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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대표] <간행> 보덕문집(寶德文集) 19
* 소설혜공왕_小說惠恭王 소설혜공왕_小說惠恭王 金春秋(김춘추)가 三韓(삼한)을 평정한 뒤 어느새 이백년이 넘은 지금 이 순간. 6년 동안 다스리던 孝成王(효성왕)이 붕어하기 나흘 전. 金憲英(김헌영)의 집에 궁인 하나가 야심한 밤중에 들어왔다. “마마. 소인이 아뢰올 말이 있사옵니다.” 왕궁에서 소식이 전해오길, 왕의 병이 위중하다고 한다. 그때, “성상께서 얼마나 위중하시기에.” 하는 소리와 함께 김헌영이 炤德王后(소덕왕후)가 있는 月城(월성)에 다다르기도 전에, “전하―!” 하는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헌영은 효성왕의 생전 했던 말을 차마 잊지 못한다. 효성왕은 자신에게 후사가 없음을 근심하고는 동생 헌영을 불러들였다. 그것도 헌영이 자신을 태자로 삼겠다고 만천하에 公布(공포)하는 자리였다. 재작년에 태자를 두었으나 병약하여 나자마자 바로 죽었다. 그러한 뒤에 왕은 가급적이면 자손을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저는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효성왕의 마음을 모르는 소덕태후의 고집은 돌과도 같았다. “왕비를 하루바삐 취해야 자손을 돌봐야 합니다.” “저라고 그렇게 하지 못해서 이렇게 시달리는 겁니까. 저도 취할 만큼 취했습니다.” “그럼 繼妃(계비)를 두어야겠군요. 왕비는 폐하여놓고.” 그때 내관이, “전하 어의를” 어의를 부르고자 왕을 떠보았으나 왕이 크게 격하여 화를 내었다. “시끄럽다!” 그러나 신하들의 빗발치는 하소가 거침없이 왕의 의지를 깎아놓고 있었다. 태후는 그만 자리에 일어나 애써 자식을 외면한다. “전하, 어의를 속히 부르시옵소서. 옥체를 보전하시옵소서.” 그러자 다시 왕의 불호령이 내려졌다. “저놈을 당장 끌고 가라!” 며 왕은 물건이 집어지는 대로 내관을 향해 내동댕이친다. 전 밖에서는 태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비가 요란스럽게 내리던 때였다. “전하! 소인이 어찌 왕위를 이을 수 있겠다 하옵니까, 저는 왕위를 이을 수 없사옵나이다.” 왕의 곁에 있던 태후가, “주상의 감정이 격해져서야 어찌 오래 사신단 말씀입니까.” 하며 으름장을 놓으니, 신료들은 소덕태후의 진노가 하늘을 찔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의들은 잠자코 금상의 환후를 살피기 시작했다. 왕의 눈은 태자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일 중에 태자 내외를 불러들여야 겠습니다.” 하며 내관을 불러다 태자에게 잠저로 물러가라고 명을 내렸다. 하룻밤 취침을 한 왕이 태자를 불러내었다. 태자 헌영이 내외가 인사를 하니, 손사래를 치며, “앉게, 앉게들.” 바닥을 짚으며 앉으라고 시늉한다. “짐이 자네에게 선위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함이며 또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자 함이다. 한데 이 왕위를 버리고 극락에 가게 된다면 백성들은 그에 따라 굶어 죽으란 말이던가. 그러니 아우야. 이 형의 청을 들어다오.” 눈물어린 왕의 용안을 뵈오는 헌영은 차마 그 얼굴을 들어올려 볼 수도 없었다. “아우야, 이 형의 청을 부디 들어다주오.” 왕은 아우의 손을 꼬옥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왕은 붕어하여 효성왕이라 시호를 내렸다. 선왕의 빈전에서 태후는 태자를 불러다 이렇게 일렀다. “갑작스럽게 왕이 죽으니, 이제 아우인 태자가 왕위에 올라야할 것이다. 자네가 형의 제사를 맡게. 그리고 황상의 유교에 따라 동해바다에다 유골을 뿌려주도록 하게나.” 문무대왕이 동해바다에 자신의 시신을 뿌려준다면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노라고 유언하던 그 예에 따른 것이다. 이틀 뒤 태자는 왕위에 올랐다. 왕은 선왕을 효성(孝成)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하고, 선왕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을 것을 선언했다. 헌영이 그렇게 왕위에 올랐다. 이때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왕이 새로이 즉위했다는 것을 알리고자 책봉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당나라 조정에서는 그를 開府儀同三司使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充持節寧海軍事新羅王(개부의동삼사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충지절영해군사신라왕)이라 봉하니 왕이 감읍하지 마지 않았다. 하지만 당에 사대를 하는 왕의 태도에 못마땅하게 여겼다. “폐하, 어찌하여 당나라 조정에 사대를 한단 말입니까.” 이에 왕이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당나라가 있었기에 신라도 있다는 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오.” “허나 태종께서는 당나라에 항거를 하셨습니다.” “항거만을 하였다고 하면 이렇게 당나라에 사대를 하는 이유가 없지 않겠소이까? 