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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파란 3화
제5막
차를 마시고 있는 동안, 그러니까 그녀가 죽기 1년 전에 내게 자신의 치부를 전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부터 앞서 말한 그대로 차근차근 덤덤하게 대한 어조를 멈추어 약간 머뭇거리듯 하더니,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우.”
사건은 사일구가 일어나기 1년 전에 있었다. 아이를 낳은 지 1년 뒤의 일이었다. 기왕지사 한씨 집안에 대를 이었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창렬의 말에 세주는 제 몫은 다 마쳤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 생각이 와장창 깨지는 유리창처럼 깨지고 말았다.
“내 아이 내놔!”
웬 젊은 사내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내 아이 내놔!”
연신 내뱉은 말에 시어머니는 물론이고 한 회장도 고개를 떨구었다. 간만에 얻은 손자이건만 어느 놈이 고래등같은 세도를 누리는 한씨 집에 반기를 드느냐. 하는 분위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풍채가 좋은 시아버지도 그만큼은 더 참을 수 없었는지 내쫓으라고 엄명을 내렸다. 웬 개가 짖는 모양이다. 하며 시아버지는 덤덤히 밥을 먹고 있었다. 하필 아침 식사 때 이런 봉변을 당했으니 있던 밥맛도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내 아이 내놔! 이놈들아! 네놈들이 아무리 세도를 누린다고 해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못 들었냐! 네놈들이 세도가 있고 정치에 나갈 수 있어도 내가 간신히 공들여 낳아주면 엄연히 내가 아빠가 되지 않느냐. 아빠 되는 놈인 내가 내 공들인 자식을 본다는데 어느 안전이라고 버티고 들며 보지 못하게 하느냐!”
그러나 회장의 엄명을 받으며 밖으로 나가 그 남자를 말리며,
“물러나시지요.”
“이놈아! 내가 내 자식을 본다는데 어느 안전이라고 막아, 안 놔? 네놈들이 돈만 내놓는다고 존말로 순순히 물러날 것 같아?”
“회장님께서 매우 심기가 불편해하십니다.”
“그래, 그 하늘같은 회장님 낯짝만 보기 전에는 한발 짝도 못 물러나!”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비서와 남자 간의 몸싸움이 연신 벌어졌다. 그 몸싸움은 해질녘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때마침 날이 공휴일이었던지라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개가 컹컹 짖는 깊은 밤인데도 여지껏 물러날 생각을 않자 창렬은 징한 놈이라고 욕질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그 남자는 제풀에 지쳐 어디 갔는지 기척이 없었다. 그때 세주는 비로소 남자가 자기 집으로 갔다는 것으로 알고 가볍게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제6막
그러나 한씨 집안은 사일구가 일어난 직후부터 급속도로 세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낯선 남자의 저주가 이루어진 탓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세도는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회장은 자신이 일군 재벌을 버리기 아까워하여 주위에 비자금이라도 마련하기 위하여 동분서주를 하던 중에 교통사고로 돌연 사망하였다. 이에 한창렬이 그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았고, 세주도 그 안주인이 되어 그룹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군림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후실 격인 제 시어머니가 버티고 있어서 딱히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물정을 모른 탓도 있기도 했다. 하여 자식을 키우는데에만 집중을 하였다. 이에 자식은 별 무리 없이 자라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흠이 생기고 말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한창렬은 재벌을 다시 일으켜 회장 자리에 올라 늘그막을 보낼 즈음이었다. 세주는 같이 나이든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성적이 우수하여 매 학년마다 우등생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며 세주는 아들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내가 배 아픈 채로 낳은 자식이 이렇게 든든하게 자라주다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정작 그 아들은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았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신을 대할 때 항상 깐깐한 성격 탓에 일종의 결벽에 가까운 태도로 자식을 훈육하였다. 가령, 친구들과 같이 놀러가고 할 때 무식한 잡것들하고 무엇 하러 어울리느냐 하며 투덜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무슨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나 갈라 치면 지금 통금시간 되어 가는데 왜 늦게 오느냐 하는 식으로 나무라며 회초리를 들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뺨을 갈구기도 해 세주를 당혹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갑작스런 창렬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의문을 풀기도 전에 창렬은 공식으로 아들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기 어렵다는 것을 내비쳤다. 이유가 무어냐고 물어볼 새 없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기에 세주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앞길이 캄캄할 뿐이었다. 눈 먼 사람처럼 세주는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어야 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보다 더한 삶이었다.
