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정호용
작성일 개국610(2001)년 9월 2일 (일) 17:07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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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추.위] 고전문학이란 무엇인가?

 

안녕하십니까.
제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 봅니다마는 일단 고전 문학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다음 가사를 감상해 보시지요? ^^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大平盛代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위 증즐가 大平盛代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 올셰라
위 증즐가 大平盛代

셜온님 보내옵노니 나는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 나는
위 증즐가 大平盛代


위의 곡은 가시리라는 곡 입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들어 잘 알고 계실것입니다...

이 노래는 귀호곡(歸呼曲)이라는 곡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고려 가요입니다. 전 4연의 민요풍의 노래로 이별하는 여인의 한 맺힌 마음을 노래하고 있어, 우리 민요의 대명사라 할 '아리랑'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이별의 노래는 황진이의 시조를 거쳐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까지 맥이 닿는다고 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정한을 잘 표현한 노래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고려 가요인 '서경별곡'과 비견(比肩)되기도 한답니다.

가시리는 간결, 소박하면서도 가슴을 에는 듯한 감동의 이별가로서 '서경별곡'과는 또 다른 정조를 보여 줍니다. 즉 아프고 쓰라린 이별의 심정이 절묘하게 그려져 다른 고려 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미를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이 노래의 빈틈없는 짜임과 사려(思慮) 깊은 작자의 마음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4연의 '셜온님 보내옵노니 나는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는 자기 자신을 서럽게 만드는 임에게 간절히 하소연하는 말이기도 하고, 무언가 드러나 있지 않은 곡절 때문에 서럽게 떠나는 임이기에 붙잡지 못하고 당부하는 도리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노래는 짧은 형식에서 별한(別恨)을 여지없이 노래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현대어 풀이 >>>

가시려오 가시려 하오
나를 버리고 가시려 하오

나더러는 어찌 살라고
버리고 가시려 하오

잡아 두고 싶건만은
그대 서운해지면 아니올까 두려워

슬픈 임 보내드리오니
가시자마자 돌아 오소서

자~! 어떳습니까.

이 가시리는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어쨌든 이렇게 고전문학은 우리들로 하여금 시적 정서감을 갖게 해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때론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고전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


고전문학은 말 그대로 古, 典, 文, 學 입니다...

즉, 고전주의의 문학인 것입니다... 고전적으로 전하여 온 문학 작품이라고 할수 있지요...^^

한마디로, 옛 날에 우리 선조님들이 부르던 노래나, 먹을 갈아 쓰던 글씨 등이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 그럼...아래에 한 두편의 시를 감상하고, 고전 문학의 기초 개념은 여기서 일단은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전 문학에 관심이 많은 백성들은 아래 링크된 주소로 가 보기기를 바랍니다...^^

http://www.textkorea.com/classic/index.htm (고전문헌관)

 

눈 마자 휘어진 대를......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 고절(歲寒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대나무는 우리나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 집중 분포하는 온·난대성 식물이지만, 한 대성 식물처럼 한 겨울에도 그 잎이 말라죽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에도 곧은 모양과 푸른 빛깔을 잃지 않는 식물이기 때문에 이 노래에서와 같이 대나무는 세한 고절(歲寒高節)로, 혹은 군자(君子)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휘어진 대나무는 곧음을 상실한 모양이다. 그러나 작중 화자는 대나무가 눈을 맞아 휘어졌다 하더라도 그 곧음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눈 속에서도 푸른 빛깔이 변치 않음은 휘어짐이 현상적이고 일시적인 굽음을 의미할 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중 화자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대나무만이 유일하게 세한 고절의 속성을 지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 기대면 세한 고절이라 하면 소나무와 잣나무를 떠올리게 된다. 굳이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凋也)"라는 구절을 되뇌지 않더라도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 대부분이 세한 고절의 속성을 지녔음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나무들 가운데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자주 언급되었던 것은 이 두 나무가 하(夏)나라와 은(殷, 상(商))나라에서 신주(神主)로 사용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자는 소나무나 잣나무가 아닌, 대나무가 유일하게 세한 고절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이 작품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자연물을 통해 세한 고절의 인간적 가치를 드러내려고 하였다면 작가는 하필 왜 대나무를 선택하였을까?
   이런 의문과 관련하여 우리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라는 작품에도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라는 구절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이 고려가 원나라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배를 받기 시작한 원종(元宗) 11년을 전후한 시기(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한 직후)에 생성된 작품으로 추정한 바 있는데, 이 시기 고려의 영토는 동녕부(東寧府)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서 관할하는 지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바로 이 지역이 대나무가 생장할 수 있는 북방 한계선 너머에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이 고려에서 분리 이탈해간 만큼 고려의 통치 질서는 이 지역을 배제하는 방향에서 새로이 수립되어야 하였을 것인 바, <만전춘별사>는 바로 그렇게 수립될 통치 질서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확대하면, 이 작품에서 소나무나 잣나무 대신에 대나무가 등장하는 사실에서 특별한 의미를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원천석(元天錫)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조선 왕조의 계국(啓國)과 함께 원주(原州)에 은거한 까닭에 기왕의 학자들 가운데에는 이 작품에서 "눈"이 내린 자연적 상황을 조선 왕조가 계국되는 역사적 상황 곧 고려 왕조가 멸망하는 역사적 상황의 비유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작품에서 회고(懷古)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지만, "눈"이 내리는 상황을 그렇게 파악할 근거는 찾기 어렵다. 얼음도 그렇거니와 눈은 북방의 찬 기운이 남하할 때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얼음이 얼거나 눈이 내린 자연적 상황은 북방 세력이 강성해진 역사적 상황의 비유적 표현으로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시기에 원천석은 고려 왕조를 섬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원나라와 사대관계를 맺고 있던 고려 왕조를 섬기고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역성 혁명에 적극 가담하고 또 왕조의 영토를 압록강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지역까지 확대하는 데 공헌한 유자(儒者)의 관점에서 볼 때 원천척은 올곧음을 상실한 인물로 인식될 수 있다. 이 작품의 초장은 바로 그와 같은 인식에 대한 부정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원천석은 태종의 스승이기도 하여 새 왕조에서 누구보다 쉽게 권력을 가질 수 있었으나 벼슬살이보다는 치악산에 은거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가 정몽주(鄭夢周), 서견(徐甄)이나 길재(吉再)와 같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윤리를 실천한 인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새 왕조가 들어선 이후 줄곧 은거 생활을 하였음은 분명하지만 원천석은 제 발로 태종을 찾아뵈었기 때문이다. 유자는 당대의 조건에 부합하는 통치의 방향과 원리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만일 원천석이 확대된 지역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이성계(李成桂→조선 태조)의 집권을 계기로 은거의 길을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의 은거는 고려왕조에 대한 충정을 저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역을 통합하는 통치 원리를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더 합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또다른 노래("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五百年)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더라")도 길재(吉再)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같이 ''회고가(懷古歌)''로 묶이면서도 적잖은 의미 차이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흥하고 망하는 데 정해진 운수(運數)가 있다는 생각, 이런 생각은 고려의 멸망이나 새 왕조의 계국(啓國)은 모두 정해진 운수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적 전환기에 선 원천석의 고민은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은거의 길을 선택한 이들의 그것과 공통된 점도 있지만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차이를 감안하여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劒)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장백산(長白山)에 기(旗)를 꽂고 두만강(豆滿江)에 말을 씻겨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어떠타 능연각상(凌烟閣上) 뉘 얼굴을 그릴꼬