그리하면 무엇보다 나라는 곧바로 망할 것이오.” 이런 왕의 태도는 곧바로 당나라의 관제를 그대로 본받는다는 방식으로 나아가고야 말았다. 특히 성골들은 들고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신라의 천년사직을 버리시고자 하시옵니까.” “사직을 버리다니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성골들은 당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윽박지르기에 이르렀다. 결국 왕의 분노를 사기에도 충분했다. 그러나 성골들의 의견에는 옳기도 했다. 신라는 그야말로 황제국으로 칭하지 않던가. 하지만 당나라에게 조공할 수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을 뿐이었다. 즉, 신라는 통일이 되었으나, 정부에 반기를 들을 수 있는 고구려와 백제 백성들이 신라의 관제를 받아들이는 데에 대해 오히려 반발을 살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으로 당나라의 관제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한 처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왕은 자신의 뜻을 고집하여 당나라의 관제를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윽고 왕의 말씀이 내려지니 신하들은 반발할 새도 없이 당나라의 관제를 본받아 신라의 관리제도를 정비해나갔다. 뒤이어 황상은 태후의 엄명으로 자신의 본부인인 김순정의 딸을 왕후 자리에서 내치게 되었다. 자신이 태후에게 짓밟힌 심경을 어이 말로 형언하랴. “아이구, 아씨도 얼굴이 고와라.” 경주 반월 한복판에 자리한 서불한 의충의 집에는 잔치 분위기가 풍겨오는 모양인지 만월의 방에서는 하인의 좋은 말소리가 들려온다. 만월의 혼사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에 의충이 직접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겠다고 장담하던 터인지라 신료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베풀었던 것이다. 한편 의충네 집 사랑방에서는 술자리가 절정에 달했다. “오늘 금상의 태도가 영 시원찮습니다.” “그럴테지. 신라가 아무리 통일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아직 차별이 심하기는 하니. 무어라 말할 수 있겠나.” 그러나 의충은 사실 성골의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은 정말로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태후의 간택으로 자신의 딸을 계비로 삼겠다고 이야기할 적에 처음에는 이에 반대를 하고 나섰어야 했다. 워낙에 진보적으로 나아가는 왕의 성미를 딸에게 왕비로 삼는 것 자체로는 안좋은 쪽으로 나아갈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리한 것인데. 불가피하게 왕비로 자신의 딸을 맞이하게 하니, 막대한 태후의 명을 거역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 왕비마마께선 언제쯤 궁으로 들어가신답니까?” “모레쯤에.” “금상께선 바쁘신가 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잔치가 무르익는다. 사실 정비인 삼모부인을 내쫓는데 큰 공헌을 세운 이가 이 의충이었다. 그 딸인 만월도 그에 못지 않기 때문에 권력을 쟁취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초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잇따라 하세함에 따라 사실상 성골의 대는 끊기고야 말았다. 그 연유를 빌미로 그들의 조카뻘이 되는 김춘추가 왕통을 이어 받았다. 김춘추가 고구려와 백제를 당나라의 도움으로 망하게 하여 삼국의 통일을 간신히 이루었다. 그러나 삼국은 실질상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나 망한 나라를 부흥케 하려는 반란이 잇따라 일어나고 그에 따라서 덩달아 북에서는 고구려 사람 대조영이 나라를 세우게 되니, 설상가상으로 신라는 고립무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수도를 옮기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렇기에 역대의 제왕들은 다른 곳으로 천도하고자 여러모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경덕왕 대에 이르러 그 폐단이 절정에 달하니, 덩달아 골품제의 폐단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이 의충과 같은 세력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혁파의 대상이자 또 왕권강화에 큰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만월과 왕의 국혼은 이루어졌다. 왕에게 후사가 없음을 한탄한 태후가 만월을 새로이 왕비로 맞이하니, "왕후는 항상 금상을 잘 보살펴야 할 것이오." 하며 왕의 선정을 돕기를 바랐다. 