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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화광] 저의 독서 이력 - 1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소학 과정을 마친게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국민학교 입학 전이라고 하더군요. 안동이라는 곳이 작은 고을은 아니었을 때였지만 큰 고을 중에서도 으뜸인 서울에서 가르쳐야 할 놈에 뽑혀서 이런 내력으로 인해 저는 국민학교부터는 서울에서 다니게 되었답니다. 서울에 와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사서오경은 물론이고 그 외의 다른 서적들에 대한 별도의 교육과 학습은 계속되었었지요. 문중의 방침이기도 했지만 제가 원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리 또래의 제 고향 사람 중에는 저처럼 학교 공부와 병행해서 소위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답니다. 요즘 말로하는 전공과 관련없이 말이죠. 어쩌면 제 진짜 전공은 유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학이라는 것은 정독과 암기를 기본 학습법으로 삼는답니다. 절대로 자의적이거나 임의적인, 혹은 파격적인 해석은 용납하지 않는답니다. 그대로 배우고 따르고 행하여야 할 뿐 이라는 얘기지요. 이렇게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리타분하게 느끼거나 진부하게만 받아 들이고 이해하더군요. 하지만 아니랍니다. 그대로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하고, 행해야 한다고 해서 자율과 개성과 독립을 무시한 획일적이고 교조적인 주입식 교육만이 행해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적어도 제가 배운 바로는 말이지요. 사서오경의 한구절을 배워 익히고 또 그 다음 구절을 배우기 위해서는 닥치는대로 주위의 모든 책을 무조건 읽어야 했답니다. "天"자를 써놓으시고는 "이게 뭐꼬?" 하고 묻습니다. "예, 하늘 천자입니다." "그래, 그럼 하늘이 뭐꼬?" "예, 하늘은 ~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을 때 제가 한 하늘에 대한 대답은 벌써 몇 달, 혹은 몇 년째 계속 이어 온 문답 중에 이미 그전에 답했던 것과 같은 대답이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이미 그 하늘은 그때의 하늘, 지나간 하늘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날의 제 답이 이미 언젠가 했던 답과 같은 것이면 지금의 하늘을 말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저는 진부하고 게으르고 안주하려는 "썩을 놈"이 되어 회초리를 맞아야 했습니다. 머물거나 고이면 "썩을" 일 외에는 없으므로 저는 "썩을 놈"이 되는 것이지요. 언제 스승님께서 "하늘 天"과 "땅 地"와 "사람 人"을 물어볼 지 몰랐기 때문에 하지만 반드시 이 세 글자 중에 한 글자의 뜻을 물어볼 것이기 때문에 그럴 때면 저는 또 새로워야 하는 그 뜻을 말해야 했기 때문에 하늘과 땅과 사람의 새로운 뜻을 답하기 위해서 책이라는 책은 닥치는대로 읽어야 했고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정신을 집중하여야 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일 년, 이 년... 십여 년의 세월이 가는 동안에 저의 하늘과 땅과 사람은 스승님께서 물어 보고 고개를 끄덕인 횟수만큼의 그 횟수에 다다를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읽어야 했던 책의 권 수만큼의 머리를 싸매고 답할 거리을 찾아야 했던 고민 횟수만큼의 하늘이 되었고 땅이 되었으며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비의 하늘은 그래야 하고 선비의 땅은 그래야 하며 선비의 사람은 그래야 하니까요. 그만큼의 하늘과 땅과 사람을 품고 있어야만 비로소 선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니까요. "썩은 놈"은 결코 선비일 수 없는 것이니 선비가 되고자 하는 놈은 결코 "썩을 놈"이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부단히 노력하고 부단히 정진하여 늘 "현재"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 쉰 만큼 "과거"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 이치이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도저히 "현재"에 머물거나 이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과거"의 사람이 "현재"의 사람인 양 행세하는 것은 시간이라는 절대 개념을 무시하는 것이고 그들이 지도자가 되어 사회를 지도한다면 그 사회는 "과거"의 사회가 되어 버리니까요. 다른 말로 "후진 사회(後進 社會)"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요. "썩은 놈"이 지도하는 "후진 사회"에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이 되어 버리니까요. 이크, 쓰다보니 길어져 한 편의 글로 마감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제목에다가 "1"이라는 표시를 합니다. 계속해서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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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광
김시습(金時習)
텅 비어 있으면 아름답고 고요합니다 
http://www.1392.org/bbs?moim08: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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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data/board/member/img/1/i_6544396b19.gif "[1]")
홍봉한 622('13)-11-1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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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셨다니, 새삼 저와는 다른 세상에 사시는 분 같이 느껴집니다. 때문에 낯설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평벙한 집에 태어나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처지라서.. ㅎㅎ 이렇게 김시습 님의 글을 보면서 색다른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할 수 있다는 것에 즐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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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진진
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