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역
작성자 손수건
작성일 개국618(2009)년 12월 11일 (금) 10:19  [사시(巳時)]
ㆍ추천: 0  ㆍ열람: 213      
서얼, 적서차별과 당쟁
적자=양반+양반
서자=양반+평민
얼자=양반+천민(종)  을 말합니다.

* 참고도서: [왕을 참하라]-백지원/진명출판사

서얼은 아버지(양반)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나으리""대감님" 이라 불러야했고, 또 제사때도 절을 못하게했고 그냥 자리에 서있기만 해도 영광으로 알 정도였습니다. 결국 자기혈족 후손이 아니란 얘기죠.

조선시대에  너무나 대범하게도 <신분차별 없는 민주주의 세상>을 꿈꿨던 풍운의 혁명가, 교산 허균의 한국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죠.

허균은 공인된 양반으로 서얼이 아니었지만, 주변에 서얼을 친구로 많이 사귀어 그 사상적 영향을 받았죠. 홍길동은 천민(종)이 어머니 이기에 '얼자'가 됩니다.

수운대성사님은 서자로 태어났고요. 서얼(=서자+얼자)이  양반관료로 등용된건  서민적 군주였던  영조때 부터 차별을 좀 풀다가, 실제 관료로 발탁해 쓴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임금 입니다.

정조대에 뛰어난 정승 채제공의 안목으로  대학자 정약용을 비롯해  박지원,박제가,이덕무 같은 천재선비들을 발탁해서 규장각관료로 쓴것이죠. 그들은 백성삶의 풍족함을 위해 애썼던 실학의 선구자 이고요. (정약용,박지원은 서얼이 아님)

조선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세종 다음 2위가 정조임금이라 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당대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신분차별 국가였던  조선시대에 그 많은 훌륭한 선비들이 있었음에도 신분차별은 더욱 심해져만 갔었죠.

조선의 선비들은 조선시대 내내  성리학을 통해  "도덕군자 수양론"을 얘기하면서, 실제 백성들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실천없는 말과 이론뿐인 도덕군자론 이었죠. 조선중~후기 서인집권 이후엔 더욱 거지같은 백성들의 삶이었죠. 그것이 임진왜란,병자호란 (조일,조청전쟁) 양란을 겪게 만들었고,

그러고도 정신못차려  중화사대주의 (멸망한 명나라를 이후 100년간 서인들은 더욱 섬김) 의  성리학에 더욱 푹 빠져서, 백성들 삶을 더 피폐시키고 국력을 약하게하여,  결국 서세동점의 19~20 세기 에 나라가 망하는 상황까지 만들게 되었고요.

조선을 부흥시킬 마지막 기회, 정조임금의 개혁은  서인-노론당에 의해  독살(1800년) 당하면서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이후부터 조선은 암흑의 세상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서얼차별등 모든 신분차별 철폐가 본격화 된건ㅡ 동학혁명(1894)에서 그 기치를 내세우고 갑오경장으로 인해서 입니다. 그 은덕은 수운대성사의  동학창도에 이은 전명숙장군의 동학혁명으로 인한 것입니다.      

조선역사를 공부해보면,  김육-이익-박지원-정약용 등 역사속에 권력핵심부가 아닌 분(이름이 덜 알려진 분이 많죠)들이  오히려 더욱  백성삶을 살찌우려 했던  진정한 도덕군자의 선비로 살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조명해보면, 1대 태조~ 10대 연산군(1392~1506) 까지는 대체로 군강신약(임금은 강,신하는 약함) 이었고, 11대 중종~26대 고종까지는 군약신강 의 권력구도로 역사가 진행되었다고 봅니다. (역사에선 조선은 27대 순종까지로 봄)

연산군을 폐하는 중종반정 이후,중종대에 사림의 원조격인 '정암 조광조'를 필두로, 초야에 묻혀있던 재야선비(사림파)가 수양대군(세조) 반정에 참여해 오래동안 권력누려온  한명회등의 세력 맥으로 이어진 공신,관학파(=훈구파)들을 밀어내면서 사림파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 후대 사림중  영남학파의 회재,퇴계,남명,(화담) 등과  기호학파의 율곡,우계,구봉,송강 등을 필두로 제자그룹이 갈라져 형성되면서 (대체로 그 지역이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죠. 지금의 영,호남/서울경기-지방 구도처럼)