만월은 그저 절할 뿐. 왕비의 간택이 이루어졌으나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만월도 왕도 나이가 들어갔다. 게다가 갖가지 흉한 일들이 벌어지니 왕은 더욱 초조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국사에게 청을 넣어 아이를 낳을 방도를 얻도록 조언을 요구했다. 그러나 승려들에게 하나 같이 퇴짜만 맞을 뿐이었다. 왕은 상심에 잠겼다. 태후의 병환은 더욱 깊어지고 이듬해 초에 붕어하니, 왕이 통곡하여 하늘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며, 가을이 다가왔을 즈음 왕이 하루는 뜰러 나아갔다. 왕이 머물던 대궁을 벗어나 주작대로를 거쳐 월성 근처에 있는 안압지에 다다르니, 그곳 근처에 있는 월지궁에서 하루를 보내고자 했다. 곁에 있는 신하는 김양상이었다. "폐하." "왜 그러오." "이곳에 이르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순라할 겸 기탄없이 백성들의 말을 듣고자 함이오." 두 사람은 달리 말이 없었다. 사흘이 지나 나흘이 되는 동안 백성들의 비바리같은 하소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료들의 부정부패와 무리한 세금 징수, 그리고 그들에 의해 생겨난 자연재해와 백성들의 굶주림. 말로 다 표현해도 무리가 따를 만큼 왕에게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것이다. 하여 왕은 자식을 얻는데 손을 쓰지 않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이것이 곧 순라의 취지였다. 그런데 어떤 스님 하나가 그들이 머무는 곳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 스님을 왕이 아랫것을 시켜 불러들였다. "부질없기 짝없는 소승을 어찌하여 불러들이셨습니까." "내 그대에게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생각코자 이리 불러들였소. 그대에게 무슨 좋은 묘안이 있소이까." 왕이 묻자 승려는 거침없이, "노래를 지어바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오늘날 전해져 내려오던 <안민가>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듣고 왕이 흡족해하니 백성들에게 널리 불릴 수 있도록 신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전에 임명하였던 국사를 내치고 이 승려를 불러다 국사로 삼았다. 이 승려는 곧 월명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경덕왕이 다스리던 재위 기간에 중국에 본받고자 신라의 오래된 풍습에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설령 삼국을 통일하였다 해도 옛 백제나 고구려의 지명이 남은 지라 왕이 직접 나서서 중국식으로 지명들을 바꾸고자 했으며, 관계까지도 당나라의 관제도 본받고서는 신라의 골품제를 혁파하려 들었다. 그러자 성골에서 들고 일어났다. "이것은 자작지얼과 같습니다." 보수파의 이러한 반발로 왕의 의지를 막아보고자 했으나 속수무책으로 되돌아왔다. 신료들은 내전으로 뛰어들 것을 우려하여 왕이 양상으로 하여금 궁궐―월성―의 문을 굳게 닫게 하도록 했다. 그 결론은 왕의 뜻대로 중국식으로 지명과 관제를 개편하도록 할 것으로 하였더라. 왕의 이 일로 인해 신료들은 큰 고배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는 불혹에 가까웁건만 왕비는 어느덧 스물 다섯에 다다랐다. 재작년에 소덕태후가 죽고 나서는 만월왕후가 왕실의 어른이 되었으나 사실 왕이 그녀의 기개가 드셈을 들어 의충을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하늘이 이를 알고 있단 듯 의충이 죽고 말았다. 그러한 터로 왕은 한편으로는 안심했으나 후사가 급하다는 태후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되려 부담스러웠다. 이때 만월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하, 감축드리옵니다." 후비들의 축수를 받은 왕이 친히 어의를 불러들였다. 그것도 아주 은밀히. "왕비 품에 밴 아이는 누구 아이냐." 한번도 만월과 정을 통해보지 않은 터라 왕이 은밀히 불러들였다. "그, 그것이." "네 이놈!" 어의의 횡설수설에 왕이 대노했다. 만월은 왕의 예상대로 의충의 품행을 물려받은지라 심히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이팔에 김양상과 정을 통했다는 소문을 접해들어서 그에 대한 반감이 절정에 달했더랬다. 결국 어의가 이실직고했다. "그, 그러긴 합니다." 뒤이어, "사내더냐, 계집이더냐." 왕의 집요한 물음에 어의는 아연질색했다. "그, 그것이." "이놈!" "예, 맞사옵니다." 왕은 물러가라 말했다. 대사에게 청하여 뱃속의 아이를 사내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였다. 월명대사가 왕의 갑작스런 부탁에 거절했다. 그 연유를 물으니, "사내로 바뀐다면 장차 나라에 큰 화가 닥칠 것이옵니다." 대사의 입에서 거침없이 말이 나왔다. "물론 있기는 합니다." 