로 충동질을 해댔으니 화가 나기는 당연한 이치였다. 화가 채 풀리기도 전에 종수가 문을 박차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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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http://www.1392.org/bbs?moim09: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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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