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윤선거
작성일 개국616(2007)년 10월 22일 (월) 23:59  [자시(子時):삼경(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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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 독립유보론(獨立留保論)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저번 정한론 논쟁을 진진하게 보았으며,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그 자리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근대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중 흔히 문화통치기라고 불리우는 1920년대의 민족주의 진영에 관하여 몇글자 적어봅니다.

1920년대에는 언론, 집회, 결사가 가능해진 시대로 20년대 이전의 비밀결사는 종적을 감추고 대내외적으로 활동이 자유롭던 시기였습니다. 그와중에 식민지 지식인 층이나, 자본가층, 지주층은 지방자치행정에 참여하고자 하였고 도리어 자치운동이라는 허명아래 약 1억원정도를 일제에 상납하고 참정권을 얻었습니다. 그 당시 1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조선인은 몇몇 재벌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것이 민족개량주의의 효시가 되어, 근대사 거상 김성수의 휘하에 이광수, 최린 등이 변절했고 대다수 식민지 지식인이 기회주의자로 돌변해버렸습니다.

특히, 안창호의 제자 이광수가 동아일보에서 민족적 경륜이라는 사설을 논단에 실어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도리어 독립유보론이라는 골자까지 드러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유일당 운동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단체와 연계했습니다. 정우회와 연계한 끝에 신간회가 설립되었으며, 광주항일운동을 끝으로 해산되었죠. 그들은 독립절대론을 내세우며 민족주의계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독립유보론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며 말이죠.

하지만, 서로의 공통점은 있습니다. 독립을 하기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실력양성론을 주장했거든요. 타협적 민족주의, 민족개량주의, 독립유보론 등의 변절자들을 옳게 볼 것인가? 혹은 선 독립, 후 양성에 초점을 맞춘 독립절대론 등의 민족주의자들을 옳게 볼 것인가에 대해 질의코자 합니다. 다시말해, 기회주의자들을 옳게볼 것인지 묻고자 함입니다.