왕의 기다림이 빗발같아 대사가 직접 기도를 드리겠노라 하고 자리를 떴다. "허나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저버릴 수 없사옵니다. 허나 기도를 드리옵니다. 전하께서는 이 나라에 화가 닥치더라도 이를 감수하여야 합니다. 그럴수록 아들을 얻으시겠나이까." 대사의 물음에도 왕은 굳건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왕비에게 태기가 있었다. 그 아이가 차차 뱃속에서 열두 달을 앞두고 한달 전에 일찍 태어났다. 소덕태후는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왕에게 잔치를 후하게 하자고 했다. 왕은 이 아이 앞길에 닥쳐올 위험천만한 일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리하라고 했다. 허나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사내이건대 하는 행동을 보아서는 계집아이와 같았다. "에그머니, 왕자마마가 왜 저렇지?" 하루는 왕자가 궁중 나인 몇과 놀고 있었다. 숨바꼭질 하는 꼴을 보니, 사내의 몸짓이 아닌 계집의 몸짓인 것이다. 이를 보던 지밀나인들은 당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그럴리야 있겠느냐." 소덕태후의 말에도 불구하고 궁중에서 일어나는 왕자의 이런 기괴한 행위가 일거수일투족 눈에 띄니 왕에게 가서 아뢰어 오는 말이라고는, "그냥 가만히 있게나." 였다. 그로부터 이년이 지나서도 왕자의 이 해괴한 행위는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신료들은 사내가 계집처럼 하는 행위를 대표적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여자가 입는 옷을 좋아한다든가, 또는 여자처럼 화장을 한다던가, 또는 다른 남자와 어울리고 싶지 않은지 걸핏하면 어떤 궁녀들을 불러다가 놀고 있는 것이 나라에 큰 누가 되지 않을까 하여 태후에게 다가가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태후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날 밤. 만월왕후의 거처에서 돌아오고서 몸이 곤하여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꿈에서 누군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은 무엇인고 하니 만월이가 앉아 있는 왕비 자리의 주인이었던 삼모의 모습이었다. "어머니." 쩌렁쩌렁 울리던 기괴한 소리에 태후는 소스라쳐 놀라 깼다. 헛꿈이려니 하던 차에 태후에게 찾아온 나인 하나가 왕자의 기괴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바로 아뢰니, 태후의 큰 호통이 하늘을 찔렀다. "사내가 치마를 입다니!" "그것 뿐만이 아니오라 궁녀들이 치장하는 것들이라면 해달라며 조르고 있더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그에 성이 차지가 않던지." 민망한 말을 하기가 꺼내기 어려운 나인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바로 말하거라." 태후가 이윽고 재촉을 하니, "마마, 그뿐만이 아니라. 사내의" "사내의 무엇을." "사내의 ××을 만지작거린다 하옵니다." 그러자 태후가 펄쩍 뛰기 시작한다. "뭣이!" 바로 태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고얀 일이!" 전에 며느리였던 왕비 삼모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태후는 그 꿈이 예삿 꿈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했다. 만월을 왕비로 삼게 했던 그가 아니던가. 태후의 진노하였다는 소식이 왕에게도 전해졌다. 왕은 이미 각오가 되었던 눈치다. "주상! 이를 어찌하면 좋소!" 태후가 나아가서 왕에게 하소를 하였다. 그러나 왕은, '어머니께서 자초하신 업보이니 소자가 어찌 감당하오리까.' 하며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만월을 새 왕비로 맞이하기 전에, 그러니까 삼모가 한이 서린 구중궁궐을 떠날 때 왕을 알현하였을 때가 떠올랐다. 자신은 후사를 이을 수 없다는 자책감으로 눈물을 뿌릴 날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왕비가 태연하게 왕을 알현하여 폐비가 되었음을 알려주니 물론 어머니의 성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반대했다. 하지만 여론은 기울게 마련인지라 하는 수없이 왕의 손으로 폐비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십년이 넘고 이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태자의 이상한 징후는 태후에게 큰 비극으로 나아가는 단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태후의 죽음은 다음날에 있었다. 태후는 태자의 기대가 지나친 까닭으로 화병에 몸져 누워 지병을 앓던 찰나 생을 마쳤다. 이제 왕이 직접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만월은 왕의 친정에 불만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바람이었을까 왕에게 병이 들었다. 