사사건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간병을 들어야 하는 통에 시어머니의 도에 지나친 구박은 세주의 삶을 순식간에 가시밭길로 내모는 꼴이 되고 있었다.
“창녀 같은 년.”
비아냥거리는 시어머니의 말에 세주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오직 복종을 해야만 했기에 그리 했을 뿐인데 말을 주고 되로 받는다는 말이 있듯이 제 뜻대로 하다가 되려 자신을 책임의 소지를 가진 사람으로 내몬 모습에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가정이라는 개념이 이 집단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깨우쳤을 때 박탈감이 앞섰다.
“시어머니와 남편 두 사람 다 나를 전혀 남남처럼 창녀로 대하려고 들었어요. 순간 공든 탑이 무너진 순간이라는 걸 알고는 앞길이 참으로 캄캄했어요. 내가 눈이 더 멀었더라면 이 험한 세상을 다 보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을 텐데 하면서.”
끊임없는 시어머니의 구박에 세주는 하루빨리 집을 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은 것을 단지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 한 많은 시집살이를 겪다보니 있는 원망 없는 원망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 남편과도 종종 이 문제를 가지고 의논하려고 했으나 무성의한 남편의 태도에 환멸을 느껴 언성이 잦아질 때도 많았다. 심지어는 극단적으로 부부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부모의 다툼은 소년을 궁지로 내모는 결과로 자초하고 말았다. 싸움이 벌어질 때 남편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질질 끌고 가더니 비서를 성난 소리로 불러들여 별장으로 불러들였다.
이것이 두 번째 열쇠였다. 자물쇠는 두 개가 있었던 셈이다.
그 실마리를 별장에서 찾을 줄은 세주는 몰랐다. 세주를 별장으로 끌고 가 그녀를 침대에 내동댕이치더니 남편이 그 자리를 덮쳐 겁간(劫姦)할 것처럼 덤비는 것이었다. 사자 수컷이 먹잇감을 노리다가 잡아먹으려는 몸부림과 같이 먹잇감이나 다를 게 없는 세주를 덤비는 것이었다. 꺄아악― 그 소리를 내질러보았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발정은 되었으나 무언가 쾌감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끝끝내 그 자취를 남기지는 못했다. 불구자임에는 분명하였다.
“그래, 이래도 모르시겠다아?”
지쳐버린 세주를 바닥을 질질 끌어가듯 끌고 간 곳은 구석진 창고였다. 계단에 굴려가며 끌려간 그곳에서 보지 못할 꼴을 보고야 말았다.
“자, 봐봐. 이것들이 다 어떤 것인지 알겠지?”
미치광이처럼 으르렁 거리며 세주의 고개를 제껴 올렸다.
보아하니 비명이 나지 않을 수 없이 흉측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그 동안 관계를 맺어온 남자들의 수급이었다. 몸뚱이는 별장 뒤의 야산에 암매장되어 구천을 맴돌았던 것이다. 이것은 훗날 경찰들이 밝힌 조사결과였다.
어쨌든 남자들의 수급을 보니 파렴치를 넘어서 악마(惡魔)였다. 아니 인간의 탈을 쓴 사악한 짐승 마귀였다. 어떻게 해서 이들을 죽이기까지 했을까. 잔학무도한 행태를 보고 세주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 내막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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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http://www.1392.org/bbs?moim09: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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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