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윤선거
작성일 개국617(2008)년 1월 4일 (금) 15:04  [신시(申時)]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with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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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사관
침류대학사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활동하지 않았던 것에 송구함을 느낍니다. 이번에는, 자본주의 맹아론과 그에 반대되는 식민사관에 대해 간략히 내용을 전달하고 상충되는 내용을 제시함으로써, 여러분들의 높은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참여해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현재 사학계에서 식민사관을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적 수단으로 여기고, 이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맹아론이란, 조선 후기 계층분화로 부농과 빈농, 유산자본가와 무산노동자 등이 사회의 계층으로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자본이 축적되었으며, 국외 통상무역으로 인해 국가 성장이 기대되었다고 전합니다. 또, 공업부분에서도 큰 성장을 이룩했는데, 예전의 가내수공업에서 -> 협업을 통한 공장제 수공업으로 발달하였다는 점입니다.

또한, 경제부분에서는 자본가의 자본축적, 사상의 등장과 보부상의 이동, 2000여점의 국내 상점망 등으로 자급자족 형태의 경제생활양식에서 잉여생산을 창출하는 교역형태의 경제로 발전하였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본주의 맹아시기 도중에 일제의 침략을 맞아 모두 붕괴되었다는 현재 우리 사학계의 식민사관을 향한 반박 정설입니다.

한편, 식민사관은 타율성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타율성론중 한사군의 지배, 임나일본부설,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식민지 근대화론은 경제, 공업에서 조선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하는데, 경제에서는 철도부설과 항만부설로 국내외간의 이동과 물자 수송이 수월해져 광복 이후 한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전하며, 공업에서는 남면북양 정책 (남쪽에서는 경공업, 북쪽에서는 중공업 발전)으로 남북에 이로운 사업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환하였다는 설입니다.