태자가 장성하자 경덕왕의 서거가 전해졌다. 그 후 혜공왕은 정치의 상황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만월태후가 섭정하기에 이르렀다. 소덕태후 덕에 선왕의 계비 자리를 맡게 된 그는 떡두거비같은 자식을 얻었다. 그 아들에게 불운이 타고났다는 선인의 말을 듣고서는 그 즉시로 아랫것을 시켜 그 선인을 남몰래 찾아내어 죽이라는 말을 내뱉었을 정도로 안하무인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끈질긴 노력에도 하늘에서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금상의 나이 여덟살. 만월의 섭정은 이루어졌다. 한데 맙소사. 그녀에게도 애인이 있었다. 그 애인의 이름은 김양상. 그는 선왕인 경덕왕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귀족들 중 하나였다. 양상과 만월은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처럼 지낸 사이였다. 그리고 사랑에 눈 뜰 나이에는 혼사가 오고가곤 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만월과 양상은 군신의 관계로 자리해 있다. "그대를 부르고자 하는 이유는 내게 힘을 주려고 청한 까닭입니다." 만월이 자신의 의중을 알렸다. "태후마마, 힘이라 하시면." 양상이 머뭇거리듯 묻자, "그대의 군사를 주라는 것입니다. 지금 보다시피 조정의 안팎에서 우리 모자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태후는 그리한 뒤 나인 하나를 불러, "지금 당장 대신들을 소집하라." 명하니 이윽고 소집회의가 시작되었다. '졸지에 여주가 나셨구먼.' 신료들의 시선은 모두 옥좌에 앉은 태후에게 쏠렸다. "선왕이 훙서하신 뒤로 금상이 정사를 돌보지 못함을 통탄하지 마지 않는 바이오. 그러나 이는 아직 미령하다는 사정을 그대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가 직접 정사에 간여하여 당나라에 사신을 보낼 터이니 그리 알고 계시오." 태후는 당나라에 금상의 책봉례를 거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사신을 통해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물러난 성골 사람들이, "태후가 누구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야!" 하며 태후의 태도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아니래. 태후마마께서 사칭하게 생기셨으니." 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무리들의 말들을 들은 무사 하나가……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대감 나리. 소장이 왔습니다." 그가 간 곳은 지정의 집. 지정은 성골 출신의 신료였다. 그의 아버지는 경덕왕이 즉위하는데 주도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왕실로부터 신뢰를 받았으나 금상이 즉위하기 직전 만월부인의 오라버니들이 득세를 하자 이에 불만을 얻었던 터였다. 그런 찰나에 정치활동에 제약을 받은 것이다. "그래, 어찌 되었느냐." "태후가 양상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던고." "자신의 신변이 안전하지 못한 지라" "그래서 양상의 사병을 빌리고자 했단 말이냐." 그렇다는 대답을 들은 지정은 태후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만월의 섭정이 이루어 진지 넉달이 지나고 온갖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다. 백성들의 입에서는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의 다리가 다섯이라는 둥, 경주 동녘에 지진이 심하게 일어났다든가 하면 우박이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왕이 제대로 옹립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을 알고 속속이 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김옹이 일으킨 것인데 그때 ××군이 경주 반월성에 이르자 만월의 처소에서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게 되었다. "마마! 반란이 일어났사옵니다!" 만월이 자신의 거처에서 상궁의 보고를 접하고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니, "그, 그것이." 그 연유를 재촉하여 물었다. "상감마마를 폐한다는." 만월이, "뭐, 뭣이라! 우리 금상을 폐해!" 만월은 이를 갈았다. 반란의 주모자인 김옹은 운이 좋게 잡혀 태후의 앞에 끌려왔다. 지금 국문하고 있는 중이다. "김옹이, 자네는 선왕의 은혜를 저버리려는 속셈이렷다!" "네 이놈. 네놈의 아비를 잘 아느니라! 그놈은 천추의 한을 남겼다." "천추의 한이라니." "내 아들놈을 죽었느니라!" "아들을 죽여?" "당나라의 관제에 찬성하고자 한 사람이 김의충이어! 김의충!" 이를 악문 태후는, "그래서." "김의충은 ××이니라! ××이니라!" "당나라의 관제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나라의 역적이라 할 수 있는가." 