두 편의 노래 모두 김종서(金宗瑞)가 지은 것이다. 능연각(凌烟閣, 凌煙閣)은 기린각(麒麟閣)과 마찬가지로 궁중 안에 국가 공신의 초상을 그려 놓고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표창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기린각은 한나라 무제(武帝)가 기린(麒麟)을 잡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집이었는데, 선제(宣帝)가 이 집에 11공신(功臣)의 초상을 그리면서부터 국가 공신을 기리고 표창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당나라 태종 또한 한나라의 전례를 일정하게 답습하여 능연각을 짓고 24인의 국가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놓아 그들의 공훈을 기렸다. 당연히 기린각이나 능연각에 초상이 그려진 사람은 국가 공신의 반열에 들 뿐 아니라 신하로서 최고의 영예를 갖는다. 장백산∼은 여진을 정벌하고 6진을 설치하는 일에 앞장섰던 김종서의 호기(豪氣)로움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장백산에 깃발을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기는 행위는 오랑캐 여진족을 그 바깥으로 내몰았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동시에 그 너머의 세계까지를 정벌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 무제는 물론 당나라 태종 또한 무력을 앞세운 화(華)로써 본질적으로 무력적인 이(夷)를 정벌함으로써 천하에 단일한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능연각에 초상이 그려진 인물은 더 따지고 보면 화의 질서를 동요시키거나 무너뜨리기도 한 오랑캐를 진압하는 데 공훈을 세운 인물이었던 셈이다. 능연각상 뉘 얼골을 그릴꼬?라는 의문은 장백산과 두만강 너머의 오랑캐까지를 무력으로 제어하고 천하에 화의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김종서의 사상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상과 의지는 호기(豪氣)에 가까운 것일 수 있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나 전쟁은 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또 화(華)와 이(夷)가 공존하는 길도 있고, 무력이 아닌 문(文)으로써 이(夷)를 화(華)에 동화(同化)시키는 길도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볼 때 중화국을 자처하면서 오랑캐를 무력으로 통합하려고 했던 국가가 바로 그 오랑캐의 무력에 의해 몰락한 사례는 한 둘이 아니었다.
   김종서의 호기(豪氣)로움은 삭풍(朔風)은∼을 통해서도 가히 짐작된다. 삭풍은 북풍이고, 북풍은 북방 곧 오랑캐가 사는 지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차가운 눈 또한 북방에서 밀려 내려오는 것인데, 눈 속의 명월(明月)은 온기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이러한 자연적 배경은 이 노래의 계절적 배경이기도 하지만, 김종서가 인식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오랑캐가 활개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휘파람을 불며 거칠 것 없어라라고 노래하는 작중 화자의 형상은 우리가 잘 아는, 깊은 시름에 잠겨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歌)는 나의 애를 끊나니라고 노래하는 작중 화자의 형상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두 편의 노래에 표현된 호기로움은 차라리 다음과 같은 노래에 표현된 그것에 한층 더 까깝다고나 할까.
  
  한 무제(漢武帝)의 북척 서격(北斥西擊) 제갈량(諸葛亮)의 칠종 칠금(七縱七擒) 진(晋)나라 사도독(謝都督)의 팔공산 위엄(八公山威嚴)으로 사이 융적(四夷戎狄)을 다 쓸어버린 후(後)에 막남(漠南)에 왕정(王庭)을 없이 하고 개가 귀래(凱歌歸來)하여 고궐 성공(告厥成功)하리라.
  
   절대주의보다는 상대주의니 다원주의가 지배적인 오늘날, 우리는 김종서의 호기(豪氣)로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소수 민족의 독립적인 삶의 보장에도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태도는 우리 스스로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종서의 호기로움은 민족의식의 발로로만 보기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적어도 그가 지었다는 두 편의 노래의 바탕에는 중화주의(中華主義)가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동양이 세계일 때의 중화주의가 서양이 세계인 시대에는 과연 무엇에 대당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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