팁을 드리자면, 독립유보론은 일제의 자본을 국내로 들여와 훗날 독립을 기약하자는 식이며, 독립절대론은 경술국치 이전의 독립운동형태를 고수하며 혈전을 해서라도 독립을 취하자라는 식입니다.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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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山泉齋) 윤선거(尹宣擧)
아마도 녈구름 근처에 머물세라-이백 등금릉봉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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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범
616('07)-10-23 19:20
제 소견은 질문에 산천재님의 입장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기회주의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력양성론을 주장한 하고 민족개량주의로 흐른 부류들을 기회주의자로 단정지어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기회주의자인지, 그들이 어찌하여 변절하였는지에 대한 견해는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변절했으니까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 머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한반도 밖에서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바친 그분들은 분명 대단한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것 자체로 이미 대한민국에서 존경해야 할 대상이니까요. 문제는 그들은 아주 극소수일 뿐이고 대다수의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국내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3.1운동이 식민지 조선에 미친 영향을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비극이기도 합니다. 바로 실력양성론과 무장투쟁론이 갈라지는 분기점입니다. 두 파 모두 3.1운동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자는 국내에서 후자는 국외에서 각기 자신들의 길을 가게 됩니다. 당연하지만 국외로 나가는 무장투쟁론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력양성론으로 흐르게 되죠. 이들이 바로 민족주의 우파가 됩니다. 이들은 산천재님께서 말씀하신 여러가지 일들을 합니다. 이때까지는 우리가 말하는 친일파는 아닙니다. 물론 조선총독부와 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서로 상보적인 관계였는데, 조선총독부는 실력양성론자들을, 실력양성론자들은 조선총독부를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친일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죠. 조선총독부도 일면 어느정도 양보한 부분은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치운동입니다. 독립을 유보했는지 아닌지는 공부가 짧아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 실력양성론자들은 자치운동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굳어지게 된 것이 40년대 민족 말살정책입니다. 이미 20~30년대 자치로 인한 독립?을 생각하던 이들도 40년대가 되면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게됩니다. 이때부터는 우리가 늘 보던 것처럼 노골적으로 일본에 적극적은 협조정책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독립에 대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럴바에야 일본제국주의의 제2국민으로 살아가지고 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주장입니다. 아직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걸로 아는데 조선에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1946년쯤인가에 조선에도 정치의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신설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조선을 정식으로 일본의 국민으로 인정하려고 했죠. 물론 그 전에 독립을 했지만요. 절대 식민지 지식인들이 기회주의자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외에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것도 국내에만 있으면 결국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죠 일본에 의해서 조선인이 없어지기 전에 일본안에서 조선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낸 것이 바로 자치요, 제2등 일본국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기회주의자로 몰아 넣는 것은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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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선거
616('07)-10-23 20:40
[답변] 박범님께,
먼저, 소견을 남겨주신 잠곡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왜 민족개량주의자들이 기회주의자라 구속하고 단언했는지에 대한 소견은 생략했습니다. 뭐, 시간적 여유도 적었고 공부정도가 벽벽한 탓에 그렇기도 하구요. 잠곡님의 소견은 대체적으로 제가 기회주의자라 부르는 민족개량주의자들을 긍정적으로 옹호하고 계시는군요. 물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전부 기회주의자가 아니며, 20~30년대 일본의 선회정책, 독립에 대한 열망침식 등에 말미암아 좀 더 편히 살려는 욕구가 강했죠. 이런 점을 약간 들춰보면, 왜 기회주의자라고 통칭했는지 아실수 있으실 겁니다. 첫째, 민족의 번영을 위해 우파계열로 빠져든 조선 지식인들이 전 국민을 상대로 일본을 칭송하라 선동한 점입니다.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의 휘하 이광수가 사설논단에 적어올린 '1923년 민족적 경륜'이라는 그의 사설만 봐도 그렇습니다. 어찌 3.1민족 운동 33인에 포함되는 이광수가 일본을 대찬양하는 글을 기고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일본식, 일본에 대한 선양, 갈망 등의 개인적인 욕망이 민족의 독립보다 앞선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개인을 두고말하자면, 민족보단 개개인의 삶의 권리가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민족의 지도자가 변절했다는 사실은 민족을 버리고 돌변한 것을 기회주의자라 말할 수 밖에없었습니다. 둘째, 20년대 중반 자치운동을 폈지요? 지방행정의 참정을 위해 억원대의 거금을 상납하고 참정했다는 진술은 약간 미심쩍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하면, 근대사에 기록될만한 경성방직회사 이사장 김성수가 자치운동의 선봉이였으며, 훗날 그는 친일파로 돌변하여 일본에 군용기 2대를 상납하고 국가정신대총동원연맹의 이사로 지내며 민족의 자멸, 공멸을 부추긴 악질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치운동을 제 시각에서는 친일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았구요. 셋째, 일본의 선회정책, 회유정책에 불구하고 끝까지 민족운동을 선도하던 지도자들에게 먹칠했다는 점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논거를 들었지만 대부분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벽초 홍명희, 이상재, 조만식 등은 계열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목숨을 내놓은 선열이십니다. 그런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독립후 미군정 집권시, 민족분열자들이 대거 정치에 가담했고 국민대통령 훈장까지 받아냈습니다. 김성수가 말이지요. 어찌 같은 민족지도자로 볼 수있겠습니까? 그 당시의 사안을 개개인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해도 되었을만한 시기였나요?.. 과연, 우리민족의 독립은 모든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에 의해 성립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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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병욱
616('07)-10-23 22:59
독립유보론이든 독립절대론이든 상관없이 당시 한민족의 생존이 달려있을 것입니다. 한데 실력을 양성하는 실력양성론을 해야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당시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이가 불과 만 명도 되지 않았을 터이니까요. 하니 문맹률이 계속생겨날 수 밖에요. 이광수나 인촌 김성수와 같은 이도 실력양성론을 운운해서 조선민중의 실력양성을 주장하지만 다 허사가 되어서 친일로 변절되지 않았습니까? 그럴만큼 더욱 실력양성론의 가치는 안좋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타협적 민족주의, 민족개량주의는 조선민족을 더욱 자신감만 북돋을 구실만 할 뿐, 조선민족의 얼과 주체성을 일깨워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문물을 받아들여 독립을 기약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을 옳게 봐야겠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기회주의자들이 없다면 조선의 독립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구름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위에서 선생들의 말씀은 마땅히 옳고 옳습니다. 하지만 저는 박열이라는 열사를 존경을 하고 싶습니다. 박열은 누군지 아십니까? 그가 바로 아나키스트입니다. 아나키스트의 의미는 무정부주의자입니다. 비록 박열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치가 없더라도 그의 독특한 연애관(?)에 있습니다. 그는 웃기게도 일본인 여자와 사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박열은 원수와 같은 일본인 여자와 사귀는 것 자체가 좋지는 않게 보지만 이 일본인 여자가 겪은 일들은 조선사람들과 겪은 일이기 때문이었지만. 일본에서 흑우회를 조직하여 두 사람은 서로 동지로 살아왔고, 그들이 혹독한 왜경에게 잡혀갈 때부터 일본인 여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투쟁적인 사랑을 이룬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연유는 이렇게 원수 격이지만 조선민족의 처지와 동일시 되는 여자와의 옥중결혼을 통해 감명을 받은 탓이기 때문입니다. 기회주의자라고 해서 안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자세한것은 간찰로 보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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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동엽
616('07)-10-24 19:28
글 재주도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고 뭐 글을 많이 써 봤자 복잡하기만 할 것 같아 아주 간단하게
제 의견만 말하겠습니다.