하였으나 연신 김옹은, "내 아들을 죽인 김의충이 역적이다! 역적이니라!" 고 꾸짖어댔다. 다음날로 반월성 밖 저잣거리에서 김옹은 효수되었다. 이를 접해들은 지정도 덩달아 ××을 일으킬 준비를 갖추고자 했으니 지정과 먼 친척동생인 양상에게 걸려들고 말았다. "이보시오.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고서야 ××을 멈출 것이오." 양상의 만류에도 지정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 정녕.' 그러나 시국은 양상의 충고로부터 벗어날 정도로 어수선해졌다. 왕의 안위가 걱정이었던 신료들은 간곡히 경주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했으니 만월의 만만치 않은 반발에 실행되지 않았다. 이듬해에 잇따라 ××이 일어나고 말았다. 왕은 왕비를 두 명이나 두었다. 이것은 좌우의 화합을 위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왕의 바람은 아랑곳없이 궁궐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김양상은 마침내 그 피바람을 잠재울 것을 명분으로 삼아놓았다. 태후와 금상 모자가 궁궐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양상의 눈엔 연민으로 보이지 않았다. 왕을 하루빨리 폐하여 이 혼란스런 정국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그의 막중한 임무이기 때문이었다. '한낱 아녀자의 손으로 정사를 농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이것이 양상의 사고방식이었다. 양상의 눈앞에 만월과의 사랑을 떠올렸다. 만월과 양상은 모두 혼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집안이었었다. 그러나 경덕왕의 형이 옥좌에 오른 직후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 두 사람 각각의 신분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터에 만월과 양상은 양가가 서로 반대하는 바람에 사랑은 이룰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만월은 아버지의 권모술수에 길들여져 금상의 모후인 태후가 되었다. 한편으론 괘씸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일이라고 보았다. "마마―" 상궁들과 "마마―" 내관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궁궐로 들어왔다. 지금 지정이 구중궁궐에 난입해 난리를 부리고 있는 터였다. 양상의 발 아래는 쓰러진 시체들과 그 피가 낭자하였다. "으아―" 서로를 감쌀 새도 없이 이리저리 제 영신에 급급하여 피해다니는 모습을 보던 양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얼굴들을 바라보고 이렇게 다짐한다. '역적의 수괴를 찾으리라!' 역적의 수괴가 날이 동이 틀 무렵에서야 부하 셋과 함께 잡혀왔다. 양상은 그들의 면면을 독수리의 눈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이 역모를 꾀하였느냐." 네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나 지정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하늘이 뜻을 주었기에 반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양상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 있었다. 하늘같은 임금을 섬길 궁인들과 내관들이 저마다 자신의 몸을 감추는데 급급한 나머지 왕을 보호할 명분을 잃어버린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왜 그들은 왕을 호위하지 않았는가. 결국 나라의 근간을 부정하는 격이 아니던가. 왕을 폐위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지닌 세력이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민심은 천심인지라 혼란으로 요동을 치고 있고, 나라가 망해감을 의미하고 있었다. "하늘이 네놈들에게 어떻게 반란을 도모하도록 하였느냐!" "암탉(만월부인)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구절이 있거늘." 순간 양상의 머리가 아찔하였다. 만월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네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그때 만월을 보호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게 된 양상은 날이 밝은 대로 지정을 수괴로 삼아 처형했다. 그의 수급은 저잣거리에 걸렸다. 이후 조정에서는 태후의 섭정을 거두는 것과 왕을 폐해야만 하는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신료들은 서로의 뜻을 표명하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이들은 서로 반란을 계획하였다. 