처음엔 지역중심으로 영남,기호학파 ===> 후대엔  남인,서인 등으로 학맥중심이 되는데, 기호지방인 경기-충청-전라에도 뿌리가 영남학파인 남인출신도 나오고, 영남에도 서인출신이 나오는 등 뒤섞입니다. 영남학파가 나중에 동인(남인+북인)이 되고, 기호학파는 서인(노+소론)이 됩니다.

옛날 지역명칭은 경기,호서=충청,호남=전라,영남=경북(우도)+경남(좌도)~그래서 기호학파란 경기+호서+호남 이고  영남학파란 영남지방 의 학파를 말합니다.  

<군약신강>의 정치틀 안에서, 군주는 약하니까  집권하게 된 사림파 선비(신하)들이 설쳐대면서 <동인-서인>등 당쟁이 분열되기 시작했던 겁니다.

<동,서인>은 분열되어  동인은  <남,북인>으로, 서인은 쭉 내려오다가 병자호란 이후 최명길(소론쪽)때에 조짐보이다가  조선후기때에  "송시열-윤증"의 회니분쟁이후 본격적으로 <노론-소론>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국론분열이 심해집니다.  

 
연산군 같은 비정상적인 군주의 출현으로  "왕의 위상"이 많이 깍이면서, 많이 혹독하게 당했던  선비들이 왕의 폭위를 누르고자 제약했고 그러다 보니 왕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고 설쳐대었던 것일까요?


15~16세기 대항해 식민침략 시대때, 스페인-포루투칼을 선두로 점령된  남미(남아메리카)국가에는  조선의 적,서,얼자 차별과 조금 비슷한게 있습니다.

바로 혼혈족 인데요.신분순서로 보면 이렇습니다.

백인> 메스티조> 뮬라토 > 삼보 > 인디언=흑인 > 개 등등 동물
처음에 이 정보를 접하고 이해 안되었는데, 어찌해서 혼혈족이 순수 황인종인 인디오보다 더 높은 신분? 그만큼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인디오문명 멸족이 심했다고 볼수있죠.


메스티조=  백인+황인
뮬라토=  백인+흑인
삼보= 황인+흑인

남미에서 인디오족이 가장 많은곳은 페루,볼리비아 같은 나라,
백인이 많은 나라는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이고
메스티조가 많은 나라는 중남미의 멕시코,에쿠아도르 등 입니다.

언어는 브라질만 영어+포루투칼어를 쓰고, 나머지 국가는 거의 다  영어+스페인어를 씁니다.