기회주의자들!!!! 나빠~~~!!!
강동엽 확실한건 여기서 제가 말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닌 점점 자신의 영달을 위해 움직였기 때문 입니다.
막상쓰고 보니 논쟁이라...... 죄송합니다.
10/2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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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상근
616('07)-10-28 12:30
음. 저야 워낙에 근현대사 쪽에는 관심이 적다보니 경륜은 적지만 글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1920년대에 있는 변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바로 3.1운동의 영향이 컸습니다. 여기에 입장을 바꿔서 실력을 키우자는 사람들도 등장하는데 배경을 잘 살펴보자면 한일 합방이후 회사령에 의해서 조선인이 기업등을 설립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한 이래, 이것이 3.1운동을 계기로 풀어주면서의 변화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던것 같습니다. 일단 자치의 주장은 아마도 스스로 자본을 쌓고 점진적으로 나마 독립을 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을 거라고 보여집니다. 직접적으로 독립을 한다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척 좋겠지만. 반대로 우리가 일본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세력하에 있던 사람들이 독립한다라는 면을 생각한다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것입니다. 그만큼 자국의 국가 수입도 줄어들것이고, 덩달아 일본이 그동안에 우리민족에게 한 선례로 볼때 독립을 한다고 해서 일본과 우호적으로 나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러한 탓에 급진적으로 독립을 꾀하려 했다면 아마도 일본측에서 곱게 보지 않고 즉각적으로 진압하려 들었을 껍니다. 이러한 급진적인 경향중 하나가 바로 3.1운동이었고 말이죠. 변절론자의 입장을 저도 그다지 좋게 보지는 못하지만 후진의 양성과 더불어 훗날의 때를 기약하고자하는 방침이 아마도 그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에 좀 왜곡되어 버리는 경향은 아마도, 일제의 경제체제 안에서의 발전에서 자본을 성립하는 입장에 놓이면 그만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득을 취하려 드는 것이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궂은 의지를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면 다행이지만, 이 과정에서 궂이 목숨을 담보로 한 모험을 하기 보다는 쉽게 이득을 쌓는 입장으로 차츰 변화하면서 아마도 일본에 동조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의 이광수나 최남선과 같은 사람이 변절하게 된 점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생각해볼때, 글을 써서 스스로를 지지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요구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 먹고살기 위한 재력등이 뒷받침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진짜 그 사람들이 굳은 의지가 있어서 항전을 했더라면 좀더 영광스럽게 기록되었겠지만.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문장가들의 경제적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작가들을 보아도 재력상 넉넉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글을 쓰는 수필가나 시인등은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상은 먹고살기가 힘든 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에 일제가 교묘하게 둘을 갈라 놓고,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해 좋은 자리까지 마련해주는 입장에서 글을 쓰는 문장가들이 쉽게 고개를 돌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들의 변절에 대해서는 비난을 받을수 있겟지만. 현실적인 입장에서 잘 생각을 해보자면 경제적인 영향이 아마도 이들을 크게 변절시키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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