하는 수없이 양상이 총대를 매야 했다. 양상의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날려와, "서방님. 이 어찌된 일입니까." 하며 그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났소. 내 그 대의를 지키고자 하니 부인은 나서지 마시오." "그러면 신료들을 죽이십시오." 부인의 말에 양상의 눈은 의아해한다. "그러고 나서 만월을 죽이십시오." 이에 양상은 부인의 태도에 기특함을 느꼈다. 그러나 옛 애인을 죽여야만 한다는 대의를 거스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양상이 거느린 군대는 반월성에 다다랐다. 왕의 폐위를 공식으로 선포했다. 백성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때 이 소식은 왕궁에까지 전해졌다. "네 이놈! 누가 내 아들을 폐한단 말이냐!" 태후가 엄포를 내렸다. "어서 폐주를 찾아내라." 양상의 지시에 병사들은 구석구석 왕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금상은 왕비 둘과 숨죽인 채 편전 병풍 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에 끌려나오는 쥐 모양으로 왕비 둘과 끌려온 금상은, "어마마마―" 하며 소 울음소리로 태후를 불러댔다. "황사앙―!" 만월이 불러짖었다. 그러나 금상의 울부짖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순간 두 명의 왕비가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문풍지에 두 왕비는 피를 뿜어내어 적셨다. 주위의 궁녀들은 불안에 사로잡혔다. 자신들도 곧 죽임을 당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상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그의 바른손엔 금상의 수급이 들려져 있었다. "전하―!" 궁녀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만월은 자신의 처소에 들어선 양상에게 다가가 그 가슴팍을 쥐어 잡았다. "네 이노움!" "네놈이 우리 황상을 죽였느냐!" 그러자, "그렇소. 나는 폐주를 죽였소." 이때 만월은 어금니를 깨문 채 양상의 뺨을 내리쳤다. "양상이 네 이놈!" 만월의 앙칼진 소리가 시작되었다. "네놈이 기어이 선왕의 뜻을 저버리는 수작이더냐! 양상이 네 이놈!" "소신은 그저 대의를 따랐을 뿐이외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만월은 양상을 노려봤다. "옥새는 어디 있소!" 부하의 외침에 양상은 눈치 챘다. 마침 만월의 처소에서는 옥새가 있었다. "네놈이 어느 안전으로 옥새를 찾느냐!" 으르렁대는 만월을 부하 장수가 칼을 꺼내들어 그녀를 겨누었다. "그만." 손으로 저지한 양상은, "옥새를 어서 내놓으시오." 그러자 그 부하 장수가, "이분은 새로운 군주시오!" 하였다. 만월은, "오오나, 네놈이 황상이더냐! 네 이놈! 그리는 못한다!" 만월의 울부짖음에 온 구중궁궐은 두루 메아리를 쳐댔다. 그녀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태후전의 사내들 뿐. 아무도 없었다. "내 그대를 태황태후에 앉힐 수 있소. 허나 만일 내뜻을 거역한다면 죽음이 따를 줄이나 아시오." 이때 만월이 웃었다. 비웃었다. "하하하하. 내 그까짓 죽음이 두려우랴!" 양상의 얼굴에 침뱉은 만월. "그러면." 만월을 보던 그이의 눈에선 배신감이 드러났다. "여봐라." 그는 만월의 마지막 모습에 눈을 떼지 않았다. "이년을 죽여라!" 그리고, "이분을 곱게 보내셔야 하느니라." 명하고 돌아선 채 만월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다. 나머지 장수 둘은 약사발과 약통을 대령해오고, 양상의 곁에 있던 두 장수는 그녀의 몸을 에워쌌다. "네 이놈! 무엄하구나, 놓아라!" 그러나 드디어 죽은 것이 두려운 듯 자신의 원죄를 부정하듯 몸부림을 친다. "놔라 이놈아!" "놔라― 놓아라―!" 양상은 등을 돌려 태후전을 바라보았다. "양상아―" 뒤이어, "양상 도려엉―" 애써 부정하였다. 그러나, "양상― 도령―" 만월의 마지막 외침은 그의 귓가를 울렸다. 그 뒤에 고요하다. 양상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만월은 이미 약 한사발을 먹고 저세상에 갔다. 그녀의 눈은 애원으로 넘쳤다. '양상 도령' 양상은 혜공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김춘추 이래 진골의 왕통은 끊어지고 말았다. 만월도 그 그림자를 따라 갔다. 양상은 왕위에 올라 성덕왕에 올라 선왕의 시호를 혜공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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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http://www.1392.org/bbs?moim09: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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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