사진
소소(笑笑) 손수건(孫修乾)
세상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
자택 서백당 방문
http://www.1392.org/bbs?land86:5603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답글 : 제한 (접속하십시오) 서찰(메일) 수정/삭제 : 제한 (작성자 본인 아님) 추천     윗글 밑글     목록 쓰기
[1] 진석호
618('09)-12-11 13:04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진
[2] 정승태
618('09)-12-11 13:17
허허.. 본조는 일부 일처제 이지요?
사진
[3] 이국호
618('09)-12-11 18:09
글 잘 읽고 갑니다. ^^
캐릭터
[4] 이창규
618('09)-12-11 18:52
不在其位하얀 不謀其政이라 하였으니, 말씀이 과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 선비들이 탁상공론만 주장했다느니, 쓸데없는 당쟁만 일삼았다느니 하는 주장은 삼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날 다당제 민주주의에서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지 않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이들도 많으며, 당쟁은 국가의 정체성과 방향을 잡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가치관과 정체성이 서야 길이 바로잡히고, 비로소 나아갈 수 있는 법, 어찌 당쟁을 불필요한 탁상공론으로만 얘기하시는지 알지 못 하겠습니다. 또 역사적 오류도 있는 듯 한데, 정조대왕의 승하를 노론의 계략으로 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정순왕후 독살설, 경면주사 독살설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훗날 정조의 유지에 따라 세도를 장악한 시파 출신의 김조순조차 독살설을 내세워 벽파를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살설은 후대 역사소설가들의 아쉬움과 공상이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김육-이익-박지원-정약용"의 계보를 내세운 것은 나름 공적을 살피셔서 내놓으신 듯 하나, 다소의 영향은 받았겠으나 저 네 사람은 붕당이 다릅니다. 즉, 서로 간에 가치관이 사상세계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말입니다. 공적만 보고서 한데 묶어 보시는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 정조와 서류통청을 연계하여서 얘기하시는데, 당시 정조의 총신이었던 체재공조차 서류통청은 관례에 맡겨야한다는 주장을 일으켰습니다. 정조가 서얼들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야말로 조선 역사에 있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치꾼으로써, 문체반정과 서학논쟁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탕평책을 이루려 했고, 특히 문체반정의 모습에서, 정조의 이상이 철저히 유학사상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송자대전을 편찬했음에서도 이는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군약신강을 나쁘게 보시는 듯 한데, 군강신약이었다면 조선은 그야말로 전제왕정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군약신강의 풍조로 인해서, 격렬한 당쟁이 생기기는 하였으나, 덕분에 군왕의 지위가 어느 정도 낮아지고 사대부의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저는 감히, 이러한 환경이 민주주의에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흔히들 민주주의의 비조로 말하는 그리스 문명, 아테네 폴리스에서조차 시민은 극히 적었고 여자,노예,외국인은 제외됐습니다. 이때 노예는 아예 사람 취급을 받지 못 했고, 극소수의 시민들만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며 정치에 참여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도 "민주주의"라고 불러줍니다. 조선은 어떻습니까? 겉은 왕정이나, 왕이 사대부의 주장 때문에 제 뜻을 꺾이기도 하였고, 유림들의 여론을 중재하고 절충하려고 부단히 애썼습니다. 사대부 계층이야말로 그리스 때의 시민에 비할 수 있다 여겨집니다. 조선에도 노예가 있었으나, 노예 뿐 아니라 상민도 있었고, 사대부들의 실천력은 알 수 없으나, 유학 경전의 핵심은 언제나 民心則天心이었기에 허황된 명분을 내세울 때에도 꼭 백성을 강조하였을 염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캐릭터
 
  다른 아이콘 비공개 설정 사조 백과사전 맞춤법 문법 검사기 0
2000
저장(입력)
강원도 지역 인기 게시물 열람 (열람 및 댓글순)
번호 분류  문서 제목  이름 작성일 열람 인기
3961 [포사] 나는 여자다 [10] 조휴민 621/12/31-16:20 206
인기지수 100
3960 직장상사가 싫어하는 부하직원 [4] 박현철 618/01/11-11:00 205
인기지수 100
3959 [강원도/도사] <알림> 구황식품 제공 알림 [8] 한종훈 612/12/15-22:20 205
인기지수 100
3958 경사 와중에 [10]+16 라우주 620/07/07-10:45 204
인기지수 100
3957 [은류생각] 불륜 ? 사랑 ? 이유아 610/11/06-18:31 204
인기지수 98
3956 [별강] 조선의 건국 (태백서당 초청강사 정진) [1] 정진 자택 623/08/17-07:56 203
인기지수 100
3955 [氾思] 혼인시즌 [16]+8 김진 620/01/03-23:56 203
인기지수 100
3954 정말 좋은 시입니다. 지나가는이 610/12/09-00:06 203
인기지수 98
3953 [경기도/검률] <공고> 강원도 설악산 식목 사업 [6] 정우일 623/03/29-00:07 201
인기지수 100
3952 [白雅] 걸그룹 서열 [9]+11 서성일 621/02/21-12:53 201
인기지수 100
3951 현재 검색어 순위에 [6]+3 윤소소 620/02/26-20:35 201
인기지수 100
3950 [소예] 여자에게 대시하기 [3]+3 진석호 619/12/24-22:23 201
인기지수 100
목록이전다음쓰기 1,,,11121314151617181920,,,341