현재, 기성세대들은 식민사관 위주의 교육을 대부분 받았으므로, 당연히 식민사관을 진정한 사학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신세대들은 양측 주장에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설이 정당하며, 정확하고 체계적이라 보십니까?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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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山泉齋) 윤선거(尹宣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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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범
617('08)-01-04 21:08
전 둘다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봅니다. 체계적이라고 할 것 같으면 자본주의 맹아론 보다는 식민사관이 오히려 이론적으로는 체계적일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예전 같으면 몰매맞을 발언입니다만,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식민사관이라는 유령이 아직도 배외하고 있는 반면에 자본주의 맹아론은 싹을 키우기 전에 이미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말라버린 싹을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분들이 있기는 한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나 할까. 60년대 김용섭 선생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자본주의 맹아론의 본질은 바로 농민층 분해입니다. 이 부분은 김용섭 선생이 밝힌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일제시대 식민사학에서도 농민층이 분해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분석했죠. 바로 호적입니다. 호적만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조선후기가 되면 양반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노비층이 감소한다는 사실은 이미 일제시대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렸죠. 일제식민사학자들은 신분제의 동요를 조선이 망해가는 징조라 보았고, 김용섭 선생은 신분 상승에 따른, 부농의 창출로 보았습니다. 같은 자료를 가지고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죠. 그러나 김용섭 선생의 자본주의 맹아 이론은 80년대에는 증거 하나하나에 대해서 실증적으로 반박에 부딪히게 되면서 90년대에는 이론적으로 한계에 봉착하게 되니다. 지금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분의 제자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오히려 대놓고 그럴듯하게 이론적으로 포장을 하는 논문을 보았는데, 이론일 뿐이었습니다. 전혀 실증적인 근거가 없죠. 또한 호적에 대한 연구가 진척이 되면서 호적이 실제로 당시의 인구나 가호, 신분을 거의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학계에서만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국정교과서에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학계의 입장을 반영하게 되다면, 말그대로 교과서를 다시써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혼란이 발생하겠죠. 한번 채택한 이론을 번벅해야 하니 국민 감정에도 좋지 않을 테구요. 그래서 못바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식민사관에 대해서는 다들 극복한다고 말은 하지만,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는 이론은 아직도 식민사관입니다. 그 논리가 그렇게 체계적이고 철저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식민지수탈론도 결국에는 식민사관의 연속선상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근대화되었는가. 되지 않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제에 의해서 어떻게 조선이후의 상황을 맞이하였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로만 본대면 식민지시대에 근대화된 것은 사실이죠. 그것은 수탈론에서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이야기들하다 보니 그렇게 된것이죠. 식민지시대에 근대화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다만 수탈론에서는 근대화의 산물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인을 위한 근대화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화론자들은 그것이 조선인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구요. 그런데 문제는 근대화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근대화론자들이 경제적인 수치 분석과 관련된 부분을 해석하게 될때 식민사관의 이론에 근접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경제이외의 이면의 망각하는 측면도 다분히 보입니다. 얼마전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경제사학자의 책을 보았는데, 역시 그 속에서도 경제 이외의 부분을 이야기할 때 사회와 문화에 대한 생각이 몰각된 부분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쪽만 바라보는 편협된 생각이 결국 이러한 결과를 낳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말이 좀 길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될 논쟁이 아니라 글을 좀 난삽하게 진행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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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선거
617('08)-01-04 21:52
[답변] 박범님께,
잠곡님의 고견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본 내용의 귀결이 원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양측 주장이 편협된 생각의 연속이라 두 주장을 두고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요? 각설, 최근 서울대 경제학계에서 자본주의 맹아론, 식민지수탈론, 단절론 (전쟁 후 폐허로 일본의 공업산물 파괴, 그러므로 발전은 내재적이었다고 주장)이 이병도 교수나 손진태 교수가 말한 실증사학에 어긋난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추기고 있는데요. 만약, 식민사관이 자신의 견해로 결코 타당치 않는다고 가정할 때, 식민사관을 타파 할 수있는 논리적 근거나 방안이 있을까요? 참고로,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실증사학에도 단편적인 문제가 있고, 내재적 발전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사관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실증사학은 독일의 랑케 사학을 좇는 이론입니다. 곧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를 추구하려고 하죠. 그러나, 일제시대의 사료와 문헌은 날조와 왜곡으로 얼룩져 있다고 가정할 때, 실증사학은 사료나 문헌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학문이므로 자칫, 사학의 본분을 상실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또, E.H 카가 말했듯, 객관적인 역사는 현재 존재할 수 없으므로 실증사학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한편, 민족주의 사관은 대체로 정신적인 사관에 얽매인것이 단점입니다. 한국 통사를 지은 박은식, 독사신론을 지은 신채호,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은 대개 한국의 혼, 낭가사상, 얼, 심(心) 등을 주장하며 내재적 발전이 분명 존재하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다만, 논리적 근거가 실증사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일제가 제시하는 논박에 일제히 막힌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이러한 학설들로만 식민사관을 타파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떤 학설을 취해야 하며, 가정한 식민사관을 타파 할 수 있는지 고견을 듣고자 다시 여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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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범
617('08)-01-04 22:13
[답윤공지문(答尹公之文]
산천재님 의견 잘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논의에서 약간 벗어났다는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이 너무 복잡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선배는 이런 현상을 두고 신(新)실증주의시대라고도 합니다. 70년대에는 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목적론적인 역사연구 방법론이 지배적이었는데, 그것이 무너지고 나니 조선후기 역사연구는 실증만 하게 되었다고 비꼬아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게 지금 조선후기 연구의 현실입니다. 실증주의와 근대화론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제가 생각하는 약간의 생각이 있습니다. 실증주의는 역사적 사실의 증명을 역사연구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거기에 대한 해석은 되도록이면 삼가하도록 하죠. 어찌 보면 식민사학도 실증주의에 가깝습니다. 일본의 역사학 자체가 실증주의에서 출발했으니까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배경설명을 위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에 대학을 건립하는데, 교수를 독일에서 데리고 옵니다. 그때 역사교수로 온 사람들이 바로 랑케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일본 대학의 역사학은 실증주의가 지배적이게 됩니다. 이병도 같은 실증주의자들도 일본에서 배워오죠. 일본이 얼마나 실증주의적인지는 조선총독부에서 행한 여러 자료집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근대적 인구조사가 일제에 의해 처음으로 진행이 됩니다. 또한 각종 마을조사, 풍습조사, 지리조사 등등 모든 것이 일본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국립지리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1:50000지도도 근본은 일제가 행한 1910년대 지적도일 정도입니다. 우리가 일제시대 행한 모든 사실들이 왜곡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너무 정확해서 치를 떨 정도입니다. 다만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실증주의가 아니라 실증주의에 의해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에 의한 것입니다. 식민사학은 바로 실증주의에 의한 역사를 왜곡해서 해석한 것입니다. 그게 문제죠. 이병도 선생이 비난을 받는 이유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지적을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식민사학처럼 실증주의를 잘못 해석해서 따른 결과입니다. 그래서 식민사학과 다르지 않는 패러다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민족주의는 그것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기제였습니다. 그러나 실증주의적인 역사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전근대 도덕사관에 머물수 밖에 없었고,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지 못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이 모두는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인식을 전환해야 가능한 문제라고 봅니다. 친일이나 반일로 나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밝혀내고 처단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밝히면 무엇합니다. 그들의 진정한 반성이 없는 것을. 요즘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냐면, 정부에서는 친일파재산에 대한 환수가 곧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친일파는 이미 재산을 빼돌린지 오래죠. 그러면 정부는 친일파 재산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친일파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합니다.(재인식이라고 하니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이 연상되는데, 그 책의 논지하고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것은 바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죠. 친일파의 구분은 어디까지 일까요. 생계를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면사무소 하급 직원이 된 것도 친일일까요? 1920년대가 되면 지방자치제가 실시 되어 조선인 지방의회 의원도 탄생하게 되는데, 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중에 하나는, 조선인 지방의원이 정부에 요구하기를, 일본인 거주지역만 쓰레기 수거가 잘 진행되고, 조선인 거주지역은 쓰레기 수거가 잘 안되니 동등하게 처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조선인이 지방의회의 의원이 된것은 일본에 협력한 것이지만, 조선인을 위한 정책을 펼친 것은 무엇이라 설명할까요.
실증도 중요하고 해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식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두 극단으로 몰라간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일반 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말이 길어졌습니다.
윤선거 사학계에서도 각성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으며, 양측의 대립적인 주장도 서로 단점을 앉고있기에, 상호 조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역시, 역사를 전공하시는 분 답게, 전문성이 뛰어난 글 같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차츰 의견을 교환하며 상생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1/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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